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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07  17:2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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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포산업선교회 정부 지원 길 열려 

   
 

영등포산업선교회가 50여년만에 다시 태여난다. 오는 11월 11일(목) 오후 3시에 영등포산선에서 개관 축하 행사를 할 예정이다. 산선의 사역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모해왔지만 건축 이래 내부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고 방식도 달리해 하게 된 것은 처음이다. 다만 교회의 주제적인 힘이 아닌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이름도 "노동자종합지원센타" 로 '산선' 의 정체성에 문제가 없는 가 하는 지적이 있다. 

영등포산선의 역사를 기억하는 민주정부하에서는 정부와의 이런 관계나 협력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정권이 바뀌거나 법이 달라지면 과연 얼마나 어떻게 될 것인가는 의문이 있어 이를 대비해가면서 가야할 것이다. 앞으로 운영비도 정부 예산을 받기에 하는 말이다. 이제 교회의 선교라는 주체성과 국가라는 공공성에서 어떻게 교회의 자산인 산업선교가 양립할 것인가는 실무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로 보인다. 

새로운 건물은 기존의 예배당으로 쓰던 2층을 대형다목적 홀로 하고 실무자들 사무실과 노동자 상담실, 다람쥐회(신협)과 생협, 소규모 홀과 자료실로 거듭난다. 지하실에는 지난 60년의 산업선교의 역사와 자료들을 전시하는 자료실로 만들었다. 그리고 동역하는 우리교단의  '일하는 예수회' (회장:신승원 목사) 회원들의 홈커밍데이도 이날 겸하여 한다. 

   
 

1957년 영등포지구 산업전도회로 시작된 영등포산업선교회가  60여년만에 큰 전환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초기엔 우리교단 기독인 기업가들의 공장내 예배 모임을 인도하던 강경구 전도사와 총회 전도부안에 산업전도위원회 간사로 있던 오철호 목사가 효시다. 이후 산업선교는 훈련을 받은 조지송 목사가 전도부안에서 실무를 시작하고 영등포로 파송을 받게 된다. 인명진 목사는 이미 신학생 시절 부터 산선과 관계를 갖고 김진수 노동자 사망에 장신대 학생들과 데모도 하는 바람에 군목입대를 거부당하자 신학을 마치고 이른 나이에 합류한 것이다. 

우리교단이 이러한 산업선교를 빠르게 받아드린 것은 미국장로교회 선교부의 헨리죤스 목사의 내한과 지원에 힘입은 것이다. 또 미국강철노조(AFCL)위원장 렘지 장로와 나중에 연세대학교에 역시 미국장로교회 화이트 목사가 세운 도시문제연구소(소장 고 노정현 장로) 가 있었다. 미국장로교회는 이미 도사화 산업화를 경험한 것을 토대로 홍콩의 Koolon 지대와 필리핀의 Rondo에서도 실험적인 선교를 한 바 있다.

헨리죤스 목사는 10차례 이상 내한하여  당시 총회 전도부안의 산업전도회 초대 간사인 오철호 목사와 함께 문경등 5.16 이후 근대화로 인하여 한국에 세우진 대형공장들등 전국의 산업도시들을 방문하고 산업선교에 대한 조사를 한다. 또 당시 신학교를 막 졸업한 조지송 목사를 미국에 청하여 루스밸트대학에서 공부하게 하고 시카코의 소올 알렌스키연구소에서 CO(Community Organazion) 훈련을 하게 한다. 또 당시 총회의 지도자들도 이런 신학이나 선교에 모두 동의하였기에 순조로웠다. 

그러나 이들은 공장전도란 기업가의 신앙만족이지 노동자들에게는 원치 않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예배시간을 근무시간에 넣어주지도 않고 일찍오라고 하니 누가 좋아했겠는가? 인명진 목사와 함께 산선훈련을 최초로 받은 정진동 목사는 고향인 청주로 가서 청주 산업선교를 하다가 이런 문제로 노회와 갈등하다가 탈퇴하여 기독교장로회 가지만 여기서도 적응이 안되 나중에는 독자적인 활동을 한다.

7-80년대 국가는 농촌의 이농과 저곡가 정책으로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수출입국으로 국가의 부를 키우자는 슬로건으로 노동자들에겐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했다. 그 정도가 심하여 산선은 기업주의 자기만족을 위한 노동자들의 예배가 아닌 노동자들의 권리를 깨우는 의식화를 위한 소룹조직과 노동조합 활동으로 바뀐다.

당시 영등포 인근의 대한모방, 방림방적, 원풍, 남영나이론, 롯데와 해태, 대일화학 여성노동자들이 중심이 된다. 꽃꽃이나 요리, 음악감상, 여성으로의 교양이나 상식을 배우는 활동을 통하여 확장했다. 또 현장 노동조합과 연대하여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곳은 대림동에 있던 원풍모방이었다. 이렇게 70년대 여성노동운동의 맥카가 된 산업선교는 수도권에서는 영등포산선, 인천에서는 감리교 인천산선이 중심적인 활동을 한다.

산업선교는 정치적 산물 

그러나 당시 군사정권은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만나는 노학연대를 두려워 하여 노동부와 경찰 검찰 언론이 앞장서 노조탄압과 파괴에 앞장선다. 그래서 나온 말이 "도산이 들어가면 도산된다" 라는 구호를 만들어 법에 주어진 노동 3권을 제한해 생존권을 억압했다. 그러니 자연히 산업선교도 정부에 대하여 비판적이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급기야 YH사건등으로 인명진 목사가 구속되고 조지송목사 마져 와병과 계엄으로 영등포는 한때 문을 닫을 지경이었다.

1983년 장신대를 졸업한 이근복 손은하 목사가 부임하여 산선의 최후활동인 성문밖교회를 통하여 명맥을 이어갔다. 신군부의 집요한 탄압으로 마직막 남은 민주노조 원풍을 해산하는 과정에서 공장을 폐쇄당한 노동자들이 대거 영산에 머물게 되면서 이후 국면과 노동운동의 미래를 보는 입장 차이로 결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은 훗날  원풍 조합장이었던 방영석 전 의원이 원풍 50년사 책에서 당시 산선과 원풍은 서로 입장이 달랐라는 말로 정리를 했는 데 이는 노조원들 입장과는 다르게 표현했다.  

당시 자세한 과정은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없다. 따라서 언젠가는 한번 짚고 넘어갈 문제인 것이 당시 산선이 노동자들을 쫒아 낸것이냐? 원풍 노동자들이 주체적인 운동을 위하여 나간 것이냐 하는 쟁점때문이다. 그것은 아직도 일부 원풍노동자들은 다소 섭섭한 감정으로 산선이 자신들을 짐스러워 버렸다는 입장때문이다(원풍노동자회 대표 황선금의 사무리 영상 인터뷰)  

   
 

당시 실무자였던 신철영 선생(괴산 아이굽 이사장) 송진섭(전 안산시장) 이근복, 손은하목사등이 생존해있어 언젠가는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후 인명진 목사는 호주로 유학을 갔다 왔고 이후 산선은 야학과 85년 중반이후 구로연대 활동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진방주, 박진석, 손은하, 신승원, 손은정, 다시 진방주, 손은정목사가 2019년 부임하여 현재에 이른다.

한편 영산에서 처음에 시작된 노동교회가 1983년 이근복 목사 부임후 성문밖교회로 하여 활동을 하다가 이후 영등포노회에 정식으로 등록하여 조직교회가 되여 장로도 세웠고 현재 김희용목사가 시무중이다. 전에는 영산 총무가 담임목회를 겸했는 데 현재는 교회공동체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것으로 안다.

영산의 리모델링은 신승원 목사 총무 시절에 창립 50주년 기념사업으로 계획이 되였다. 그러나 신목사가 이런 문제로 사임 후 사장되었다가 진방주 목사 부임후 서울시와 영등포구와 협력으로 논의가 시작된다. 그러나 당시 정부 예산이 산선에 섞이고 지원을 받게 되면 지금 처럼 이름도 바뀌게 되고 산업선교의 정체성과 역사는 어디로 가느냐 하는 인명진 목사의 전임 총무들의 반대로 진목사는 사임한다.  

그러나 건물은 노후되여 더 이상 공간으로의 역할이 어려운 상태에서 노동운동과 노동자 삶에 대한 지원 역할을 포기할 수 없어 이전에 논의 된 것들을 재고하여 계약을 하고 모든 수리를 마치고 개관식을 하게 된 것이다. 교회는 처음 경기노회에서 시작되 영등포노회 소속이 되었지만 과거 서울남노회(차관영 목사)와 동남노회(조남기 목사)등과도 협력을 한 바 있다.

한 때 전도부안에 총회산업선교회가 있었고 전국적으로 산업선교회 활동을 하다가 인명진 목사에 의하여 총회 노동상담소를 설치하고 지방 노회에 설치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IMF 이후 노숙자들이 증가하자  당시 노동상담소 소장인 안기성 목사에 의하여 "거리의 천사들" 라는 사역으로 전환하여 현재 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원래 전도부(국내선교부) 안에 있던 기관인데 현재는 독자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안다. 

   
 

한편 지역에는 산선에서 노동목회 훈련을 받은 목사들이 전국의 도시에 개척교회를 시작하여 노동상담소나 공부방, 쪽방상담소, 노숙자 사역등 특성에 맞게 운영하거나 변화해왔다. 그런 가운데서도 꾸준하게 교회공동체를 유지해온 이들도 적지 않다. 현재는 분화되 이농해 생명살림 사역을 하는 이들(김제 손은하, 신승원, 진안 000, 박후임, 담양 전영미목사) 있다. 또 은퇴한 이들도 나오는 데 대전의 000, 이동규, 김규복, 박충호목사가 있다. 또 세상을 뜬 이들도 있는 데 광주의 이경노, 안양의 최주상, 과천의 오규만 목사다.

신학교 교수로는 부산장신의 황홍열, 호신에  최승기 교수가 있고 선교사로도 이희운, 허춘중, 정요섭목사가 있으며 영성운동가로는 김영락목사가 인터넷 언론을 하는 유재무 목사가 있다. 지난 2013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WCC 한국총회에서 모인 일하는 예수회는 창립 30주년 기념행사를 갖은 후 2018년 군산과 변산반도에서 가족모임이 마지막이 된 듯 하다. 

그리고 이번 11월 11일 개관식을 맞아 일하는 예수회(회장: 신승원목사)도 모처럼 전체 회원들의 모임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교권엔 초연한 회원들이지만 대구 구민교회 김경태 목사가 총대로 오랜동안 활동중이고 안하원 목사는 부산에서 근속 30년 표창을 받았으며 2021년 최초 노회장으로 군산노회서 유승기 목사가 취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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