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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준 교수의 교회사 발굴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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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5.04  14: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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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남산신학교에 배상한 돈 2400만환

서울장신대 정병준 교수가 공개한 이 자료는 합동측과의 분열전후 미국 남북장로교회와 당시 총회와 언급된 관계자들 사이에 자료들을 찾아낸 연구물이다. 오래동안 이런 문제가 소문으로만 존재하던 것을 정병준 교수가 당시 본국에 보고한 선교보고서와 신문자료등을 조사하여 찾아 낸 것들이다. 그러나 과거의 일을 공개하여 특정인에게 책임전가하고 욕보이자는 것이 아니다. 바로 알자는 취지다. 당시 이 분들의 교단내 위상이나 역할로 인하여 언급되지 못했다.

이런 1차 자료들을 찾아내는 것이 연구자들의 임무다. 이 원고는 지난 5월 7일 한국기독교역사학회가 주관한 제404회 학술발표회에서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의 갈등과 분립이 남긴 교훈" 1945-1955) "선교사 문서를 중심으로" 에서 정병준 교수가 발표한 내용이다. 이날 주제에 발표에 대한 논찬은 한신대 겸임교수인 한강희 목사가 했다. 

1959년 9월 총회 이후 가장 큰 한국 장로교단은 연동과 승동으로 갈라졌다. 남산 장로회신학교 자리는 국회의사당이 들어오게 되었고 12월 31일까지 학교는 퇴거해야 했다. 국회에서는 남산의 신학교에 대한 보상금 2400만환을 지급했고 그 돈은 안두화 이사장(과거)의 명의로 된 농협 통장에 입금되었다. 이때 학교의 이사장은 NAE측 노진현 목사였고 임시 교장은 에큐메니칼 측의 계일승 박사였다.

에큐메니칼 측 교수들은 1959년 11월 17일 한경직 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대광 학교로 기물과 집기를 옮기려고 시도했으나 NAE 측 학생들이 방해하자 폭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 집기와 기물과 예금 통장을 그대로 놓고 물러 나왔다. 사실 NAE 측에서도 노진현 목사가 집기와 기물을 11월 16일 김치선 목사가 있는 대한신학교로 옮기려고 계획을 했다가 사정이 있어서 옮기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때는 김윤찬 목사가 ICCC 매킨타이어를 불러들여 전국적으로 다니면서 반공 강연을 하고 WCC 용공설을 퍼뜨리고 있었다.

에큐메니칼 측은 신학교 재정을 위해서 2400만환이 절실했으나 남대문 농협은 새로 통장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안두화는 계명대학교 학장직을 맡고 있었고 계명대학교는 대구 농협에 거액을 예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농협은 2400만환을 NAE측으로 주지 않고 안두화에게 돌려주었다. NAE 측은 통장은 확보했으나 돈은 놓치게 되었고 당장 신학교를 유지할 재정이 없었다. 따라서 ICCC 맥킨타이어의 돈을 받아서 신학교를 정비하는데 사용했다.

첫번째 자료는 1956년 2월 23일 안두화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신학교 자리를 구입할 수 있도록 요청하면서 건물 보수를 위해 40,000불의 재정이 사용되었다고 호소하는 편지이다.

   
 

두 번째 자료는 NAE가 남산의 집기와 기물을 대한신학교로 이전하려고 계획했던 전단이다. 이것은 김윤찬의 집에서 등사물로 인쇄된 것인데 선교사들이 번역한 영문자료만 남아있다. NAE 측은 에큐메니칼 측이 신학교 기물을 도둑질하려고 했다고 비난했으나 사실은 자신들이 먼저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이었다.

   
 

셋째 자료는 1959년 12월 8일 한국에서 마삼락(Moffett)이 잠시 미국에 가 있는 한국 선교부 총무 배의취(Baird)와 통화한 것을 메모한 쪽지다. 그 내용은

   
 

1) 우리가 2400만환을 확보했다.
2) 11월 24일 승동총회 그룹이 더 매킨타이어 쪽으로 가고 있다.
3) 자료에 의하면 매킨타이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10만 달러를 제공했다.
4) 로이 그레이스가 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매킨타이어 라디오 방송은 서울과 대구의 신학교, 고아원, 5명의 선교사 (지원한다)
5) 신학교 법인이 법인 등록을 마쳤고 문교부의 승인을 받았다. 신학교 교장을 변경한 것에 대해 고소를 당했다.
6) 중립 측 생각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나 강하지 않다.

네 번째 자료는 김윤찬이 매킨타이어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편지다.

   
 

          장로회신학교 3천만환 사건의 실상과 그 여파

1954년 기독교장로회가 출범한 이후 박형룡 교장은 한국신학대학과 비교해서 장로회신학교를 대학으로 승격시켜야 하는 부담을 갖고 있었다. 장로회신학교가 위치한 남산은 신사 참배를 했던 장소였기 때문에 박형룡 교장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 여러 곳을 물색했다.

한때 현 한신대학의 캠퍼스가 있는 수유리 자리도 살펴보았으나 3.8선이 가깝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숭실대학교 안에 신학부로 통합하자는 북장로회의 제안이 있었으나 숭실대학교 총장이 한경직 목사였기 때문에 거기로 들어갔을 때 박형룡의 지도력이 흔들릴 수 있었다. 결국 남산의 신학교 부지를 정부로부터 구입하겠다고 결정했고 박형룡은 측근들을 중심으로 부지위원회를 조직했다.

신학교 서무주임 김창준 집사는 숭의여학교의 이신덕 교장이 영부인 프란체스카와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와의 친분으로 신사 터를 구입해서 숭의를 설립한 것과 그 실무를 감당했던 박호근을 알고 있었다. 김창준은 토지중개상 박호근을 박형룡에게 소개했다. 박형룡은 총무과장 박내승과 김창준과 공모하여 국회부의장과 재무장관에게 로비해서 약8,000평의 땅을 불하 받도록 로비 자금을 주었다.

박호근에게 주었다고 하는 돈이 2200만환인데 오늘날 10억 이상이 되는 거금이다. 증거 자료는 박형룡니 사인한 30회 정도 기록물이고 영수증은 전혀 없다. 따라서 박호근 에게 주었다는 금액은 얼마인지 모른다. 그러나 남산 부지는 국가에서 국회의사당을 설립하기로 되어 있었던 땅이었다. 1957년 11월 신학교 실행위원회에서 이 문제가 공론화 되었다.

더 큰 문제는 돈을 회수 받기 위해 박호근을 고소했는데 박호근은 학교가 암 달러 시장에서 환전해서 불법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박형룡을 맞고소했다. 박형룡과 그 사모는 '부지위원장' 김삼대 목사에게 박 박사를 보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박호근에게 2200만환의 돈을 차감하는 조건으로 박형룡과 박호근의 쌍방 고소를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박내승은 박호근에게 받을 돈 약400만환이 있으니 그것을 학교에서 갚으라고 해서 공금을 착복했고, 김삼대 목사도 교재비로 400만환의 공금을 착복했다. 박형룡의 측근이었던 김윤찬도 공금을 착복한 정황이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박형룡의 측근들이 자신들을 사욕을 위해 공금을 착복했고, 박형룡 박사는 자신을 보호하기 엄청난 거액의 공금을 학교의 손실로 처리해버린 비윤리적인 행위를 한 것이었다. 양승봉 장로를 중심으로 조사위원회가 구성이 되어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이 보고서는 1959년 총회에서 보고 되지 못하고 증발되어 버렸는데 그 내용은 언젠가 밝혀져야 할 것이다.

선교사들은 이 사건 이후 박형룡과 NAE 인사들에 대해 완전히 신뢰를 접었다. 그 이전에도 크고 작은 재정 비리가 있었으나 이 사건은 차원이 달랐다. 박형룡을 절대 지지했던 남장로회 조차 북장로회의 비판에 대해 답할 명분이 없었다.

그후 총회와 미북장로회(이후 연합장로회)가 구성한 협의회에서 선교사들은 NAE 인사들을 완전히 배제했다. 이것이 선교사와 NAE 지도자들 사이를 가르는 계기가 되었다.

1958년 4월 9일 협의회에서는 장로회신학교 재정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선교부 재정 지출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했다. 1958년 7월 1-2일 협의회에서는 신학교 부지 구입 자금 5000불을 지원하다고 결정했는데, 부지위원에서 NAE를 완전히 배제했다. 그 명단은 한경직, 옥호열(Voelkel), 권세열(Kinsler), 안광국, 유호준으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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