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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회 목민상에 김병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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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8.24  22: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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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회 고영근 학술세미나 열려

   
 

목민 고영근목사에 대한 추모는 작년으로 끝내고 고영근목사의 신앙과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분들을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있다. 고목사의 정신이 많은 곳에서 살아역사하는 주인공들을 발굴하여 후세에 알리자는 의미의 목민상 제정을 하게 되었다. 제 1회 수상자는 기독학생운동 출신인 차선각목사(NCCK,고대 안산병원 원목)가 받았는 데 고목사님을 도와 목민선교회 이사로 활동을 한 분들을 대표한 것이다. 

그리고 올해 제 2회 수상자는 김병균목사(나주 고막원 교회 은퇴)에게 드리게 되었다. 시상 선정위원은 박종열목사,김흥수교수,류태선목사,고성휘선생이었다. 여러 후보들이 추천되었고 모두가 시상조건이 충분하지만 아무래도 이번엔 제 2의 고영근으로 영성과 운동성이 뜨거운 김병균목사에게 간 것이다.

김병균 목사님은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운동 뿐 아니라 40년간 나주 농촌목회자로 활동을 하면서 전남 ncc 인권위원장, 예장농목위원장, 전국 목정평 상임의장, 광주 기독교협의회장, 나주 촛불집회 상임대표, 평통사 공동의장 등을 통해 인간화 세상을 만들어가려 헌신했다.

그는 1995년 범민련 남측 본부 29인 사건으로 구속되기도 하였고 1997년 류재을 열사 추모집회 관련하여 구속되기도 하였고 2005년 패트리어트 반대 추정 불구속되는 등 수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지역목회와 민족목회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시상은 이 상을 제정하는 데 기여하고 기금을 출현한 정성진목사(크로스로드 이사장)가 나와 직접 김병균목사에게 기념패와 상금을 수여했다. 수상받은 김병균목사 자격없는 사람이라고 겸양하시면서 호신대 1학년 시절 고영근 목사를 처음 뵌후 지금까지 마음으로 존경하는 멘토로 삼고 있다고 소회했다.

   
 

평가와 교훈 

이번에 처음으로 시도된 학술세미나는 은퇴한 임희국 교수등 쟁쟁한 우리교단의 교회사 교수들이 출현한 것 자체로 큰 의미와 비중이 있어 보인다. 따라서 추모제에서 학술연구로의 전환은 그간의 감성적 기억 행사에서 한단계 진보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이는 고목사의 신앙과 정신 자취만이 아닌 그의 정신과 저작, 심층까지도 드려다 보자는 것이다. 그동안 만연된 영웅서사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데 저작이나 유업을 재탕 삼탕하는 자화자찬식의 갇힌 방안에서 광장으로 나가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공73과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신화로 포장한 역사적 인물에서 광장으로 나가야 진정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요즘 생전에 자기 회고록을 돈을 드려 내는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자는 생각이다. 따라서 공만 보고 용비어천가만을 부를 께 아니라 그의 업적 못지 않게 시대와 인식의 한계에 대한 긍정과 부정은 무엇이며 그 한계는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다.

그래야 고인에 대하여 입체적인 접근을 했다 발 것이다. 우리가 고목사가 남긴 유무형의 온전한 유산을 어떻게 계승발전 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은 아직 시작도 안했다고 봐야 한다. 이 점은 비숫한 조건속에서 다른 삶을 살았던 한경직목사에게 제기되는 서북청년단과 제주 4.3에 대한 시민사회 비판에 대한 무응답에 대한 것에서도 그 교훈을 찾아야 하는 데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것을 인정한다고 해도 한목사의 업적과 공은 전혀 가감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목민연구소는 신진 인사로 재편 

한편 목민연구소가 12년만에 새임원회를 구성하였는 데 고문으로 김동엽, 정성진 목사를 목민연구소 소장으로 정병준교수(서울장신 역사신학)을 위촉했다 또 이사로는 윤신영목사(해양의료선교회), 고성진선생(남양주 시립합창지휘, 고영근 장남), 양민철목사(세월호 천막카페 및 목요문화제 운영자, 희망찬교회, 구리YMCA이사장), 최상도교수(호남신대 역사신학), 고성휘선생(성공회대 연구교수, 고목사 차녀)로 구성했다. 이사장에는 고성휘선생, 이사회 서기는 윤신영목사. 사무총장에는 양민철목사를 선임했다. 

고영근 한경직 이 두분은 이북이 고향으로 공산주의를 피하여 월남한 분들로 이후 두 분의 삶의 경험과 자리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같은 점도 많다. 한목사는 이북에서 일찍 미국유학을 한 후 월남하여 실향민들의 신앙 공동체을 세우고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상황속에서의 정권을 세워야 하는 국가지도자로의 역할이 있었다. 한편 고목사는 한국전쟁시 인민군에 강제 입대후 탈영하여 반공포로로 죽을 고생을 거치고 국군에 재집대해 체험하신 남다른 상황이 있다.

그후 한목사는 중산층의 반공주의에 충실한 목회자로 고목사도 반독재에는 저항했지만 반제에 대해서는 다소 낭만적으로 감상적 반공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 없지 않았다. 특히 당시 학생운동이 반독재 투쟁에서 반제로 넓어지는 상황속에서 반공은 그 자체로 면피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큰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등은 성경에서 그 원류를 찾은 천상 목회자들이었다. 이후 고목사의 경우 민중속으로 들어가 고난의 현장에서 비존향 양심수들까지도 품은 민중의 목회자였다는 것도 이번 학술연구에서 밝혀졌다.   

   
 

학술 세미나 

세미나는 서울장신대 정병준교수의 사회로 김동엽목사(전 총회장)의 기도로 시작했다. 발표는 1,2,3으로 진행되었는 데 첫째로 임희국교수(장신대 은퇴)가 제 ”5공화국시기(1980-1987), 고영근의 목민목회“ 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증언으로 당시 NCCK 인권위에서 일하신 윤수경장로가 멀리 홍성에서 올라와 생전의 모습에 대하여 회고 있다.

두 번째로는 안교성(장신대 교회사)가 ”비전향 장기수 서간문에 나타난 시대인식: 전향, 인권. 회심, 담론" 을 중심으로 발표했으며 이 발표에 대하여 김석주교수(안양대 신학연구소 HK교수) 가 논찬했다. 셋째로는 이치만교수(장신대 교회사)가 “고영근목사와 한경직목사의 민주주의 이해에 대한 비교분석” 이라는 제목의 발표에 대하여 손승호교수(한국디독교역사문화재단 사무국장)이 논찬했다.

연구의 기본은 모두 고영근목사가 남기신 저작이나 이후 고성휘선생이 편집한 자료집들을 근거로 한 1차 자료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한경직 목사에 대한 것은 1968년판의 저작을 고영근목사의 것은 1983년 저작한 책을 중심으로 하여 비교 분석한 것이라고 한다.

축하는 정미영선생의 오카리나연주와 고명산선생(고목사 장손녀)가 축가를 불렀다. 끝으로 청년시절부터 고영근목사를 도와 처음부터 함께한 김동엽목사(목민교회 전총회장)의 생전의 회고와 축도로 행사를 마무리 지었다. 

참고 도서 

『설교자료집: 절기용』(1988)
『기독교인의 나아갈 길』(1981)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 1권(1981)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 2권(1989)
『민족의 나아갈 길』(1982)
『건강의 비결』(1985)*고영근의 저서: 고영근이 『구원하신 은혜에 보답하려고. 선교활동 40년의 발자취』에 기록한 저서.
『신앙생활 지침서』(1966)
『한국 교회 혁신과 사회 정화 방안』(1968)
『목회계획』(1971)
『한국 교회의 나아갈 길』(1972)
『설교자료집: 군인용』(1972)
『설교자료집: 마태복음』(1978)
『설교자료집: 사도행전』(197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 1권~7권(1984)
『민주화냐 독재연장이냐』 1권~7권(1987)
『한국 교회 갱신과 선교적 과제』(1991)
『바르게 사는 길』 제1권(1991)
『바르게 사는 길』 제2권(1992)
『죽음의 고비를 넘어서』 3권(1992)
『나라와 겨레를 내 몸과 같이』(1992)
『광야에 외치는 소리』
『구원하신 은혜에 보답하려고』(1993)

   
 

<헌 시>

               목민 부흥사 고영근 목사

서덕석 목사 (시인, 열린교회, 조지송 목사 평전 저자)

한국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인 군사독재시절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위 ‘부흥사’들의 전성기였다.
저마다 ‘축복’, ‘성령충만’, ‘민족복음화’ 등을 내걸었지만
그들 대부분은 엉터리였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떡고물이 ‘축복’으로 회자되고
독재의 우왁스런 손아귀를 잠깐 잊게 만드는
신앙적 카타르시스는 ‘성령충만’으로 포장되었다.
‘민족복음화’란 교회와 교인 숫자 늘리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진짜 부흥사 고영근 목사는 그들과는 결이 달랐다.
일찍이 일본 제국주의의 신사참배 강요에 굽히지 않았던
이기선 목사의 순교신앙으로 세례를 받고
제국주의와 공산주의가 배태한 죽임의 질서를 거슬러
생명 구원의 복음으로 출애굽한 고영근이었기에
떡고물과 얄퍅한 치장술이나 숫자놀음은
한낱 티끌과 먼지에 지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삯꾼 목자가 되기를 경계하여
양떼가 배 고프면 고영근도 배 고프고
양떼가 울면 고영근도 울었으니 양과 그는 하나였다.
소위 ‘부흥사’들이 가난하고 우매한 신도들을 등쳐서
탈탈 털어 교회와 자기에게 갖다 바치게 하거나
반공주의와 독재의 열렬한 앞잡이로 세뇌시키면
인기있는 소위 ‘부흥사’로 화려하게 등극하곤 하였지만,
고영근은 시골과 섬마을 가난한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고
교통비도 안되는 사례금과 쌀 한자루를 받아도
간절한 축복기도로 성도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삯꾼이 되지 않기 위해 닭 한 마리씩 키우거나
책을 쓰고 수공예품을 만들어 팔아서
목사도 노동의 열매로 살자고 역설했던 고영근 목사,
물질의 노예가 되어 한탕주의적 투기 노름에 빠지지 말고
근면 성실하게 일하고 벌어서 살자고 눈물로 호소하면
온 동네 주민들도 회개하고 교회로 몰려왔으니
교회가 변하면 사회도 변한다는 것을 실증해 보였다.
고영근 목사가 필생의 과제로 삼은 ‘목민목회’는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시골교회 목회 경험과 교회 밖의 양떼도 내 양이라는
확장되고 깊어진 그의 목양의식에서 비롯된 결론이었다.

양들이 고통을 호소하는데 어찌 낮잠에 빠져 있으랴,
군사독재가 발호하자 예언자 고영근은 분연히 일어나
대통령은 총통이나 황제가 아니라고 일갈하면서
애초에 약속한대로 군인들은 군대로 돌아가라고 꾸짖었다.
대한민국 소위 ‘부흥사’들이 한결같이 독재자를 찬양하고
그 앞에서 머리 조아리고 축복기도나 바치면서 연명할 때
진짜 부흥사 고영근은 총으로 일어선 자는 총으로 망하고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써 망하리라고 성경대로 증언하니
그의 부흥회에는 늘 형사들의 감시 눈초리가 따라다녔다.

문제시되는 설교를 하면 성하지 못할 것이라고
겁박당하기 일쑤였고 집회가 끝나면 으레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잡아 갈 구실이 없을 때는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았다.
26번의 투옥과 2번 구속도 그의 사자후를 멈출 수 없었다.
정의로운 사회, 자주적인 경제, 민주적인 정치,
그리고 통일된 조국이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이라는
‘목민목회’는 고영근이 추구해 온 유일한 가치였으니
정의롭지도 않고 굴종적이며 분단체제에 기대어 연명하는
유신정권과 신군부는 고영근 목사의 부흥회를 두려워하고
눈엣가시처럼 여겨 탄압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감옥에 갇힌 학생들과 노동자들, 민주인사들을 찾아가
심방하고 기도로 위로하는 일도 그의 몫이었다.
비전향 장기수들을 신앙 양심에 입각하여 후원하는 일,
왜곡보도와 독재 미화에 동원되는 언론을 개혁하자는
‘공정언론촉구 성직자회’를 만들어 경종을 울리기도 하였다.
법률가에게는 공명정대한 법 집행과 판결을,
공직자들은 민중에게 복무하는 공복의 자세를,
목회자들에게 참 목자로써 성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것을
눈물로 호소하고 실천하니
진짜 부흥사 고영근은 ‘한국의 본 회퍼’로도 불리어졌다.

언제나 같은 옷 쥐색 작업복 상의 차림의 고영근 목사는
강단에 서기 전 뜨겁게 기도하기를
“ 제 입을 열어 담대하게 주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고,
양떼들이 한 마음으로 부르짖으면 귀를 기울여 주시며,
말씀에 감동받은 영혼을 주님께서 구원해 주시옵소서.
그것 외에는 이 종은 더 바랄 것이 없나이다 ”
라고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수 있으랴.

“민중을 돌보며 먹인다”(牧民)는 고영근의 ‘목민목회’야말로
예수 사역의 원형을 그대로 따르는 진짜 목회이다.
교회가 수지맞는 사업장이 되어 버리고
성도들은 양이 아닌 영업 대상자로 전락해 버린 한국교회에서
고영근의 ‘목민목회, 목민선교’가 되살아나야 할 때다.
“ 우리민족이 나아갈 길을 나와 우리 교회가 앞서 걸어가면
이 사회, 이 국가도 뒤따라 옵니다! ”
목민 부흥사 고영근 목사의 외침이 쩌렁쩌렁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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