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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과 목회' 100호(25년) 자축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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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1.30  21: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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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장 한경호목사와 대표 사역   

'농촌과 목회' 라는 계간 잡지의 편집장으로 지난 25년 100호를 만든 한경호목사의 노고를 기리고 기념하는 행사가 지난 1월 30일(화) 오후에 100주년에서 열렸다. 1부 예배는 손은기목사(엄정교회)의 인도로 안재학목사가 기도하고 성경 요 10:10을 본문으로 ”생명을 풍성하게“ 라는 제목으로 한종현목사가 설교했다. 이후 정광훈목사(가락재 영성원)의 축도로 마쳤다.

   
 

2부는 김정운목사(천안 광덕교회)의 사회로 준비위 유재무목사(예장뉴스)가 인사한 후 한국일교수(장신대 선교학)가 ”농촌과목회 25년의 여정에 대한 고찰“ 이라는제목으로 지난 100호의 내용과 의미들을 선교학자로 동역자로 마음으로 평가했다. 또 이홍정목사(전 NCCK 총무)가 ”사랑으로 순환의 정의를 완성하는 농(농) 사랑“ 이란 제목으로 축하의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예장농목 회장 김태웅목사의 축하와 감사의 인사를 했다.

   
                                                                 * 한국일교수(전 장신대 선교학)  

이후 감사패 전달 순서로 지난 25년간 한목사를 도와 잡지 편집에 도움을 준 김광훈목사와 손은기목사에게 그리고 인쇄를 감당한 분께도 전달했다. 끝으로 준비위가 한경호목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대표하여 기념 감사패를 전달했으며 감사패를 받은 한경호목사 부부가 인사하고 한목사의 소회을 들었다. 

   
                                                           * 이숭리권사(새문안교회) 

이후 참가자 소개와 인사중 새문안교회 이숭리권사가 한목사와 함께 한 지난 여정을 평신도의 입장에서 보완하여 큰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 이 권사는 한목사와 예장생협을 잇는 '온생명' 운동도 함께한 바 있다. 이어 한목사의 대광고 동창 감신대 은퇴 교수 이정배목사의 덕담과 인사를 나눈 후 끝을 마쳤다.

이 행사를 준비한 단체와 준비한 이들의 자취는 자료집에 나와 있다. 한경호목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은 이들이 개인적으로 느끼는 감사와 아쉬움이 모아져 한번 쯤은 공개적으로 이를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는 데 합의한 것이다. 시간과 물질로 지금까지 도운 분들게 감사도 하면서 아무쪼족 한목사가 생각하고 간직해온 것들중 선한 것들이 이어지고 열매가 맺어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 행사의 취지와 평가

이미 작년말에 100호가 나왔기에 이 의미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정초에 급하게 일자가 잡히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설교자로 덕수교회 손인웅목사를 정하였지만 실무착오로 못오시게 되었다. 이에 아쉬워 하시면서 행사 전날 직접 손목사님이 전화을 주시고 꼭 가고 싶은 자리였음을 강조하시면서 모두에게 자신의 목회여정에서 가정 사랑하고 존경하고 아끼는 후배라는 점을 인사해 달라고 전하셨다.

우리는 이 행사를 준비하는 시작 부터 잘못하면 한목사 개인을 드러내는 것이 되면 이는 한목사의 스타일도 아니고 잘못하다가 영웅시하는 자리가 되선 안된다는 점을 확인했다. 한목사 자신이 그런 인위적인 떠벌이 띄우기 행사와는 거리가 먼 분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한번 쯤은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 분이라는 데 동의했다. 그렇다고 해서 한목사가 성인이라거나 완벽한 인격의 소유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인간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만나고 이뤄낸 일들 속에서 관계한는 과정에서 미진한 관계나 문제는그대로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한목사의 사역중 25년의 ”농촌과 목회“ 잡지 사역에 한정한다는 마음이다. 사실 농목회장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처럼 자신이 만든 예장농목과 한 때 논쟁과 절연의 과정이나 '온생명' 과도 도중 하차한 것도 그렇고 목회 초기 함께 한 강원농목 일부 회원들과 서먹한 것은 공개적인 비밀이다. 

이에 대한 평가는 우리 몫은 아니며 당사자들이 풀어야 할 것들로 세상을 살다보면 흔하게 있는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25년간 이 잡지를 한번도 거르지 않은 성실함과 집중에 대한 노고를 기억하자는 점에 일치를 보았다. 또 이 잡지에 실린 내용들이나 시대와 이슈를 다룬 것들을 보면 한국의 농촌목회만이 아닌 신학과 한국사회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았다는 점도 놀랄만한 일이다.

메마르지 않는 학구적인 열정과 지성의 연마, 일에 대한 인내와 끈기가 만들어 낸 결정체로 한목사가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한목사는 그날 인사와 회고에서 긴장의 연장속에서 지냈다고 하는 데 이는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활 시위에 얹힌 화살처럼 살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원고을 부탁하고 집필자를 발굴해 편집과 인쇄 발송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동창 이정배교수도 이르기를 우리시대 최고의 지성 잡지 “창비” 도 14명의 전문가들이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러나 “농촌과 목회”를 만드는 상근자는 한목사 한분이다. 그 외 컴퓨터로 편집을 돕고 표지를 그려준 분들이 존재하지만 잡지의 아이탬을 잡고 구성을 하는 일은 전적으로 한목사의 몫이었는 데 그 식견이나 혜안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전문가라는 평이다.

   
 

학구적이고 실천적 동력이 기반

한목사의 이런 집념과 끈기는 본래 학구적인 것에도 기인하지만 장신대 졸업후 강원노회 호저교회에 부임하여 동역자들과 만든 ’강원농목‘ 초기부터 이론과 학습을 중시 했던 것이 그 효시다. 운동은 몸이 하는 것이지만 이 운동이 지속케 가능하려면 이론적 기반이 중요하다. 그런 공부들이 규모와 내용을 갖추며 진보한 것이 바로 “농촌과목회” 라는 잡지인 것이다. 그 후 1999년 부터는 연간 4회를 발행하는 전국적인 계간지로 오늘과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된 것이다.

한목사는 처음에는 컴퓨터도 할줄 몰랐다고 히는 데를 사실 운동하는 사람이 이것저것 다 잘할 수는 없다. 그러나 후배들의 도움을 받아 배워가며 오늘을 일군 것이다. 그리고 지낸 25년간의 내용들이 그대로 티스토리에 축척되고 공개되 있는 데 보는 이들마다 놀라지 않은 이들이 없는 것으로 안다. 거기 한국사회 교회 신학 운동 세계의 담론이 하나도 빠짐없이 담겨져 있다.

계간지로 매호 마다 시대정신을 담은 특집기사를 내보냈고 그러면서도 어려워지는 농촌교회 현장을 환기하고 거기 주인공들의 애환들을 실어다. 또 농업과 관련된 이론이나 실천적인 글도 쌓이는 동안 강단 학자에서부터 평신도 농민, 운동가들을 찾아내고 발굴하고 참여한 것을 보게 한다. 그러면에서 이 잡지는 ‘농촌목회‘사역만이 아닌 농업관련 학술지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이날 설교자 한종현목사는 한 해 한경호목사 보다 장신대에 입학해 채플 후 농촌선교에 대하여 공부할 분들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하니 두명이 따라나왔는 데 그 중 한사람이 한경호목사였다고 한다. 한종현목사는 대구서 기독학생, 청년운동을 하다가 장신대에 입학해 장차 졸업후 농촌교회로 가려면 뭔가를 알아야 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부터 하자는 일이 제대로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한경호목사는 서울농대를 나와 그 분야에서 일한 바 있어 이론적으로는 이미 한국농업이나 농촌현실에 대하여 문외한이 아니였던 것이다.

학교서 한경호목사는 학술부장으로 세미나의 주제와 내용을 잡고 자료와 제공하고 학습을 이끌어 온 실질적 지도자였다고 한다. 그후 이 ’농어민선교회‘ 라는 이름으로 함꺼 활동한 회원들은 모두 농촌으로 하방하는 심정으로 한경호목사는 원주 인근 호저교회에 한종현목사는 경북 고령으로 내려간 것이다. 이렇게 장신대에서 공부하고 농촌목회에 투신한 이들이 나중에 ’예장농목’ 의 주체들이 된다(그중에는 먼져 세상을 뜬 고 김재일목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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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PCK)내 농촌관련 일은 거의 한목사에게서 나와

오늘날 한국 기독교에서 농촌목회와 관련한 운동이나 공동체는 거의가 한목사의 머리와 몸에서 구상되고 시도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데 호저교회에서 시작한 생협과 이후 횡성영락교회에서 시작한 농신학이나 아시아생명농업포럼을 포함하여 예장 마을목회나 귀농귀촌운동 모두를 망라한다. 이후 한목사는 교단 정년 70세가 되어 지난 3년전 은퇴 하여 지금은 원주 인근 귀래에서 ‘농선당’ 이라고 이름짓고 작은 농사와 공부를 평행하면서 연구와 집필 활동중이다.

끝으로 우리시대에 사표가 사라지고 있는 데 끝까지 남아서 농촌 관련 이론과 실천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선배라는 사실이다. 시작한 사람도 많고 업적으로 내고 이름을 낸 사람들도 귀하나 끝까지 완주하는 분들은 그렇게 많치 않다. 그런 가운데 우리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그 자체가 교훈으로 한목사가 다 이루지 못했거나 미완의 숙제를 남겨주었다는 샛각이다.

그런면에서 개인적으로 한경호목사가 100호를 끝으로 일단 편집장의 자리는 내려놨다는 것도 큰 감동이다. 건강하고 능력들 있다고 하여 계속해서는 진전이 안된다. 일단은 물러서 다른 방식으로 기여하고 후진들을 밀어주는 것도 귀하다. 그렇치 않다면 언제 후진에게 기회가 오겠는가? 물리적 정년을 둔 것은 아무리 능력 있고 잘한다고 해도 일단은 바턴을 타치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자는 의미로 이를 실천한 것도 한목사 답다 할 것이다. 

그런면에서 일단 100호로 마무리를 지으면서 달라지고 변화하는 세대에 커오는 후진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또 오프라인 종이잡지를 그대로 할 것인지 온라인으로 인터넷판으로 갈 것인지등 다각도의 고민과 논의을 모아가기를 바란다. 다만 일반 한목사님에게는 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니 처음 생각대로 어른의 자리에서 역할을 모색하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나 공칠삼과는 있어

인간은 사람과 일의 관계속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만 만날 수는 없다. 내게는 반대자 거치는 사람도 다른 분야나 사람들에게는 귀한 존배들일 수 도있다. 세상은 어디에나 명암들이 존재하기에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 드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면에서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우리는 모두 관용과 기대를 갖아야 한다. 세상에는 보통는 3종류의 사람이 있는 데 첫째는 일도 잘하고 홍보도 잘하는 사람, 둘째는 하는 일 보다 과대 평가되고 말만 무성한 사람, 셋째가 바로 한경호목사 같은 분으로 한 일에 대해 과소평가된 경우다.

한목사는 그 흔한 SNS도 안하고 누가 뭐하는 지도 큰 관심도 없다. 남이 무슨 일을 하는 지 어떤 일을 하는 지도 모르고 오직 자신이 맡은 일만 하시고 사는 분이다. 그런면에서 이번에 우리가 한목사님을 우리교단 농촌목회 분야의 정신적 지주로 한번 환기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먼져 교단 안에 그런 본을 보여주시고 은퇴한 임실의 심상봉목사님이나 고령의 고 김영원장로, 아산의 임인수목사등이 계시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런 선배들의 노고와 활동에 힘입어 후진들이 따라온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잡지에 녹아있는 한경호목사의 관심과 열정은 예장 통합교단 내 유관 단체들 뿐만 아닌 에큐메니칼 동역자들의 현장까지 아우르는 넓은 품이라는 평이다. 그런면에서 이번에 우리가 기념하고자 하는 것은 한경호목사 개인의 삶이 아닌 그 결과물은 세상 어디에 내놔도 긍지를 갖을 만한 것이라는 마음이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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