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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2.11  20:3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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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춘선 목사의 희년 사상  

맨발의 전도자 팔복 최춘선 할아버지 - YouTube 

이 글은 희년운동가 박창수목사의 페이스 북을 기초로 하여 소개한다. 지난 2009년, 박목사와 희년사회의 회원들은 최춘선 목사의 장남인 최바울 목사를 인터뷰했다고 한다. 그 녹취록 가운데 최춘선 목사의 희년 사상과 관련된 부분을 박창수목사가 항목 별로 분류한 것을 소개한다.

   
                                                    * 생전의 최춘선 할아버지 모습

                            희년의 사람들(1) - 최춘선

맨발의 전도자, 최춘선(1921-2001). 그는 광복군의 일원으로서 독립유공자였다. 그래서 국가로부터 연금과 자녀들의 대학 학비 무료 혜택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그는 이것을 거부하였다. 그래서 가족들은 힘들게 살아야 했다. 그럼 그는 왜 국가의 혜택을 거부했을까? 그 이유는 조국이 완전한 독립과 통일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민족이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기 때문에 아직 진정한 해방이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맨발로 30년 넘게 다녔는데, 그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단지 통일이 되면 신발을 신겠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지하철에서 손에 들고 있던 종이에는 ‘50년간 미룬 노예 해방, 38선 직통 해방’이란 글이 쓰여 있었다. 그는 우리 민족이 아직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이루지 못한 노예 상태에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가 지하철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맨발로 다닌 것은 민족의 노예 상태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그는 민족이 노예 상태에 처해 있기 때문에, 자신도 노예처럼 신발을 신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맨발이라는 선지자적 행위 언어로 우리에게 민족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할 것을 요청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특히 학생들에게 말한 “미스 코리아 유관순, Why two Korea? 미스터 코리아 안중근, Why two Korea?”는, 유관순과 안중근 같이 나라를 사랑하고 자기를 내던져 희생한 사람들이 진정한 한국인이며,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두 개의 코리아로 분단된 민족이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최춘선은 대지주였다. 그러나 그는 성경의 가르침을 깨닫고 나서 땅을 고아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3천 평만 남기고 월남 피난민들과 빈민들에게 다 나누어주었다. 그가 나누어 준 땅은 지금 서너 동리를 이룰 만큼 엄청났다.

그는 땅이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남긴 땅 3,000평도 등기 자체를 하지 않았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고 인간은 나그네요 우거자일 뿐이라는 레위기 희년의 토지법을 그는 철저하게 실천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을 알고 어떤 악한 사람이 자기 땅이라고 등기를 해서 소송이 붙게 되었다. 그 때 최춘선에게서 땅을 나누어 받은 가난한 사람들이 증언을 해서 승소를 했다. 그러자 그 악인이 포기하지 않고 항소를 했는데 최춘선은 이상하게 그 자리에 나가지 않았다.

그는 결국 땅을 빼앗겨 수백 명의 고아들을 데리고 쫓겨나야 했다. 그런데 이삿짐을 싸고 쫓겨나는 날, 그는 오히려 찬송가를 흥얼거렸다. 이후 가는 데마다 동네 주민들이 고아들을 거부해서, 30번 넘게 나그네처럼 이사를 다녀야 하는 고초를 겪었다. 최춘선은 땅만 나눠 준 것이 아니었다. 입을 옷도, 먹을 것도 모두 그렇게 나눠 주었다. 다음은 그 장남인 최바울 목사의 증언이다. 

“집에 새 점퍼라도 생기면 지나다가 추위에 떠는 아이에게 그걸 갖다 주시는 거예요. 내일 아침에 먹을 쌀만 남았는데 누가 와서 먹을 것이 없다고 하면 다 퍼주시는 거예요. 어머니가 너무 힘드셔서 마지막 쌀인데 아이들은 어떻게 하냐고 하시면, 성경에서 그랬다는 거예요.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마라. 먹을 것 입을 것을 위해 걱정하지 마라. 하나님이 다 먹이신다. 그리고 코를 골며 주무시는 거지요. 정말 한 번도 굶은 적이 없었거든요. 쌀을 다 퍼주신 다음 날 새벽에 누군가 문을 두드려 나가보니 전에 저희 교회 다니던 집사님이 시골로 이사를 가서 첫 곡식을 수확했다고 밤새 기차를 타고 가져오신 겁니다.”

(김우현, 『다큐북 팔복1 - 맨발천사 최춘선 - 가난한 자는 복(福)이 있나니』, 규장, 2005).

최춘선은 한마디로 희년(禧年)의 사람이었다. 그가 간절히 염원한 민족의 통일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성경의 희년 정신과 닿아 있다. 그리고 그가 땅은 하나님의 것이라 믿고 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 것은 희년의 토지법을 실천한 것이다. 또 옷과 쌀을 걱정하지 않고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 준 것도 희년의 믿음을 실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큐멘터리와 책을 통해 최춘선의 삶을 보여 주신 것은, 희년을 실천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지난 2007년에 평양 대부흥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들이 많았지만, 정작 부흥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희년 정신을 실천하는 희년의 사람들이 한국 교회에서 우후죽순처럼 나온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부흥의 증거일 것이다.

‘맨발의 전도자’ 최춘선” <플러스인생>(전 <신앙계>) 2008년 3월호.

아들 최바울목사와의 인터뷰 

1.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필요한 사람에게
“아버님은 일반 분들이 갖고 있는 개념, 관점과 다르신 관점이세요. 원래 생각 자체가. 쉽게 말하면 자식도 주님 것이라고 생각하셨고 고아들도 똑같은 자식으로 여기셨기 때문에 그 자체가 구분됨이 없으신 분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예요. 갖고 있는 것도 내 것이 아닌 것이니까. 제가 아버님께 들었던 말씀 중에 제일 기억 남는 것 중 하나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중략) 같이 나눠가져야 한다, 같이 써야 된다라는 거, 이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소유에 대한 개념이 없으셨기 때문에 줬다는 개념도 없으신 거죠. 쉽게 표현하면.”

“내 것이어야 준 거죠. 이걸 갖고 있는 게 내 것이 아닌 청지기적인 개념이었기 때문에 필요한 사람 있으면 당연히 주셔야 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런 거 때문에 다 나누신 거지, 나눴다는 표현도 옳지 않다고 봐요. 그냥 필요한 분이 가져가신 거죠.”

“아버님은 모든 목숨 하나까지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아셨기 때문에 아마 돌아가시는 그 날까지도 사명을 감당하시다 돌아가신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제가 61년생이니까 제가 태어날 당시만 해도 굉장히 거부셨죠. 자가용 다섯 대를 부릴 만큼. 하루에 와이셔츠를 두세 번 갈아입을 정도로 멋쟁이이셨던 분이 말씀 깨닫고 나서부터 이건 다 내 것이 아니다, 나눠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소유 자체를 인정을 안 하셨던 거고 사실은 그 땅을 빼앗긴 겁니다. 등기를 안 해서. 하나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건데 왜 등기를 해야 되느냐, 그 개념을 갖고 계셨어요.”

“제가 하도 어린 나이어서 잘 기억은 못하는데, 지금 저희가 소유했던 살았던 그 땅만 해도 3천평 4천평 그 정도고, 그 주변의 5만평 정도의 땅이 전부 갈라져서 동네를 이룬 거죠. 피난민들이 와서 목사님 저희가 살 데가 없어요, 아 여기 쓰세요, 나눠드리기 시작한 게 군락을 이뤄서 동네가 이뤄진 거죠. 자연스럽게 넓은 땅 가운데 다른 곳들은 주거지가 된 거고 우리가 사는 곳은 교회와 양로원, 고아원, 양계장, 학교 이런 곳이 된 거죠.”  “토지는 국가적인 소유도 아니고 모든 것은 하나님의 거라는 배경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소유 개념보다는 필요한 사람이 써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죠.”

   
 

2. 말씀 묵상과 순종
“할아버님께서 원래 무역업을 하셨던 분이세요. 중국에서 무역업을 하셨기 때문에 거부세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요즘 말로 하는 거부이셨기 때문에 굉장히 부자셨어요. 굉장히 유복하게 사셨죠. 아버님이. 그때 당시에 유학도 하실 수 있었고 5개 국어를 할 정도의 교육 혜택을 받을 정도로.”

“제가 기억하고 들은 내용은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말씀 속에서 깨달으시고 아, 하나님이 이걸 원하시는구나, 그래서 그런 사역을 하기 시작했다고만 저는 그렇게.” 

“굉장히 성경에 능통하신 분이셨어요. 저는 아직까지 그런 목사님을 만나본 적 없어요. 66권을 꿰뚫고 계시니까 어느 장, 절 다 맞아떨어지고 거의 전권을 외우셨다고 할 정도로. 어떻게 저렇게까지 말씀을 연결하실 수 있을까 정도로 말씀을 굉장히 깊게 묵상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필요 없는 것을 내가 쓴다는 것은 필요 있는 사람의 것을 빼앗았다고 보시는 그런 생각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정말 성경말씀 그대로 두벌 옷을 갖지 않으시는 그런 스타일이신거죠.” 

“내가 소유하면 부족한 사람 것을 갖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쌀독의 쌀을 퍼주신 거죠. 저는 제일 그게 충격이었어요. 내일 아침 지을 쌀인데 그걸 퍼주신 거거든요. 목사님 우리 저녁 쌀이 없어요. 그러니까 쌀독의 쌀을 퍼주니까 어머님은 싸우시는 거죠. 그거 내일 우리 애들 밥해 먹일 쌀인데 그걸 주면 어떡하냐, 딱 한 마디 해요. 성경은 내일 일 걱정하지 말라 그랬다고. 그리고 코 골고 주무시는 거죠. 어머님은 밤새 고민하시고 아버님은 태평스럽게 주무시고.” 

“정말 신기했어요. 동영상에도 나오지만, 새벽에 누가 문을 두드리고 목사님 목사님~ 시골에서 올라가신 성도님이 밤새 기차타고 오신 거예요. 첫 수확 목사님께 갖다 드리고 싶다고. 아버님은 내일 일 염려 안하신 거죠. 하나님이 먹여 살릴 거 믿으시니까. 그런 개념에서 부자에 대한 공격들을 많이 하신 거죠. 남의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기 때문에 내 소유는 없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셨기 때문에.”

   
                          * 최 할아버지의 아들 최바울목사

3. 부자와 화려한 교회의 회개를 촉구
“아버님이 제일 말씀 많이 하셨던 것 가운데 하나가 부자가 천국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고 부자라는 것은 남의 것을 많이 가졌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이세요. 그래서 나눠야 된다는. 세끼 밥 먹으면 나머지는 다 내 게 아니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런 메시지가 강하셨죠.”

“사실은 아버님이 훌륭한 부흥 강사셨어요. 전국을 순회하면서. 그런데 어느 시기부터 부흥강사로 초빙을 못 받게 되셨죠. 그 이유는 메시지가 뒤에 앉아 있는 목사님을 치시는 메시지가 많이 나왔으니까요. 이 교회 너무 화려하다, 이 거면 뭘 할 수 있는데. 이런 메시지가 강하게 어필되기 시작하니까 힘들어지신 거죠. 그 전에는 유능한 부흥강사로서 교회에서 환영받았죠. 그런데 말씀을 깨달은 후부터 이건 아니다, 이렇게 화려한 교회를 짓는다면 주님은 과연 기뻐하실까? 회개해야 한다. 제가 아는 교회 목사님이 저희 아버님 목소리가 제일 무섭다 그러셨어요. 왜냐면 회개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두려움으로 다가온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4.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과 반전 평화
“두 가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나는 개인 구원, 하나는 사회 구원.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강하셨던 분이세요. 수저를 들을 수 있는 힘도 없으실 때까지도 복음 전도하셨던 분이시니까. 그리고 평화에 대한, 무기에 대한 얘기를 그때 당시 하면 완전히 빨갱이죠. 남북문제에 대해서도 지금 바라보는 시각을 그때 말씀하셨으니까 굉장한 선각자셨어요. 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박정희 정권 때부터 하셨으니까요.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이 평화를 이루는 그런 부분에까지 열정적으로.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죠.”

5. 통일이 되어야 진정한 독립
“사실은 김구 선생님과 함께 독립 운동을 하셨기 때문에 도장만 찍으면 저희들이 학비가 무료고, 연금이 나오는 그런 분이셨는데, 거부를 하신 거죠 그거를. 쉽게 표현하면. 반쪽짜리 독립은 독립이 아니다, 우리 동기들이 독립을 위해서 희생해서 갔는데 내가 편안하게 앉아서 받을 수가 없다, 그래서 도장을 안 찍어서 학비 내는데 고생을 많이 했죠. 근데 어머님이 너무 벅차시니까, 대학 보내고. 아버님 몰래 가서 도장을 찍어버리신 거죠.”

“그 뒤부터 편하게 학교를 다니게 됐죠. 그전에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학비 때문에 많이 학교에 불려 다녔고 힘들었죠. 받으실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의 걸 뺏는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는데 내가 어떻게 그 연금을 받겠느냐. 없는 것도 만들어서 조작해서 받는 사람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충분히 받으실 수 있는 조건이 되는데도 안 받고 사셨죠.”

“욕심이라고 보시는 거죠. 기득권층들의 정권들의 욕심 때문에 나라가 두 쪽 나 있는 거라, 왜 우리가 두 개 여야 되냐. 더 큰 개념으로는 공산권과 민주권, 그때 당시 소련과 미국의 너희 이권다툼이 아니냐, 왜 우리가 희생양이 돼야 되느냐 그런 의식이 강하셨던 거죠. 각자의 기득권, 욕심 때문에 국민들이 희생당하는 이유가 뭐냐 그 얘기시죠.”

나의 아버지 최춘선 목사 / 최춘선 목사 아들 최바울 목사의 사랑의 고백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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