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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식 목사의 해방신학 이야기해방신학의 태동과 관련된 이야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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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4  22: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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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인식 목사의 해방신학 이야기

홍인식 목사
파라과이 국립아순시온대학 경영학과 졸업. 장로회신학대학 신학대학원 졸업 M. DIV.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에서 호세 미게스 보니노 박사 지도로 해방신학으로 신학박사 취득.
아르헨티나 연합신학대학 교수 역임. 쿠바 개신교신학대학 교수 역임.
현재 멕시코 장로교신학대학 교수.

해방신학의 태동과 관련된 이야기 3

지금까지 우리는 해방신학의 탄생에서 대륙 정복 초기에 일어난 몇 가지 사건과 또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이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에서 당면했던 신학적 의문과 갈등에서 시작된, 가난한 사람과 가난의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신학 운동의 태동에 깊은 관련을 맺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해방신학은 대학의 상아탑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의 실천적 행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학자들로부터 시작된 신학운동이 아니라 현장의 소리에 대한 신학적 성찰에서 해방신학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태초에 “실천”이 있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오늘부터 몇 번에 걸쳐서 나는 여러분과 함께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개최됐던, 해방신학의 본격적인 태동과 관련되어 있는 몇 가지 중요한 회의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제2차 바티칸공의회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해방신학의 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교종 요한 23세가 소집하고 바오로 6세 재위 기간까지 계속됐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는 여러 의미에서 제1차 바티칸공의회(1869-70)를 넘어섰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교회가 보여 준 모습과 다른 모습의 교회를 추구한다. 특히 인류와 함께 걸어가는 “순례자”로서 교회 모습을 강조함으로써, 지금까지 세속적인 일을 덜 중요하다고 간주하던 태도를 극복하고 인간의 발전을 인간 역사에 나타나는 하느님 사역의 중요한 증거로 인정하게 했다. 이 공의회에서 라틴아메리카 주교들의 역할이 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공의회의 결정사항은 그들이 자신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좀 더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여하는 바오로 6세 교황(왼쪽에서 두 번째).(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교회는 인간역사 안에서 하느님 백성의 모임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세례와 견진으로 성령에 의해 거룩함으로 부름을 받는다는 선포는 복음의 담지자, 그리고 복음 선포의 의무와 책임을 가진 민중의 의미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문서 “기쁨과 희망”(사목헌장)에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바로 그분께서 당신의 강생으로 당신을 모든 사람과 어느 모로 결합시켰다”(GS 22)는 선언은 교회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간가치에 대한 강조”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라틴아메리카의 그리스도교인들로 하여금 극심한 가난의 현실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고통 받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것은 라틴아메리카 신학의 가장 중요한 관점으로 발전하게 된다. 신학은 더 이상 첫 번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두 번째 행위일 뿐이다. 신앙의 첫 행위는 민중의 삶에서 자비의 형태로 보여 지는 행위다. 민중의 삶에서 그리스도는 먼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서 보인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결정들은 라틴아메리카 신학 방법의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것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하느님 현현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장소로서의 가난한 사람들

2.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의 관점에서 인간의 역사와 사건을 새롭게 읽기

3. 인간과 교회의 행위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서의 신학

바티칸공의회는 이런 면에서 라틴아메리카 신학을 더 이상 대학이라는 학문의 현장에만 묶어 두지 않고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게 했다.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신학은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로 하여금 성서를 새롭게 읽도록 가르쳐 주고 있다.”(카를로스 메스테르스, Carlos Mesters) 

카밀로 토레스(Camilo Torres)

   
▲ 카밀로 토레스.(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폐막되자마자 중요한 사건이 라틴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콜롬비아의 카밀로 토레스 신부가 콜롬비아 민족해방군이라는 게릴라 단체의 일원이 되고(1965.12), 콜롬비아 정부군을 대항한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1966.02.15.). 카밀로 토레스 신부는 콜롬비아의 상류층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0년대 벨기에에서 신학과 사회학을 공부한다.

그 뒤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서 사회학 교수와 대학 교목으로도 활동한다. 그는 사회학적 연구를 통하여 고국 콜롬비아의 참혹한 현실에 눈을 뜨고 혁명이야 말로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고 확신한다. 그는 공개적으로 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기득권세력이 갖고 있는 것들을 빼앗아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혁명의 본질임을 강조한다. 그는 만일 기득권자들이 이 혁명에 저항을 하지 않는다면 혁명은 비폭력적일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복음서의 표현을 원용하면서 카밀로 토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혁명은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옷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교육을 제공하며 자비를 실천하는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것은 일시적인 형태가 아니라 지속적인 형태로 이웃 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인은 혁명에 헌신해야 한다. 그것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카밀로의 발언과 행동은 당시 콜롬비아의 가톨릭교회를 불편하게 했고 마침내 그는 루이스 콘차(Luis Concha) 추기경의 권고를 받아들여 사제직에서 물러난다. 그럼에도 그는 1966년 2월 15일 게릴라 전투에서 정부군에 의해 사살되기까지 항상 자신이 하느님의 소명을 받은 사제임을 잊지 않고 살았다. 말을 넘어서 행동으로 그리스도교교의 신앙을 실천하고 표현한 카밀로 토레스 신부의 삶은 당시 많은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고 그는 순식간에 우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해방신학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짐작하게 만드는 영감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론에서 실천으로 향한 삶, 분석에 그치고 않고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을 주저 하지 않는 헌신과 행동으로 진정한 이웃 사랑을 실천한 그의 삶은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이웃사랑의 범례가 되었다. 이것은 그 뒤 많은 사제들이 앞을 다투어 게릴라전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한 것은 극소수의 사제뿐이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카밀로 토레스 신부의 이웃을 향한 사랑과 헌신적인 실천의 모습이 잠들어 있었던 라틴아메리카 신앙인들의 양심을 깨웠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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