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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하는 교회탐방(새민족교회)황남덕 목사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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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8  21: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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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하는 교회탐방(새민족교회)

황남덕 목사

   
 
새민족교회는 우리 PCK 교단에서 신학적으로나 목적의식적으로 교회개혁을 구상한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하나되어 세워진 최초의 개혁적 교회라고 할 수 있다. 이 교회의 현재를 알기 위해서 간단한 약사를 소개한다.  8-90년대 진보적 신학의 세례를 받은 세대들은 기성교회에 들어가 그 구조를 유지, 확대, 재생산의 부속품이 되어 그속에서 제한적 개혁을 할 것인가? 어렵지만 개혁과 진보를 목표로한 새로운 공동체를 설립하여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런 고민의 일환으로 기존에 설립된 교회들이 많이 있고 민주성, 민중성을 표방했지만 교회가 안정되고 목회자의 유명세를 따라서 결국은 좀 특별한 기성교회가 되거나 아직도 미자립으로 남아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개혁된 교회, 민주적 교회는  목회자의 주도권을 조금 내려놓고 평신들에게 약간의 발언권과 목회참여를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평신도의 발언권 신장아니라 실제적인 의사 결정권을 갖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평신도 결정권이 과할 정도로 보장된 곳이 새민족교회라고 볼 수 있다. 잘훈련되고 좋은 목사를 모시고 그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교회가 교인들도 편할 수 있다. 하지만 평신도 중심교회는 평신도가 말만하는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에는 행동과 참여가 전제되야 하기에 이들은 보통교회에 비하면 더 힘들고 어려운 교회요 목회라고 할 수도 있다. 

한국사회 격변기 1986년 8월 10일 당시 장신대에서 홍성현 목사의 강의를 들었던 당시 신대원 78기-80기 들에게  뿌려진 씨들에게 싹이났다. 그래서 시대가 허락하지 않는 이념문제를 신학의 문제로 포장하여 제 3세계신학연구소로 태동한다. 그리고 이들이 홍 목사 자택에 모인 9명이 의기투합하여  “창립선언문” 을 준비하고 새로운 교회를 꿈꾼다. 이들은 또 하나의 교회가 세워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장차 한국사에서 교회가 가야할  참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 지,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준비를 했다. 당시도 그런 취지의 교회들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끝까지 그 내용을 가져간 곳은 흔치 않다. 

첫 교역자로는 서명철 전도사를 설교자로 하여 홍성현 목사가 담임목사로 하여 교회의 이름은 옙2:5에서 근거해서 나온 것이 “새민족” 이었다. 첫 예배처소는 화양동 소재(현 건대역 2번 출구 앞)였다. 아무래도 첫 교인들은 홍 목사와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함께 “제 3세계신학연구소” 를 만들어서 홍 목사를 모시고 함께 신학의 동지적 결속을 이룬 제자들이었다. 

그후 1989년 서 목사가 사임한후 고현영 목사가 이어 목회를 하며 교회명을 “새민교회” 로 개명한다. 그리고 우려곡절 끝에 한 교회와 합병을 하게 되는 “다함교회” 다. 이 교회는 1991년 6월에 이근복 목사(전 영등포 산선 총무)를 청빙하여 창립한 교회다.  그리고 그해 10월 홍성현 목사가 사임을 하고 연동교회 원로이신 김형태 목사를 설교목사를 계시다가 1992년 새민교회와 다함교회가 통합하고 이근복 목사가 첫 담임목사로 하고 교회명은 "새민족교회" 로 하여 함해노회에 가입한다. 그리고 1993년에 성북구 동선동으로 이전하여 교회정관과 교인실천규범을 제정하고 김명환 전도사가 부임한다. 

2002년 교회운영위원회를 설치(위원장: 김종원)하고 명실 상부한 평신도 중심의 교회운동을 시작한다. 2007년 4월에 처음으로 장로 2인(김종원 신윤복)을 세운다. 2007년 4월에는 대구새민족교회(백창욱 목사)의  설립을 협력한다. 그리고 2008년에는 이근복 목사가 사임을 하고 김영철 목사(캐나다에서 귀국)가 부임한다. 2010년 망원동에 주택을 매임하여 이사하고 2012년 문종철, 박연희 장로를 임직한다.  2013년 김영철 목사가 사임하고 황남덕 목사(미국에서 공부 마침)가 부임한다. 

간단한 역사지만 새민족교회의 홈피에 기록된 것으로 현재와 과거를 아는 데 필수적인 내용이다. 지금 새민족교회는 현재 pck 교회 가운데 수도권에서 이뤄지고 있는 모든 기독교가 참여하는 사회연대 집회(쌍차, 재능교육, 부활절, 성탄절, 세월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교회중 하나다.  망원동의 작은 교회지만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PCK를 대표하여 사회적 참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창립이래로 이 교회에 함께한 사람들의 정신과 신앙 그리고 그들의 꿈과 비젼이 한치도 흔들리지 않고 30년을 간직해왔다면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비록 작은교회지만 그 이상과 사명은 참으로 큰 교회이다. 이 교회를 세우고 거쳐간 신도들 목회자들만 봐도 현재 pck에서 모두 자기 몫을 감당하고 있다. 먼져 이 교회의 초석을 놓으신 홍성현 목사로 말할 것 같으면 소위 대형교회(인천제일, 무학)와 장신대, 아신대에서의 교수생활을 하셨지만 그 마지막은 수송교회(200-2010)에서 마치셨다. 그리고 현재는 갈릴리신학원의 한국 원장으로 계시다. pck 목회자 운동의 1세대(장신대 15기)로 그 동기들도 모두 본 교단의 산증인들이시다. 그 외에도 김준헌, 기춘오, 노경신 목사등도 여기서 훈련받고 모두 자기 분야에서 사역하고 있다.

 완벽한 평신도 중심의 교회
교인중심, 평신도 중심의 교회 혹은 목회를 표방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지난 새민족교회 만큼 초기부터 이 부분에 대하여 신학적으로도 그렇고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한 교회는 드물다 하겠다.  현 교회위원회 11기의  교회 3.0 추진위원회라는 다소 별스러운 조직으로 교회살림을 해가는 새민족교회의 사정을 살펴보면

어느 교회이든지 그 교회를 움직이는 조직이든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새민족교회가 평신도 중심의 교회를 표방한 교회라고 했지만 보통 교회에서는 평신도라고 해도 그 평신도 중에는 영향력(연수, 직분, 물질)을 갖은 이들이 언제나 상층부가 되어 다시 목회자와 각을지고 교회를 주도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새민족은 어림없다. 이 교회는 집단(평신도)이 주인인 동시에 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목회자를 견제하고 대결하는 구도가 아닌 목회적 영역(예배와 설교)과 행정권(살림과 교인) 이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다음은 새민족교회의 규약 전문이다.  

우리 새민족교회는 한국사회의 모순이 심화되어 가고, 교회마저도 물량주의와 비 민주적 권위주의 그리고 개 교회주의에 매몰되어 가는 현실을 직시하며, 1986년 8월 복음정신에 입각하여 시대와 민족에게 구원의 등불을 밝힐 수 있는 교회의 전형을 창출하고자 창립하였다. 그동안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평신도 활동의 활성화, 지역선교의 수행, 신학연구소의 운영등의 사명을 감당하였고, 1992년 4월 다함교회와 하나되는 역사를 이루어 내었으며, 1993년 4월 동선동으로 이전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교회이전을 맞이하여 우리 새민족교회 교인들은 창립취지를 이어받아 다음과 같이 신앙을 고백하며, 교회의 발전방향을 세우고 이를 위하여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중심에 세우시고 이를 통하여 세상을 다스리고 계시며,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세력으로부터 자유케하고 해방하시며, 마침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실 것임을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역사를 이끌고 계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아 민족을 섬기는 사명을 부여받았다.    

              1993년 5월 23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새민족교회 교인 일동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와 불의 가운데 신음하는 인간과 역사를 구원하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병들고 소외되고, 가난하고 약하며 억압당하는 이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다가 악한 세력에 의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부활하심으로써 죽음과 악한 권세를 이기시고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셨음을 믿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과 신앙의 지표로 삼고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우리는 성령께서는 영이신 하나님으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며, 우리와 늘 함께 하시어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우심을 믿는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을 우리에게 주시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느 경우에든지 소망을 품고 담대하게 역사 현장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 역사 변혁과 인간 사랑을 위하여 살게 되었다. 우리는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믿음과 능력이 이를 통하여 나옴을 믿는다. 믿음의 내용과 삶의 방향을 성경에서 발견함으로 성경공부에 열심을 내는 것이 신앙성장에 있어 최선의 길임을 믿는다.

우리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인류를 구원하고 해방하시며 창조 활동을 계속하시고자 하나님께서 불러 모은 공동체임을 믿는다. 하나님 선교의 구체적 도구인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이 땅에 지속적으로 재현함으로써,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세상에 구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특히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며 민족을 섬기는 일을 우선적으로 감당하고자 한다. 우리 교회는 교회 내에서 성별, 나이, 직분의 차이를 넘어서 서로 섬김으로써 사랑이 넘치고 조화를 이루는 믿음의 공동체를 건설한다. 특히 평신도들이 주체적으로 교회를 위하여 일하며 이끌어 간다. 우리 교회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수행하기 위하여 지역의 교회들과 실제적으로 협력한다.

우리는 이러한 고백과 사명을 실현하기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며 실천할 것이다. 십자가를 지시고 승리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이 전문은 누구보라고 폼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한국교회에만연된 개 교회주의, 탈역사주의 개인의 축복위주의 목회로부터 역사와 시대를 직시하며 책임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서자는 것이다. 이 선언문은  개혁적 목회를 꿈꾸는  모든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끊임없이 읽고 실천하고 뒤새겨야할 문서다. 여기 우리 한국교회가 간과한 것 그리고 감당해야 할 것 그리고 가야 할 방향과 목표가 정확히 나와있는 문서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감시 평신도 중심의 교회라는 별칭을 붙힐 수 있는 근거이다.

나아가 이런 신앙과 참여를 통하여 새민족교회가 향후 20년후를 상정하는 새민족교회 2026 비전선언문에도 보면 "새민족교회는 하나님나라 건설과 정의, 평화, 창조질서 보전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삶을 닮아 갈 것을 다짐하며, 바르고 건강한 신앙공동체로서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민족의 평화와 통일 선교에 헌신한다. 이를 위해 2026년까지 JPIC센터를 건립하여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고, 새민족교회와 선교의 비전을 함께 하는 분가교회 5개를 세운다"  고 쓰고 있다. (정의 평화 창조의 질서의 회복)Justice Peace & integration Creation 이라는 주제는 세계 에큐메니칼운동과 신학의 주제로 앞으로 이 땅의 교회들이 숙명처럼 지고가야할 책임적 삶의 방식이고 표현이 되야 한다는 의미에서 예배 공동체 교회에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쎈타로의 확장을 예고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것은 기존 교회나 목회자들의 교회력에 의한 목회나 교세의 물량적 확장이나 성장 패러다임에서 질적으로 전환한 내용이다. 그래서 목회자도 교인들도 모두 자기 교회가 하고 있는 일과 가는 방향을 가늠하고 예측가능한 목회를 그려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완벽한 설교내용과 동영상 제공으로 목회와 설교의 공공화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교회 홈페이지도 특별한 자료실을 제외한 것은 누구나 보고 쓸 수 있게 개방하여 교회의 행정의 민주화, 개방화를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 이런 새민족교회가 다듬어지고 지금까지 초창기의 목회철학과 가치들이 굴절되지 않고 유지된 것은 교인들의 목회자 청빙에 대한 분명한 의지와 결단이 있기 때문이다. 

역대 목회자
가장 오랜동안 목회한 이는 이근복 목사로 그는 새문안교회 출신으로 장청으로 부터 시작하여 신학교와 목회자운동, URM등 사회선교의 주자다. 1982년 장신대 입학하여 현대신학연구회의 창립자로 초대 회장을 지냈고 졸업하는 1984년에 영등포산선에 부임하였으며 총무를 지냈다. 그후 새민족교회를 개척하였고 그후 2014년 까지 NCCK훈련원 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재건하는 크리스찬아카데미의 새 원장으로 취임했다. 

이외에도 동역자들과 창립한 기관으로 한민족평화연구소, 생명학연구등 학문과 실천의 영역에서 시대와 역사가 필요한 일을 찾아서 만들고 재건하였다. 새민족교회가 이렇게 확고하게 평신도중심의 교회로 자리를 잡은 이면에는 이근복 목사가 갖고 있는 개인적인 목회철학과 새민족교회의 구성원들은 특수한 관계에서 기인하기도 하다. 중직자중에는 이미 30년 전에 새문안교회에서 영등포산선에서의 만난 신앙동지였기 때문이다. 
   
      * 현 목회자 황남덕 목사

뒤를 이은 김영철 목사는 1980년 부터 인천에서 장청과 지역운동을 하다가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민교훈련을 받고 인천에 고백교회라는 민중교회를 세워 목회하다가 카나다 죤 낙스신학대학원에서 민중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후 부임하였다.  현 목회자 황남덕 목사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에서 노동자로 일하며 주경야독하며 서울장신을 졸업하고 민교훈련을 받고 신탄진에 노동자교회를 세워 목회하다가 필리핀과 독일선교사를 거쳐  영등포산선에서 일하다가 2012년 미국의 뉴져지 hartfort대학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렇게 새민족은 박사급 목사들이 목회를 하는 교회라는 부러움반 비아양이 있다. 이들의 설교는 모두 문서와 영상으로 공개되는 데 교회력에 의하여 신학적으로 탄탄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설교들로 정평이 나있다.                                 

                                     *  2026 비젼 체계도

평신도의 설교 어디 까지?
이 교회에 새로운 실험은 평신도 설교다. 그것도 본교회만이 아니라 타교회의 평신도들과 교류한다. 평신도들이 구역회나 소 모임에서가 아니라 주일 낮 강단에서다. 그렇게 자주는 아니지만 강단의 개방화다.  아직은 실험적이지만 성직자들에게 독점된 강단을 개방하는 기회는 충격이다. 그러나 이미 외국에서는 신학교에서  혹은 평신도라도 설교를 할 수 있지만 설교 면허만 취득한 사람만 한다는 이유는 모르는 것 같다. 외국은  설교도 결혼예식이나 상담도 반드시 그 자격을 취득해야 가능하다.  교회예식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훈련받은 목회자의 설교는 아니더라도 평신도들이 삶의 자리에서 고백적으로 나오는 간증이나 나눔을 비공식 모임이 아닌 강단을 통하여 선포되는 것은 하나의 실험이다.  구역예배나 부서에서 평신도들이 성경을 봉독하고 나름대로 의미를 다는 설교(강론)을 한지는 오래지만 앞으로 새민족교회에서 어떻게 진행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런 기회를 통하여 "설교는  목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두가 설교자다” 가 아니라  "설교란 정말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말씀 앞에 다시한번 겸손하게 서고 목사의 노고를 알고 목회자들을 이해하고 협력하는 기회가 되야 할 것이다. 누가하든 설교를 잘하는 것은 귀한 것이지만 설교만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설교는 연습하고 준비해서 잘할 수 있지만 말과 행동(언행일치)의 삶이 중요한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더 이상 말이 필요한 때가 아니다.  행동하는 신앙과 양심이 필요한 때이다. 그런의미에서 평신도의 설교는 제한적이어야 한다. 평신도들의 삶의 여정자체가 지속적인 성경연구와 기도와 묵상의 연장속에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준비하는 식으로는 연속성도 그렇고 다소 복잡하고 청중인 성도들의 삶의 자리와 정서 관심을 돌보는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일방적인 전달에 그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설립된 평신도 중심의 초교파 교회에서는 전담목회자 없이 설교자는 내부와 외부에서 자유롭게 필요한대로 청하여 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주제별로 하니 지루하지 않고 참신하여 좋은 면도 많치만 교회라는 공동체가 선장없는 배가 되는 듯한 우려도 있다.  학교도 담임선생이 있듯이 교회공동체란 소속된 이들의 애경사에서 부터 그 가정의 문제를 알고 기도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목회적 돌봄없이 예식의 문제로 처리될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라는 공동체와 사회운동 조직체는 혼돈하지 말아야 하겠다. 

새민족교회는 이웃의 아픔에 함께 하는 교회다.
교회란 무엇인가? 신학적으로는 증인 공동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예수의 부활을 믿으면서 그의 약속과 분부를 이 세상에서 실현하는 것이라면 결코 천당가는 표를 구하고 준비하는 대합실이 돼서는 안된다. 교회는 그가 자리한 지역과 세상에서 아픔과 고통. 불의와 부정이 있는 곳에서 치유자로 위로자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자기들 끼리 기뻐하고 즐기는 써클이 돼서는 안된다. 기존의 교회의 유지 확대 재생산만을 위하여 존재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합일되고 연합된 교회는 아니다. 교인들을 고객으로 알고 서비스하고 그들에게 웃음을 주고 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고 동물적인 가족주의에 머무르는 것은 비즈니스는 될지언정 갈릴리 예수의 정신을 따르는 공동체라고 볼 수 없다. 

부활한 주님을 믿지 못하고 두려움으로 흩허지고 피했던 제자들이 다시 모인 곳이다. 그리고 생전의 주님을 추억하고 기억하며 새로운 가치와 정신으로 유대감을 보인 공동체이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파루시아)를 기다렸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자 모임의 내용이 풍성해지기 시작한다. 과거 주님은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리고 신도들 사이에 일어난 문제에 답을 찾기 위하여 과거의 행적을 기억해내기 시작한다. 그래서 말씀어록(로기온, Q자료) 가 생겨난다. 그리고 사도와 사도성을 갖은 이들이 나이를 먹고 세상을 떠난다. 

바울의 서신서들이 새로운 공동체에 회람된다. 이에 예수의 자취와 말씀이 기록으로 남아야 겠다는 이들에 의하여 그들의 공동체의 요구에 의하여 최초로 마가복음이 편집되기 시작한다. 적어도 기독교가 주전 313년 공인되기 이전까지는 박해속에서 밀교와 같이 숨어서 생존하던 모임이었다. 종교로써의 체계적인 교리나 신학이 완성된 것은 어거스틴이나 교수들의 신학작업 이후다. 기독교의 안정화는 역동적인 갈릴리 예수의 모습을 완성된 하나님의 아들로 심판주로 변화한다. 그리고 성직자들의 출현으로 제도화 된다. 

밑 바닥 땅의 사람들의 희망으로 시작된 고난받는 자들의 친구였던 공동체가 지배자 정복자의 종교가 되면서부터 갈릴리예수의 정신과 사역은 축소되고 구원의 메시야 기적의 아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격상된다. 기독교가 역사속에서 현실적인 고통과 질곡을 뛰어넘기 위한 희망으로의 초월적 신을 통하여 희망을 주던 시대에서 초월 그 자체에 머무르고 말게 된다. 지금도 이 시대의 고난 받는 자들과 아픔의 현장엔 언제나 새민족교인들이 있다. 매년 부활절과 성탄절 연합예배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10년전 부터 "교회의 날" 을 시작하여 오늘까지 이끌고 있다.

제도화된 기독교 교파신학의 확장과 개교회의 안주와 유지 재생산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복음서가 보여주는 예수를 발견하고 그 예수를 따르자는 것이 최근 교회들의 추세이다. 형식화된 복음과 제도화된 교회의 직제에 얽메여서 복종하고 순종할 수 있는 의무에 묶였던 평신도들이 교회의 주체로 등장하고 책임을 지는 새로운 교회운동의 출발이 바로 새민족교회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이제 30년을 맞는 다. 새민족 공동체는 교회개혁 3.0 이라는 위원회를 통하여 끊임없는 갱신과 도전을 선포하고 있다.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사람들이 선 자리마다 다르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넓게 보면 한국교회의 문제는 3無(무뢰,무지,무식) 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의 개신교는 굉장히 편협해 보이고, 철학과 내용이 없이 교리들로만 가득차 있는듯 하지만 사실 개신교가 뿌리를 두고 있는 가톨릭과 유대교 역사까지를 포함하면 인류 역사의 거의 모든 사상과 철학을 포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200여년의 역사 속에서 기원전까지는 인류 역사 속에서 가장 화려했던 문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 철학으로 대변되는 헬레니즘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로마 시대에는 동방교회를 중심으로 한 동양의 문화와 전통을 받아들임으로서 아주 풍성한 자신의 사상과 내용들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의 국교로 인정되던 시기(4세기 경), 종교개혁을 일으키면서 자본주의 정신을 뒷받침 하던 시기(16세기)를 거치면서 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는 여기에다 19세기에 일어났던 미국의 부흥운동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의 깊은 뿌리를 만나지 못하고, 당대의 지성을 배제하는 식의 기독교근본주의 영향 아래 속하게 되었다.

새민족의 가치를 실현하는 더 많은 교회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기독교 특별히 개신교를 진짜로 만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의 모든 기독교 정보는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독점하고 있어서 이것을 대중과 나누거나 공유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바로 전문가들의 횡포이다. 여기에다 한국 교회 교인들이 전혀 신학적인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도 문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신학이나 목회가 목회자에게 국한되고 그 권한은 무한대로 위임되여 독재권력이 되어간다.

신학과 신앙의 분리가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임을 볼 때 하루속히 극복되어야 할 과제이다. 그렇다보니 교회에서 이뤄지는 구역 성경공부나 일련의 외부적 교육등은 담임목사의 친위대를 만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시대적 정황에 맞게 이루어지는 창조적 교육이기 보다는 여전히 20세기 초에 신학적 이론들과 교리적 성서관으로 진행되어져 평신도들의 창조적 신앙의 성장과 지적인 질문과 의문들을 막아 버리는 교인들을 맹신도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우리가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는 이유는 평신도들의 성경 지식을 증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신도 스스로가 목회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적으로 성경을 읽고 통전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할 있는 길을 열기 위한 것이다. 본훼퍼의 고백처럼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를 이루는 것이다. 모든 목회는 평신도들이 주체적인 신앙인으로 서기 위한 목회여야 한다.  잔소리 목회, 전화목회, 단골무당식 목회로 부터 벗어나서 평신도들이 세상의 문제에 대하여 신앙적 판단을 내리는데 필요한 기준을 설정해주거나 가치들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가장 큰 차이가 여기에 있다. 가톨릭은 '신부'의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개신교에서는 '만인제사장설'을 이야기 함으로 모든 모든 이들이 제사장이라는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신도들이 성경에서 예수를 만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삶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 훈련은 평신도 자신보다 목회자가 앞장서서 이끌어야 한다. 

잘못된 한국교회의 목회상은 교인의 영적성장을 모도하기 보다 교회 그 자체를 성장시키고 거기서 물질과 부와 명예를 누리는 목회자들의 헛된 욕망과 허상속에서 새민족교회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계급과 계층의 교회가 아니라 다중의 교회가 필요할 때다. 더 이상 교회강단에서 진보든 보수든 정치설교 비난설교가 사라지고 말씀과 진리에 기초한 평신도들이 이 세상를 바로보고 판단하고 역사의 주역이 되는 교회를 이상으로 하여 가는 새민족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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