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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18  17:4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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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들의 이중직에 대한 소고

   
*영남신학대 김승호 교수

영남신대의 김승호 교수께서 목회자의 이중직에 대한 책, "이중직 목회"를 출판한 모양이다. 아직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데 벌써 뉴스에 나왔다. (관련기사 : http://m.nocutnews.co.kr/news/4654850)

그럴 거면 내 책도 뉴스에 좀 내 줬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목사들을 위한 변호> 말이다.  내 일찍 통합 교단이 목사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종종했지만 예상대로 신학 교수님들 역시 그다지 목사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목사들을 길러낸 기관이 바로 신학교인데, 그 신학교수님들이 목사들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하다면 그 학교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왜 김승호 교수께서 ‘목사들의 이중직이 정당하다고 하는지’ 그 이유를 속속들이 파악하지는 않았지만 개혁교회의 전통 신학이라는 차원에서 몇 줄 적는다.

사실 요즘 내가 준비하고 있는 논문이 한편 있다. 아직 쓰지 않아, 공개할 수도 없고, 공개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영남신대의 김승호 교수께서 책을 써 버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나도 몇 줄 쓰게 된다.

내가 요사이 읽고 있는 책은 프랜시스 투레틴의 <논박신학 강요> 3권이다. 그 책 중에서 목회자들의 사례비 문제를 다룬 대목이다. 예상하고 있는 논문의 제목은 “투레틴의 논박신학 강요를 통해 본 목사들의 사례비”이다. 설마 프랜시스 투레틴이 교역자의 사례비를 그 중요한 <논박신학 강요>에서 다루었을까?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이다. 투레틴 같은 정통주의의 대가가 그의 주저에서 교역자의 사례비 문제를 다룬다. 물론 투레틴은 교회의 실정성에 연관된 문제들을 이것 말고도 더 다루었다.

어떨까? 투레틴의 주장은 당연히 목사들에게 사례비를 지급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 이중직은 타당한가? 정확하게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투레틴의 논조대로 하면, 이중직은 타당하지 않다. 투레틴은 사도바울이 천막 깁는 일을 하면서 살았다는 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그 본문을 빌미로 교역자의 이중직을 주장했던 사람들에게 신랄하게 비판했다. 자세한 내용은 혹시라도 내 논문이 발표하는 일이 있게 된다면 그 때 읽으셔도 될 듯하다. 한 가지 분명해 지는 것은 김승호 교수께서는 나에게 과제를 던지며, 나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나에게 싸움꺼리를 제공했으며, 동시에 내가 그분을 향해 공격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것 같은 인상이 든다. 선배 학자이시지만 동료 목사로서 가만 있기 힘들게 만든 것 같다. 사실 내 책 <목사들을 위한 변호>에 김승호 교수님의 글이 각주에 소개 된다(공헌배, <목사들을 위한 변호>, 각주 117).

그렇지 않아도 한번 뵙고 싶었는데, 이참에 그분은 나에게 과제를 던진 듯하다. 사실 투레틴의 책을 읽기 싫어,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내 마음에 불을 지펴주셔서 고맙다.

투레틴의 논지를 여기서 다 쓰기는 힘들다. 그걸 여기서 공개한다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아직 논문의 초안 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투레틴이 무얼 주장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목사들의 이중직을 허용한 데에는 김승호 교수님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거다. 제2 스위스 신앙고백인가? 제2 스코틀랜드의 치리서인가?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인가? 아니면 J. A. 핫지의 교회정치문답 조례인가? 아니면 찰스 핫지의 책인가? 아니면 칼뱅 시대의 매뉴얼인가?

내가 제시한 자료들 중, 김승호 교수님께서는 어디에 근거를 두셨는지 궁금하다. 왜 이와 같은 근거들이 필요한가 하면, 자칭 칼뱅파 교회의 목사들을 길러내는 신학교의 교수님이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통합 측이 허용하다시피 한 교역자의 이중직은 큰 교회의 목사들이 아니라 주로 작은 교회의 목사들, 약한 교회의 목사들에게로 적용시키는 듯하다. 쉽게 말하면, 목사들은 남아도는데, 그렇다고 하여, 신학교수님들의 연봉을 줄일 수는 없는 노릇이고, 신학 교수님들을 계속해서 먹여 살리려면 육성회원들이 필요할 텐데, 그 신학 교수님들의 밥 줄에 지장을 줄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학생들을 계속 받아야 한다. 목사들이 쏟아져 갈 곳이 없어도 신학교수님들을 위해 누군가는 신학교에다 피고름을 짜 받치고, 나중에는 밖으로 내동댕이 쳐져, 장로님들에게 시달리고, 생업에 시달리며, 목사들끼리도 경쟁해 가며, 서로에게 불신의 장벽까지 높여가며,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험악한 판으로 던져진다.

만일 내가 신학교의 교수라면, 그 신학생들이 불쌍해서라도, 그런 책(목사의 이중직)은 못 쓰겠다. 차라리 내 연봉을 낮추라고 말하고 싶다.

하나 물어보자, 16세기 제네바의 장 칼뱅 목사가 받은 월급이 어느 정도였을 것 같은가? 그리고 17세기 브리타니아의 목사들이 받았던 월급이 어느 정도였을까? 사실 내 논문의 후속 연구과제 중, 하나가 그거였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연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 추론 되는 게 있다. 칼뱅의 월급은 다른 목사들과의 차이가 없었을 듯하다. 설령, 조금 더 많이 받았을지라도 큰 차이는 아니었을 것 같다. 칼뱅은 죽기 전, 유언을 남겼다. ‘내 무덤을 높이지 말고, 평토장으로 하라!’ 그래서 칼뱅의 무덤은 화려하지 않다.

16세기 제네바의 목사들은 수가 많이 모자랐다(몹시 모자란다. 어떤 학자의 주장을 따르면, 제네바의 목사들과 교인들의 비례를 평균으로 내면, 목사 한명 당 천명 이상의 교인들이 배분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 당시의 목사고시는 워낙 어려웠기 때문에 아무나 목사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 당시에는 신학대학을 나와야 목사가 된다는 보증이 없다. 즉 그 당시에는 신대원(M. Div.)제도가 없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장 칼뱅은 신학대 출신이 아니다. 칼뱅은 법대 출신의 목사였다. 그리고 칼뱅에게는 박사학위가 없었다. 물론 칼 바르트나 라인홀드 니부어도 박사학위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의 신학교수들이 바르트나 니부어나 칼뱅보다 우수할 것으로 여기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과정이 그 당시에 목사자격을 취득하는 것 보다 어려웠을 것 같은가? 그렇게 생각하기 어렵다. 궁금하면 아래의 몸 글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에 나타난 목사고시”를 읽어보시라! 17세기의 브리타니아만 해도 목사고시가 신학박사 못지 않게 어려웠다.

목사들의 이중직을 허용한다고? 왜? 책임지기 싫어서?  험악한 판으로 내동댕이 쳐져, 불쌍하게 살아가는 자신들의 제자들이 보기 싫은가!

칼뱅 시대의 목양방식에 있어서 깊게 생각해야 할 것은 ‘목사회’였다. 그 당시 목사의 임직식은 ‘ordinentur’인데, 이 말의 뜻은 서품, 혹은 목사의 회에 들어간다는 ‘입회(入會)’이다. ‘ordinentur’는 ‘order’라는 단어와 연관하여 볼 수 있는데, ‘order’는 ‘수도원’을 뜻한다. 따라서 목사의 입회식(ordinentur)은 목사들의 회(會)에 가입하는 중요한 절차였다. 중세에 있어서 수도사들이 된다는 것은, 마치 새로 들어오는 수도사를 선배 수도사들이 부모와 같이 아니면 가족 이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사회의 가족이 된다는 말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형제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이기도 했다. 목사의 임직식을 그런 언어로 이해했다. 칼뱅 당시에는 실지로 목사회가 매우 활발히 유기적으로 움직였을 뿐만 아니라 목사들 간의 토론이 잦았고, 공동목양의 방식을 택하였다. 그래서 바로 그 목사회 때문에 목양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제2 스위스 신앙고백(1566)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교역자들은 동일하고 동등한 권한 혹은 기능을 부여받았다(C. 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Michigan: Baker Books, 1931), 283; 이형기, <세계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1), 187).

어느 특정 개인들에게 집착하는 것은 마귀의 짓이다(C. 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vol. 3 (Michigan: Baker Books, 1931), 283; 이형기, <세계개혁교회의 신앙고백서>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1), 188).

그렇다면 개혁교회의 전통에서는 교역자들의 서열화를 아주 강하게 반대한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따르면, 교역자의 사례비는 차등이 없어야 한다. 다만 차이가 난다면 호봉에 따른 차이여야 하지, 교회의 크기에 따른 차이가 아니어야 한다. 왜냐하면 칼뱅시대의 목사들은 고위직 공무원에 견주어질 만 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은 근무지(장소)에 따라 연봉이 차이나는 게 아니라 호봉에 따라 연봉이 차이난다.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1645)는 브리타니아의 칼뱅주의 교회가 공동으로 승인한 헌법이다. 이 규례는 브리타니아 칼뱅주의 교회들의 공적(公的)법령으로서 결정적 효력을 갖는다. 그렇다면 이 법령이 주장하는 목사의 임직과정에 대해 생각해 보자.

17세기 당시 브리타니아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문맹률이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을 것이다. 그런 시대에 그런 목사고시를 치렀다면 이는 그야말로 고시 수준이다.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 능숙해야 했으며, 라틴어로 논술문을 쓸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었어야 했다. 목사 고시자는 성경을 주석하고, 그것을 설교문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었어야 했다. 물론 그 심사는 간단하지 않고, 엄정하게 치러졌다.

그러나 김진홍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들이 볼 때 목사님들이 신부님들에 비하여 자질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91년도에 전 캐톨릭 교회가 신부 서품을 준 것이 75명인가 57명인가 그렇습니다. 매우 엄격하게 심사하여 서품을 주는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개신교의 경우 작년 연말로 신학교 수(數)가 318개에 달하고, 1년에 14,000명 이상이 목사가 되겠다고 쏟아져 나옵니다. 그 중에서 기본 수준을 갖춘 신학교가 얼마나 됩니까? 사회적으로 경쟁을 하면 형편없이 뒤쳐지는 사람이 당회장이라 하여 고급 승용차나 타고 다닌다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개신교에 영혼을 맡기기에는 지도자들의 수준이 너무나 뒤떨어진다는 것입니다(김진홍, “신앙과 사회운동,” <구원과 종말 1992> (1993. 6): 97).

물론 이는 제 말이 아니라 김진홍 목사님의 말씀이시다. 오해 없길 바란다. 그 분의 말씀을 대로한다면, 한국의 장로파 교회에서도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의 정신을 따라 목사임직의 과정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즉 목사 되는 과정을 엄격하게 하고, 대신 그 목사들은 충분하고도 정당하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개선됨이 마땅하다. 원래 브리타니아나 스위스에서도 그랬기 때문이다. 즉 목사들을 무작정 세워 푸대접 받게 할 것이 아니라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에서 제시한 대로 엄정하게 심사하여 제대로 목사대접을 받게 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현 한국교회의 실태로는 교회의 크기나 재력에 따라 목사의 사례비가 결정된다. 하지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교회의 크기와 관계없이 목사들의 연봉이나 처우는 통일적이어야 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제2 스코틀랜드 치리서에서는 목사들을 계급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목사들의 사례가 차이가 난다면 그것은 호봉에 따른 차이여야 하지, 교회의 크기에 따른 차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웨스트민스터 교회정치에서 제시된 목사고시의 과정을 보면 그 수준이 오늘날 한국의 사법고시나 행정고시에 견주어 질 만하므로, 목사들에게도 그 정도 수준에 어울리는 처우를 함이 마땅하다. 만약 돈으로 그 정도의 혜택을 줄 수 없다면 인격적 존경심이나 명예 또는 권위에 있어서라도 그런 수준의 존경을 받음이 마땅하다. 즉 제대로 세워서 정당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는 칼뱅주의를 실행할 만한 능력이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나라보다 기독교의 역사가 더 오래된 미국에서도 칼뱅주의 교회들의 비율이 높지 않다고 말입니다. 미국 같은 사회에서도 침례파 교회들의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셨습니까? 이제라도 양심 고백하여, “주님, 저희들이 잘못했습니다. 저희들이 뭘 잘 몰라, 주제넘게 감히, 칼뱅주의를 넘보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라도 뉘우쳐, 대한예수교 장로회라는 간판을 내림이 어떻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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