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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반대 물길 어디까지 왔나?18일(월) 7시 연합기도회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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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06  22:5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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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습반대 물길 어디까지 왔나?  

명성세습을 반대하는 목회자들의 행동이 서명에서 행동으로 진화되는 추세다. 세습반대 기도모임은 지난 11월 14일 장로회신학대학교(장신대·임성빈 총장) 학생들이 처음으로 시작했다. 이후 예장통합 목회자들로 구성된 5개 단체(공대위)가 11월 21일 태봉교회(동남노회 비대위원장: 김수원 목사)에서 기도회로 모였다.  

그리고 밖에서는 '세반연' 이 장신대에서 그리고 이제는 본 교단 소속 교회를 순회하며 매주 화요일에 이어 가고 있다. 지난 11월 28일에는 높은 뜻광성교회(이장호 목사)에서 열렸고 지난  5일에는 성암교회(조주희 목사)에서 그리고 돌아오는 12월 12일에는 예장통합 전 총회장을 지낸  손달익 목사가 시무하는 서문교회에서 열릴 예정이다. 총회장급 교회에서 이런 집회가 열리는 것은 예사롭지 않다. 
   
 
이런 기도회의 흐름이 하나로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18일(월) 오후 7시에 총회 본부가 있는 100주년회관으로 정했으나 선약으로 여의치 않차 인근 여전도회 회관 14층 대강당에서 1차 기도회로 모이고 이후 총회 앞으로 와서 마무리를 한다는 예정이다. 이 기도회에는 그동안 세습반대를 표명한 장신대 각 동문들과 재학생 목회자 5개 공대위와 동남노회 비대위가 주관하고 참가할 예정으로 보인다.

또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의 교수 120명의 실명으로 세습관련한 재판의 공정성과 총회의 깊은 관심을 촉구하는 서명 성명서를 총회 재판국장 이만규 목사와  총회 사무총장 변창배 목사에게 7일에 전달한다는 소식도 있다. 교회력도 그렇치만 사회절기로도 년말년시로 2017년을 마무리하는 세모지만 세습반대운동은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보 보인다. 

세습반대   

한편 "명성교회 고마워요“ 배덕만 교수가 한 역설적인 말이다.종교개혁 500주년이 행사위주로 하여 밋밋하게 지나가지 않고 명성이 세습 사태를 통하여 한국사회와 교회에 ”대형교회” 의 실체와 그 의미를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미국 UCLA의 옥성득 교수도 이번에 '세습’ 이라는 문제에만 머물지 말고 대형교회의 씨스탬을 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동안 언터쳐블이었던 명성교회에 대하여 비판의 말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김삼환 목사 부자의 세습(목회대물림)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넘어서 노회와 총회로 까지 불똥이 튈 전망인데 전국 노회장협의회(회장: 박은호 목사)에서도 최근 명성세습과 관련하여 입장을 표한다는 소문이다. 비판하는 이들은 모두 자기들의 자리와 인식의 정도에 따른 강조점은 다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내용은 더 명료해졌고 목표도 더 집중화되었다. 세습철회와 사과, 재판국의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 총회의 정당한 치리권 행사다.  

비판에는 이 문제에 대한 가장 큰 피해자이며 수혜자가 될 동남노회 비대위는 주로 절차와 법적인 문제를 기독시민운동단체들은 개혁운동의 과제로 김동호 목사나 손봉호 교수같은 분들은 자신의 존재감 부각으로 신학교 교수들은 체면상으로 학생들은 배운바대로 그외 목회자들과 동기회들은 도덕적인 것에다가 최근 어려워 지는 목회현장에 대한 불만에 대한 한에다가 상대적 박탈감도 엿보인다. 

그러나 교단 내 반대 목소리는 하나로 통합이 되가는 중으로 보인다. 그렇게 된다면 작은 물도 큰 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개인적, 감정적 비난과 조롱만 하고 나서지는 않는 이들이 더 많다.  SNS상의 비판기사나 비판성명서 링크나 하고 남더로 뭘하라는 선동이나 하고 구경만 한다. 무대응은 찬성도 반대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전세의 결과에 따라서 합류을 하는 게 대중들의 심리다. 

교단내 반대 첫 흐름은 아무래도 우리교단 진보성향의 목회자 5개 단체가 나섰다 이들은 이미 지난 총회에서의 동성애 문제에 대한 결정에 대하여 비판하기 위하여 활동을 한바 있는 데 그 연장선상에서 나선 것이다. 지난 11월 1일(수)에 세습반대를 위한 성명서와 기자회견과 서명록을 총회에 전달한 바 있다. 그외 신학생들의  연합기도회나 비판에 이어 장신대 동기회중에서 가장 먼져 성서를 낸 곳은 신대원 81기다. 목회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든 이들로써 쉬운 일은 아니다. 

그후 82기도 나섰는 데 이들은 장신대 재학생 대표들과 연대하여  명성교회를 방문하여 서신을 전달하였고 다른 깃수로와의 연대를 제안한다.  그리고 ‘예장목회자연대‘ 라는 조직을 표명하여 산발적으로 반대성명을 내던 다른 동기회들로 확산된다.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명성세습문제만이 아니라 교단전반의 문제를 지적하고 교권구조에서 느끼는 대형교회에 대한 문제점들도 언급한다.

세습반대? 어디까지 가능한가? 

그러나 사실 교단 안에서 명성세습에 대한 비판이 어디까지 갈 것이냐? 하는 데에는 이견들이 없지 않다. 물리력으로 제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이상 더 나가기도 쉽지 않다. 이미 반대의사는 이미 지난 봄노회시 양 교회간 합병을 통한 세습의도에 대하여 총회 산하 전국 7개 신학대학의 교수들과 장신대 학생들이 경고와 메시지를 낸바 있다. 사실 성명전이나 기도회외에 무엇을 해야 하는 가? 여기서 

사실 지금 목회자들이  세습문제을 중요한 타켓으로 하지만 우리안에서는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지난 총회에서의 동성애 문제에 대한 결정은 지금 말을 못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주제다.  그런데 진짜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는 비겨가고 합법적 공간과 내용이 확보된 명성 잡기만 몰두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왜 세습에 대해서도 그동안 침묵하다가 유독 명성에게만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가?  이 문제는 앞으로 따로 논의를 할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세습반대는 시기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많은 이유들과 의미가 있지만 세습 철회안하다고 교단을 나가라고 하거나 치리를 하라는 것은 사실 선언적 의미 이상은 없다. 세습도 혈연적인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지역과 동문, 써클의 대물림도 내용은 같기 때문이다. 

명성교회만을 놓고 왜 그러느냐는 논리도 있고 자기들도 대형화를 추구하는 목회를 하고 이웃의 교회들과 동역자들과는 경쟁하며 양도둑질을 하지 않냐는 지적이다. 그리고 교회성장을 위해서는 별별 프로그램들을 돌리고 강사를 부르고 더 커지지 못해서 안달들이 났으면서도 마치 자기는 안그런 것 처럼 한다는 지적도 한다. 그 중에 세습반대를 앞장서서 하는 김동호 목사 같은 분을 예로 들기도 한다.

이외에도 큰 목소리는 아니나 명성교회로 하여금 세반법에 문제를 제기하고 법률적 이론적 제공자로 오해를 받는 분들의 옹호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전 총회장으로는 지용수 목사(창원 양곡교회)는 노골적으로 김삼환 목사 부자의 세습에 대하여 두둔하는 설교까지 내서 큰 구설수다. 그외에도 성명서를 내지는 않거나 개인적인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분들가운데는 우호적이지는 않치만 그렇다고 뭔 말을 하는 것도 자제를 하고 있다.    

반대운동의 주체가 있는 가?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반대이유와 흐름들이 한곳으로 통합이 되가고 있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거기다가 82기 성명서에서는 명성세습 비판을 넘어서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것은 우리안의 소욕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제도적인 개혁의 칼끝을 우리에게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사회적으로나 교회적으로는 명성의 세습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명분과 정당성은 확보했기에 그것을 넘어서는 논리가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반대운동 구룹들에게는 세습반대의 주도권보다는 분위기를 통한  동력을 만들기 위하여 침묵하는 대중들을 동원하고 그 힘을 통한 자진 철회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교단 안의 분위기는 명성에 우호적이거나 그 정도 갖고 뭘 그러느냐는 관용의 분위기다. 또 명성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고리들이 도처에 그림자 처럼 드리워 있어 여진히 요지부동이다 

따라서 세습반대를 좀더 실천적으로나 의미있게 하려는 주도적인 세력이 나온 다면 전세는 역전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당사자인 "서울 동남노회 정상화를 위한 비대위“ 를 중심으로 세워 가는 것이 필요하다.  노회의 정상화문제는 세습문제와 함께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우리는 교회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떤 목회를 해야 하는 가? 라는 깊은 성찰을 하도록 해준 명성교회에 대하여 나중에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습문제를 우리시대 교회개혁으로 어떻게 완결 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지금 까지 나온 것들은 성명서 발표와 서명, 의사전달 기도회등으로 교단내의 목회자들과 동문들의 의사는 충분히 표현되었다. 그 외 교회개혁 500년 평신도 연대나 세반연에서는 1인시위나 방문시위들은 있지만 같은 교단의 목회자나 신학생들이 남의 교회 예배시간 까지 가서 교인들 붙잡는 시위야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명성교회가 세습말고는 문제가 없었을까? 누구는 지금이라고 세습을 철회하면 다시 존경심을 회복할 수 있다는 말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단편적인 견해다. 명성교회에 다른 사람이 간다고 해서 그 교회가 달라질 것은 없다는 지적들도 한다. 김하나 목사가 안가게 하는 것이 개혁인 것 처럼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명성교회는 한국의 대형교회의 문제점들을 총체적으로 갖고 있기에 대표적인 비난을 받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했는 데 왜 우리만 갖고 그러느냐지만 그게 바로 개신교를 과잉대표한 결과이다. 그런 목회와 드러내기를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 구조에서 나오는 결과가 세습인 것이지 세습을 하는 부자만 떼어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세습만 안했지 대형교회들이 노회에서의 총대독식이나 임원선거의 영향력은 좋다는 것은 아니다. 

명성도 느리지만 변화고 있다

사실 명성교회는 이미 3년전 재정맡은 박장로의 자살과 비상자금 사건으로 인하여 큰 홍역을 치렀다. 그때 명성은 재정씨스탬에 손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박장로 비자금을 김목사나 특정인이 전용했다는 정황은 없었다. 해외 부동산문제도 모두 공공과 봉사의 목적으로 취득하였고 사용되고 있으며 남은 잔액도 모두 교로 귀속되었고 명의도 모두 법인체로 등재가 되게 한다.

한때 사람들은 김삼환 목사의 목회관이나 열정에 대하여 배우고 본받기를 원했다. 새벽기도운동이나 평이한 설교에서 감동받는 교인들과 부흥의 열망에 대하여 영향을 받았다. 그런 결과 교인들의 우민화를 비판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김삼환 목사를 추억하는 선배들 말로는 김 목사는  목회자들이 누리는 그흔 한 안식년이나 휴가도 없이 한 때 머슴처럼 목회를 한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요즘 대형교회 물려받은 가짜 황태자나 쇼호스트 3맨 목회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자부심이다.

내부적으로 안되는 일은 없었고 듣기 싫은 소리를 하는 자도 없었다. 적어도 목회에 관한한 그의 열정과 성실을 내부자들은 아무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예을 들어 김재훈 장로는 최근 세습과 관련하여 반론권을 준 Jtbc의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명성교회에 한번 와서 예배들 드리고 교인들을 만나보시라고“ 별 난리를 떨어도 우리교회는 흔들림없이 간다는 식이다.

세습이 문제가 아니라 세습을 가능케 하는 것이 더 문제

그런 환경에서는 세습이 아니라 세습보다 더한 것을 해도 가능케 하는 토대라고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이들의 주장으로 보면 억지나 힘으로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자유로운 의사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세습이 법적으로는 금지된 것이고 신학적으로 어쩌구해도 별로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명성은 더 비판을 받는 것이다. 같은 시기에 세습을 한 성복교회 이태희 목사는 비겨가고 애굿은 명성만 갖고 그러느냐는 것이다.

세습은 사유화이고 범죄라고 까지 해도 크게 반발을 하지도 않는 다.  잘한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차선의 선택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교인들이 반대하면 어떤 목사도 할 수 없다. 그러니 세습도 할만하기까 한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종교개혁 500년을 지나면서 표적이 되어 모든 세습에 대한 총체적인 결정판이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법적인 제기를 하지만 그것도 간단하지 않다. 위임목사의 청빙 결의 취소 청구의 피고는 김삼환 목사나 김하나 목사가 아니다. 법적으로는 대리 당회장 유경종 목사 일 것이다. 노회의 허락하에 치룬 위임식이니 이것에 대한 취소도 명성교회의 교인들이나 김부자가 아니라 위임국장인 노회장 최관섭 목사가 되게 되어 있다. 재판도 엉뚱한 사람들 붙잡고 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삼환 목사의 진짜 속내는

사실 김삼환 목사는 지금 그만 두고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지 않아도 충분히 먹을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여력도 있고 인기도 나름 갖고 있는 분이다. 그런데 오히려 세습으로 인해서 자신의 명예를 한마디로 시궁창에 쳐박은 형편으로 보인다. 이게 아들을 위한 희생인지 교인들의 요구에 대한 응답인지는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지만........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장로들의 요구도 없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형교회 1세대 들의 은퇴이후 전에 누렸던 권한을 후임자들이 그대로 온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세습에 성공한 광림이나 금란, 임마누엘의 3도 자녀들을 보나 다른 교회들도 선대들이 구가했던 권한을 온전히 갖지 못했다. 장로들에게 중요한 것은 교회의 안정이다. 후임자가 누가 올 것인지는 교회의 안전성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최근 여러개의 교회들이 후임자 교체과정에서 분열을 경험했고 아직도 그 후유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장로들은 같은 노회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성공신화를 보여주었고 자신들에게 영감을 준바 있는 광성교회의 실패를 잘알고 있다. 전임자와 후임자의 갈등의 이면에는 장로들이 분열하기 때문이다. 후임자가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은 바로 장로들 때문인데 후임자는 분열의 수혜자이며 피해자다.

이렇게 1세대들의 비민주적이고 카리스마형의 목회와 재정사용은 언젠가는 사고가 나게 되어 있다. 그런 힘을 경험한 장로들은 전임자가 은퇴하는 순간 그 권력을 분점하려고 한다. 다행히 그들중 누군가가 그 권력을 통합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치 못하면 후임자를 축으로 놓고 충성경쟁과 이권 쟁탈전이 벌어진다.

문제는 역시 재정이다,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했다면 대형교회라도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새문안이나 영락교회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다. 자수성가한 교회, 지역과 패권의 목회자들에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명성의 세습문제는 이름만 달리하는 것일 뿐이지 이와 비슷한 교회가 처한 문제들이기도 한다. 그들의 권한은 무한대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민주적이고 견제와 균형없는 당회는 반드시 한번은 큰일을 당하게 되어 있다. 교인들이 낸 헌금으로 목사들이 그 다음으로 장로들도 같이 쓰려고 하게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웬만한 사람 데려다가 놓고 권한을 누려보려고 하지 않는 명성교회 장로들은 젊잖다. 그들은 지금도 김삼환 목사에 대한 애정과 믿음이 확실하다. 어디고 장로들이 반대하는 아들세습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명성교회 법의 문제인가?

법의 문제라면 왜 다른 교회나 기관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유독 명성세습에만 올인하는 가? 전주 예수병원과 부산의 일신병원이 총회 산하기관에서 이탈을 하려는 일이나 지난 총회에서의 반동성애 문제에는 한마디도 못하는 형편아닌가? 이미 세습문제는 한 교회의 문제가 아닌 대형교회의 잘못된 씨스탬의 산물임에도 애써 침묵하다가 명성에게만 적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 가?

세습은 그것을 하고자 하는 한 교회나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습을 꿈꾸게 되는 일반화된 목회씨스탬이 극복되지 않는 한 교회 막는 다고 해서 개혁은 아니다. 그렇다고 명성의 세습을 합리화하고 용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반대를 하더라도 알고나 하자는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세습을 왜 반대하는 가? 사회적 비난 때문인가? 아니면 세반법 때문에 그런가?

그동안 총회 법 안지킨 이들에게 벌을 준 총회인지도 묻고 싶다는 말도 있다. 그렇기에 세습문제는 한 교회에 집중하여 해소될 문제가 아니라 그런 목회를 구조적으로 가능케 하는 것에 대한 것 까지 볼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세습을 불가능케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위임제를 임기제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목사의 청빙권을 원래대로 회중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세습비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제도적인 개혁이다. 그것은 바로 위임제의 폐지다. 

교회만 변화하지 않고 있다.

명성의 위임 자진포기요구는 구호에 불과하다. 그것은 법과 절차를 따라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워 지지 않았다“ 는 말이 있다. 명성의 역사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기에 누가 성명서 내고 데모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교인들 결론은 교인들 선동해서 내부 분란을 요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모든 이들의 고민이 있다. 명성세습 포기하지 않는 다고 해서 그 교회를 분열과 혼란으로 가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다. 

그동안 한국사회를 규정짓는 정치행태를 바꾼 것은 시민들이다. 길고 긴 군사독재와 신군부의 독재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화을 위한 열망을 희생을 딛고 이뤄낸 국민승리에는 시간과 희생의 결과물이다. 물론 거기는 지역을 기반으로한 정당들의 권력욕과 결합하였다고 해도 말이다. 한술밥에 배부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의미에서 명성은 이제 시작일 수도 있다. 앞으로 누구도 세습은 꿈을 꾸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화는 점진적으로 이뤄졌다. 정권을 교체해가면서 국민들은 지역이든 계증이든 자기들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시켜온 것이다. 그 성과가 다소 중도적인  열린우리당이나 더불어 민주당 것이 아니라 국민이 그 정당으로 하여금 자기들의 요구를 실현하도록 한 것이다.

경제권력에게도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노조가 시민운동이 민변과 시민운동이 그들의 탐욕의 본질을 폭로하였고 비판의 끈을 놓치않았다. 여론으로 도덕적으로 대기업들을 윤리성을 압박하고 재벌의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을 드러내어 해체라는 수준까지 이뤄낸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종교권력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한번도 제대로 도전받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종교권력의 가장 큰 곳은 여의도지만 이들도 세습은 아니지만 부인은 한세대 큰 아들은 국민일보 둘째는 엘림복지관으로 분배를 했다. 그래도 조용기 목사는 실형을 면치 못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자기 교회의 장로들로 부터의 도전과 소송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도 돈문제다. 그에 비하여 명성은 지난 3년전 비자금 재판을 통하여 내성을 강화했다고 했다. 좋게 말해 재정의 투명성을 확보했다는 말이다.

그런면에서 이번에 명성교회가 직면한 두 번째 시련은 재정은 아니니 도적적인 문제는 비겨간 셈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하여 대형교회는 변화하는 것이다.  당회의 민주성과 건강성은 진보하는 것이다. 당시도 김삼환 목사와 교회를 대신하여 법정에 서고 변호한 측근 장로들의 이런 점을 말한 바 있다. 철옹성 같은 곳도 결국은 느리지만 객관적 조건들에 의하여 진보하는 것이다.

대형교회의 상징, 명성교회는 가장 안좋은 시기에 선택한 세습으로 인하여 매를 더 맞는 것이지 방식이나 내용은 이전 교회들과 하나도 다를 것도 없다. 그리고 쉽게 말하듯 대형교회의 세습이 과거처럼 부나 권력의 물림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로들은 김하나가 명성교회의 후임이 되는 것은 희생이고 십자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교회세습"  이 아닌 "교회 권력의 세습"

우리시대의 대표적 논객 김진호 목사는 경향신문 11월 24일자 신문에서 “교회의 권력세습과 한국 사회의 적폐” 라는 글에서 낡은 권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3대 영역인 국가, 기업 그리고 개신교회에는 박정희, 정주영, 조용기로 대표되는 카리스마적 영웅들에 대해서 분석한바 있다.

그러면서 김 목사는 나는 ‘교회세습’이라는 용어보다 ‘교회의 권력세습’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고 쓰고 있다. 세습은 세습의 행위자를 담임목사에 국한시키지만 이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압도적인 권력을 장악한 일부 목사들에 한정된 문제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목사든 특권적 신자든, 소수의 권력집단이 담임목사의 청빙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때 교회 대중은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데 신임 목사는 특권집단에 의존하는 목회사역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명성교회뿐 아니라 일부 교회에 잔존하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목사가 없는 곳에서의 소수 특권적 엘리트(당회)는 사회 각 영역에서 작동되는 무수한, 불공정한 사적 네트워크를 교회를 매개로 하여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 그 교회의 목사는 그러한 부조리한 연줄주의의 주요 행위자들의 ‘영적 세탁’을 담당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실제로 어느 교회에서는 학벌좋고 매너좋은 나이어린 목회자를 청빙해놓고 목회에 전념할 것을 약조받고 노회와 총회 교권은 장로들이 좌우지 하는 것이다. 권력세습은 부자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주거지가 없는 서울 시내의 오래된 교회들을 보면 여전히 쇠락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설립자들과 초기 신자들의 가족들 때문이다. 이들의 혈연이 교회를 생존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목회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목회자는 그 구성원들의 요구와 관심을 목회적으로 돌보고 발현현시켜주는 것만 해도 살아남는 다. 그러나 뭐를 하려고 하고 귀찮게 군다면 그는 오래 있지 못할 것이다.

목회자는 세습이든 자수성가든 공채로 부임을 하던 운명과도 같은 것은 점점 증대하는 교인들과의 의식과 관심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 교회라고 해서 아들이 거져먹는 게 아니다. 한국교회의 교인들의 지적수준이나 영적상태가 7-80년대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들은 아들의 십자가가 있을 것이다.

세습반대운동 어디 만큼 왔나?

이제 공은 총회 재판국으로 갔다고 볼 수 이다. 거기다가 장신대 동기들의 성명서와 서명운동 흐름은 이제 작은 시냇에서 강물로 합류되었다. 아무리 작은 물줄기라도 합쳐지면 큰 물이 되고 물의 힘은 뚝을 넘기도 하고 결국은 땜을 허물기도 한다. 현재 장신대 96기는 처음으로 실명 성명서를 기독공보에 유료광고를 냈다.

Jtbc의 의욕적인 보도가 광성교회 기도원 매각보도에서 사실을 외면한 오보로 인하여 현재는 주춤한 상태다. 그러나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에서 지난 2014년의 명성교회 재정장로의 자살과 비자금 문제를 추적하는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그외에도 명성이 사적으로 소유한 부동산 실태와 부적절한 방식의 금전거래나 이권등에 대한 전방위 뒤지기에 들어갔다. 

이제 불은 밖으로도 붙었다. 김삼환 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숭실대학교 학생들의 이사장 사퇴와 명예박사 학위 취소 서명 운동도 예사롭지는 않다. 거기다가 명성교회가 의욕적으로 투자하여 키운 다윗 아카데미 출신들의 성명서 이제 성년이 된 청년, 대학부 출신들중 일부가 낸 성명서등은 그 내용과 상관없이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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