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와 동성 결혼(롬1:18-27)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나는 설교다
동성애와 동성 결혼(롬1:18-27)PCUSA(동부한미노회) 허봉기 목사
편집위원  |  oikos78@ms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3.07  15:41:47
트위터 페이스북

동성애와 동성 결혼(롬1:18-27)

/ 허봉기 목사(동부한미노회, 찬양교회)

   

허봉기 목사는 연세대학교 신학과,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등에서 수학했으며, 코퍼스크리스티 한인장로교회 담임목사를 거쳐 1999년부터 찬양교회 담임목사로 있다. 

* 동부 한미노회 산하의 필그림교회는 동성애 문제로 인하여 소속노회나 동역자들과 정상적인 지도를 받고 동역자들과 협력하지 않고 갈등과 재판 끝에 패소하여 교단을 나간 바 있다.  이것에 대하여 노회는 인내심을 갖고 법과 신앙, 상식선에서 해결되기를 원했지만 1천만 불의 교회재산을 놓고 나가야 하는 필그림교회로서는 마음 아픈 일이었겠지만 미국 법이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런데 양춘길 목사는 미국에서도 그렇고 지난 2월 한국에 들어와서 기자회견과 간증으로 자신이 마치 동성애를 반대하고 신앙의 순수를 지키다가 핍박받은 순교자처럼 포장을 하는 데 그것은 거짓말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하루 빨리 상처가 아물기를 바라는 다른 한인교회들과 동역자들이 마치 동성애를 찬성하고 받아드리는 것처럼 보이려는 의도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한 반론 성격의 설교 2편을 소개한다.    

동성애는 이 시대에 가장 예민한 관심사 중의 하나입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보다 수적으로 더 많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살면서 이 세상 분위기와 무관할 수 없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노선을 채택했다고 해서 성경의 가르침에 맞서는 생각이나 행동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떤 일에 대한 태도를 결정할 때에 좀 더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동성애를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저 세상 사람이라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면 될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라면 하나님 나라의 법도만 생각하면 그만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현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사는 법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먼저 동성애에 관련된 성경 구절 몇 군데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레위기18:22입니다.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레위기20:13입니다.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하였음이라. 그들의 피가 자기들에게로 돌아가리라.” 고린도전서6:9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6:9-10)” 

동성애를 금지하는 법은 구약에도 있고 신약에도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동성애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할 만큼 동성애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습니다. 굳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불과 얼마 전까지 모든 문화권에서 동성애와 동성결혼은 금기였습니다. 그런 일이 없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것은 떳떳하게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커밍아웃이라고 자기의 성 정체성을 용기를 내어 드러내면 비난을 받고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불과 몇 십 년 만에 그 숫자가 늘어나면서 사회적으로 동성애와 동성 결혼이 인정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미국 대법원에서 동성 결혼을 합헌이라고 판결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동성애와 동성 결혼을 허용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떻게 청교도 신앙 전통에 세워진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일이 교회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서 받아들여지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동성애자들이 수적으로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많아지면 무뎌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방면의 죄를 짓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그것이 죄가 아닌 것처럼 생각되는 것입니다. 예술계에는 동성애자가 즐비합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음악이나 미술이나 패션 계통에 종사하려면 동성애자가 되어야 하는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유명한 사람들이 동성애자가 되는 것이 그런 경향에 한 몫을 하게 됐을 겁니다.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니까 아주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 그 예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식이 동성애자이고, 아주 친한 친구가 동성애자이면 중립적인 위치에서 이 문제를 다루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인도주의적인 접근입니다. 동성애자를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소수자로 보는 것입니다. 소수자의 권익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보장되고, 흑인의 인권이 보장된 것처럼 이제 성 소수자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동성애와 동성 결혼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지몽매하거나 인정머리 없는 반인권주의자가 된 인상을 받습니다. 여성의 인권, 흑인의 인권 신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이 사회가 바른 일을 힘쓴 결과로 얻은 것입니다. 그러나, 동성애를 인정하고 그들의 권익을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동성애자를 성 소수자라고 부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술수입니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보는 소수의 사람들이라는 암시를 주려고 하는 시도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그저 소수자가 아니라 진리를 거스르는 소수자이기 때문이고, 사회에 영향력 있게 피해를 주는 소수자이기 때문입니다. 

동성애가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기 때문에 우리는 동성애를 반대합니다. 그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할 만큼 심각한 죄였습니다. 심각하게 다루어져야 할 죄라고 하는 것은 신약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동성애만 죄가 아니라 동성애와 함께 다루어지는 다른 죄들도 주목해야 마땅합니다. 도둑질과 탐욕, 술 취하는 것, 속여 빼앗는 것, 심지어는 모욕하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가 나란히 놓인 다른 죄들보다 동성애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가 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물론 허다한 다른 죄를 짓고 삽니다. 그것이 죄인 줄을 알지만 우리가 연약하고 악해서 그런 죄를 짓습니다. 우리가 유독 동성애를 꼭 집어서 문제 삼는 것은 그것이 죄로 다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동성애와 동성 결혼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담을 지으시고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셔서 그를 돕는 자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2장에는 좀 더 자세한 언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남자를 지으시고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는 것은 누가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처럼 남자보다 고급 재료를 사용하셨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고, 남자와 여자는 그만큼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만드시고, 동일한 재료로 하와를 만드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남자를 흙으로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의 몸의 일부를 사용하여 만드신 것은 특별한 뜻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이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룬 부부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 질서입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혼례 첫날밤에 남자가 아내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지성소에 들어간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합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동성애와 동성 결혼으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동성애와 동성 결혼의 가장 큰 폐단은 전통적인 가정이 해체되는 것입니다. 

현실을 좀 짚어 보겠습니다. 동성애에 대해 말할 때에 흔히 제기되는 문제는 동성애적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의 경우입니다. 그런 사람이 없지 않습니다. 여자가 자연히 여자에 끌리고, 남자가 어쩔 수 없이 남자에 끌리는 경우입니다. 저항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런 성향이 강한 사람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몇 십 년 전과 비교할 때 유전적으로 동성애적인 성향을 타고난 동성애자가 갑자기 그렇게 많아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특정 직업군에서 동성애자가 많이 나타나는 것을 유전적인 성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요즈음은 동성애가 성적인 취향처럼 보입니다. 건강한 가정을 해체하는 성적 취향을 단지 소수자의 권리를 지켜 준다는 명분으로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동성애적인 성향을 강하게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행동이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우리는 그 행동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생리 주기를 따라서 도벽 성향이 발동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둑질이 허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타고난 성향이 온유한 사람이 있고, 타고난 성향이 거칠고 공격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썩 바람직하지 않은 성향을 타고 난 사람도 성경이 지시하는 성품의 사람이 되려고 애를 써야 하듯이, 동성애 성향을 타고난 사람도 쉽지 않겠지만 그런 성향을 따라 살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것은 처절한 싸움이 될 것입니다.

 동성애와 동성 결혼의 문제를 다룰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죄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레즈비언 학자이자 저술가인 캐밀 파야는 자신의 성적 선택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성애는 정상이 아니다. 천만에! 그것은 정상에 대한 도전이다… 학자들이 좋아하든 아니든 간에 자연은 존재한다. 자연에서는 생식만이 유일하고 예외 없는 규칙이다. 그것이 정상이다. 우리 육체는 생식을 위해 만들어졌다.. 아무리 그럴 듯한 말장난을 해도 이 생물학적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동성애자이든 아니든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동성애가 죄라는 것을 담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 법도를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동성애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그저 미워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까운 혈육이나 친구가 동성애자가 되었다고 해서 그를 그대로 내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네가 동성애를 선택하면 너는 내 자식이 아니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나는 그것이 죄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그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까운 사람이 동성애자라고 해서 동성애에 우호적인 입장에 서거나, 모호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이런 태도를 좋아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죄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듯이, 그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두고두고 생각해야 할 입니다.

허봉기 목사 설교 2편

                        순결한 지혜자 / 마태복음 10:16 / 2018년 2월 11일 주일설교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이 세상에 보내신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내진 세상이 만만치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이리 가운데로 보내진 양과 같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순결을 지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해서 어떤 존재여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세상에 섞여서 주님이 부여하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지혜입니다. 나 한 사람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이면 순결만 신경 쓰면 되지만, 이리가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양 같은 우리가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로 살려면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은 험한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자기를 지키는 한 편으로 세상 사람들을 위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리 가운데에서 사역해야 하는 양들에게 필요한 것이 순결과 지혜인데, 주님은 지혜를 순결에 앞세우셨습니다. 어쩌면 순결보다 더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순결은 자기를 지키는 것이고, 지혜는 순결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세상을 위하여 살아갈 때 필요한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리스도인이 신앙의 순결을 지키는 것보다 지혜를 발휘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에 주님께서 지혜를 강조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지혜와 순결이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속해 있는 미국장로교는 2014년에 결혼의 정의를 수정함으로 동성결혼을 인정하였습니다. 개정된 결혼의 정의는 두 사람의 시민 결합입니다. “두 사람의, 전통적으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입니다. 우리 교단 안에서 동성애에 대한 관심사는 1970년대에 논의되기 시작되었습니다. 급기야는 다수가 동성 결혼을 지지하게 되었고, 교단 헌법이 수정되면서 교단을 탈퇴하는 교회들이 생겨났습니다. 미국장로교 회원 교회가 10000개 가까운데, 그 중에서 300여 개 교회가 교단을 떠났습니다. 그 교회가 신앙적으로 순결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교단 탈퇴가 가장 지혜로운 결정인지는 따져 보아야 합니다. 

미국장로교가 동성 결혼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성 결혼을 지지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단 헌법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목사나 당회가 성령의 분별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결혼에 관해 내리는 목회적 결정에 대하여, 그 누구도 목사의 결혼 집례를 강요할 수 없고, 또한 당회의 결혼을 위한 교회 건물 사용 결정을 강요할 수 없다. (W-4.90006)” 다시 말해서, 목사는 동성 결혼의 주례를 거절할 수 있고, 당회는 동성 결혼을 위한 예식 장소로 교회 건물이 사용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미국장로교는 철저히 노회 중심 정치입니다. 노회 위에 대회와 총회라고 하는 상회 기관이 있지만 거의 모든 신앙활동이 노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5년 전쯤에 우리 교단 헌법인 규례서를 절반 이하의 분량으로 대폭 개정하였는데, 개정의 방향은 상당 부분을 노회와 개교회 당회의 결정으로 넘겨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동성 결혼 이슈도 노회의 신학적인 입장의 영향을 주로 받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동부한미노회는 동성 결혼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2014년 6월에 발표한 성명서 일부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1. 결혼과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성스러운 선물이며, 우리가 지금까지 믿고 지켜 왔던 결혼에 관한 전통과 이해는 이 시대에도 변함 없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성서적인 개념이라고 믿는다. 2. 우리는 현재 미국의 여러 주에서 점차 합법화 되어가는 동성 결혼이 분명히 비성서적이라고 규정하며, 미국장로교 헌법이 노회에 부여한 권한에 따라, 우리 노회와 소속 교회는 동성 결혼은 어떤 형태로든지 시행하지도 참여하지도 않을 것임을 밝힌다. 3. 우리는 아울러 하나님께서 창조의 질서로서 제정하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으로만 가능한 건강한 가정을 세워나가는 일과, 하나님께서는 동성애자를 포함한 모든 죄인들을 사랑하시며, 그들이 회개와 성화를 통하여 거듭난 새 삶을 누리기를 원하신다는 진리를 전하는 일에 교회로서 성심을 다할 것이다.” 

시대상을 반영하는 성경의 예민한 이슈에 대한 서로 다른 신앙적 입장을 교단은 어떻게 모두 수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미국장로교 신앙의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신앙 정신의 2 기둥이 있습니다. 하나는, 개혁신앙의 전통입니다. 개혁신앙은 종교개혁자들의 신앙을 계승한 것을 말합니다. 나머지 한 기둥은, 신앙 양심의 자유입니다. 

미국장로교 헌법의 해당 조항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a. 하나님 한 분만이 양심의 주인으로서, 하나님은 신앙이나 예배에 관하여 하나님 말씀에 반대되거나 벗어나는 사람들이 만드는 교리나 계율로부터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다. b.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종교 문제에서 개인적인 판단의 권리를 보편적이며 양도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F-3.0101)” 한 마디로, 신앙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신앙 전통에 서 있지만 그것이 성경에 근거한 바른 신앙생활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신앙 자유도 최대한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새로운 땅에 정착한 청교도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영국이나 유럽에서 개신교 신앙을 지킬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박해를 피해서 바다를 건너 낯선 곳에 왔습니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선택이었습니다. 거친 항해와 첫 해 겨울을 지나며 일행의 절반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에게 신앙의 자유는 이처럼 절실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신앙적인 입장이 다르더라도 자기 양심에 따라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경 말씀에 위배되는 신앙의 자유도 허용되어야 하는가, 의문이 생깁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기준이나 생각에 따라서 동성애나 동성 결혼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동성애에 대한 명백한 말씀을 무시하고 어떻게 동성애를 지지할 수 있는가 그런 말입니다. 이게 참 간단하지 않은데요. 동성애를 찬성하는 사람들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서 그와 같은 입장에 서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각각의 성경 해석에 근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해석은 무슨 해석이냐, 성경이 아주 분명하게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고 반드시 죽이라고 할 정도로 엄격하게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해석하고 말고 할 것이 무엇이 있느냐? 

제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산상설교 중에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5:27-30)” 이 말씀을 듣고 눈을 뽑거나 손을 찍어 버릴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의 결함을 뼈아프게 생각하며 이 말씀에 근거하여 눈을 뽑고 손을 찍어 버릴 것을 검토한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 적이 없으시다면 여러분은 이 말씀을 대하면서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이 말씀을 여러분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찍으라는 말씀은 아니다.” 범죄할 때에 뽑고 찍으라고 명백하게 말씀하시는데, 이것을 해석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느냐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주님이 같은 산상설교에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5:21-22)”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하면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믿으십니까? 만약에 믿는다면, 그런 줄 알고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언사를 쓰셨습니까? 저야 말로 이 말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저는 평생에 제가 똑똑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노회 일을 처리하면서 멍청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리고 더러 멍청하다고 말했습니다. 상대방을 욕하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일로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말씀을 제 나름대로 해석한 것입니다. 

저는 동성애자를 옹호하는 성경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저와 같이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성경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자기 나름대로 성경에 근거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잘못된 해석이지만 해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진영 모두 자기 신앙 양심에 따라서 신앙생활하도록 법적인 장치를 마련한 것입니다. 신앙 노선이 다르다고 해서 심각하게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역사적인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교단을 탈퇴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교단은 기본적인 신앙고백이 같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차이에도 불구하고 더불어 살면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일을 함께 도모하는 것입니다. 교단이 우리가 신앙 양심에 따라 신앙생활 하는 것을 방해하면 우리는 언제고 교단을 탈퇴할 것입니다. 신앙에는 다양한 관심사들이 있습니다. 관심사에 대한 입장이 다를 때마다 교단을 이탈해서는 이 시대에는 교단이라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학자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라고 규정합니다. 같은 일에 대해서 서로 다른 생각들이 공존하는 사회의 영향 때문인지 신학이나 신앙도 이전과 비교하여 퍽 다양하게 되었습니다. 양심에 따라 내 신앙을 지켜 사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내 신앙을 굳게 지키면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 한 복판에 교회가 서 있고, 우리가 사명자로 서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아무쪼록 우리를 붙드셔서 순결한 지혜자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관련기사]

편집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한국교회 진단과 대안" 정성진 목사 초청 강연회
2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5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6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7
명성교회 후임 청빙위원회 발표
8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9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10
본 교단 채영남 총회장 행보 언론들 주목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성덕정 17길 10 A동 202호   |  전화 : 02-469-4402  |  행정 : ds2sgt@daum.net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02054  |  발행인 · 편집인 : 유재무 |  대표 : 이명남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 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