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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종교 비판 (상)통일시대의 기독교 자기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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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7  15: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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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종교 비판 (상)

이 글은 서울대학교 교수들이 발행하는 계간지 <철학과 현실>에 기고된 글이다. 홍성현 목사님은 남북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와 연구에 일생을 바치신 분이시며,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하여 현재 갈릴리신학대학원 서울 분원 원장으로 팔순의 연세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 본 기사는, 분량 관계로 두 번에 나누어 싣는다. 약력은 기사 맨 아래에 소개한다.

"종교와 마르크스"

홍성현 목사(갈릴리신학대학원 서울 원장)

   
분단된 한반도가 평화로운 한반도로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서는 북의 공산주의자들과 남의 기독인들 간에 따뜻한 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자마자 북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북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신도들이 무참하게 살해되었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남반도에 살고 있는 기독인들 중에는 북에서 가족들을 잃고, 재산 등을 빼앗긴 분들이 많이 계신데 이들은 “북의 공산주의자”란 말만 들어도 치를 떠는 분들이다. 이젠 세월이 많이 흘러서 저 세상으로 떠나신 분들이 많으시지만, 아직도 살아계신 분들과 그 후손들이나 그 내용들을 전해들은 분들은 뷱의 공산주의자들과의 만남이 쉽지 않을 것이다.

다행한 것은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과 북 사이에 평화의 순례길이 체육인들과 음악인들에 의하여 만들어졌고 이어서 북과 남의 최고 정치 지도자들이 만나서 그 길을 한민족의 평화의 순례길로 만들고 있다. 분단과 전쟁의 길이 평화의 순례길로 바뀌어가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이제부터 북과 남의 동족들이 차분하게 준비할 일은 남은 북을, 북은 남을 서로 배우는 일이다. 남반도에 사는 기독인들은 북반도의 사상과 생활을, 북반도에 사는 공산주의자들은 남반도의 기독교를 이해하는 마음을 갖는 일이다. 특히 과거에 공산주의자들에게 참혹한 일을 당한 기독인들은 북의 공산주의자들과의 대화를 준비하여야 한다. 특히 북에서 가족들을 처참하게 잃은, 가슴 아픈 과거를 가진 기독인들이 앞장서서 과거를 용서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공산주의자들과의 대화를 준비해야 한다.

우리 민족의 대명제인 “한민족의 하나됨”, 즉 “남북의 통일”을 위하여 과거의 갈등과 싸움의 상처들과 아픔들을 조속히 추스르고 대동단결하여야 한다. 과거에는 서로 총칼을 겨눴던 상대였지만, 이제는 한 형제로서 만날 준비를 해야 한다. 한 집안에서도 부모 상호간에, 형제끼리, 심지어는 부모와 자식지간에도 갈등과 충돌과 싸움을 하다가도 서로 화해하듯이 한반도의 같은 민족으로서 생각과 이념이 서로 달라서 무섭게 싸웠지만, 이제는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줌으로서 과거의 아픔을 몰아내고 새로운 화해와 평화의 민족으로 거듭나야한다. 그 길만이 한반도 안에서 우리 민족 모두가 즐겁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이다.

남쪽의 백성들은 북의 백성들의 사상을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우선은 존중하면서 화해와 화합을 도모하여야 한다. 북의 동포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주체사상”을 우선 이해하여야 한다. 동시에 북의 동포들은 남쪽의 자유민주주의의 이념과 기독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거의 73년 동안이나 떨어져서 살던 남과 북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평화롭게 살려면 서로 달랐던 이념들과 사상과 삶의 모습들을 서로 알고 이해하여서, 상대방의 장점들은 받아주고, 잘못된 것들은 바꿔가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반도가 완전한 통일국가가 되려면 북과 남에서 지난 70여 년간 익숙해 진 이념과 정책과 삶의 방식들을 우선은 서로 인정해야 한다. 특히 북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큰 아픔을 당하고 월남한 기독인들은 북에 남아서 오랫동안 살던 동족들을 큰 아량을 갖고 예수님의 “원수사랑”의 교훈을 실천하여야 한다. 아브라함 링컨은 “원수를 이기는 길은 그 원수를 친구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처음엔 많이 힘들겠지만 원수사랑을 실천함에서 분단되었던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는 완전한 통일 국가를 일궈낼 것이다.

남 반도에 사는 기독인들은 공산주의의 시조인 마르크스가 왜 종교를 거부하였는가를 깊이 공부할 필요가 있다. 북 반도를 다스리던 공산주의자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가졌던 생각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산주의의 시조 마르크스가 기독교의 신앙을 “아편”이라고 혹평하면서 거부한 이유를 알아야한다. 남북이 소통하게 되면, 남의 기독인들과 북의 사회주의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 간에 대화기 이어질 것이기에, 남반도의 기독인들은 우선 마르크스가 종교를 비판한 이유를 심도 있게 공부하여야한다.

마르크스가 기독교를 비판한 내용들을 1)철학적인 차원, 2)정치적인 차원, 그리고 3)경제적인 차원에서 차례로 정리해 보려고 한다.

1. 철학적인 종교거부

마르크스의 최초의 종교비판에 관한 글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데모클리토스와 에피쿠루스의 자연철학에 관한 차이점> 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이 논문에서 에피쿠루스를 계몽자로 찬양을 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에피쿠루스는 위대한 희랍의 계몽자다. 따라서 루크레즈1)가 다음과 같이 그를 칭찬한 것 은 당연하다: “땅위에서의 고달픈 인생의 삶이 억압당하고 위협을 당하여, 심하게 찌프린 얼굴 을 하늘을 향하여 내밀고 도움을 청할 때, 처음으로 한 희랍인이 감히 그의 죽을 운명을 가진 눈을 치켜뜨고 저 괴물에게 용감히 대항하였다.“2)

마르크스가 에피쿠루스를 찬양한 것은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상적 철학을 배격한 까닭이다. 헤겔의 철학도 추상적인 것이라고 하여 마르크스는 그것을 거부하였다. 마르크스 이전에 포이에르바하가 종교의 소외성을 비판한 바가 있었는데, 마르크스가 포이에르바하를 계승하여 종교의 소외성을 철학의 소외성의 본거지로 보고 비판했다. 포이에르바하는 헤겔의 철학이 인간을 그 자신과 소외시킨 원인이 철학의 추상성에 있다고 비판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절대정신'이란 신학의 '죽은 영'인데 그것이 헤겔 철학 안에서 영적인 존재를 인도 한다‥‥ 신학은 영혼들을 믿는 믿음인데‥‥ 사변적 신학은 감지할 수 없는 추상성 속에서 그 영혼들을 갖고 있다”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하의 추상적 사상 비판을 좀더 들어보자.

"철학에도 때로는 그 자체 안에서 주체성을 띄기도 하고 또한 전체적으로 추상적 원리를 형성하는 둥, 한 가지 법칙으로만 내닫지 않는 어떤 교차하는 접촉점이 있듯이, 철학이 그 눈을 외면 세계에 돌리는 계기가 있다."3)

철학은 더 이상 추상적으로서가 아니고 마치 실천적인 사람과 같이 이 세상과 더불어 음모를 꾸민다. ‥‥ 이것이 철학의 참회절 4)이다. ‥‥ 자기 성격을 들어 내주는 옷을 입는 것은 철학에 본질적인 것이다. 5)

그 때에 철학은 전체성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만두고 구체적인 역사의 현실문제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크스 철학의 세계성이 그의 종교비판과 직결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임을 본다. 마르크스는 초자연까지를 포함한 우주의 전체성에 메이기보다는, 구`체적인 땅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철학, 그래서 구체적인 인간의 땅위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철학에 관심을 두었다.

하나님 증명을 비판하기 위해서 마르크스는 쉘링의 글을 먼저 인용한다: "약한 이성은 객관적인 하나님을 모르는 이성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신을 인정하기를 원하고 있다. ‥‥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인간성이 마음의 자유를 알아야 할 때이고 그것을 잊어버리게 한 제한에 대해 아우성치는 것을 더 이상 참아내서는 안 되는 때다."6) 마르크스는 이어서 헤겔의 하나님 증명에 대해 논구한다. 헤겔은 우연한 사건이란 있을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하나님 혹은 절대자는 존재한다고 결론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우연한 사건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기초 위에서 신이 존재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신은 우연적인 세계의 보증자이다. 그런데 마르크스가 말하는 신의 개념은 전통적인 기독교적 개념과 다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들은 인간의 본질적인 자기의식의 존재에 대한 증명 외에 아무것도 아니며 그 의식의 논리적 설명에 지나지 않다.“7)

마르크스에 의하면 종교란 주체와 객체의 불완전한 화해를 드러내 주는 것으로서, 결국엔 소외현상을 만든다는 것이다.

1842년 1월에 마르크스는 학문과 예술분야 독일연감에 게재된 어떤 논문이 포이에르바하의 신학적 입장이 쉬트라우스(D.F. Strauss)의 신학적 입장을 능가한다고 한데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데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 "쉬트라우스와 포이에르바하의 중간자로서의 루터" 라는 짧은 논문을 쓴 적이 있는데, 이 논문에서 그의 첫 번째 종교 비판이 완성되었다고 본다. 마르크스가 포이에르바하를 신학적으로 우수하다고 본 것은 그가 기적을 자연적이거나 인간적인 욕망의 실현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쉬트라우스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믿었는데 루터는 쉬트라우스를 옳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루터는 포이에르바하와 같은 올바른 신학적 표준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강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그때 하나님은 우리들을 도울 수 있고 또 기쁘게 그것을 해 주신다.“라고 주장한 루터의 글을 마르크스가 인용하면서 루터를 비판했다. 인간이 약할 때에 하나님이 그것을 보상하신다는 믿음을 마르크스는 거부하였다. 루터가 말하는 하나님 신앙은 인간의 무능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강할 때가 아니라 인간이 약할 때에 하나님에의 믿음이 필요하다는 루터의 논구에 대해서 비판하면서 마르크스는 인간의 강함을 높이 세우는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을 찬양한다. 다음에 인용된 글은 마르크스가 포이에르바하의 철학에 비춰서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하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을 알아라! 높은 자나 낮은 자나 공부한 자나 못한 자나 당신네 예수 믿는 자 모두는 부끄러운 줄을 알아라.' 한 절반 그리스도인이 기독교의 본 질을 그 본래의 모습대로 숨김없이 당신네들에게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사변적인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이여! 내가 당신네들에게 충고한다. 진짜 당신네들이 사물들을 이제까지와는 달리 사실 그대로 접근하려면, 다른 말로, 당신네들이 진리에 도달하기를 원한다면, 이제까지의 사변적인 철학의 개념이나 전제에서 부터 당신네들을 풀어버리시오. 그리고 당신네들이 진리와 자유에 이르는 길은 오직 불의 개울(Feuer-bach)"8)을 지나가는 길 밖에 없소.9)

마르크스의 초기비판은 포이에르바하와 바우어(Bauer)의 종교비판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저들의 종교비판을 그대로 수용한 것은 아니다. 그는 그들이 종교를 너무 추상적으로 비판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10)

그렇다면 마르크스의 초기의 글들 안에서 그의 종교의 비판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실제로 마르크스의 초기 종교비판은 어딘가 막연하고 추상적이었다. 그리고 엄밀한 의미에서 독창적이 아니었다.11) 그러나 그의 의도는 어떤 논리의 전개에 있어서의 엄격성을 지키려는데 있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종교를 비판함에서 그 논리성을 트집 잡은 것이 아니다. 그의 관심의 초점은 종교가 구체적인 세상에서 존재 가능하게 된 조건들을 따져보는데 있었다. 그는 당대의 교회의 신앙이 현실의 문제와는 동떨어지게 움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킨다고 믿고 있었다. 종교는 어디까지나 현 세계 안에서 구체성을 띄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마르크스는 오히려 그 반대의 종교현상을 보고 이에 비판을 가한 것이 틀림없다.

과연 마르크스가 서있는 철학 즉 "철학의 현세성"(ein Weltlichwerden der Philosophie)“12)은 이 세상사를 넘어서 있는 종교와 기독교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 안에서의 구원은 절대적인 초역사적 "정신·'(Geist)에 의해서 보장될 수가 없고, 오직 인간의 현실적 이성에 의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고 그는 믿었다. 인간의 구원이 더 이상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메데우스"가 구속해주고 삶의 의미를 제공한다. 프로메데우스는 누군가? 그는 ”신들에 대한 군중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자가 불경한 자”라고 규정한 자로서, 철학 달력에 있는 성자들과 순교자들 가운데서 최고로 고귀한 자이다."13)

신에게만 유일하게 주어졌던 불의 사용권을 신으로부터 빼앗아 땅위로 불을 가져온 프로메데우스를 최고의 성인으로 인정한 마르크스의 20대 때의 논문이 보여주듯이, 그의 관심은 구체적인 땅의 현실에 있었다. 즉 이 세상에서 많이 가진 자들에게, 즉 갑질들에게 착취당하는 자들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가졌다. 그가 말하는 .프로메데우스는 갑질들에게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사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자다.

당대의 기독교의 초월의 신앙이 민중들의 가난을 극복시켜주는 역할에 전혀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갑질들의 편에서 약한 자들과 없는 자들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당대의 기독교의 초월신앙이 민중들의 지상에서의 삶을 보다 밝게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고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초월신앙이 결국엔 현실의 민중들의 아픔을 더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2. 정치적인 종교 거부

마르크스 당대에 이미 앙리 쌩시몽CHenri de Saints-simon)이나 샬스 푸리에(Charles Fourier)와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 마르크스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마르크스는 저들의 사회주의를 감상주의라고 혹평했다.14) 그의 새로운 전망은 이러한 전통적인 개념들을 무가치하게 만들었다. 마르크스의 새 전망은 전통적인 개념들이 현실에서부터 유리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무산대중의 혁명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천명해 준다. 계급이 없고 착취가 없고 침략이 없는 밝은 사회를 만들기에는 기독교적인 감상적 사회주의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마르크스의 새 전망이 알려준 셈이다. 리히트하임의 다음의 평은 매우 적절하다: “단순히 보다 안정된 기반위에다 사회를 세우기를 바라던 교조주의적 개혁자들인 당대의 사회주의자들과 1840년대의 뛰어난 공산주의자들 간의 구별을 분명히 한 것이 마르크스의 전망이다.“15)

마르크스의 전망에는 의식과 구체적인 사실적 상황과의 일치가 있었다. 기독교적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일치가 없었던 것이다. 마르크스가 그들을 감상주의적이라고 부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마르크스는 소위 "기독교 국가"라고 알려진 독일에서 신문 검열이 심하게 시행되는 것에 강력히 항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즉 신문의 자유는 발행이나 출판의 자유 이상의 어떤 것을 의미한다. 신문은 사람들의 교제를 알려주고 "이론과 실천"을 매개한다. 그것을 통해서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해방이 결정된다. 마르크스가 여기서 말하는 실천(Praxis)은 현존의 실재를 인간의 행동을 통하여 혁명화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정치적으로 사회화되고 또 대자적일 때에 가능하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보기에는 당시의 독일 정부는 전혀 이러한 방면에서는 반동적이었다. 그것은 당대 독일의 정신사를 지배하고 있는 헤겔의 철학에서 드러나는데 그 철학이 사변에 기초한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보았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독일은 근본적으로 실천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가? 다시 말하면 현대국가들의 공적 지위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국가들의 직접적인 미래가 될 인간의 지위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가?“16) 라고 묻는다.

그는 이어서 민중을 사로잡는 힘은 물질적인 힘인데, 이론이 물질적인 힘이 되려면 인간을 향하고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마르크스의 유명한 말 "급진적이라는 것은 사건을 뿌리에서 잡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인간에게서 뿌리란 바로 인간 자신인 것이다."17)가 분명히 보여주는 대로 그의 "실천"은 뿌리인 사람을 돕는 데에 있었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구체적인 지상의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눌리고 못 가진 사람들과 같이 움직였다. 마르크스의 민중에 기초한 사고는 추상적인 철학적 논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민중의 현실에서 출발한 것이다. 즉 그는 하루 하루의 구체적인 역사의 현실 안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민중들의 삶에 관심하였다. 그가 기독교 신앙을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게 하는 아편으로 규정한 것은 그 신앙이 땅위의 문제들을 풀어내는 일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 반대라고 알았기 때문이다.18)

역사적 현실에서 볼 때 당대의 초역사적인 초월적 종교는 구체적인 실천을 결하고 있다고 마르크스는 비판했다. 초월을 향한 종교는 초월의 신비에 빠져서 땅위의 구체적인 현실을 보지 못하고 놓쳐버린다는 것이다. 땅을 관심하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는 종교는 구체적인 땅의 문제를 보지도 못할 것이고, 혹시라도 땅의 문제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풀어낼 수 있는 용기와 방법을 모른다고 마르크스는 비판했다.

민중의 가난의 문제만 보더라도 그것이 당시의 정치가들의 잘못된 통치에서 결과된 것이기에, 기독교가 정치인들에게 강하게 항의하면서 시정을 요구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초월자 하나님에게 해결해 달라고 기도만 하고 있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민중들을 위한 선한 정치는 정치인들의 과학적인 이론과 실천적인 노력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기에, 민중들이 정치가들에게 직접 호소하고 요청하여야 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고 초월의 신에게만 기도하게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마르크스는 지적했다. 이러한 비역사적인 종교는 인간들의 진리와 자유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 지배는 지배자의 종교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19)라고 마르크스는 외쳤다. 종교가 초월에로 민중들을 인도하면, 무산대중들이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게 되어서 결과적으로 지배자들을 위한 종교가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기독교국인 독일이, 그리고 기독교인인 황제가 바로 그들의 초월신앙의 비현실성 때문에 무산대중, 즉 민중의 가난과 자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초월신앙에 빠진 기독교는 자유의 종교가 아니라 지배하고 착취하는데 한 몫을 하는 종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마르크스의 종교비판의 핵심을 본다.

펫차(I. Fetscher)가 잘 지적한 것처럼,20) 마르크스는 헤겔의 세계정신(Weltgeist)을 인간의 사회(Gesellschaft)로 대체했다. 이 사회는 순전히 인간의 것이다. "세계정신"을 기독교의 초월적 신학위에 세워놓았던 헤겔의 기독교를 억압적인 종교로 비판한 마르크스는 종교적 초월의 차원을 뺀 순전한 인간 사회를 제창했다. 마르크스의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헤겔은 국가로부터 출발하여 사람을 국가에 종속시켜 버렸다. 민주주의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국가를 사람에게 종속시킨다. 종교가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이 종교를 만든 것처럼 헌법이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헌법을 만든다.21)

우리는 여기서 마르크스의 종교비판과 헤겔의 국가이해에 대한 비판이 구조적으로 비슷함을 발견한다. 헤겔의 절대정신이 초월적 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때에 마르크스가 헤겔의 철학, 특히 그의 국가이해와 종교를 싸잡아 비판하는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 독일 국가가 헤겔의 이념위에서 통치한다는 것은 곧 절대정신, 즉 초월적 신에 근거하여 통치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절대정신이 구체적인 인간 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헤겔의 국가 이해가 사변적일뿐, 실천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에 기반을 둔 국가의 통치는 민중들을 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종교와 국가의 관계에 있어서 마르크스가 논한 것들 중 더 중요한 것은 국가의 윤리적 이념이 가진자들 즉 장자들을 중심한 종교를 뒷받침하는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에게는 독일 세계의 주인은 “천민”, "속인"들이다.22) 장자의 재산상속권만 하더라도 종교에서 기원된 것인데, 장자의 재산상속권을 찬양하는 모든 책들이 종교적인 색깔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더라도 "종교는 가장 만행의 가장 높은 형식의 사고이다“22) 라고 마르크스는 꼬집는다. 종교가 이런 것을 뒷받침해 주기 때문에 장자상속권자들이 종교에 귀의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결국엔 종교가 가진 자들 편에 서게 되고, 따라서 못가진 자와는 멀어지는 결과를 빚는다는 것이다. 상속을 많이 받아서 부자가 된 장자들이 기독교에 들어옴에서 그렇지 못한 차자들이나, 무산대중들이 기독교에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기독교는 가진 자들의 종교로 떨어지고, 없는 자들(프롤레타리아)의 적이 된다는 것이다. 종교로 부터의 해방이 먼저 있어야 정치적인 해방이 가능하다고 마르크스가 외친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에 있었다. 즉 종교비판은 약자들의 정치적인 해방을 전제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법철학비판>의 서문을 쓸 때 까지만 해도 종교비판에서 부르조아 (유산계급)니 프로레타리아(무산계급)니 하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그러던 마르크스가 종교를 제거하여야 한다고 외친 것은 당시의 기독교가 눌린자들과 가난한자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종교가 절대 아니라는 확신을 얻은 이후다. 1843년 5월에 그의 친구중 하나인 루게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프로레타리아 해방에 관한 그의 생각이 발견된다. 마르크스에게는 독일 세계의 주인은 “천민”, "속인"들이다.23) 그의 사상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편지를 좀 길게 인용한다.

나는 단지 다음의 사실에 자네가 주의를 집중하도록 환기시킬 수밖에 없네. 즉 천민주의의 적들, 즉 지각이 있고 고난 받는 모든 사람들이 전에는 거기에 대해 방법을 결여했던 하나의 이해에로 도달하게 되었다는 사실일세. 조직이 새로운 인간성에 봉사하기 위하여 신병을 모집하고 있다네. 그런데 산업과 상업의 구조, 재산과 인간 착취의 구조가 인구 증가보다도 한층 더 빨리 오늘의 사회를 깨뜨리고있다네.‥‥생각하는 고통 받는 인류들이 있고 또 억압받는 생각 있는 인류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천민주의를가지고 수동적인 동물의 왕국을 계속 밀고 가려는 자들에게는 만만치 않고 속 편하지 않을 걸세‥‥상업의 구조, 재산과 인간 착취의 구조가 인구 증가보다도 한층 더 빨리 오늘의 사회를 깨뜨리고 있다네.‥‥생각하는 고통 받는 인류들이 있고 또 억압받는 생각 있는 인류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천민주의를 가지고 수동 적인 동물의 왕국을 계속 밀고 가려는 자들에게는 만만치 않고 속 편하지 않을 걸세‥‥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 하는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또한 고난 받는 사람들이 집회를 여는 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현재가 태중에 배고 있는 것이 더 건실한 생명으로 태어날 것일세."24)

이상의 편지에서 머지않아 태어날 프롤레타리아 계급이라는 태아의 움직임을 마르크스는 암시하고 있다. 가진 자들이 갖지 못한 자들을 천대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계급의 분열과 다툼이 생기고 있음을 마르크스는 예견했다. 기독교국가인 독일의 집권자들이 자신들이 그리스도인들이면서도 천민주의 정책을 계속 시행한데서 기독교는 정치적으로 거부당했는데, 마르크스가 거부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그 이전에 이른바 "천민"들인 프로레타리아들이 기독교를 거부했다. 마르크스는 다만 이 역사적 필연을 체계적으로 서술했다고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유대인 문제>라는 글에서 인간해방의 개념을 발전시킨다. 루카스의 말을 빌린다면 “여기서 마르크스는 정치적 해방은 단지 외형적인 민주주의를 창출하며 그리고 시민사회에서는 실제로 존재할 수 없는 권리와 자유를 결합한다는 이론을 분명히 했다.”25)

이것은 당대의 .독일정부의 정치력을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한 것이다. 천민주의를 품고 있어서 프롤레타리아들을 억압하고 있는 독일 정부가 참된 천민의 자유와 권리를 이룩하는 해방의 정치를 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직접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국가가 기독교적으로 지속하는 한, 그리고 유대인들이 유대인으로서 남아 있는 한, 양자 모두는 똑같이 해방을 받을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다."26) 완전한 해방을 위해서는 인간의 매일 매일의 일상적인 삶과 일에서 공동체가 이룩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까지도 주장하는 정치적 국가의 범위를 넘어선다.

왜냐하면 정치적 해방의 한계성이 다음의 사실 즉 국가가 인간의 실제적인 국가로부터의 해방을 얻지 못하고도 한계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바로 보여 진다. 또한 국가와 종교의 직접적인 관계 때문에 인간들이 자유한 인간들이 되지못한 상태에서 국가는 자유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도 정치적 해방의 한계성이 드러난다. 국가가 종교적 교리에 얽매어 있는 한, 국민들의 참된 해방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기존 질서의 권위와 특권층의 사람들의 기득권을 종교적 교리로서 옹호하고 나섬에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계속 타부시하는 한, 그 아래에서 눌림 받는 민중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르크스로 하여금 종교를 정치적으로 비판케 한 근본적인 이유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어떤 특별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 예컨대 유대교인들과 일반 기독인들을 부르조아(bourgeois)라고 불렀다.27)

그의 글 <유대인 문제>의 글의 결론 부분을 보자:

(계속)

====

[각주]
1) Lukrez는 B.C. 97년경에 살던 에피큐로스 철학파의 한 사람.
2) H. J. Lieber and P. Furth, Kart Marx, Fruehe Schriften, (Cotaverlag Stuttgart,1962), p. 68.
3) L. Feuerbach, SamtlicheWerke (Stuttgart, 1904),제1권 p.249
4) 참회절(Shroetide)은 사순절 전의 3일간을 말한다.
5) Karl Marx, Fruehe Schriften, p. 102
6) Ibid., P. 75.
7) Werner Post, Kritik der Religion bei Kart Marx, (Munchen: Koesel-Verlag, 1968) p. 88
8) 독일어 Feuer(불)+bach(개울)가 포이에르바하의 이름으로 합성됨.
9) Lieber & Furth, op. cit., P. 109
10) Post, op. cit., P. 91
11) Ibid., p. 110.
12) Karl Marx, Fruehe Schriften, p. 72
13) Karl Marx, "The Difference Between the Natural Philosopy of Democritus and National Philosophy of ,Epicurus", On Religion(NY;Schocken Books,1964), p. 15.
14) Karl Marx, Fruehe Schriften, p. 161
15) George Lichtheim, Marxism(New York Player Publisher,1971) p.123
16) Robert Tucker(ed). The Marx-EngeIs Reader, (New York: W. W. Norton &amp;Company,) P. 18.
17) K. Marx, On Religion, P. 50.
18) K. Marx, German Ideology (London: Lawrence & Wishart, 1965), P. 52.
19) Karl Marx, Fuehe Schriften, p.193
20) I Fetscher, Karl Marx and der Marxismus, (Munchen: R. Piper & Co.1967)p.47
21) Karl Marx, Fruehe Schriften, p. 293
22) Ibid., p.392
23) Ibid., p.432
24) Ibid., p. 438.
25) G. Lukacs, Der Junge Marx, (Pullingen, 1965), P. 43
26) Karl Marx,, Fruehe Schriften, p. 452
27) Ibid, P. 461 
 

[홍성현 목사 약력]

1. 경력 및 학력

 -현, 갈릴리신학대학원 한국분원 원장
-서울대 철학과 학사, 서울대학원 종교학과 석사
-장신대 대학원 석사, 프린스톤신대 석사, 및 박사과정
-클레이튼대 철학박사
-서울장신, 아세아연신 등에서 강사 및 교수 역임
-인천제일교회, 무학교회, 새민족교회, 수송교회에서 목회

2. 저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종교비판을 넘어서서 (한울 2016)
-통일을 향한 여정(동연 2011)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수송, 1997)
-중국교회의 전기와 새로운 중국신학(한울 1992)
-라틴아메리카의 사회변혁과 기독교(제삼세계신학연구소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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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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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희 목사
(121.XXX.XXX.80)
존경하는 사랑하는 홍 목사님 잘 읽었습니다. 대강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철학적인 기초가 없고 막스를 연구하지 않는 나로서는 너무 어렵습니다. 더 배워야 할것같습니다. 샬롬
(2018-05-19 23:14:09)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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