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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산업선교회 60주년 맞이 모임다시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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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0.13  18: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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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포산업선교회 60주년 맞이 모임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영선)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전도부가 시작한 산업선교의 일환으로 시작된 노동자선교기관이다. 역사적으로는 경기노회의 선교기관으로 출발하였다가 영등포노회가 분립되면서 영등포노회 산하 기관으로 자리를 잡았는 데 올해 60주년을 맞았다.
   
 

역사적으로는 1958년에 시작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리교회와 협력하기도 하는 등 초기는 기독교인들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예배와 성경공부를 한 것이 시초다. 현재의 영은교회나 한영교회의 자리에 방직공장들이 있었다. 순수 공장예배와 성경공부활동에서 선교의 방향이 바뀐 것은 조지송 목사가 부임을 하고서 부터다.

조지송 목사는 일찍이 WCC의 초청을 받아서 ILO와 당시 세계일주를 통하여 산업화의 물결과 선교에 대하여 교육받고 한국도 머지 않아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뤄질 것을 예견하고 실무적인 준비하였다. 그리고 미국장로교회 장로인 미 전국 철강노조 위원장 램지 장로의 방한과 화이트 목사의 산업선교와 연대세대학교의 주민조직 교육을 통하여 주민선교가 이뤄진다.

그렇게 초기 사역자들은 공장의 사장이 허락한 일정한 장소에서의 예배인도가 전부였지만 점점 회원들의 의식이 깨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예배를 노동자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공장주가 자기의 믿음을 실현하는 차원에서의 강제예배에 해당한다고 보겠다.

그러니 예배중에 졸기도 하고 지루해 하고 그중에는 사장이나 목사에게 욕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사장이 돈이나 주니까 예배를 인도하고 사장이 좋아하는 소리를 해야 먹고 사는 주제라고 비웃었다.  여기서부터 산업선교의 방향은 바뀐다. 그 말은 사실이다. 공장에서는 노동들에게 예배보다는 쉼이 더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늘 쉬고 싶을 때 쉬는 사장이나 관리자들과는 달리 노동자들은 그 시간이 그마나 쉬는 시간이기에 싫치는 않았지만 억지 예배는 사실이었다.

노동자들의 애환을 알기 위하여 초기 실무자들은 노동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선교의 방향이 전환되었다. 그들의 영혼을 위한 전도가 아니라 그들 자신을 비하고 비참한 인간으로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필요했다. 당신들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그렇게 시작된 산선은 한 공장안에서의 예배에서 사무실을 독립하여 노동자들이 찾아오는 쎈타형의 공간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여러 회사의 노동자들이 모이고 함께하는 연대의 사업을 하게 된다. 합창이나 음악감상, 성가제와 추수감사제 강연회, 그리고 서서히 노동조합에 대한 교육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당산동에 독자적인 건물을 건립한다. 

당시 대한노총 산하에는 섬유노련이 있고 여러 방직산업등에 노조가 있기는 하였으나 어용노조였다. 노동자들도 노조가 있는 지 무엇을 하는 지를 아는 사람이 많치 않았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교육하고 노조의 역사와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조합에 대해서 눈을 뜨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방립방적이나 원풍모방등 당시 기업들이 노동자들에 의하여 지도부가 바뀌고 체불임금을 받아내고 회사와 대등한 관계에서의 노사관계를 만들어 갔다. 그러나 그 과정은 힘들고 어려웠다. 그리고 그때부터 산선출신 노동자들에 대한 기피가 있었다.

영산도 기업이나 정부로 부터 불온기관으로 낙인찍혔다. 회사에게 산선출입을 금지시키고 해고를 시키고 탄압을 하기 시작한다. 산선회원 활동을 한다는 것은 큰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대형교회의 장로였던 기업주들이 교회에서 산선 지원을 끊기도 하였다.

결국 산선은 의식화 소굴이라는 오명을 벗고 종교기관의로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1977년 산선안에 ‘노동교회’를 통하여 신앙활동을 한다. 그리고 70년 말의 열화와 같은 여성노동자들의 강력한 운동본부가 된다. YH무역, 원풍모방, 대일화학, 콘트롤데이타, 해태제과, 롯데제과 등 영등포 안근의 대형공장의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기본권 확보를 위하여 투쟁을 하기 시작한다. 한국의 현대사를 여는 여성노동운동의 메카였다.

그러는 만큼 정부로 부터도 불온시 취급을 당하고 한국들에 의하여 왜곡된 보도를 통하여 국가전복과 노동자 선동을 일삼는 기관으로 낙인찍었다. 공영방송인 KBS나 MBC 모두 당시 자료에 의하면 1979년 8월 14일 특집보도를 한다.

당시 섬유노련 위원장과 간부들은 “도시산업선교회의 활동은 순수한 선교활동이 아니며 행동자체는 공산당과 다를 바 없다”는 증언을 한다. 또 도시산업선교회에 회원들은 “부래지어안에 면도칼을 넣고 다니며 필요할 때는 자해행위를 하여 근로자들을 흥분시키는 등 수법이 공산당과 똑같다”고 했다.

중앙일간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집 보도를 하면서 소망교회 유치문 장로와 홍지영의 ‘산업선교는 무엇을 노리나“ 라는 책자를 통하여 역선전을 해댔다. 경향신문 1979년 8월 18일자 3면에 ‘도시산업선교회의 정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계급투쟁 고취, 배후엔 불순세력이 철저한 점조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대형 언론들이 정부나 장보기관의 사주를 받아 노동자들의 의식이 깨어나고 노조가 조직되고 의식화되는 것을 두려워 하였다. 급기야 1979년 8월 11일 새벽 중곡동의 YH무역이 폐업을 하고 길거리로 내몰린 여성노동자들이 마포 신민당사에서 점거한지 사흘 만에 경찰력을 통하여 강제해산 과정에서 김경숙 양이 죽는 다.

언론들은 이구동성으로 1979년 8월15일 “도시산업선교회가 노사 분규와 정부 전복의 배후 세력”이라고 못 박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실태를 철저히 조사, 파악하여 보고하라”고 당시 김치열 법무부 장관한테 지시을 하게 되고 이로써 산선은 본격적인 정치적인 탄압을 받게 된다.

당시 총무인 인명진 목사는 구속되고 석방이 되면서 산선의 실무자는 세대교체를 하게 된다. 당시 인명진 목사는 지친 몸을 쉬기 위하여 호주 장로교회의 초청을 받아 출국을 하게 되자 당시 장신대를 졸업하던 이근복, 손은하 목사가 부임을 하게 된다.

이후 노동자교회는 ‘성문밖교회’ 로 개명하고 본격적인 교회공동체로의 활동을 시작한다. 그것은 이미 원풍등 많은 노동자 회원들이 있던 회사들이 탄압을 받아서 와해가 되거나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하게 된 이유 때문이다. 현장에서의 정상적인 활동이 어려운 노동자들을 담아 낼곳은 교회공동체가 유일했다.

그리고 대대적인 노동운동 탄압이 시작된다. 요즘 말로 거짓뉴스를 국가와 언론들이 만들어서 역 공작을 폈다. 그렇게 노동자들이 수세로 몰리자 당시 젊은 목회자들이 이를 막기 위하여 나섰다.

1987년 9월18일 오전 대기업군의 이익 결사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여의도)의 회장실을 점거한다. 그리고 노동운동 탄압을 규탄하고 구속노동자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지만 경찰력에 의하여 모두 연행괴고 3명이 구속된다.
   
             * 당시 전경련 회관에서 끌려 나오는 이춘섭 목사와 이원돈 목사
박정희의 마지막 선전도구였던 언론은 3년 뒤 신 군부의 실세로 집권한 전두환의 선전 도구에 불과했다.  경향신문은 1982년 4월24일 6차례의 기획시리즈 기사로 석 달 내내 도시산업선교회를 난도질한다. 경향신문은 마지막 하나 남았던 민주노조 원풍모방노조를 깨기 위해서  ‘도산(도시산업선교회)이 오면 도산(倒産)한다’ 라고 선전했다. 

MBC는 당시 권력의 시녀였다. 도산과 노동자를 좌익 게릴라와 연결시키는 비약은 물론이고 화면마다 붉은 색을 입히고 음산한 음악을 깔아 왜곡보도를 자행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MBC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라는 프로그램에서 당시의 보도에 대하여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산선은 경찰력과 감시, 교회의 외면으로 과거 처럼 자체적인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노동자 교회였다. 이 생각은 인명진 목사로부터 시작이 되었는 데 브라질의 ‘기초공동체’에서 착안했다.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노동자들을 목표로 하여 선교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신대 졸업생 중에서 지원을 받아 노동자교회들을 시작하게 된다. 맨처음에 설립된 곳은 1983년 11월에 성수 삼일교회(유재무) 안양(박진석), 대전(김규복), 대구(안기성)그리고 울산에서는 대형교회의 산업부(김영락)을 만들어서 사역하게 된다.

그후 매년 자체 훈련을 하여 약 60여명이 배출되었고 전국의 대도시에 파송을 받아서 노동자 사역으로부터 시작하여 공부방, 어린이 집, 봉사와 구제, 시민운동과 지역사회 운동으로 발전 분화되었다.

이런 역사를 갖고 있는 영등포 산선이 어언 60년 역사의 시간이 흘러 자축과 기념의 시간을 갖는 다. 산선은 이근복 목사가 사임을 한후 진방주, 손은하, 박진석, 신승원, 손은정, 다시 진방주 목사가 총무로 부임을 한다.

그리고 오는 11월3일 영등포 산선이 ‘다시 길을 묻다’는 주제로 설립 60주년 기념행사를 열게 된다. 오늘날 영산의 터를 잡고 선교의 전환을 이룬 조지송 목사는 현재 와병중이고 그 뒤를 이어 열정적인 활동을 한 인명진 목사는 노동자 선교와는 거리가 먼 교권과 정당활동으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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