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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용복 박사님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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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4.06.26  13:5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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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rseverance in Witness(인내의 증거) 

윤신영 목사, Rev. Dr. Shin Young Yun (PCK 지구촌 의료개발기구 총무) 이 글은 김용복 박사께서 생전에 관여하던 WCRC(세계개혁교회커뮤니케이션)에서 김박사 3주기를 맞아 추모의 글을 부탁하여 보낸 원고를 허락을 받아 소개한다. 

“모든 생명체는 살아있다. 모든 생명체는 살아있는 주체적 실체이다는 말이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는 더불어 살림살이, 삶, 즉 살고 살리면서 산다. 이 더불어 삶은 생명망을 이루어 살기에 가능하다. 이 생명망은 생명주체들의 삶의 <상생망>임으로 생명주체들이 서로서로 엮어서 형성한다. 우리는 이것을 <생명공동체> 또는 <생명의 정원>이라고 흔히 부른다.”

   
 

생명 (Life) -평화(Peace) - 상생(相生/Living Together)

김용복 선생님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에 태어나셨다. 한중수교가 체결되고 얼마지 않은, 정광훈 주교(K.H. Ting) 초청 난징신학교 기공식 참여로 상하이-난징 방문 때,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 일생은 전쟁 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어.” 혹독한 일본식민시대,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한국전쟁, 군사 독재 및 민주화 운동 시대를 온 몸으로 경험한 선생님의 생애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한반도의 생명사를 보더라도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의하여 군사적 한반도 침공(청일전쟁/러일전쟁), 식민지화에 의한 정치적 억압과 학살, 사회경제적 폭력, 문화적 폭력에 의한 기본생명안전망의 파괴가 자행되었다. 이 과정은 일제가 2차 중일전쟁(1937년)을 시작으로 하여 일제의 태평양전쟁수행에 의하여 정치적 안전, 사회경제적 안전, 문화적 폭력, 일제의 전쟁을 위한 총동원 체제에 의한 생명안전망의 와해 그리고 1945년 8월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에(인간생명만 70만명희생) 의한 핵무기시대의 출발이 된 역사는 지구 생명망 안전에 심각한 역전 과정이 전개되었다.  (가스펠투데이 특별기고문/ 2021.1.) 

이 ‘죽음’과 같은 혹독한 삶을 사셨기에, 선생님에게 “생명”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삶의 주제가 되었다.  나는 김용복 선생님의 신학 여정을 이 세 단어로 정리하고 싶다: 생명(Life) -평화(Peace) - 상생(相生/Living Together). 그리고 그의 신학함의 출발은 철저히 ‘민중’의 관점에서 시작하여, 억눌리고, 무시받고, 짓밟히는 상황 속에서도 살아야겠다는, 아니 살아남아야겠다는 집념으로 생명을 향한 의지를 놓지 않는 민초들의 삶을 상황화하고, 그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그 만의 민중신학으로 풀어내었다고 확언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신학은 (기존의) 민중신학 담론을 넘어선, 생명신학으로 한 보 더 진보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보다도 ‘생명’의 소중함을 알기에 그는  ‘생명’을 위협하는 그 어떤 상황, 권력, ‘힘’에 대항하여 그의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1988)의 초안 작성에 참여하셨고, 핵없는 세상을위한 한국그리스도인 신앙선언에도 동참하셨다. 팔레스타인 평화활동도 적극 지원하셨고, 아시아태평양 생명평화대학원대학의 설립도 구상. 추진하셨다. 아시아태평양생명학연구원을 세우시고 원장으로도 역임하셨다. 그 모든 일에 필자는 늘 함께 동행했다.   

투병 중에도, 코로나 질병이 가져올 지구공동체의 안전망 붕괴와 생명망의 위협에 대한 글을 기고하실 정도였다. 그 일은 사모님이 오늘까지도 계속 이어오고 계신다.  

‘민民’의 힘으로 평화운동을

김 선생님은 언제나 민중의 힘을 믿으셨고, 신뢰하셨다.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힘의 원천은 언제나 “민民”에게 있다 하셨다. 그의 박사논문 주제도 3.1운동을 일으킨 민초들의 관점에서 풀어낸 민중신학이었다.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도 “민”의 의지와 힘으로 가능하다고 주장하셨다. 

학회나, 여러 회의의 주제발표자로 초청되어 세계곳곳을 여행하실 때에도, 선생님은 회의만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인권/ 평화 운동가들을 만나고, 생명/생태 공동체 마을을 방문하며, 당신의 신학함의 지평(현장)을 넓히려 애쓰셨다. 김 선생님께서 미국 유학을 마치고 잠시 일본에 머무실 때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부설 Documentation for Action Groups in Asia(DAGA) 센터장을 맡으셨는데,   아시아 곳곳에서 활동하는 인권, 노동, 평화 운동가들과 조직들의 활동을 기록하고 모아 놓으신 자료들은 훗날 후배들에게 좋은 연구 자료로 남아 있다고 한다.  영등포산선 <조지송 평전> 원자료도 김 선생님이 남기신  인터뷰 기록이다. 선생님은 당신의 민중신학이 다소 과격하고 진보적이라는 보수 교단의 비판에 타협하지 않으셨다. 당신의 명예, 권위를 우선시했다면 더 높은 지위, 더 큰 자리에 오를 수 있었으나, 당신의 처음 신학의 자리, ‘민民’의  관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셨다.  

   
 

Café ‘Red Dust’ (‘빨간먼지’ 카페)를 추억하며

김 선생님은  1989년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개최된 WARC 총회의 Local Coordinator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셨다. 필자는 청년사전대회 책임자로, 예장총회 청년 총대로 WARC 서울총회를 참석하였다. 세계 각지에서 온 500여명의 총회 참석자들이 참석한 대규모 총회를 진두지휘하는 바쁜 일정 중에도 선생님은 그만의 낭만을 즐기셨다.  총회의 저녁 일정이 끝나면, 선생님은 총회에 참석한 여러 신학자들을  연세대학교 뒷문 근처 ‘빨간 먼지’라는 작은 카페로 초청하여, 한국 청년 운동가들과 신학생들의 만남을 주선해 주셨다. 두 세개 테이블만 있는 작은 카페에 모인 우리들은 함께 민중 가요를 노래하고, 기성세대들을 비판하기도 하고, 새로이 대두되고 있는 사회,정치, 문화, 신학 담론들을 듣고 배웠다.  

필자에게 김용복 박사님은  내 삶의 새로운 의지를 깨우쳐 주신 아버지이시고, 진정한 신학함의 길로 이끌어 주신 선생님이시다. 중국의 난징신학교, 스코틀랜드 핀드혼 생태공통체(Findhorn Community), 콜럼비아  민중포럼, 뉴욕 유니온신학대학교 등으로 필자를 대동하고 나선 여행 길에 선생님은 필자의 안내자로, 통역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셨다. 한번도 성냄 없이 언제나 조용하고 담담한 음성과 나이의 고하를 따지지 않는 상냥한 존대어로, 방문하는 곳의 역사, 사회, 문화를 설명해 주시고, 귀찮은 내색없이 만나는 이들과의 의사소통을 도와주셨다. 항상 단정히 다림질 된 한복과 실크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다니신 멋쟁이, 그리고 매일 매일 새로운 생명-평화-상생의 담론을 탐색하신 꿈쟁이, 김용복 선생님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립다.    

이제 선생님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의 ‘생명, 평화, 상생’의 신학 여정은 여전히 계속 진행되고 있다.  나의 에큐메니칼 여정 속에서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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