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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는 지금 논쟁중김철홍 교수님의 첫번째 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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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05  22: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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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는 지금 논쟁 중

김철홍 교수님의 첫번째 글에 대하여       2015-11-05 21:30 동윤진

http://www.puts.ac.kr/main/sub2011/sub_5.asp?m2=2&m3=1(김철홍 교수의 첫번째 글)

10월 28일 장신대 홈페이지 일반게시판에 김철홍 교수님의 이름으로 작성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우리의 입장' 성명서에 대한 비판과 국정화에 대한 나의 입장"이라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교수님은 이 글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쓴 역사신학 교수들을 '사고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사고의 다양성을 통제하는 독단적인 입장'이며, '위험한 일방적인 진리주장을 하고' 있으며, '성경말씀을 자신들의 주장을 위한 치장물로 사용했다'면서 비판의 글을 시작하셨습니다.

이 글을 읽은 후 국정화에 반대하고 있던 저는 깊은 고뇌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저는, '대한민국의 역사발전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이며, '유물론적 역사관, 계급투쟁론, 제국주의와의 투쟁과 해방을 강력하게' 배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그 길(공산주의)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 '신앙인으로서, 학자로서, 국민으로서 국정화에 찬성'하시는데, 반대입장을 가진 저는 비신앙인, 비국민, 비그리스도인인 셈입니다. 공산주의의 길에서 돌아와 복음의 길로 가시는 교수님은 '진리를 인식하고 있고 진리로 자유롭게 된 분'임에 틀림이 없는데, '그렇다면 나는 진리에 무지하고 그리스도의 자유가 없는 사람인 건가?'라는 질문이 듭니다.

 저는 교수님의 글에서 교수님이 갖고 있는 독단적인 입장, "즉 ‘나의 입장’은 옳고 ‘너의 입장’은 틀렸고 ‘나의 입장’은 진리고, ‘너의 입장’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보는 독단적인 입장, 사고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사고의 다양성을 통제하는” 독단적인 입장이 여과 없이 노출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독단적인 태도는 "내가 이렇게 나의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사실 내가 정말로 원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도록 강요했기 때문이다."는 말에서 그 절정에 도달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수많은 성명서들이 난무하던 시절에, 교수님을 비롯한 '뜻 있는' 교수님 및 목사님들께서 지금 우리 교단 안에서 얼마나 “사태”를 바로 잡고 있고, “개혁을 이루었”는지는 다소 의문입니다. 

교수님께서 쓰신 글의 도입부분처럼 저도 글을 써봤는데, 어떠신지요.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기 위해서 교수님의 글을 한 문장, 한 단어를 차근차근 읽어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교수님께서 주장하시고자 하는 주요 내용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되는 부분들을 깨닫게 되어서 그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시작해보겠습니다. 

먼저 글의 양식 부분입니다. 성명서는 그 대상이 확실한 글은 아닙니다. 교수님께서도 글을 읽어보셔서 아시겠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글을 읽는 불확실한 다수를 위해서 쓴 글입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분명히 자신의 글이 어떤 집단을 대상으로 글을 썼는지는 밝히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타겟팅'이라고 부릅니다. 타겟팅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나, 동시에 매우 큰 위험성을 짊어지는 글쓰기 양식입니다. 타겟팅하는 대상의 문제점과 그들의 주장의 빈약함을 드러내는 것에는 매우 좋으나, 타겟팅하는 대상과 자신이 다른 점을 부각시키게 될 때, "‘나의 입장’은 진리고, ‘너의 입장’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보는 독단적인 입장"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역사신학 교수님들을 '자신들의 입장만이 진리이며, 다른 입장에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무지한 사람, 진리를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면서 비판을 가하시면서, 본인은 그 반대의 입장에 서 있으나 저들보다는 좀 더 현명하고, 진리에 가까운 사람으로 상정하고 계십니다. 결국 이런 식의 글에서는 어떠한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논의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두번째로 교수님께서는 역사신학 교수님들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이 진리임을 주장하는 집단으로 상정하셨고, 역사교과서 역시 좌편향된 시각으로 쓰여져 있으니, 다양성의 측면에서 국정교과서가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양성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해답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잘못 사용하게 된다면 자신의 손마저 베이는 양날의 검입니다. '다양성'은 자신이 다양함을 인정하는 쿨한 지식인의 냄새를 풍기게 만들며, 자신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을 향해서 치밀한 논리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깔 수 있으며, 자신의 주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에 너무나 좋은 단어입니다. "너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냐?"라는 말은 상대방을 무지하고 저열한 인간으로 만들기 너무나 좋은 말입니다. 그렇다면 교수님께 묻겠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 혹은 자신이 재림예수라는 주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주장들도 다양성의 측면에서 인정하셔야 하지 않으십니까? 다양성을 이야기하려면 다른 다양성에 대해서도 인정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이 주장에 대해서 다양성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다양성에 대한 긍정으로 나간다면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는 아노미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심지어는 폭력과 혐오, 전쟁마저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긍정하게 되어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은 양날의 검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일치성이 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획일적인 사회가, 획일적인 성경의 해석이 어떻게 학살을 불러왔는지 우리는 나치와 십자군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다양성은 혼란을, 일치성은 억압을 불러옵니다. 그래서 항상 사회는 이 두 가지가 긴장관계를 이루면서 발전하게 됩니다. 강제적인 수단으로는 법이, 비강제적인 수단으로는 도덕이 이 사회를 유지해갑니다. 하지만 법과 도덕은 권력구조에서 자유롭지 못 하며, 때로는 시대에 따라서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빼았는 일을 자행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기독교의 용어로는 믿음이라고도 부르는 삶의 양태가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양태는 개개인의 역사 위에 존재하며, 개개인의 역사는 시대의 역사에 발을 딛고 서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후 교수님께서 전개하시는 글의 내용이나, 방식이 이러한 다양성을 담아내는가는 의문입니다. 

(오프닝이 너무 긴 것에 대해서 심심찮은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8장이나 되는 교수님의 주옥같은 이야기들에 대해서 제 생각을 말하려다 보니, 글이 너무 길어지게 되네요.) 

교수님께서는 역사신학교수들의 성명서를 비판하신 다음에, 교단 총회장이 발표한 성명서에 대해서, 역시나 '다양성'의 측면에서 비판하셨습니다. "총회장은 개인이 아니라 교단을 대표한다. 공인이다. 공인은 자신의 사견(私見)이 과연 자신이 대표하는 전체의 의견인지 분간하여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교수님께서는 대의제의 기본 원칙을 알고 계시는지 의문이 듭니다. 대의제라는 것은 "국민들이 개별 정책에 대해 직접적으로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 대표자를 선출해 정부나 의회를 구성하여 정책문제를 처리하도록 하는 민주주의"를 뜻합니다. 즉 그 대표자에게 권한을 위임하며, 대표자에게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탄핵이나 국민투표와 같은 절차를 통해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총회장은 공인이 맞으며,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지만 본인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대표성에 문제를 제기한다면, 교수님께서 그토록 증오하시는 좌파들의 워딩과 무슨 차이가 있는 건지요. 그리고 교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통령의 결의로 “국정교과서”를 발표하였다면 대통령과 청와대는 자신의 권한을 남용한 것'이 아닌지요. 그리고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발표한 모든 연설은 대한민국이 아닌, 박근혜 개인이 발표한 것으로 고쳐야겠군요. 

교수님께서는 국정교과서 찬성의 이유를 크게 다양성의 보장과 공산주의적 사고의 교육을 막아야 함이라고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먼저 다양성의 보장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앞에서 밝혔듯이 '다양성'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도깨비방망이는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다양함'을 지향하는 것은 '획일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상과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5.18광주항쟁을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다양성이라고 말하지 않듯이, 우리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있으며, 이 사실을 부정하는 것을 '다양성'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물론 교수님께서 걱정하시는 것처럼 좌편향된 교과서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사실관계로 교과서로서의 정당성을 논의해야지, 이념의 문제로 교과서를 가르는 것은 절대로 더 나은 발전을 위한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그러한 위험성때문에 지레 겁에 질려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말살시킨다는 것은 로마제국의 종교탄압과 무엇이 다른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에 교수님께서 주장하시는 것은 다양성의 보장이 아니라, 다양성의 '말살'이며, 획일화된 하나의 입장이 진리라고 하는 진리주장이십니다. 비약일 수도 있다고요? 교수님께서 뒤에 좌파와 공산주의를 묶어서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다 보면, 제 생각이 비약이라고 여겨지지 않으니 어쩌겠습니까.

그리고 교수님께서 예로 들으셨던 6.25 전쟁은 단순히 이념전쟁으로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주변 국가들간의 정치적, 군사적 이해관계와 신탁통치의 문제, 남북간의 경제적 차이 등, 수없이 다양한 이유들이 겹쳐져서 일어난 전쟁입니다. 오히려 교수님이야말로 '이념전쟁'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그 수많은 주장들을 무시하고 "사고의 획일화를 초래할 전근대적인"사고를 하고 계신 것이 아니신지요. 

이제 교수님의 글에서 제일 중요한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먼저 교수님께서는 본인이 다른 누구보다도 공산주의 사상의 신봉자였음을 이야기하시면서, 그렇기 때문에 현재 검인정교과서들이 좌편향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아주 좋은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꼰대'라는 표현입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이야말로 사람을 꼰대로 만드는 아주 위험한 말이며, 학자로서 절대로 쓰면 안 되는 표현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성명서를 반박하는 글에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식의 꼰대의식이 가득한 글이라니, 분명히 제가 교수님의 저명한 글을 오독했기 때문이 아닐까하며, 몇 번을 다시 읽어도 같은 결론이 나버리니 이는 저의 믿음과 신학함이 부족해서가 아닐까합니다. 하지만 저만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이 같은 결론에 이르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요.

글의 내용을 떠나서 이런 식의 접근방법은 다른 논의와 토론을 진행될 수 없게 만드는 매우 비열한 방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내용을 떠나서 교수님께 깊은 실망을 느낍니다.

내용은 더 가관이었습니다. 자신이 "의식화된 좌파 지성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사용되던 용어들이 교과서에 나오기 때문에 공산주의 교육을 가르친다고 하시다니요. 그러면 이심전심, 야단법석, 아비규환, 명복을 빕니다, 대중, 명상기도, 심금을 울린다라는 말은 모두 불교에서 온 용어들이니, 설교에는 사용하면 안 되는 말들이겠군요. 불교인들의 치밀한 계략에 의해서 우리들이 모두 불교화되고 있으니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는 목사님들은 모두 종교재판에 넘겨야 하지 않나요?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공산주의에서 돌아와 신학교에 들어왔다고 하셨는데, 적어도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 신학교에 들어와 맑시즘을 만나면서 자본주의의 민낯을 볼 수 있었고, 거리로 뛰어나가 울고 있는 이들과 함께 울게 만들었습니다. 어느 '하나님의 은혜'가 진짜 은혜입니까? 저는 모르겠으나, 교수님께서는 알고 계신 것 같기는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현재의 교과서 문제를 "역사가의 전문성과 자율성에 맡기"자는 역사신학교수들의 주장에 대해서, 이미 좌편향되었고,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의 요새가 되어버린 현재의 한국의 상황에서는 검인정교과서의 폐기와 국정교과서만이 해답이라고 말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다양성을 이야기하시던 분이 다양성을 말살하는 방법을 이리 교묘하게 이야기하시다니, 제자는 무릎을 탁하고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좀 아쉬운 점은 그런 식의 검인정교과서를 만드는 학자들을 모조리 학계에서 추방하고, 그런 교과서를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교사들을 모조리 학교 밖으로 쫓아내어야 한다는 주장은 왜 하지 않으시는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여전히 유물론적 역사관, 계급투쟁론, 제국주의와의 투쟁과 해방을 강력하게 가르칠"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그대로 살려두다니, 교수님의 오대양 육대주처럼 넓은 마음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신랄하게 비꼬아서 죄송하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내상을 입은 제자를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어떤 이념의 국가를 만들지 선택했다니요... 어떤 형태의 정부구조를 만들지를 선택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이념을 선택했다는 말은 처음 들어봅니다. 대한민국의 경제구조 및 사회구조는 100%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아닙니다. 플라톤이 말하던 이상국가도 아니고, 그런 국가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물론 타인(국가)에 의해서 강요된 이념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6.25전쟁 이후에 사회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물고문과 강제 군입대, 폭력, 사형이 이루어진 적이 있는지요. 오히려 그 반대의 상황은 그 사례가 너무나도 많아서 열거할 수조차 없습니다. 처음에 교수님께서 역사신학교수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경구절을 함부로 인용했다고 하셨는데, 교수님이야말로 본인의 영역이 아닌 영역들의 이야기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끌어오신 것이 아니신지 걱정됩니다. 

교수님께서 밝히셨듯이 자신이 진리를 가지고 있다라는 식의 주장은 매우 위험하며, 해서는 안 되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제가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교수님께서는 이미 본인께서 그래도 '진리'에 좀 더 가까운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계십니다(제가 오해한 것이라면 죄송하지만, 교수님의 글을 몇 번을 읽어봐도 제가 오해했다는 확신이 들지 않기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또한 교수님께서는 "역사신학교수들의 독단적인 주장은 반대의견과의 의미 있는 토론을 처음부터 봉쇄"한다고 하셨는데, 제가 보기에는 교수님이야말로, 의미있는 토론을 처음부터 봉쇄하지 않으셨는지요. 교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교조적인 태도로 독자의 투항과 복종을 요구"하셨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의 글에서 특이한 점은 교수답지 않게 시덥잖은 말장난과 교묘한 진영가르기,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식의 글쓰기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장신대를 졸업한 학생으로서 교수님의 글이 더욱 더 부끄럽습니다. 

최소한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식의 글쓰기 방법은 학자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어떤 주장을 하더라도 "너가 몰라서 그래"라는 말로 답변이 되는, 거기에다가 교수라는 권력을 가지신 분께서 이런 방식을 쓰시면, 이미 이렇게 진행된 글에 우리가 어떤 논의를 진행할 수 있으며, 어떻게 예의를 차리면서 글을 반박할 수 있겠습니까. 교수님께서는 역사신학교수들을 비판하게 된 그 지점보다 더욱 더 확고한 지점에서 글을 쓰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교수님이 사용하신 글쓰기 방식과 논지의 전개방식에 대해서 학자의 것이라고 생각되기 어려울 정도로 비열하며, 교묘하고, 선동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교수님께서 시대적인 소명을 가지고 글을 쓰셨겠지요. 하지만 역사신학교수님들의 성명서 역시 교수님처럼 자신의 양심과 믿음, 시대적인 소명으로 나온 글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되는 두 주장 중에서 우리는 어떤 것이 0.1mm라도 진리에 가까운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공부해야 하는 것이며, 토론이 필요한 것입니다. 교수와 학생을 넘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며, 이를 통해서 우리의 삶의 이야기들이 더욱 풍성해지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수많은 학생들의 소리에는 귀를 닫으신채, 차정식 교수님의 글에만 반응하셨습니다. 물론 교수님들께서 쓰시는 글과 치기어린 분노로 쓰는 학생들의 글은 큰 차이가 있겠죠. 하지만 교수님께서 헬게이트를 여셨다면 이렇게 무책임하게 방관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본인부터 답변을 요청하는 학생들의 요청을 무시하셨으면서, 다른 교수님들께서 답변이 없으셨다고 징징대는 것은 서로간의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치기어린 학생들의 글에 진심으로 답해주셨다면, 교수님의 인품과 소양, 학문적 지식에 감화, 감동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수님,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재밌는 기사 두개를 보게 되었습니다. 국방부에서 국정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기사와 어린이집에 안보교육 활성화를 위해서 100억의 예산을 책정한다는 기사였습니다. 안보교육의 활성화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꼭 다른 설명이 필요할까요. 이 정부가 어떤 나라로 방향을 이끌어가고 싶은지 너무나도 명확한 사실아닙니까? 그런 상황에서 다양성이라는 말로 학생들을 기만하시는 모습이 과연 교수로서 취해야 되는 모습이신지요. 

원래는 교수님께서 쓰신 주장들을 가지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이미 많은 이들이 댓글과 답글을 통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불민한 제자의 역량이 여기까지인지라서 그 부분까지 다루지 못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그럼 어리석은 제자를 위해서 교수님의 지혜로운 답변을 기대하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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