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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 권진관 교수, 정년 퇴임 축하와 기념도서 발간8월 25일 성공회 대성당 프란시스홀에서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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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25  23:5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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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 권진관 교수, 정년 퇴임 축하와 기념도서 발간

성공회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26년 간 봉직한 권진관 교수(조직신학)의 정년퇴임과 후학(한국민중신학회)들이 집필한 기념도서(민중신학의 여정, 동연출판사) 출판회가 8월 25일(금) 오후 성공회대성당 프랜시스관에서 있었다.

   
 

이날 1부 감사예배는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의 인도로 김희헌 목사(향린교회)가 기도한 후 이사야서 11:1-9의 말씀을 사회자가 봉독, 김용복 박사가 말씀의 증언을 했다.

2부 축하의 순서는 정경일 원장(새길기독사회문화원)의 사회로 박일준 교수가 “민중신학자 권진관의 이야기 신학에 대한 성찰” 로 논평했다. 이후 권진관 교수가 인사 겸 답사를 하였고 한국민중신학회 회장인 강원돈 교수(한신대)의 축사가 있었다.

또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서신 축사(제자 최순양 교수, 이화여대, 대독)와 노정선 박사(연세대 명예교수)의 건배사, 고성휘 선생(목민연구소) 의 축송과 권 교수 제자들의 헌화와 기념촬영으로 끝을 맺었다.

이 행사를 위하여 편찬된 민중신학회의 헌정도서에서 서문을 쓴 강원돈 교수는 권진관 교수에 대하여 여러 가지 모습을 갖고 있는 지식인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그것은 권 교수가 학교에서 공부만 하다가 유학을 가고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된 분이 아니라는 의미다.

권진관 교수의 신앙 여정

71학번인 권 교수는 경복고등학교 시절부터 새문안교회 고등부를 출석하면서 새문안교회 대학부라는 자양분에서 영적으로나 지적인 세례를 받는다. 그후 서울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하였으나 1972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된 이래 1979년 YWCA위장 결혼사건으로 2번의 옥고를 치룬다.

   
 

이외에도 1981년 NCCK- EYC 총무와 간사를 지내면서 당시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분향소를 기독교회관에 차렸다가 경찰서에 끌려가 큰 곤욕을 치루기도 하였다.

기독교장로교에서 개설한 당시 해직된 교수들과 학생들을 위한 선교교육원에 입학하여 해직된 안병무, 서남동 교수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민중신학의 여정에 오른다. 그후 미국의 피츠버그대와 드류대학원에서 조직신학과 윤리학으로 민중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성공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은퇴를 하게 된 것이다.

그후 성공회대 교수와 한국민중신학회의 회장을 지내고 지금은 국제협력 위원장으로 인도 달릿학회와의 민중신학의 교류와 2014년 10월 송도 연대국제캠에서 열린 International Conference on Minjung Theology,
Liberation Theologies, and Contextual Theologies 이라는 주제로 열린 학회에서 "한국민중신학회" 회장의 자격으로 열기도 했다. 민중신학의 세계화에 크게 공헌한다. 그리고 현재 죽재 서남동 목사 기념사업회의 부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이사장, 김용복 박사)

그가 민중신학의 주제 가운데 역점을 둔 것은 성령론이다. 그리고 민중신학을 철학적 사고로 재해석을 시도한다. 그의 고백으로는 라깡이나 알랭 바디우에 대한 연구는 이날 다시 민중신학 고향인 이야기로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라고 자백했다.

권진관 교수와 서남동 교수

한국의 민중신학은 한국이라는 특수한 국가에서 한국인들에 의하여 연구된 신학이라는 점도 있지만 이 신학의 언어나 구성이 민중적이기 때문이다.  ‘민중’이라는 말이 신학적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1975년 4월 초 당대 기독지식인과 의식있는 이들의 지성의 샘이 된 "기독교 사상" 이라는 잡지에 서남동 교수가  "민중의 신학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라고 볼 수  있다.

민중신학에서 민중신학이 태동하게 된 것은 1970년대 한국의 사회와 정치, 경제적 현실 때문이었다.  경제적으로는 고도 성장의 신화와 산업화, 도시화속에서 정치적으로는 ‘유신체제’로 대표되는 군사독재정치의 억압 속에서 이에 맞서면서 민중들과 연대하며 그들의 한과 희망을 대변하는 가운데  한국의 신학자들은 강단에서 쫒겨나고 노동자들의 고난의 현장에서 사회적 체험을 신학적으로 성찰하면서 민중의 신학을 태동 시킨 것이다.

권 교수는 바로 이런 현장에서 성장하고 운동을 한 세대이다. 그렇기에 권교수는 진정한 한국 민중신학 2세대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다. 권 교수가 이번에 의미심장한 말을 했는 데 '서남동 교수(1984년 소천) 가 어느 해인가 대만의 C.S Song(송천성)이 한국에서 강의를 했는데 그의 서구적이고 상층부에 기생하는 식의 신학에 대하여 아주 비판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때 서 교수도 이야기를 멈추고 시대와 계급의 문제를 유물론적인 사회과학적 분석 틀로 해석했고 하위주체(Subalten)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당시 한국의 소위 운동권은 물론 기독교까지도 이런 이념적 열병을 앓았던 것은 사실이다.

송천성도 한국의 민중신학에 대하여 (성장)싹을 튀우지 못하고 죽은 신학이라고 비판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서남동 교수가 왕성한 활동을 한 시기는 해직된 74년-84년으로 약 10년 간이었는 데 사실 너무 일찍 세상을 뜨셨지만 할 말은 다 하고 가신 셈이다. 그러나 열매를 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학자에게 학문이란 60세에 시작하여 70세에 꽃을 피우는 것이라고 고백하지만 서 교수의 신학적 업적이나 지평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후 서남동 교수가 언급한 것들은 오늘 날 한국민중신학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통 학자들이란 그 시대의 담론을 해석하고 이름을 날리는 데 급급하지만 서 교수는 정말 앞서가는 신학자였는 데 그것은 바로 “이야기 신학”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서 교수 자신의 후반부에는 그 이야기를 접었는 데 권 교수는 은퇴할 때가 되니 그것을 안 것으로 보인다.

   
 

한국민중신학과 권진관의 과제

이는 1세대들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2세대들도 문제라고 보인다. 권 교수가 회고하는 어느 해 서남동 교수 추념 행사에서 한 민중교회 목회자가 최근의 민중신학 이야기들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어려워서 못 듣겠다고 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알면서도 권 교수는 제도권(강단)에서 거리와 현장으로 내려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권 교수도 어느 해 부터인가 하트와 네그리에 심취했다가 어느새 알랭 바디우 등 외국 학자들의 담론을 엮은 글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라도 그 지점을 반성하고 민중신학의 원류인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이날 서광선 교수의 축하 메시지에도 오늘날 아직도 민중신학이 있냐? 민중신학이 할 일이 있냐는 비아냥이 있지만 과거에 비하면 많은 후학들이 나오고 열심히 활동하고 연구 글도 많이 나오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한결 같은 생각은 민중의 이야기가 아니라 학자들이 연구하고 짜낸 이야기라는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이것은 한국민중신학회 3세대인 최형묵(민중신학회 부회장)과 후배인 김희헌, 박일준, 최순양, 장윤재, 김진호, 이상철, 정용택 등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보인다.

나는 권 교수의 페이스북 공지란에 “장로교에서 성장하여 감리교 청년과 결혼을 하고 기독교장로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성공회에서 가르치고 은퇴를 하니 진정한 에큐메니스트” 라고 기록하였는데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앞으로 권진관 선배의 남은 10년의 연구주제를 주목해 본다.

이날 권 교수를 축하하는 행사에는 그의 경복고 동문과 민청학련동지회, 새문안교회 대학생회, 한국기독학생회(KSCF), 한국민중신학회, 서남동 기념사업회, 새길교회, 에큐메니칼 선후배들이 참여했다. 그 외에도 안재웅 이사장, 장영달 전 의원, 김경재, 김창락, 강원돈, 이종구, 이은선, 김판임, 이남섭 교수, 서창석 선배,  이근복, 류태선,  진방주, 김진호 목사, 양재섭 장로, 동연출판사 김영호 사장과 김성수 선생 등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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