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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개혁교회와 WCC(4)민중의 눈으로 본 서유럽 여행기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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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27  00: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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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개혁교회와 WCC(4)

<글 싣는 순서>

1. 로마와 바티칸
2. 까달루니아(가우디와 축구)
3. 프랑스 파리 개혁교회와 위그노의 역사
4. 스위스 개혁교회와 WCC
5. 체코 형제교회와 얀 후스

스위스는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공식 명칭은 스위스 연방(Swiss Confederation)이고, 수도는 베른이다. 양원제를 채택한 연방정부로서, 국가와 정부의 수장은 연방의회의 의장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를 유지해 왔다. 국토의 1/4이 알프스 산맥이며 수력 이외의 천연자원은 거의 없다. 스위스의 경제는 공업과 국제무역과 은행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산업으로는 시계·정밀기계·기계·화학 산업 등이 발달했다. 제1, 2차 세계대전부터 중립을 고수해 왔으며 유럽연합(EU) 가입을 거부했다.

   
 
정치와 사회
 스위스는 20개 주(州)와 6개 반주로 구성된 연방공화국이며, 주 정부와 반주 정부들은 특별히 연방정부에 위임된 권한을 제외하고는 모든 독자 권한을 갖는다. 현행 헌법은 1848년에 채택되었으며, 1874년에 광범위하게 개정되었다. 입법권은 상·하 양원 연방의회에 부여되었다. 200명의 국민의원(하원)은 4년에 1번씩 직접선거로 선출된다. 46명의 전주의원은 2, 3년에 1번씩 각 주에서 2명, 반주에서 1명을 선출한다.

헌법개정과 같은 특별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투표자와 주들의 과반수의 동의가 요구되지만, 다른 경우에는 임의적이다. 행정권은 4년마다 연방의회에서 선출되는 7명으로 이루어진 연방평의회에서 행사한다. 7명은 각각 연방정부의 부처를 관할하며, 그들 중 한 사람이 연방의회에 의해 1년 간씩 대통령직에 선임된다.

연방정부는 주로 국내, 국외 보안, 외교정책, 화폐제도 등과 같은 국가정책 문제를 책임진다. 주요정당으로는 급진민주당·기독교민주당·사회민주당 등이 있다. 1971년에 여성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었다. 법 집행은 각 주의 관할이며 연방대법원이 최고 사법기관이다. 중립주의 정책에 따라 1만 8,000명의 병력만이 주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사회복지제도는 거의 모든 국민에게 혜택이 주어지며, 환자, 임산부, 일시적 지체장애자에게 무상치료 또는 보조금을 제공한다. 자녀가 있는 가정에는 수당을 주며, 노인, 환자, 영구적 지체장애자, 유족 등에게 연금을 지급한다. 실업보험 가입은 급여를 받는 모든 고용인들에게 의무적이다. 폭넓은 식이요법과 함께 우수한 의료진과 현대적 병원시설이 국민건강 증진에 공헌하고 있다.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순환기 계통의 질병들이 주요 사망원인이다. 7∼14세까지는 어디에서나 무상 의무교육이다. 중등교육은 장래의 직업연수나 고등교육을 위한 준비단계로 나뉜다. 대학교에 등록된 9만 5,000명 이상의 학생들 중에 20%가 외국인이다.

신문들은 자주적이고 다양하며 대체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그 내용이 지역적이지만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 Neue Zürcher Zeitung〉을 포함해 몇몇 신문들은 국제적 경향을 띠며 세계의 주요신문에 속한다. 라디오·텔레비전 방송은 스위스민영방송회사에 의해 관리되며 대부분 비영리적이다. 3개의 분리된 방송체계가 이 나라의 3개 주요 언어집단에 따라 조성되어 있다.

스위스 역사
기원전 스위스에는 사냥꾼, 어부, 농부, 무장한 전사들의 정착지들이 있었다. 로마인들은 이곳을 헬베티아라고 불렀고 BC 58년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알프스 산맥 통로를 요새화했다. 3세기에 게르만족이 로마인들의 방어시설을 공격하기 시작하여 5, 6세기에는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 7세기에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많은 헬베티아인들을 개종시키기 시작했다. 9세기에 프랑크족의 지배가 확고해졌으며, 10세기에 이슬람교도와 마자르족 침략자들이 이곳으로 쳐들어왔다. 11세기에는 현재의 스위스 영토가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291년 삼림지역인 우리·슈비츠·니트발덴 주들은(곧이어 옵발덴 주 포함) 스위스 연방의 중심이 된 반합스부르크 연맹을 형성했다. 1353년경 이 연방은 루체른·취리히·글라루스·베른·추크 등을 가입시켰다. 그후 1481년 졸로투른과 프리부르, 1501년 바젤과 샤프하우젠, 1513년 아펜첼이 참가했다. 16세기부터 스위스는 프로테스탄트교 개혁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연방은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교 계열에 따라 분리되었다.

1798년 프랑스는 스위스의 많은 지역을 점령하고 헬베티아 공화국을 세웠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날 무렵 빈 의회(1815)의 참가자들은 스위스의 중립을 보증했다. 1840년대에 루체른·우리·슈비츠를 포함해 몇몇 주들은 독립된 연방의 형성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1848년 수도를 베른으로 하는 새로운 연방국가가 형성되었다.

   
*제네바의 개혁가 장 칼뱅
스위스는 프랑스와 프로이센 사이의 전쟁(1870∼71)에 말려드는 것을 겨우 모면하기도 하면서 계속 중립을 유지했고, 제1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중립을 지켰다. 1920년 국제연맹은 제네바에 본부를 설치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중립상태였지만 국가를 방어하기 위하여 군대가 동원되었다. 전후에 스위스 정부는 노인연금과 의료보험 같은 몇몇 복지국가의 정책을 채택했으며 1959년 유럽 자유무역연합의 회원국이 되었다. 1986년 스위스 유권자들은 국가의 중립정책을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확신으로 국제연합(UN)에 가입하자는 의회의 제안을 거부했다. 

스위스와 한국과의 관계 
남·북한 동시수교국으로서 1962년 12월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1963년 3월에 주스위스 한국상주대사관이, 1981년 9월에는 주한국 스위스 상주대사관이 설치되었다. 북한과는 1974년 12월에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북한의 상주공관이 1975년 9월에 개설되었다. 한편 스위스는 베이징[北京]주재대사가 주북한대사를 겸직하고 있다. 양국 간에는 무역증진과 유대강화를 위해 1975년에 항공협정, 1977년에 특허상품 보호에 관한 협정, 1978년에 이중과세방지협정 등이 체결되었다. 1977년 3월에 한국-스위스 민간경제협력위원회가 창립되어 민간경제교류가 증진되었다.

스위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친한단체로는 한국-스위스 협회(Korea-Switzerland Society)와 한국-스위스 문화협회(Cultural Society, Republic of Korea-Switzerland)가 있어서 친한 인사의 저변확대와 한국 홍보를 위한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1989년 11월 24일 노태우 대통령의 방문이 있었고 유엔기구나 국제기구에 파견된 공무원들이 다수다.

스위스 개혁교회연맹
FSPC(스위스개혁교회연맹)본부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산물이다. 그들은 서로 독립적인 스위스 연방의 각 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독일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교회들은 츠빙글리파이고 불어를 사용하는 지역은 칼빈주의를 따른다. 칼빈, 츠빙글리 외에도 하인리히, 불링거, 테오로드 베자, 삐에르 비레 등의 개혁자들도 스위스의 기독교에 영향을 끼쳤다. 1566년 불링거에 의해 작성되고, 스위스 각 주의 대부분의 교회에 의해서 채택된 스위스 신앙고백이 스위스 교회를 연결하는 영적 고리의 역할을 했다. 16세기 중반에 이루어진 복음주의 의회는 공통의 관심사를 논의 하고 다른 나라에 있는 개신교회들을 돕기 위하여 개신교에 속한 주로부터 의원들을 소집했다.

   
* 제네바대학안에 있는 스위스 개혁가들 입상

1858년 스위스교회 협의회는 연방 각 주의 교회들 간의 관계를 수립시켰고, FSPC의 헌법은 1950년에 개정되었다. 현재 회원은 24개 연방 각 주의 교회들, 제네바 자유 복음주의 교회, 스위스 복음주의 감리 교회로 구성되어 있다. FSPC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사역을 시작했던 HEKS(Hilfswerk der Evangelischen Kirchen Schweiz) 과 같은 다양한 기관들과 연계하고 있으며, WCC 등과도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다. 선교회들은 이제 독어를 사용하는 측은 바젤의 “미션 21”을 통해, 불어를 사용하는 측은 DRM(Departement Missionaire Romand)을 통해 협력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과 한서교회협의회라는 조직을 통하여 상호교류 방문을 하고 있다.

FSPC 안에는 신학연구, 이민문제, 봉사 관광, 교회법, 재정, 해정 등을 담당하는 부서들이 있다. 목회, 세례, 성찬식, 신학교육과 같은 국내적 교회의 문제들에게도 정기적은 관심을 쏟고 있다.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인권, 종교적 자유, 평화와 비무장, 사회정의, 제3세계의 발전과 같은 이슈들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 제네바는 그 유명한 레만호가 보이는 구시가지에 칼뱅이 살던 동네와 그가 목회한 교회가 있다.

1700년대에 세워진 도시다. 그곳에는 칼뱅의 종교개혁 박물관과 설교한 생 피에르 성당, 제네바 대학 안에 있는 종교개혁자 4분의 부조가 있다. 칼뱅은 한 국가 시대의 종교개혁뿐만 아니라 당대의 위대한 교육가이기도 한데 공교육을 도입해 가난한 사람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특히 제네바에 WCC(세계교회협의회)가 있는 데 세계기독교를 대표하는 곳이다. 지금은 많이 위상이 격하되었지만 한때 소수자인 여성과 청년 노동자 인종문제와 저개발, 민족분쟁, 소수민족과 업압의 문제에 대하여 깊이 개입하여 한때 공산주의를 옹호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본부에는 세계각국 교회에서 파송된 직원들과 기증한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의 부지는 스위스 정부가 건축은 록렐러재단이 기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세계개혁교회 연맹과 국제기구들이 줄비하다. 유엔을 중심으로 해서 ILO WHO WTO 등이 있다. 지난 2013년 한국 부산에서의 10차 총회이후 한국교회의 위상을 크게 부각되었다. 참가 회원 교단 : 140개국, 개신교 교단들과 동방정교 등 349개 교단 및 로마 천주교 대표 등 2,800명, 국내 참가자 4,700명, 총 7,500명이 참석한 바 있다.

   
                     *  제네바의 생피에르교회 칼빈이 목회하던 교회로 유명하다.

국제기구의 본산(WCC 본부) 
제네바에는 스위스가 영세 중립국답게 UN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이 모여있다. 그중에 개신교 최대 기구인 WCC도 창립되여 지금 까지 있다.  WCC창립의 배경은  세계 제 2차 대전과 유럽의 반성 유럽이 기독교 국가들이고 세계문명을 기독교문명으로 바꾸겠다고 하면서 세계선교를 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지을 수 있는가? 그래서 국제 정치적 차원에서는 UN(국제연합) 을 만들어 다시는 전쟁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일어남과 아울러 기독교계에서는 신앙적 차원에서 일치와 화합을 목적으로 하여 세계교회를 모으는 노력의 결실이 WCC를 창설하게 되는 데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명령을 이 시대 속에 이루려고 노력하는 에큐메니칼 운동” 시작된 것이다.

제 1차 총회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섭리” (Man's Disorder and God's Design) 1948년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147개 교회 351명 총대 (주로 유럽과 북미 교회들, 약간의 동방정교회) 전후 세계는 냉전과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권의 출현, 유럽재건이라는 혼란과 무질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하나님은 하나님의 섭리를 건설해 가신다.”는 확신을 표현하는 신학적 대가들이 있었다. 교회는 교회의 일치와 갱신 인간존엄성과 정의 평화를 위한 "책임사회"(responsible society)를 건설을 위해 일할 것을 촉구했다.

   
                                * 1948년 암스탤담에서 열린 WCC 창립총회 

그후 매 6년마다 총회를 개최하였는데 수많은 신학자들과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대륙과 인종을 초월하여 하나가 되는 축제다. 가장 최근에 제10차 총회(General Assembly)가 2013년 한국 부산에서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끄소서” 라는 주제로 열렸다. 총회에서 “정의” 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그만큼 우리사회나 교회가 부정의의 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회 준비위(김삼환 목사) 구성을 놓고 보수교단을 끌어 않은 성장주의 모델의 메가쳐치들은 사실 과거 에큐메니칼신학과 운동과는 거리가 먼 목회을 해온 이들이였다. 자기들의 성과물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국제대회 유치식의 준비로 에큐메닡칼구룹과 많은 갈등을 가져왔다. 한국 기독교 130년의 역사는 2천년 세계기독교 역사에 비하면 한점에 불과한데도 겸손하게 배우려는 자세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WCC가 추구하는 것
“온 지구상에 거하는 만물”(All Inhabitants on Earth)을 뜻하는 ‘오이쿠메네’(oikoumene)의 비전을 가지고 2010년 1월 현재 전 세계 140개국의 349개의 개신교회와 정교회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고 여기에 속한 기독교인수가 약 5억 8천만에 달하는 세계적 기독교연합기구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아직 WCC의 정식 회원교회는 아니지만 WCC의 한 흐름인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위원회에는 정식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므로 WCC는 명실 공히 전 세계 기독교를 망라한 기독교의 유엔이라고 할 수 있다.

WCC는 본부는에는 우리교단의 금주섭 박사(전도와 선교국장) 가 있다. 고 김동성 목사(아사아 국장) 는 안타깝게도 2개월전 와병으로 사입후 별세햇다. 구성은 각 나라의 교단들과 국가 NCC나 대륙협의회도 가입되여 이들과  되여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한국은 CCA(아시아기독교교회협의회)에 가입되여 있다. 그 본부는 태국 치앙마이에 있다.  WCC가 한국교회와 깊은 관계를 맺은 것은 7,80년대 인권운동에 대한 지원과 URM(산업선교)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때문이다. 한국인으로 본부에서 일한 사람은 강문규 회장과 박상증 목사, 오재식 원장 박경서 박사가 있다.

한국은 에큐메니칼지도자들은 초기 부터 WCC의 주요한 아젠다를 만드는 지력들에 들고 있으며 생태정의, 경제정의, 평화운동등 에큐메니칼운동도 이미 현장에서 실천하는 중요한 나라중 하나이다. 한국에는 보수적인 기독교회도 많치만 한국를 대표하는 주류교단들은 WCC의 회원교단이며 이미 많은 신학자들이 에큐메니칼신학에 복무하고 있다.  그것은 기독교 신학과 신앙은 인류에 대한 책임적 존재로써 현실을 포용성 있게 받아드리며 인간이 이룩한 학문적 성과에 귀기우리며 우리의 현장에 접목하는 매우 현실적이며 건전한 신학이기 때문이다.

   
                                               * 금년 창립 70주년 기념 포스터

세계교회협의회회(WCC)가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이해 오는 6월 15~21일 열리는 중앙위원회 기간동안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이 기념행사 중 21일에는 가톨릭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도  방문해 축하의 인사를 전할 예정이어서 세계교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열리는 중앙위원회 및 창립 70주년 행사에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 대표들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앙위원회가 끝난 후 22~23일 세계교회 지도자 및 한국교회 대표들과 '한반도 에큐메니칼 포럼'을 가질 예정으로 알려졌다. 

WCC에 반대하는 보수신학자나 교회들은 WCC 는 구소련등 공산주의 국가의 교회가 가입된 것과 다루는 이슈에 대하여 불만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등 독재정부에 대하여 비판하고 민주화를 지원한 것을 시비거는 것이다. 지금도 한번도 평화와 통일에 대하여 많은 기여와 관심을 갖고 있다. 세계적으로 에큐메니칼 지도자들과 에반젤리칼 지도자들은 강조점의 차이는 있지만 교회의 선교가 영혼구원와 사회참여를 포괄하는 “통전적 선교”(wholistic mission)라는 점을 수용한다. 그러나 ‘세계기독교포럼’(Global Christian Forum)이라는 대화의 광장을 만들어서 노력하지만 한국도 그렇고 양자 사이에 날카로운 각이 서 있다고 볼 수있다. 

1959년부터 1969년까지는 우리교단은 합동측과의 문제로 탈퇴를 하여 공백기였고 1975년에야 이르러 제 5차 나이로비 대회를 통해 WCC에 복귀하였다. 이 기간은 '하나님의 선교(Mission Dei)'라는 WCC의 선교적 입장이 절정에 달했고 정교회가 WCC에 참여하면서 세계기독교 교파들이 참여하는 보편적 기독교운동이 되는 시기였다.

본 교단의 WCC에의 참여가 유보되는 15년동안은 세계교회의 중심적 논의로 부터 본 교단이 소외되고 세계교회와 더불어 일할 인재양성의 기회를 놓혔던 '잃어버린 15년'이기도 했다. 1975년 재가입의 물고를 튼 것은 여기 수송교회 당회가 서울노회에 헌의를 해서 이뤄졌다. 그래서 당시 노회의 김형태 목사와 교감하고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의 후원을 받아서 서울노회에서 다시 총회에 헌의되여 재 가입을 하게 된 것이다.

츠윙글리와 스위스 개혁교회
한편 스위스 개혁교회를 말할 때 츠빙글리(H. Zwingli, 1484-1531년)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1519년 1월 1일 주일 아침 처음으로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그로스뮌스터 교회에서 종교개혁 정신에 입각한 복음적 설교를 시작하였다. 그 설교는 중세교회의 설교스타일과는 구별되며, 교회력에 따라 주어진 성경본문이 아니었고, 형식과 내용도 전혀 달랐다. 라틴어가 아닌 수사가 없는 투박한 서민 독일어로 행해졌으며, 이해에 있어서도 복음서를 본문으로 하는 쉽고 명료한 강해설교였다.

이런 맥락에서 스위스 개혁교회는 독일 종교개혁과 비교하여 루터는 1517년 행동으로 종교개혁을 열었다면, 츠빙글리는 1519년 복음의 인식으로 종교개혁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지난 2017년이 세계교회가 함께 한 루터 종교개혁 500주년이었는데 반해, 스위스 개혁교회는 2019년을 츠빙글리 종교개혁 500주년으로 준비하고 있다. 독일을 위시하여 다수파로 자리 잡은 루터교회 종교개혁 500주년과 비교할 때, 신학도 교회도 변변히 형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야 했던 츠빙글리 종교개혁 500주년은 공간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그리고 연구 규모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소규모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개혁신학의 역사적 전통에 선 세계에 흩어진 개혁교회, 장로교회가 이에 동참할 때 츠빙글리 종교개혁 500주년은 나름 의미 있는 성대한 국제적 축제가 될 것을 기대한다. 특히 장로교회가 다수인 한국에서의 스위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역사적 책무이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 장로교회도 스위스 개혁교회와 세계 개혁교회가 연대하여 2019년 츠빙글리 종교개혁 500주년을 마땅히 함께 준비했으면 한다.

개혁교회의 아버지 츠빙글리는 스위스 종교개혁의 설립자이며, 비텐베르크의 종교개혁자 루터,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칼빈과 함께 세계 3대 종교개혁자 중 한 사람이다. 독일에서는 칼빈보다 츠빙글리를 앞세워 제2의 종교개혁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츠빙글리는 1523년 취리히에서 발표한 ‘67조 신앙고백’을 통해 “개혁교회 신학의 원형”을 제시했는데, 이를 루터교회가 1530년 형성한 ‘아우구스타나 신앙고백’과 비교한다. 그럼에도 츠빙글리는 신학도, 교회도 형성하지 못한 채 47세의 나이에 전쟁터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으며, 종교개혁자 루터의 그늘에 가려 종교개혁자 중에서 가장 적게 알려진 인물이다.

츠빙글리는 스위스 국가교회 모델을 만들어, 취리히에서 전 유럽으로 퍼져가는 로마교회로부터 자유로운 국제적 프로테스탄트교회를 형성하기를 원했지만, 개혁된 가톨릭교회는 한낱 꿈으로 그쳤다. 다행히 그의 미완의 꿈은 후계자 불링어(H. Bullinger, 1504-1575)와 제네바의 칼빈(J. Calvin, 1509-1564)을 통하여 개혁신학(the Reformed Theology)이라는 이름으로 스위스와 네덜란드를 위시한 유럽, 영국 그리고 북미로 확장되었으며, 19세기 말 조선 한반도에까지 상륙하였다. 비로소 21세기 한국 장로교회는 세계교회를 이끌어야 하는 소명과 함께 강력한 다수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그 외에도 스위스에는 교육가 페스탈로찌가 있다. 제네바역인근에는 스위스의 경제 중심도시답게 은행들이 많다. 영세 중립국 스위스는 연방국가로 대통령도 각 주가 3개월 씩 돌아가면서 한다고 한다. 스위스의 바젤대학 신학부는 우리교단의 학자들이 유학한 곳으로 아신대의 유광웅 박사, 하은규 목사, 임희국 교수등이 졸업을 한 곳이다.  바젤대학 내에 있는 Peter's 교회는 칼 바르트가 설교를 한곳으로도 유명하다.  스위스는 교회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시마다 다른 데 예를 들어 바젤은 교회와 정부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고 베른은 주정부에 속한 교회형태라고 한다.

이번 스위스 방문에서 지난 10년간 '전도와 선교' 국장으로 오는 8월로 임기를 마치는 금주섭 박사를 5월 19일에 간발의 차로 만날 수 있었다. 금 박사를 통하여 WCC 본부와 칠리니의 보세이 신학원을 방문했다. 함께한 허춘중 목사는 15년전 보세이에 유학한 경험이 있지만 나는 처음이다. 세계교회의 에큐메니칼 지도력을 양성하기 위한 기숙과정의 교육은 스위스 제네바대학과 학점을 교류하여 이수증도 주고 교황청도 방문하고 있는 데 지금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 WCC 전도와 선교위원회 국장(CWME) 금주섭 박사와 UN에서

현재 WCC 현 총무는 노르웨이 출신 루터교 목사인 드베이트인데 지난 8년간 총무를 지냈으나 더 이상 연임을 원치 않는 것으로 밝혀져  임원회는 새로운 총무 인선을 위한 인선위를 구성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 같다. 그동안 WCC 총무는 유럽과 북미, 남미, 아프리카 교회 출신에서 나왔다. 10차 총회를 한국으로 유치할 때 한국의 박성원 목사가 지원을 했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세계교회의 큰 흐름은 이제 아시아지역에서도 총무가 나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여 한국교회의 젊은 지도자들이 세계교회에 맡겨진 역할에 도전하기를 바라마지 않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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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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