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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선교 노동 현장 훈련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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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7.17  21:4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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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선교 노동 현장 훈련 재개되

우리교단의 산업선교(Urban Industrial Mission)는 1957년 미국장로교회의 지원과 도움으로 시작된다. 처음엔 총회 전도부안에 산업선교 조지송목사가 담당 간사로 있었다. 그리고 문경세멘트에서 오철호목사가 사역했다. 그후 오목사는 도미하여 이민 목회를 한다. 한편 영등포에는 현재 영은교회 한영교회의 출발이 모두 공장안의 예배처에서 시작된 것이다.

1967년 경 경기노회 지역인 영등포지구 산업전도위원회가 조직되 영등포교회 방지일목사와 당산동교회 이정학목사 시흥교회 차관영목사등이 위원으로 참여한 지도자들이다. 한편 미국장로교회에서 파송된 헐버트 화이트목사는 연세대 안에 도시문제연구소를 만들고 새문안교회 장로였던 노정현교수에게 책임을 맡겼다. 여기서 박창빈목사등이 도시빈민운동과 주민조직훈련을 받았다.

그후 영등포지구에서 홀로 강경구 전도사가 홀로 공장전도 사역을 하다가 조지송 목사가 파송을 받아 본격적인 영등포산업전도 시대가 열린다. 그러나 초기에는 감리교 안광수목사, 기장의 000목사가 연대하여  함께 산업선교를 하다가 감리교는 경수산선으로 기장은 동서울(나중에 성수산선)을 분가 한다. 그러나 영등포선선은 아파트에서 활동을 하다가 이후 wcc와 독일 EZE의 도움으로 현 회관을 건축하게 된다.

   
    * 1965년 노동주일 예배 기념(왼쪽 위에서 3번째 조지송목사

예장산업선교의 출발 

조지송목사의 산업선교 활동을  후원한 것은 서울 영락교회(한경직목사)의 여전도회였다. 오랜동안 그의 생활비를 댓다. 인명진목사는 호주연합교회가 후원했다. 그리고 실무자들도 모두 적지만 고정 급여는 받고 일했다. 그러나 1985년이후 노동훈련을 받고 민중교회를 개척한 후예들은 고정된 생활비는 없이 시작한다. 

공장전도라고 명명하는 산업전도의 시작은 크리스찬 기업가들의 기업 안에서 노동자들의 예배를 드리는 하는 것이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공장 노동자들과 연합하고 연대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동현장의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 당시 한국의 노조는 국가의 주도아래 기업가와 잘지내도록 하는 어용노조였다. ”근로자를 가족처럼 공장 일을 내일처럼” 이라는 구호가 바로 그것을 대변한다. 

공장예배와 전도활동 이어 소구룹활동으로 조직화된 노동자들은 의식화되었고 노동의 댓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을 주장하게 되고 노동조건 개선에 참여하게 된다. 어용노조가 있는 곳에서는 노조를 민주화하고 악덕 기업가에게 단결을 통하여 대결한다. 

그러나 당시 공화당 박정희 정부는 선 성장 후 분배라는 경제정책으로 친기업적 국정운영을 하여 임금 노동자들의 삶은 희생을 강요당한다. 그리고 예장의 산업선교는 2세대들이 출현하게 된다. 마침 인명진목사가 옥에서 나오고 호주로 떠나면서 공백이 된 영등포산선에 당시 장신대 졸업반이었던 이근복, 손은하전도사가 부임한다.

그리고 실무자 훈련을 받게 된다. 예장 산선의 1세대 조지송과 2세대 인명진 정진동 목사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후 현장 노동훈련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이 훈련의 핵심은 현장 노동이다. 일반 노동자와 똑 같이 일하고 먹고 자고 살면서 그들이 느끼는 피로도와 정서를 맛보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느끼는 피곤을 달래기 위해 막걸리를 한잔하고 세상을 한탄하며 동물적 삶을 강요받으면서 희망도 꿈도 없이 사는 이들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정서로 익숙했던 교회와 목사들을 바라보고 그의 설교에 대하여 어떤 것을 느꼈느냐고 묻는 다면 더 이상 설교하고 싶지 않다는 대답들을 한다.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체화하고 본어거게인을 하는 것이다. 이런 느낌을 훈련일지에 기록하고 그 의미를 토론하고 정리한다. 그런 다음에 본격적으로 이론 학습을 한다. 노동경제학등 정치 철학의 안목으로 성경을 다시보면 예수 혁명가가 될 수 밨에 없다.

   
 

세계교회와 URM 

1948년 화란의 암스텔담에서 처음 모인 세계교회협의회(wcc) 의 조직 모임에서의 주제는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섭리 (Man's Disorder and God's Design) 였다. WCC는 시대와 국면마다 성경에서 발췌한 슬로건을 통하여 교회의 갈길을 제시했다. 기독교 국가인 유럽에서의 전쟁책임, 나치와 파시즘 같은 인간 타락에 대한 회개와 반성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설계한다.

또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제국주의에서 해방된 신생국 건립과정에서의 이념과 인종 분쟁문제에 대한 평화운동, 저개발에 대한 구호와 지원등 세계의 기독교는 가난한 나라와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었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196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산업화로 인한 노동자에 대한 인권에 대한 기독교의 반성이 바로 산업선교의 시발이다.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져 산업화를 이룬 필리핀 론도에서의 산업선교 활동과 한국의 산업선교에 국제적 관심들이 크게 일어난다. 한국도 수출위주의 산업으로  YH나 동일방직 원풍등 대형 여성 노동자들의 현장에서의 생존과 조직을 위한 파업과 기업주의 탄압에 대한 국제적인 연대를 한다.

산업화된 시대에 인간소외에 대한 치유와 극복을 위한 URM훈련은 더 이상 쎈타 활동이 아닌 한국형 개신교의 특성상 유행하던 개척교회형 노동자 중심 교회로 길을 열었다. 개신교는 개척할 주체가 장소와 구성원 설교 내용의 절대적 주도권을 갖고 있기에 공단이나 노동자 집단 거주지에 교회를 세우고 노동자의식화를 시작한 것이다.

야학이나 어린이집 공부방등으로 노동자 가족들과 친화력을 높이고 예배는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과 복음서에서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수의 관심에 대하여 집중하였다. 때 마침 나온 민중신학과 해방신학 흑인신학등 상황신학에 대한 적응이었다. 이런 민중교회는 지식인들도 합류하면서 크게 유행한다.

그러나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후 여성, 소규모 노동운동에서 울산과 같은 대기업 남성중심의 노동운동이 일어난다. 그렇게 해서 어용노조의 민주노조로의 개혁과 신생 노조들이 증가한다. 그러나 신군부의 민주화 저지와 이에 대한 저항으로 한국사회는 정당이나 학원 언론 모두가 민주화을 열망하면서 국가와 저항한다.

이런 환경속에서 예장의 젊은 신학도들은 장신대를 졸업후 기성교회의 전도사로 부임을 거부하고 대학원을 간다는 심정으로 현장 노동 훈련을 지원한다. 그렇게 해서 전체 18기 50여명이 1984년부터 2002년 까지 훈련을 받고 전국의 공단이나 대도시에 민중교회들을 건립한다.

달라진 시대에 더 이상 지원하지 않아 노동훈련은 끝났다. 그리고 19년이 흐른 2021년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노동훈련을 재개한다. 이미 현장 발바닥으로 하는 심방으로 단기간 현장을 돌아보는 과정은 있었지만 신학생이 직접 공장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다.

                     노동현장 훈련에 대한 1983년 작성된 산업선교회 실무자 훈련 지침서

   
 

이번 훈련은 ‘일하는 예수회’와 ‘조지송 목사 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영등포산업선교회’ 주관하여 마치는 날 기독청년노동훈련 수료 감사예배와 보고대회를 열 개된다. 이를 총회 도농사회처 후원으로 7월 6일 총회100주년기념관 제2 연수실에서 진행되었다.

노동훈련 수료 감사예배와 보고회는 김주역·최동빈 등 2명의 장로회신학대학교 학생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의 기간 동안 영등포산업선교회가 진행한 노동훈련에 참가해 수료한 것을 기념해 열린 것이다. 그렇게 이 두명의 신학생의 지원으로 말미암아 이런 훈련이 20년만에 재개된 것인데 앞으로 지원자가 계속나온 다면 다시 민중교회 노동훈련으로 산업선교회의 부흥의 계절이 오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좌로 부터 손은정목사 김주역, 최동빈 학생 박새롬 총무(장청) 

20년만에 다시 배출한 노동훈련 수료생

수료 예배는 김희룡 목사(성문밖 교회 담임)의 인도로 이근복 목사(조지송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가 시편 68:19과 시편 126:4-6을 본문으로 “씨 뿌리는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축도는 노동훈련 선배 서덕석목사(성남 열린교회) 가 했다. 그후 보고는 오상열 목사(총회 도농사회처 총무)의 인사와 송기훈 목사(영등포산업선교회) 경과보고, 김주역, 최동빈(장로회신학대학교)훈련보고 박세론 총무(장로회청년회전국연합회), 장창원 목사(오산이주민노동자센터), 이상호 학장(한국폴리텍Ⅱ대학)의 격려사가 있었다.

한편 이 훈련을 위하여 총회 도농사회처와 영등포산선 조지송기념사업회, 선배인 대구의 구민교회 김경태목사, 대전의 서경기목사등이 재정을 후원했다. 이후 훈련에 참가한 최동빈 학생은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의 기간 동안 진행된 훈련 기간 동안 일자리를 구하여서 직접 노동을 하고, 노동 그 자체와 노동현장에서 느낀 점들을 정리한 노동훈련 최종 보고서 발표에서 “훈련 기간에 두 종류의 일, 즉 1월말부터 3월 중순까지는 쿠팡이츠 배달 파트너로서 음식 배달을 했고, 3월말부터 6월 말까지는 CJ대한통운에서 택배 분류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쿠팡이츠 배달은 택배 기사님들의 일을 돕는 역할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전업으로 배달 노동에 종사하는 라이더들과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을 100% 경험하지는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들의 노동환경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주역 수료생도 “2월 1일부터 시작해 6월말까지 창고형 공장으로 가구회사에서 취업했는데 가구의 부품들을 파손방지를 위해 유리와 프레임을 발포스티로폼 등으로 따로 포장한 후 박스에 담아 택배차가 오면 싣는 일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경험한 것 중의 독특한 점은 아르바이트생은 전원 20대였고, 20대의 어수룩함을 노린 것인지 근로계약서부터 노동환경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다수 있다는 현실적인 노동현장의 아픔을 체험할 수 있었다.“고 보고했다. 이를 통해 같이 ”청년들의 삶의 배경을 알아가면서 이들의 어려움을 알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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