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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 국가와 기독교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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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6.07  16: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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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시아의 같은 점과 다른 점

글 싣는 순서

1. 인도차이나 국가들 
2. 태국, 미얀마, 난민들 
3. 사회주의하의 라오,캄보디아,베트남

   
 

동남아시아는 아시아에서 동쪽으로 위치한 국가들로 동북아로 호칭하는 대만과 북한 중국 일본 우리와와거리가 멀지만 동질성이 있다. 그중 인도차이나 국가는 한 대륙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브럭이다. 하지만 아시아의 격차는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가 넘는 싱가포르가 있는가 하면 천 달러 수준인 미얀마, 캄보디아 등이 공존한다.  2016년 주아시아 대사들 주재 대사들은 이 지역을 소득 격차, 인종, 종교 다양성을 품은 '경제블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시아 시장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와 현실은 무엇인가.

김수권 주라오스 대사/ 라오스 인건비가 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최저 월 임금이 110달러 수준으로 캄보디아에 버금간다. 노동력이 풍부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제조업의 대규모 투자는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조태영 주인도네시아 대사 : 인도네시아는 자원이 풍부해 석유 순 수출국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순 수입국이다. 채굴해도 메이저 에너지업체들이 대부분 가져간다. 정유시설도 낡아 외국 기업이 새로운 정유시설을 건설해주길 바라고 있다.

전재만 주태국 대사/ 태국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과거 식민지국으로 일본 등 열강에 대해 큰 반감을 품을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태국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일본의 침략을 받지 않았고, 일본은 태국 전체 투자 중 60%를 차지할 정도다. 날씨가 더워 아시아 국가 근로자들은 게으르다는 선입견도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조원명 주브루나이 대사/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사만 달러를 넘는 만큼 높은 구매력을 겨냥해 브루나이에 투자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실제 돈이 많은 사람은 왕족을 비롯한 일부 소수다. 소득이 있는 사람 중 80~90%는 공무원이다. 그만큼 민간 영역이 작다. 브루나이에 투자하려면 중·하층민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작은 시장, 높은 인건비가 걸림돌이다.

전대주 주베트남 대사/ 개도국 사람들은 가난해서 못 배우고 무지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것 같다. 베트남에서 비즈니스에 성공하기 위해선 현지인이 절대 만만하지 않은 상대라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고 김원진 주캄보디아 대사 : 한국 사람들은 캄보디아에서는 정부와 끈이 닿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시아의 미래 먹거리는?

조병제 주말레이시아 대사/말레이시아 정부는 'MM2H(Malaysia, My Second Home)'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일정액(약 일억오천 만 원)을 보증금으로 맡긴 외국인 은퇴자들에게 영주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세계 3대 은퇴 이민지로 불리고 있다. 이백순 주미얀마 대사 : 예전 일본 기술자들이 은퇴하고 한국으로 왔듯이 한국에서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 경공업 기술을 가진 분들이 미얀마로 오면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서정하 주싱가포르 대사/ 싱가포르에는 세계적인 로펌들이 진출해 있는데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 기업보다 동남아시아 각국 현지 법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판단하고 한국 기업들을 많이 접촉하고 있다. 동남아 진출을 노리는 한국 정보기술 스타트업들에 대해 금융지원이 잘 안 되는 점도 문제다.

전대주 베트남 대사/베트남 시장과 투자 환경에 대해 사전 준비를 많이 하고 오는 기업들은 정착에 성공하고 있으나 현장에서 부딪쳐보겠다는 도전정신만으로 진출하는 업체들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최근 베트남 출입국관리법이 변경돼 15일 무비자 단기체류로 들어오는 외국인은 귀국 이후 한 달 이내 재입국이 불가한데, 이러한 사실마저 몰라 낭패를 당한 분들도 있다.

조병제 대사/전자상거래, TV홈쇼핑, 미용, 인테리어, 교육, 게임 등 중소기업 업종이 꽤 많이 말레이시아에 들어오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에서처럼 생계형 창업과 같은 업종들이 현지에서 장기간 흥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재신 주필리핀 대사/ 필리핀을 방문하는 한국 여행객 규모는 연간 백만 명을 넘어섰으나 사건·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것이 문제다. 한국 여행객들도 현지 법질서를 준수하고, 건전한 여행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한국에 결혼이민을 오는 필리핀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필리핀 현지에 남아 있는 가족들이 한국에 대한 좋은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실정이다.

전대주 대사 : 베트남이 가장 필요로 하면서도 한국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발굴하려고 한다. 도로·교량·병원 등 기반시설뿐 아니라 베트남 전쟁의 아픈 과거를 치유하기 위한 지뢰 제거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책임'도 고려해야

서정하 대사/한국 기업들이 동남아시아에서 돈만 벌어가는 생각을 하면 현지에서 반발이 일어날 수 있다. 지금도 아시안 회원국 중 일부는 이런 인식을 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ODA(공적개발원조)를 바탕으로 진출해 반발이 적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 기업들이 동남아시아에서 돈을 벌면 꼭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도 병행해야 현지에서 더욱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대주 대사/최근 주베트남 대사관이 염려하는 점은 갑자기 돈을 번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다. 한국 기업가들이 현지인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면 보복을 당한다. 현재 주베트남 대사관은 한국 기업들의 왕성한 투자와 진출을 지원하되 이런 한국 기업들이 베트남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기업 CSR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연말에 1년간 진행한 CSR 활동 결과를 홍보할 예정이다. 

이들 국가의 같은 점과 다른 점 

1858~93년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연합을 만들어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1940~41년 일본이 베트남 북부 통킹 지역 및 인도차이나의 나머지 지역을 점령했으나, 베트남과 캄보디아 서부지방을 제외한 지역은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일본은 1945년 3월 베트남을 자치국으로 선포했으나 이 체제는 8월 일본의 항복으로 막을 내렸고, 북부에서는 베트남 민주공화국이 선포되었다. 

라오스와 캄보디아는 프랑스가 재점령했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연방을 만들어 프랑스연합에 가입시키고,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했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소강상태가 되자 프랑스는 3국을 자치독립국으로 인정하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연합했다. 3국의 진정한 독립은 1954년 제네바 회의 이후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프랑스 제국에, 나중에는 프랑스 연합에 소속되어 있었다. 인도차이나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의 문화는 인도와 중국의 영향을 함께 받아 형성되었다. 1858~93년에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를 점차 속국으로 만든 후 이곳을 통치하기 위해 첫 인도차이나 연합을 만들었다. 

베트남 남단의 코친차이나(프랑스령 코친차이나)를 제외한 원래의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왕조 지배지역들은 연방의 형태로 중앙정부에 소속되었고, 프랑스 상무장관 휘하의 프랑스인 총독이 주도하는 중앙정부가 이들 지역의 외교·재정·국방·세무·공공사업을 독점 관리했다. 코친차이나의 행정은 지사 1명과 프랑스인으로 구성된 관료들이 맡았다.

베트남 전쟁의 공과  

1940~41년에 일본이 베트남 북부의 통킹 지역 및 인도차이나의 나머지 지역을 점령했으나, 일본이 동맹국인 타이에게 양도한 베트남과 캄보디아 서부지방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행정체계는 일본 침략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비시 프랑스에 소속된 현지정부가 계속 존속하도록 허용했던 일본은, 1945년 3월에 프랑스인 관리들을 억류하고 베트남을 자치국으로 선포했다. 이런 체제는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으로 막을 내렸고, 북부에서는 베트남의 민족지도자 호치민[胡志明]이 이끄는 베트민[越盟]이 지체없이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정권을 잡았다. 

라오스와 캄보디아의 군주들은 베트남 방식의 채택을 주저하다가 곧 프랑스에 재점령되었다. 그뒤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연방을 만들어 좀더 큰 규모로 새로 창설된 프랑스 연합에 가입시키고,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이 연합 내의 독립국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프랑스 연합은 몇 해를 넘기지 못했고, 이 지역은 파리에서 직접 관할했다. 

곧이어 벌어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1949~50년 일시적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지역을 계속 장악할 목적으로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를 프랑스 연합 내의 자치적인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3개의 조약을 비준하고 이 나라들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연합했다. 프랑스가 이들 나라를 자치 독립국으로 인정했다고 하지만 이 시기의 3개국 지도자들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고, 진정한 독립은 1954년에 열린 제네바 회의에서 프랑스와 베트민 사이에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이루어졌다.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은 같은 땅에서 거주하는 나라로 농업과 불교라고 하는 강한 민족종교를 기반으로 다져진 나라들이다. 또 태국만 뺴고는 모두 사회주의 경제 체재을 경험했고 그중 라오스와 베트남은 여전히 사회주의 경제 체재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차이나란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든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을 지칭하지만 태국과 미얀마을 포함한다. 이상 5개 국가에 대한 역사는 후술하기로 하고 기독교 정착과 한국선교사들의 현황을 살펴보자  

서구 선교사들  

인도차이나 선교의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한 자는 1923년 캄보디아의 프랑스 임시 총통이라고 한다 . 그는 C&MA(기독교 및 선교회 ) 선교사들이 끈질기게 캄보디아 선교를 고집하자 할 수 없이 비자를 주면서 “전도를 하시오 그러나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그의 말은 예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가 기독교 선교에 자유를 허용하였으나 제한적 허용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차이나 5개 국가는 선교의 문이 열려 많은 한국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 코로나 사태 전에는 시니어 선교사들이 많이 들어왔다 .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 문이 닫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결론적으로 한국 선교사들이 상대하는 사람들은 주로 하층민 , 어린이와 청소년 , 소수 인종과 가난한 사람들로 보인다.  특히 태국은 후원교회들이 후원하는 선교사들에게 왜 산지의 소수 부족과 미얀마 난민들을 위주로 선교하는 지 묻고 있다고 한다.   

인도차이나에서 선교역사는 험난한 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그러한 과정에 있다. 선교역사가 한국보다 무려 30년에서 50년 앞섰지만 기독교 인구는 소수이다 . 태국 , 캄보디아, 베트남은 1%에서 1.3%로 라오스는 더 약하다 . 베트남은 기독교 인구를 9% 혹은 10%로 발표하는데 , 9%는 카도릭이고 개신교는 1%미만이다 . 미얀마는 카렌 , 카친 , 친족 등 소수 부족들에서 신자가 많아 6%되지만 버마인 (불교도 ) 기독교 신자는 0.5%미만에 불과하다 . 1920년대 이미 미국 선교역사가 케네스 라토랫은 불교선교에 대한 저서에서 아시아에서 개신교 선교는 비불교인 아니미즘 (샤머니즘 )의 소수 부족에 집중되었다고 말하였다.  

인도차이나의 기독교 선교를 연구하는 이들이나 현지 선교사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것은 한국에 비하면 교회나 선교사가 투자한 것에 비하여 그 열매가 적다는 평가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 조차도 한국식의 평가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미 서구 선교사들도 그런 식의를 선교를 하다가 실퍠했다고 보기도 하고 방식을 달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을 비판적으로 보는 자들로 부터 변화된 선교론에 도전하는 중이라고 본다. 과거와 같이 모국중심의 선교와 평가 열매가 아닌 현지 교회와 지도자와 동반자적선교다. 더 이상 선교지 피선교지가 아닌 관계다. 따라서 앞으로의 선교는 현지인에게 믿음을 주고 신뢰를 주는 방식이어야지 내것이 우월한 것이고 성경적이고 하나님의 선교라는 자부심 혹은 영적 교만으로 부터 놓임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인도차이나 종교와 문화

인도차이나 인종의 뿌리는 중국 양자강 상류지역의 서북부에서 남하한 몽골계통 인종이 많다. 철저히 아시아인이다 . 문화적으로는 인도 문화와 중국 문화의 영향권이다 . 공자는 생소하고 , 중국인들이 인도차이나에서 상권을 쥐고 있지만 , 시대 따라서 차별대우를 당하여 중국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자들이 많다 . 베트남은 중국 문화와 언어의 영향이 강한 나라이다. 

구정과 조상제사는 인도차이나에서도 중국인들 사회에서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 태국의 중국인들은 10-14%를 차지하지만 시대를 따라 일어난 중국인 차별정책으로 태국화 된 중국인들이 많다 . 동남아에서는 중국계 기독교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 . 정치와 경제 발전은 중국문화권의 국가가 인도문화권 국가보다 더 발전하였다 . 

문화, 종교 , 언어에서는 중국 보다 인도 문화가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 아리안 인종의 종교인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이 지배적이다 . 이것을 국제정치학자들은 인도화 (Indianization)로 정의한다. 이런 이방종교는 사실상 기독교 선교에는 아주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런 문화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과의 투쟁 혹은 동거는 불가피하다. 그러려면 선교 성과에 급급하지 말고 길게 보고 멀리보고 가야 한다.  

인도차이나 선교의 과제

교회와 선교는 코로나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 국제질서는 국제화가 무너지고 자국주의와 민족주의 바람이 불 것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국제주의 (universalism)인 동시에 민족주의를벗어날 수는 없다. 천국시민이 되었다고 해서 자신의 신분이나 정치적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 다. 60년대 인도차이나에서 민족주의 성향의 선교사가 추방당하고 그 재산들이 국유화 된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캄보디아는 2012-2017년 사이 교회당 숫자는 증가하였으나 신자가 무려 3천 명 이상 감소하였고, 650 교회가 개척 된 반면 600 교회가 문을 닫았다 . 인도차이나 교회 시급한 상황은 명목상 (Nominality) 신자문제이다 . 신자 공동체가 이방인의 빛이 되게 하는 것이다. 미얀마의 한국 선교사들은 친족 신자들을 노골적으로 꺼릴 정도이다. 이런 이미지로 자국 복음화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필리핀은 90% 기독교 국가로 말하지만 그것은 토착화된 천주교로 누구도 기독교 국가로 보지 않는 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나오는 것인데 개종전교의 문제가 생긴다. 타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인데 이게 과연 맞느냐는 과제가 있다. 사실 필리핀선교 동기는 그런 게 아니다. 영어권이고 자녀교육에 용이하고 가장 쉽게 나갈 수 있고 정착과 왕래가 쉽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교단이나 파송처 없이 도피성 선교사가 반 이상이라는 보고도 있다.  

인도차이나 기독교 선교의 과제는 한국 선교가 관여하는 교회들은 경제적으로 다 어렵다. 교회의 외국의존 으로 맺어 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처음에 가난한 이들이 예수믿고 신분이 상승했고 이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성장이 뒷받침 되었지만 다른 아시아국가에서는 그렇치 않다. 또 하나는 강력한 토착종교로 일상에서는 이것들이 국민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한국식 선교로는 필패

인도차이나 기독교회의 위기는 목회자의 위기라고 보는 이들은 여전히 한국식으로 교회부흥과 성장의 70%는 목사에게 있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그러면서 성장정체의 원인을 그들의 게으름이나 열정 부족과 공부를 안하려는 풍조로 판단한다.  성경읽기와 원어 공부등 끊임없이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선교는 효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의 문화나 현실은 그런 토양이 아님에도 말이다.  

그러면서 서양 교회의 후원으로 건물은 있으나 내용이 없다는 식이며 교수요원의 부족이라고 하고 여전히 주종의식과 이론 중심의 교육 부재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도데체 수준있는 교육이라는 게 무엇인가 성서학이나 실천신학, 선교학, 교회성장학의 부족이라고 하면서 한국교회를 배우기 위하여 조를 지어 고국교회를 방문하게 하고 열정을 준다고 하는 데 큰 효과는 없고 선교사 소일꺼리만 될 뿐이다. 

사실 현지 교회의 지도자들로 비행기 타고 해외에 나갈 정도면 이미 그런 분은 일상화된 분일 수 있다. 데려와서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인사나 시키고 용돈이나 주고 맘편히 쉬고 자유로운 여행없이 짜여진 틀속에서 이탈할 수 없는 여정 그 자체가 목적인 수가 많은 데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그들이 보고 싶고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그중 사회주의 정치제도하의ㅏ 라오스와 베트남 교회의 선교는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박해를 받는 다고는 할 수 없다.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생존한다고 봐야 한다. 한국의 선교나 선교사들은 이젠 과거 1세계식의 우월적 문화나 지위를 버리고 현지 교회를 배우는 자세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건물이나 선교비를 주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식의 금과 은으로 하는 선교를 더 이상 하면 안된다.

먼져 현지 교회의 환영을 받아야 하고 그들의 역사와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인도차이나 교회가 겪은 어려움과 정체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하여 배우는 자세를 갖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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