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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뉴스 관서지방 탐방기(1)유재무 목사(전 일본선교사, 예장뉴스)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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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4.12  1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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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장뉴스 관서지방 탐방기(1)

유재무 목사(전 일본선교사) 

글 싣는 순서
1) 예장뉴스 간사이 여행
2) 關西(관사이) 지방 그리고 한인교회
3) KCC(Korea Christian center) 역사와 선교적인 비젼
4) 京都(쿄토) 동지사 대학과 쿄토 동산교회
5) 재일대한기독교회의 생성과 역사 그리고 과제
6) 한국교회의 일본선교와 선교사 및 문제점
7) 일본인과 한국인 그들은 누구인가? 
 

1) 예장뉴스 간사이 여행

  필자가 총회 파송 일본선교사로 4년간 오사카의 한인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귀국한 지 4년 반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 있다.   귀국 선교사들이 모이는  모임에 나가자는 요청도 있지만 가지 못했는데  나의 사역에 대한 반성과 후회 때문이다.  아직은 한번도 나의 선교사역이나 경험에 대하여 말과 글을 써 본적이 없다. 세선부도 귀국하는 나를 행정적으로는 관리하려고 했지 왜 오는 지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의 경험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한마디로 귀국선교사의 성과와 한계는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는  일본선교나 한국선교사들 그리고 세계에 나가있는 선교사와 그들의 동료들에 관하여  많은 생각과 느낌은 있지만 아직은 침묵하고 있다.  

그 이유로, 첫째는 파송을 받고 부임한 한인교회를 통하여 나 자신과 그들이 원했던 것을 제대로 나누고 이뤄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과 자존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건너갔던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후원해 주었던 분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송구스러움 때문이기도 하다. 또 지은 죄는 없는데도 소리 소문도 없이 패잔병처럼 귀국했던 부끄러움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선교사라고 당당하게 보고하고 요청하는 분들에 대해서 존경심도 있지만 때로는 안타가움도 느낀다. 나는  입이 열 개라도 할말이 없는데 사실 특별한 일도 하지 않으면서 선교비를 달라는 것도 낮뜨거울 때가 있었는데,  그렇게 떠났다가 다시 찾은 오사카의 3박 4일의 일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간사이는 특유의 화창하고 온화한 날씨로 세나토의 푸른 바다가 우리를 맞는다. 일행 중 초행인 분도 있고 여러 번 왔어도 누가 가이드를 하느 냐에 따라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이 달라지기에 매번 새로운 것이 여행이다. 나는 비교적 일본에서 많은 여행을 하고 공부를 한 까닭에 상대가 원하는 정보에 맞게 가이드를 하는 편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예장뉴스 대표 백도웅 목사와 그와 동년배로 작년 비슷한 시기에 은퇴한 이명남,  차선각목사의 은퇴 기념여행이되였다. 이 세분은 예장의 목회자 운동과 교회 개혁, 에큐메니칼운동에 헌신해 오셨고 지금까지도 후배들과 함께 현장에서 호흡을 함께 하는 분들이다.   이런 공로를 생각하여 후배들이 회고록을 내기로 하였다.

대표 집필을 맡은 본인과 같이 작업을 할 서덕석목사(시인, 조지송 목사 평전집필자)가 동행을 하였다. 그외 본인과 함께 일본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던 아내인 장석숙씨와 그의 친구 이신숙 씨(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신협 간사) 그리고 태국 치앙마이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는 오랜 친구 허춘중 목사가 동행하였다. 허목사는 치앙마이에서 사역하고 있던 중 잠시 귀국한 하였는데  필자가 년초에 치앙마이에서 요양 차 가 있었던 적이 있어 일본 길에 선배들을 모시고 함께 가기를 권유하여  합류한 것이다.  이번 여행은 착한 가격으로 대중교통인 간사이 프리패스(3일권, 5천엔)를 기본 이동 수단으로 하였는데,  간사이 공항에서 Rapido라는 공항 전용특급을 타면 좌석표(600엔)을 따로 사야 한다. 약 35분 만에 난바역에 도착하여 전차(지하철)로 숙소인 후지야 호텔로 이동하였다.
     
     공항특급 열차에서 앞줄 좌 이명남, 백도웅,  뒷줄 허춘중,  차선각목사 

  관서지방의 호텔은 오후 2시가 입실이고 퇴실은 오전 11시다. 가방을 일단 후론트에 맡기고 인근에서 가이댕 스시(回轉초밥)로 늦은 점심을 먹고 千日前(센이치 마에)라는 쇼핑가와 일본교의 黑門市場(구로몬 이치바)을 돌아 보았다. 이 시장은 일본의 최고 전통시장으로 <천하의 부엌>이라고도 불리워졌는데  관서지역은 물론 일본 전국의 토산물이 집산하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쇼군과 영주,  그리고 교토의 천황과 그를 모시는 식솔들에게 제공하기 위한 일본 전국의 특산물이 모여들면 쿄토황궁으로 가져기도 했지만 쇼군이 먼져 먹었다.  이렇게 오사카는 일본의 모든 문화가 집산하고 가장 뜨내기가 많은 도시다.  그리고 大阪(오오사카) 라는 뜻은 크다라는 "오" 와 "사카" 라는 비탈판자를 쓰는 데 "넓은 판" 으로 주변에 산이 없는 평지다.   그 이전의 이름은 浪速(나니와) 라고도 하는 데 이는 "급한 물살" 을 의미한다.  오사카만의 물이 들어와 넘치다고 해서 難波(난바, 난바) 라고도 한다.,

  저녁은 도톤보리의 金龍(긴용) 이라는 이름의 식당에서 돼지뼈 육수에 끓여 낸 라면을 먹었다. 이 가게의 특징은 600엔 이라는 아주 싼 가격에 한국식으로 폭 고아 낸 돼지뼈 국물에 라면을 말아주는 곳이다. 이곳을 여행하는 한국인들과 가주민들에게 명소로 알려져 있는데 부추와 배추김치와 그리고 飯(밥, 고항)을 무한리필 해 주는 곳으로 가장 저렴하게 한국적인 입맛을 돋구어 주는 음식이다.  도톤보리 유흥가 주변에 여러개의 지점이 성업 중이고,  우리가 갔을 때 여러 팀의 한국인 손님들이 얼큰하고 시원한 라면 국물을 즐기던 중이었다.  오사카를 방문하는 분들은 반드시 들르는 곳으로 후회가 안되는 곳이다.
   
 

  식후에 心濟橋(신사이바시) 通(도리)의 천장을 덮은 노천시장을 따라 걸었다. 저녁이면 관광객들로 넘쳐 사람들이 물결처럼 떠밀려 흐르는 곳이다. 그중에는 大丸(다이마루) 라는 300년 이상된 백화점과 100년 넘은 老鋪들이 늘어서 있고 三木(미끼) 악기상과 각종 패션잡화를 살 수 있는 곳이다. 이 구조물은 船場(쎈바) 라는 전통 포목시장에서 시작하여 남쪽의 대표적인 중심지 난바(난바역와 파크, 高島屋 (다가시마야백화점)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눈이나 비 그리고 햇빛을 피하면서 편하게 이동 하거나 쇼핑을 즐길 수 있다.  

  오사카는 크게 둘로 나뉜다. 北(키타) 와 南(미나미) 이다. 북은 요도가와를 중심으로 梅田(우메다)까지 관공서와 대형건물들이 있는 곳이다. 남은 난바를 중심으로 유흥가와 소규모 공장, 전자부품 가게로 이뤄져 있다.  미나미는 동경으로 치면 赤阪(아카사카) 라고도 볼 수 있다.  반면 미나미는 오사카에 있을 때에도 직접 들어가본적이 없고 갈 수 있는 신분도 아니지만 항상 호기심 천국이다. 그리고 많은 한인여성들의 삶의 터전이다. 한인교회 교인들 중에도  이곳에 종사했거나 종사하고 있는 분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하는 일은 홀의 마마(마담)에서 가오(얼굴)마담,  종업원 廚房荒(아라이)와 삐끼(호객꾼)까지 광범위하다.  유흥가는 큰 블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빌딩에 30개의 업소가 들어 차 있는 곳도 있다. 구라브,  스낙구 등으로 불리우는데 테이블 숫자와 홀의 넓이 그리고 종사하는 종업원 숫자에 따라서 구분한다.  

오사카에서 사업을 하거나 교제을 위해서는 이곳에서 대접을 하거나 받는 것이 관례이며 그래야 인간관계도 돈독해지고 계약도 성사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 업소의 주인들을  "마마" 라고 부르는데 마마란 "여사장" 이라는 의미다. 전통적으로는 일본이 여성들이 운영을 했지만 지금은 한인 여성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소위 화류계라고 해도 좋을 것인 데 경력을 쌓아야 한다. 간단하게 맥주한잔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잡답을 떠는 곳에서 부터 좀더 다양한 사적 서비스를 하는 곳까지 가격대로 입맛대로 할 수 있는 남성천국이랄까?  그리고 한인여성이 이 업소를 운영한다는 것은 사실 기업을 하는 것 만큼 어렵다. 완벽한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스폰서나 재력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일본인 남성의 심리를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고객을 관리하고 여성 종업원들, 특히 산전수전을 겪은 여성들을 리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신사이바시 노천 시장거리를 활보하는 역전의 용사들

 그러나 이런 유흥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후쿠(복어) 요리집과 우동 돈부리(덥밥) 가니(게) 요리집 그리고 創作요리집이나 肉曉(야끼니쿠) 선술집 그리고 비즈니스 호텔과 이들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 넘치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100년이 넘은 일본교회들이 몇개 있다. 언제 보아도 항상 굳게 닽혀있는 철문과 불꺼진 창을 본다.  교회공간을  이전 하려고 할 때에 이 교회들를 빌려서 미나미의 한인들을 위한 목회 하려고 상담을 한 적도 있지만 그런 번거로운 일을 귀찮아 하는 것이 일본인이다.  오사카의 시내에 세워진 한인 교회들은 모두 이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는 여성들의 참여와 봉사, 헌금을 통하여 성장하거나 유지되고 분열되였다. 내가 간 교회도 동포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여러 교회에서 분열된 교인들로  일본인과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원하는 이들(체류비자 때문에) 이 주였으며 이들을 캐어하는 목회를 하며 그들의 친구가 될수 있으면 좋겠다는 자세를 갖었지만 생각대로 되지는 않았다. 나는 언제나 굳게 닫혀있는 이 교회들의 철문과 불꺼진 창을 보면서 일본의 영적 상태를 상상하곤 했다.

오사카에는 이 미나미에서 술집에서 종사하는 많은 한국 여성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온누리교회는 기업과 관공서 직원과 유학생으로 상류층인 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교회들은 이 미나미에서 종사하는  여성이거나 불법체류신분인 가난한 한인들이다.  그들은 어려운 직업과 삶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고 돈을 벌지만 또 실패한다. 그 이유는 많치만 너무 쉽게 벌고 쉽게 쓰는 것도 한 가지다.  교회 권사도 그렇고 술담배는 말할 것도 없고 무비자 체류자로 인하여 이들의 하루하루의 삶은 고달프다. 한 권사는 다음 달에 하국 가야지,내년에는 가야지 하지만 그러나 고국으로 못오고 있다. 우선은 돈벌이가 비교가 안되기 때문이다. 동일노동도 한국의 3-4배가 되니 눈높이를 낮출 수가 없다.  

일부 복음주의 교회는 이들의 봉사와 헌신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진정으로 그들의 마음속 깊이 다가가는 목회를 하지는 않는 다. 그들의 진로 미래에 대해서는  외면한다. 그러나 그들은 열심히 돈 벌고 살지만 항상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으로 신앙적인 면에서는 다소 이중적이고 감성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기성교회는 이런 그들의 심리를 이용하여 열심히 벌고, 죄 짓고, 회개하며 살게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가 좋은 일본인을 만나면 결혼하기도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다.   

숙소인 후지야 호텔 맞은 편 건물에는 몇 년전까지만 해도 아시아마트라는 대형 한국형 슈퍼가 있었던 곳인데 영업난으로 이사를 갔고 그 건물 4층에 오사카에서 같이 동역했던 박홍순 목사가 시무하는 南部교회가 이사를 왔다. 아마 가장 번화한 곳에 있는 재일대한기독교회의 교회이다. 이 거리는 사카이스지라는 길로 남쪽 출발지로 2002년 한일 월드컵때는 젊은이들의 응원 인파로 도로가 메워졌던 곳이다.  한인들은 처음에는  시내외곽 鶴橋(쭈루하시) 와 이마자토 生野(이쿠노, 오사카 교회가 있는 곳)에 주로 거주하였다.

그러나 80년 후 새로운 세대들의 이주와 함께 한국에서 대거 부임해 온 선교사들은 한국식의 교회 개척과 생존과 위한 사역으로 전통적으로 감히 넘을 수 없는 선을 넘어서기 시작하였다.  교회만이 아니라 식장이나 술집 등 일인들의 지역까지 진출하여 영업력으로 일본인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후지야 호텔 바로 옆 골목에는 부산에서 건너 온 지 2년 차가 된 젊은 부부가 정착하여 '모래시계' 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렇게 일본에서의 한인들의 직업과 생활은 빠르게 변모하고 있으며 한인교회 공동체는 느리지만 엄청난 변화에 직면 해 있는 것이다. 
   
         오사카남부교회 박홍순목사(좌)와 필자

박홍순목사는 필자가 오사카에서 사역할 때 가깝게 지낸 친구로 그가 이사온 건물의 야찡(월세) 이 자그만치 30만엔이라고 하는 데  공과금과 부대비용을 합치면 월간 부대비용이 약 4-500만원은 될 것이다.  수요일에 허춘중 목사가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하였다. 박홍순목사는 한 때 잘 나가는 삼성맨으로 동경지사에 근무하다가 교토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기도 하였지만 다시 동경신학대학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가서 목사 안수를 받고 온누리교회와  미국을 거쳐서 오사카에 정착을 했다.  일본의 주류사회에서 활동하고 일본어에 능통하고 모든 실력이 뛰어나지만 여러 번의 아픔을 겪었다. 그것은 한인들의 불안정한 거주 문제와 직업적 특성에서 온다. 특히 유학생들은 어느 정도 정들만 하면 졸업을 하거나 취업이 되어 이주나 귀국을 하니 안정적인 교인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다. 다양한 연령과 직업을 갖고 있는 한인들을 어디까지 캐어하고 목회를 해야할지는 교회마다 목회자마다 구성원마다 다르기에 이민 목회, 특히 일본의 한인교회가 어려운 것이다.

또 이민교회 일수록 이단들이 많이 접근을 한다. 옳바른 신학과 건전한 신앙으로 지도받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독립교회보다는 교단에 소속한 교회여야 한다, 교회와 목회자를 파송하고 지도할 수 있는 상회가 있어야 한다. 그렇치 않고 본부가 한국에 있는 순복음이나 온누리는 사실 독자적인 활동을 하지 못한다. 헌금도 그들이 관리하고 목회자도 파송한다. 교인들의 선택권은 전혀없다.  자기가 사는 그 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의 교회여야 한다. 그래서 일본에 가서는 교회를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에서는 재일대한기독교회 소속의 교회들을 첫째로 권한다.  특히 오사카를 방문하고 유학이나 연고가 있는 분들은 아래 박홍순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에 연락을 하면 체류나 학업 생활에 대한 많은 도움이나 안내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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