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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을 보면서통일이 국시가 되야 하는 이유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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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18  15:2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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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쟁을 보면서

통일이 국시가 되야 하는 이유

   
* 김철홍 교수가 쓴 글이 조선일보 11월 17일자에 이렇게 보도되었다. 원한 일이 아니었는 지 몰라도 결국은 이용을 당하는 것이다. 

70년대말 야당 유성환 의원이 "우리나라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 이 되야 한다고 해서 반공법 위반으로 국회서 제명을 당했다.  그럼 30년이 넘은 지금 우리는 유 의원의 발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 가?  30년이 지났지만 남북문제는 여전히 답보상태이다.   최근 우리사회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의 찬반양론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논쟁이 모교인 장신대에서 하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고 그렇게 큰 일도 아니다. 이거 보다 더한 일도 겪은 곳이다.  교회사 교수들이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니고 학생들을 선동하려고 한일도 아니다.  거기다가 그 교수들의 견해에 반대의견을 올린 김철홍 교수도 그렇고 학생들의 반응도 모두 좋은 징조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문제가 지성인들 답게 생산적인 논쟁으로가 아니라 학교 밖으로 나와서 정치적으로 이용을 당하는 데도 학교나 어른들이 손을 놓고 있으니 교단의 대표적인 신학교가 세간에 난도질 당하고 있다.   

김 교수는 다시 쓴 글에서 동료교수들이 그만 하라고 하는 데도 학생들이 건 현수막의 내용에 대하여 분노했다는 등 도를 넘는 표현을 하고 있다. 거기다가 댓글를 단 학생에 대하여 수업시간에 언급하고 댓글 단 학생들 리스트를 작성하고 사상검증을 한다는 데  사실이라면 어디 그렇게 해보기를 바란다. 문제는 김철홍 교수가 국정화 찬성의사를 밝히는 수준을 떠나서 정치전반을 대변하고 좌파와 한판 전쟁을 하는 듯한 정제되지 않은 용어사용과 무용담이 문제다. 나는 처음에 그의 용기를 좋게 보고 대변해 주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그는 그 선을 넘었다.  결코 약자가 아니다.  다루는 주제도 산만하고 너무 나갔다는 비판이다. 특히  제자들의 글에 대하여 평가절하 하는 등 교수라고는 볼 수 없는 무뢰함과 지적교만으로 가득차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고 싶어서 지금까지 어떻게 참고 살았나 쉽다.

사실 국사교과서 국정화는 정부의 의도대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는  되지 않는 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라가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정권차원의 일은 다른 정권으로 바뀌면 또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앙인이고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고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는 것이지 이런 세상 일에 너무 일희일비하고 특정이론의 볼모가 되어서 시키지도 않는 투사를 자임하고  지지하고 누구편에  서야 할 사람들이 아니다. 차정식 교수의 지적 처럼 허접한 세상 일로 결코 져버리지 말아야 할 우리들의 고귀한 가치를 잊어서는 안된다. 돌아보면 국정교과서 문제는 시장에서 실패한 뉴라이트들이 정치권과 공모하여  정치적 현안으로 제기했다. 특정 정당의 이념에 뿌리를 둔 시각에서 현행 국사교과서 내용에 대한 불만을 전제로 시작된 것이다. 즉 정치적 필요에 의하여 갈등을 유발하고 그 반쪽을 갖고 이념적 대결을 이용하여 내년 총선까지 바라보는 불순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과서 국정화란 1974년에 10월 유신으로 영구집권을 획책한 박정희 시대의 산물이다. 오늘날 처럼 다양화된 사회에서 과거로 회귀하는 선택없는 일방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주장은 분단으로 대치된 현실에서 북에 동조하거나 이롭게 하거나 추종하는 것은 안되는 데 그런 사상의 이론적 토대가 바로 역사교과서 이므로 그 싹을 잘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말로만 하는 얘기고 집권당의 정치농락이다. 반공이 중요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국정원과 군 사이버서는 설립취지대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않고 대선에 개입하여 야당후보를 비방하고 여당후보의 당선을 위하여 복무했는 가? 부터 답을 해보라(법원의 유죄판결) 사실 국정화가 된다고 하여도 결코 원하는 대로는 안된다는 것을 모르나 7-80년대 국정화로 교육받은 세대들이 같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며 다르게 생각하고 성장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입으로만 하는 평화통일은 그만
이북과 대치 국면에서 군사장비의 현대화를 위한 국방부와 방사청은 왜 그렇게 비리가 많는 가? 이는 결국 안보를 이유로 군우위의 정책으로 인한 안보정국을 주도하고 자기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인 모략인 것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북한은 제 국민조차도 먹이지 못하는 지경이고 핵무기 운운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미국과 남한의 엄살이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지금 누구도 북을 동경하지도 않고 지지하지도 않고 있다. 다만 북을 바라보는 눈에는 과거와는 다른 것이 있다면 적대와 멸공의 대상이 아닌 분단극복과 평화통일로 하나가 되야할 민족야이는 것이다. 그런 뜨거운 마음이 없다면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근, 현대를 보면 이 민족의 분단은 구한말 4대 열강들의 이해에서 기인한 전쟁의 결과다.  그리고  국토의 분단으로 체제경쟁으로 갔고 이제 우리는 북의 30배가 넘는 경제력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분단의 고착화는 우리의 정치와 사회문화, 언어와 예술 모든 것을 반토막 내고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우선 남한 정부만 놓고 말한다면 우리는 지난 70년간 말로는 민족통일을 말하지만 공산주의 비방에 집권당들의 정권안보를 위하여 이용하여 왔다. 남한의 국가보안법은 겉으로는 국가를 지키는 법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정권을 지키는 법으로 악용된면이 크다. 북한도 자기 체제를 치안법으로 유지하고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법은 내부의 정적이나 반대자들을 죽이는 일에 더 많이 이용되였다. 이렇게 남한정부는 국가보안법으로 북한은 3대 세습과 허망한 통일론에 기초해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단 70년이 지난 지금도 남과북의 권력자들은 여전히 입으로는 통일들을 말하지만 남한은 흡수통일을 북한은 적화통일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도 민족통일에 대한 염원을 온몸에 짊어지고 희생한 이들이 있었지만 지속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이어지거나 올바르게 평가 받지 못했다. 한국전쟁이전에는 김 구 선생의 단독월북과 5.16 군사혁명후에는 박정희 형의 친구 황태성의 월남과 사형, 그후 손원일 제독의 월북, 문익환 목사의 월북과 김일성 면담 청년 학생대표 임수경과 문규현신부의 방문등이 있었고 최근의 신은미씨의 방문등도 통일을 위한 남북한 대화의 물고터기와 기반조성은 커녕 통일논의를 더 경색시켰다.

김영삼 정부 들어 최고 지도자로써는 처음으로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을 기약하고 고대했지만 그의 사망으로 이루지 못했다. 정치 지도자로써는 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리고 박근혜 의원이 민간인 신분으로 김정일을 만났다. 그리고 고 노무현 대통령도 말기 말 방북하여 정상회담을 하지만 이런 만남으로 6.15등의 결실이 민족의 통일논의의 자산으로 진전되거나 정작되지 못하고 겉으로는 대화하고 안으로는 총질들을 해냈고 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내내 조건부 대화와 박근혜정부 3년차 까지 남북한 관계는 한발자욱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서 통일기도회가 유행이다. 통일을 논하는 것은 귀한 일이나 대형교회나 연합단체들의 행사는 늘 그렇듯이 모였다가 흩허지는 형식을 답습하고 있다. 그것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조성을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실천들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족화해를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이나 장애물들이 무엇인지 그것을 직시하고 해소를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그런 고민들은 없다. 올해 초 교회연합단체들도 판문점에서 광복 70주년 기념 “통일 기도회” 로 부터시작하여 우후준순식으로 하다가 지난 8월 9일 시청앞 기도회로 통합된 것은 다행이지만 역시 행사에 그친 면이 있다.

아직도 이런 기도회를 주관하는 이들의 면모을 볼때 정부주도의 통일론과 보수층을 대변하는 개인과 단체들이다. 기도 모임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지만 늘 그랳듯이 드러내기 보여주기식의 일이다. 이들의 주장하는 평화통일 기도회는 평화통일 조성을 위한 기반조성이 아닌 구호성으로 "주여 통일을 주시 옵소서" 인데 통일은 구호로 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번 시청앞 통일기도회가 그나마 천만 다행인 것은 과거와 같이 일방적인 정부지지와 극단적인 보수단체들과 같이 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지적한바 있다. 보수적이라 할지라도 기독교 나름의 진짜 목소리를 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그러나 대형교회 위주의 모이기 보여주기식의 통일논의 보다 차분한 연구가 필요하다.

과거와는 진 일보한 기독교의 통일행사
우호죽순처럼 통일이라는 주제로 많은 행사들이 열리고 있지만 통일논의에 대한 수준은 과거 인식에 머물러 있다.  거의가 동서독의 통일의 시발인 동독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의 작은 촛불기도회에 의미와 기원들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이 기도회는 독일 통일의 여러 가지 노력중의 한가지지 유일한 것은 아니었다. 기도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서독정부와 교회는 기도하면서 행동했는 데 통일까지 많은 경제적인 댓가를 지불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와 같은 귀하게 시작한 대중적 통일기도회가 통일운동 혹은 통일지상주의 식의 제자리 걸음을 되지 않아야 한다.

작금의 통일논의에서 민간은 배제되고  공안정국과 종복몰이식의 적대적 통일론의 포로가 되어 그 논의의 주제나 장을 넓혀가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정부도 책임이 있지만 민간차원의 통일운동단체들의 편향성도 문제다. 따라서 지금은 통일논의의 기반을 넓히고 조성하는 데는 주력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의 통일논의는 의욕이 넘치더라도 단계적으로 교회의 정서를 고려하며 가야한다.  일반인들이 북한주장과 동조하는 듯한 오해를 하지 않토록 주의해야 한다. 모든 것은 단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의 상식적인 교회와 신자들이 받아드릴 수 있는 수준의 통일논의가 필요하다.

척박한 기독교의 풍토에서 그나마 우리교단에서 민족의 통일을 위하여 신학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선구자적 노력을 한 선배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와 업적은 평가되지 못한 체 현역에서 은퇴들을 하고 기억에서 지워져 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선진들의 노력과 신학 신앙을 좀더 우리가 전수받고 기념하며 도약할 수 있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 이유로는 현재 장신대 안에서 하고 있는 역사교과서 찬반 논쟁이 원치않게 이념의 문제로 비화되여 사회전반으로 확대되여 때 아닌 정신교육을 받고 있다는 지경이다. 그런의미에서 다시 한번 이런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된 순수한 젊은이들과 전향자들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민족의 통일에 대한 중요성이 다시 한번 부각되야 한다. 어떤 비용과 희생을 통해서라도 평화통일이 중요하다는 이유를 우리는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4일 DMZ에서의 지뢰폭팔로 시작된 전쟁공포는 일촉측발로 긴장이 되었다. 우리군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지난 11년 동안 중단된 대북방송을 재개 하였고 북은 더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예고한 바대로 저강도의 공격을 가했고 우리는 이에 대한 상승대응을 하였다. 남북은 준전상태로 들어간다. 때 마침 남과 미군이 하고 있는 합동군사훈련과 맞물려 긴장이 고조되어가고 있었다,. 마침 중국이 의욕적으로 준비중인 전승절 열병기념식에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하였고 미국과 일본 또한 남과 북의 우발적인 충돌에 대한 부담으로 겨우 봉합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가 민족에 기여하는 일은 가장 어려운 일을 감당하는 일이다. 그것은 우선 정부가 독점하는 통일논의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그 물고를 트는 일에 나서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기독교가 민족화해를 위한 가시적인 중보적 노력을 하기 위해서 한가지라도 실천적인 것을 해야 한다. 즉 지금 가장 첨예한 것은 남북간의 군사적 대결과 긴장을 완화하는 차원에서 현재의 정전협정(휴전)을 평화협정으로 상호 불가침(전쟁금지)을 하자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일을 외면하고 있다. 만약 한반도가 통일여건이 성숙되고 긴장이 완화된다면 미군은 태평양에 있을 명분을 잃게 된다 미군은 북한과 중국의 벨트인 공산주의 도미노를 이유로 일본과 하와이 제주도에 함모기지를 두고 있다. 그 외에도 남북대회의 걸림돌인 팀스피리트 훈련이나 대북 삐라살포, 상호비방을 중지하라고 하는 것 까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남한내의 평화통일 세력이나 진보운동들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운동을 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일방 두둔으로 오해할 수 있는 행동을 주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전시에 준다는 상태가 되고 초법적으로 적과 내통하는 세력 색출을 한다는 이유로 전국적인 검문검색의 강화로 민주화 진보세력을 색출하거나 야당등 정치세력을 무력화 하려는 시도도 나올 수 있다. 이것은 다 역사적으로 근거있는 일이다. 독일, 이태리 리 스페인 일본등에서 역사적으로 그런 전력이 있다.  이미 우리는 국장원장도 군인출신, 청와대 안보도 김관진 전 국방이었다.  군우위의 정치운영을 하고 있디. 그러나 군에 대한 문민통치가 안되면 필연적으로 군사우위의 국가관을 형성하게 되는 데 현재 줄줄세는 국방비 40조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외교와 국방을 총괄하는 국무장관은 민간인이 한다.

국가가 독점한 전쟁정보는 일반화해야 한다. 
앞으로 전쟁은 군인들의 싸움이 아니다. 전후방의 개념도 없다. 최고의 희생자는 여성과 아동이다. 더 이상 전쟁으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전쟁은 국가나 군부가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 우리에게 전쟁에 대한 증오와 평화에 대한 갈망을 키워야 한다.  평화운동의 영역과 구호도 다양화 되고 담대해졌다. 지난 5월 DMZ에서의 국제 여성들의 평화 행진도 그렇고 평화세력들의 움직임과 관심이 크게 확대된 결과이다. 이와같이 통일은 분단고착화 비용과 비교하여 볼때도 결코 손해가 안되는 것이며 특히 이로 인한 남한내의 갈등지수가 도를 넘었다. 이 문제들은 남북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이 되면 해소될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미 양국 군이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북한의 도발에 한미동맹의 강력한 힘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으로 볼 때, 박통이 10월에 미국을 방문하면 반드시 '사드 배치'가 논의가 될 것이고, 이번 사건은 사드 배치의 정당성에 힘을 실어 줄 것이다. 오바마와 이미 세 번 만난 박은 사실 ‘사드 배치’ 외엔 미국을 방문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 이미 미국산 무기를 11조나 사 주었는데, 이제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미국에 퍼부어 주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결국 미국의 전략은 한국과 일본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고, 한국 정부는 그에 충실한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말로는 영원한 '우방'이니 '전략적 동반자' 운운하지만 미국의 속셈은 미국산 무기 판매에 있다. 돈빌려주고 말 안 들으면 파산나게 자본 빼돌리는 것이 강대국들의 수법이다.  세계는 이들의 식민지다.  이것이 세계 '6대강군', 세계 11위 '경제대국'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다.  인구 5000만에 개인소득 3만 불인 나라에서 전쟁이 나도 작전권이 없는 나라다. 수구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안보’를 가능하게 하는 데는  바로 미국산 무기 구입이 전제된다. 특히 우리공군의 주력사업인 KFX 신형기 도입은 록히드사의 첨단 레이더 기술 이전을 반대하는 미국정부로 인하여 난항을 겪다가 국내개발를 한다고 하는 데 사든 만들든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자주국방이 아닌 전쟁특수 비즈니스인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709963.html

노크귀순, 숙박귀순을 갖고 남한동경으로 둔갑이나 시키는 주제에 무슨 얼어죽을 안보인가? 애먼 서민들 자식들만 부상당하고 죽어나가고 있다. 그러니 자주 국방을 외치던 노무현 대통령이 재평가 되는 것이다. 언제까지 미국의 도움을 바라고 미국산 무기를 사줘야 하는 것인가?’ 이제 지상군이 무력화 되는 사드를 배치하기 위해 수십 조의 돈을 또 준비할 수 밖에 없다. 돈 없어 복지 공약 파기한 정부가 미국을 뻔질나게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렇게 한치도 앞도 못 내다보는 이들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 한반도의 진정한 미래는 미국에 의해서가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일본등 4강외교에서 우리의 실익을 어떻게 갖고 올 것인가가 중요한다. 전쟁장비 구매로 인한 군사력 우위의 안보가 아니라 국제정치로 북한의 개방을 통하여 우리가 중국과 유럽 진출을 하는 것이 남는 장사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가 앞장서서 북한방문을 해야 
우리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위한 화해는 장기적인 과제이니 영속성과 안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과거와 같이 행사위주의 평화통일과 광복기념에 묻혀버린 통일이벤트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 형성을 위한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이 민족의 제단에 교회는 희생재물이 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가 그 신앙의 가치대로 평화와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 난국을 하나님께 기도하고 연구하고 민족통일 논의의 공간을 확보하고 진전시켜야 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전문가, 탈북자, 해외학자등과 네트워킹하는 민족화해의 모임을 확장해 가야 한다. 그런의미에서 이미 명성교회 매주 월요일 여는 통일기도회의 실질적 리더인 김삼환 목사와 임원들이 전격적으로 북한방문도 하고 남북간의 꽉 막힌 교류를 열어줘야 한다.   

각 신학대학에도 신입생은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교양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장차 민족의 지도자들이 제대로 된 통일관과 평화관 없이 현장에 나오는 것은 안된다고 본다. 그 과정을 통하여 기존의 교수님들도 재교육을 받으시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김철홍 교수가 좌충우돌 전개하는 논리에 침묵하는 다수의 교수님들의 마음도 이해를 하지만 이 정도 나갔으면 교수회든지 총장이나 이사회가 자중하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아니면 신학교육부라도 나서서 제어를 하면 좋겠다. 우리가 학창  시절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과 민중과 민족 모순을 위하여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책을 보고 나름대로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과거의 일이다.  역사의 발전과 철학이라는 것도 이것 저것 귀동냥을 하였지만  동구의 몰락을 보고 북한의 왕조형 3세 세습에 대해서 받아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진정 모르는 분이라면 교수자격이 없다.  

이념의 시대에서 이익의 시대로  
지금은 21세기다. 이미 80년대 초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Enemies)“에서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는 ‘열린사회’ 라고 하였다. 폭력적인 혁명은 자유를 파괴할 뿐이며, ‘열린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는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 을 제시하였다. 이 책은 20세기 전반 유럽을 휩쓴 나치즘과 마르크시즘이라는 전체주의 광풍의 정체를 밝히고, 자유주의 이념을 수호하고자 하는 의도하에 구상된 것이다. 이 책에서 포퍼는 전체주의의 폭력이 초래한 불행한 사건들과 그 배경을 좀더 근원적으로 이해하고자 했고, 언제 되살아날지 모르는 전체주의의 깊은 뿌리를 플라톤, 헤겔, 마르크스 같은 서구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의 잘못된 교설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철저히 파헤치고자 했다

실천철학으로서의 마르크시즘의 효용성은 끝났지만 역사철학, 비판철학, 혹은 분석철학과 학문으로써의  효능은 여전히 유효하다. 실제로 공산주의 국가들이 무너졌고 수정주의 혹은 개량적 자본주의 길을 걷고 있지 않은 가? 더 이상 공산주의, 사회주의국가 건설이라는 실험은 끝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김 교수는 아직도 우리사회를 북한이 원하는 혁명적 적화통일을 위하여 복무하는 이들로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야 하고 자라나는 학생들이 오염이 안 되도록 국사 국정교과서를 제정하자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을 반대하는 적들과 펜대로 전쟁를 불사하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말은 한 마디로 만화를 보는 느낌이다. 교수고 학생이고 그런 사람과 무슨 논쟁을 할 수 있겠는가?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라 입을 닥치던지 항복을 요구하는 식의 논조다.  선생으로서의 기본이 안 된 자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이 민족이 분단으로 인하여 치루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다. 그럴 시간에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민족의 통일은 이 시대의 이념과 갈등, 광기어린 정신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더 이상 남과 북의 집권층이 안보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이 길밖에 없다. 그러나 주변의 4강은 결코 우리의 통일을 원치 않는 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들은 우리의 분단이 영구화를 통하여 군비를 강화하거나 장사를 하거나 대결을 통한 막대한 경제적 수익을 올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라고 교회도 놀아나는 것이다.  통일을 국시로 민족의 화해와 통일에 희생의 제물이 되는 것이 바로 치유와 화해, 생명의 가치라고 본 올해 100회 총회의 주제가 의미심장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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