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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교회 문제 어디로 가나?16일 판결은 못 나올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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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15  16: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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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교회 문제 어디로 가나? 

명성교회가 우리교단 교회를 대표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명성교회를 바로 세울 수 있다면 한국교회의 개혁에 큰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지난  2014년 명성교회 재정을 맡은 박 장로 사건이 터졌다.  당시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아 예장뉴스가 사명감을 갖고 보도하기 시작을 했다.

당시 프레시안에 제일 먼져 이 문제를 제기한 윤재석 집사(전 중앙일보 기자)와 같이 보도를 하다가 제소를 당하여 2년여 재판을 했다. 당시 세습을 경고하는 글도 썼지만 명성은 공개적으로도 그렇고 세습은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이 점을 들어서 최삼경 목사는 비판중)

명성의 규모나 구조로 보아 후임은 누가 오든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충현교회 원로 김창인 목사가 휠체워를 타고 나와 미국에 사는 자신의 아들을 불러 억지 후임으로 세우고도 당회원들의 분열로 교재산분쟁이 나자 급기야  아들을 비난하는 것을 보고 이제 아들도 못믿는 다는 말도 나왔다. 명성이 세습을 한다면 그것을 우리가 막을 수 있을 까? 계산을 했는 데 상처는 줄 수 있지만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박장로 비자금 사건은 사회법정에서 규명되었고 명성교회 재정씨스탬도 변화를 가져왔기에 나름대로의 성과는 있다고 보았다. 재판을 받으면서 언론이란 문제를 제기할 뿐이지 나서서 무슨 일을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사건에는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고 언론은 그것을 해석하고 전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생각이다. 

신문은 보는 사람이 없으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예장뉴스가 존재하는 것은 보는 사람이 있고 지지해주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문은 독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독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고 문제를 공론화 한다는 의미다. 그런의미에서 명성교회 문제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지만 중간평가를 해본다. 

세반운동은 개혁운동의 큰 성과

세반운동은 우리에게 큰 성과을 주었지만 그 상처도 만만치 않다.  개혁운동의 전선이 넓게 형성되었고 단결한 것은 성과다. 개인화되고 분화된 동문들이 한가지 사안으로 한 목소리를 낸 것도 큰 유산이다. 이런 생각을 갖은 젊은 목회자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우리교단의 자랑이다.

그러나 상대인 명성교회는 그렇게 간단한 곳이 아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규모 그 이상이다. 교회의 운영방식이나 정서도 그렇고 이해할 수 없는 곳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그것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단의 법이나 윤리, 정서라는 잣대만으로 재단하고 볼 수 만은 없다는 얘기다.

우리가 비판하는 성공주의 리더쉽은 명성만 있는 것도 아니다. 개척하여 어느 정도 자립한 목회자들에게 공통으로 있는 것이 바로 있는 제왕적 목회다. 적던 크던 하나님이 다 하셨다고 겸손을 떨어도 나는 해냈다는 자부심은 내려놓치 않는 다. 이것은 "너는 왜 안되는 데 하는 교만이다"  그렇게 키운 제 재단을 누굴 주겠나?  세습을 비판하지만 어떤 경우는 세습보다 더 못한 곳도 많다,

어느 곳이나 사임을 앞두고 후임자를 정하는 쉽어 하지만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교회를 가장 잘알고 후임자가 어떤 분이 좋을지를 가장 잘안다고 할 수 있지만 교회가 반대하면 못한다.  아버지에게 질렸는데 아들 세워놓고 뒤에서 연장 목회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잠이 안오는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임자에 대한 생각조차도 없다면 그는 교회에 애정이 없는 사람이다. 기회만 주어지지 않았지 자기 후임을 정할 기회를 준다면 마다할 사람은 없다고 본다. 어떤 분들은 아예 다른 교단 목사를 데려오기도 하고 자격이 안되는 사람도 데려 온다. 왜? 그가 자신의 뒤를 이어 목회를 잘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하고 자기가 이룩한 교회의 목회 유산을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우린 이 점을 이해해야 하는 데 자립하는 정도라면 내가 이 교회를 어떻게 해서 키웠는 데 누굴 주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대자들이 역지사지로 내가 그 위치라고 생각해보고 반대라도 하는 지 모르겠다. 실제로 김삼환 목사 자신도 나라도 부자세습에 대하여 시셈은 날 것이라고 한 바 있다고 한다.

선 무당이 사람잡아

특히 모으고 키우고 그것으로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우고 약점을 카버하고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성공적인 목회의 유산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이런 점을 교수들이나 기관 목사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교수들이 유난히 법과 상식을 들어 세습을 못마땅해 하고 반대하는 것은 목회현장을 모른 다는 비판도  있다. 

목회로 인생을 걸고 교인들과 가족의 생계와 월세를 걱정하며 눈물 흘린 것을  목회자들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교회 일반론을 들어 교회를 비판한다고 공헌배 목사는 비판하고 있다. 그 말을 100% 동의 하지는 않치만 이건 바닥에서 목회하는 대다수의 목회자들이 갖는 정서다.

교수들중 좋은 부모만나 좋은 학교서 편히 공부하고 학비나 임지 걱정 없이 학교 학창시절 보내자 마자 유학간다. 장학금 받고 공부하고 애들은 외국에 두고 박사되어 돌아오자 마자 교수되고 높은 년봉받고 대형교회에서 협동목사로 보내는 분들이 과연 목회현장의 아픔과 목회자들의 고뇌를 알까? 한번도 자리와 돈 걱정을 해본적이 없는 분들 말이다.

장신대 교수들이 교단법이 금지하고 목회자들이 동의하지 않는 명성교회의 목회 대물림에 대하여 비판의 목소리를 낸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본다. 학생들을 봐서라도 세습반대를 한 것은 큰일을 한 것이다: 다만 교수라는 직책을 외면하고 교단 문제를 너무 길게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이다.     

신학교와 학생들은 할 만큼 했다.

만약에 교수들이 침묵했다고 하면 한 교회인 명성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한국교회에 전체에 대한 배신이 될 수 있다. 장신대 교수들은 이보다 더한 현안에 대해서도 집단적으로 발언하고 나선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유독 이 문제에 대하여 교단에 맡겨두지 않고 나서서 발언들을 하는 중이다.

그러나 배경은 여러 가지다. 세교모 교수들의 의식수준도 있고 대형교회 부임못한 맘도 있는 지는 몰라도 학교의 변화를 바라보는 이들의 물가리에 대한 희망도 없잖아 있어 보인다. 하여간 장신대 교수들은 어려운 일을 해왔고 그 정도면 충분히 의사를 표현했다고 보여진다. 이제는 무엇이 교단과 학교를 위하는 일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반운동이 길어지니 개혁에 대한 피로증이 있다. 세반 운동의 사기나 의욕도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다. 사실 한두번도 아니고 당사자가 아니면 이 문제에 지속적으로 메달리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이 싸움의 주체인 서울 동남노회 비대위나 신 임원진의 전략부재도 한 몫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대위가 이 문제가 장차 어떤 결과를 갖아 올 것인지를 예측하지 못하고 나섰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자기노회에서 안되니 밖으로 갖고 나간 것인데 이러니 외부인만 의지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재판도 안한다고 하다가 하는 것도 이율배반이다. 싸움은 명분인데 이겨야만 승리가 아니다. 지더라도 안되더라도 개혁과 명분만 있다면 장열하게 전사를 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명성교회 세습은 잘못이고 그러니 그것을 반드시 내가(우리)가 되돌려 놓고 말겠다는 것은 사실 만용이고 한심한 일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억울하여 법에 제소를 하고 내가 끝장을 보겠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저항의 방식도 철저하지 못했는 데 야속한 말이지만 금식을 하려면 들려나올 때 까지 가는 결기가 있어야 한다.

재판국 결정은 존종해야

현재 명성교회나 동남노회 관련한 문제는 법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으로 나눠서 볼 수 있는 데 우선 법적인 것은 16일(화)에 나오는 총회 재판국의 재심 판결이다. 재판국원들 사이에서는 심도 있는 논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좋은 모습이다. 그런데도 재판국이 이 문제를 끌어앉고 뭉게고 있다고 하고 돈에 넘어갔다고 비난하는 데 예의가 아니다.

순수하게 법리적으로만 본다면 지난 103회 총회에서 총대들이 재판국 보고를 안받는 다고 한 것이 화근이다. 재판이 무효기 되었으니 원심은 없어졌고 따라서 재심은 불가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총대들이 감정만 앞섰지 법과 원칙을 한귀절에만 과다하게 적용한 오류다. 여론의 힘은 진실이 아니다. 따라서 이 건은 파기되도 할말이 없다는 소리다.

이건 사실인데 이후 총회장도 폐회직전 재판국 보고 안받을 수 없다고는 언급하지만 번안동의가 없었기에  재판국은 탄핵되었고 그 판결은 사라진 것이다. 총회재판국은 판결은 종결이다. 따라서 보고를 받지 않을 수 없는 건이다. 잘못된 판결도 판결이라는 말이다.

또 하나는 이 법의 근거가 되는 28조 6항에 대한 미비다. 101회기 총회 헌법위원회에서부터 시작하여 나오는 중인데 이를 102회기 임원회는 받지 않거나 지연했다고 비판으로 이는 총회의 귀책사유다. 헌법위의 결정은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지 그대로 구속력을 갖지는 못한다.

총회가 헌법위 해석을 묵살하는 것은 잘못이다. 총회헌법위는 헌법에 대하여 판단할 권한을 갖는 이상 총회는 이를 따라야 한다. 그런데 임원회가 어떤 이유를 들어서 건 그 해석을 바르게 받아드리지 않는 다면 이는 총회장의 귀책사유다. 따라서 총회헌법위의 수정 개정 보완 지시가 있었다면 이것을 실행했어야 한다.

이 법의 개정은 불가피 하다.

다음은 교회의 자유권과 직원 선택의 자유권인데 새롭게 제기된 것이다. 나름 타당한 논리다. 그러나 목회대물림 금지 법은 개정되지 않았기에 현존하고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지켜져야 한. 따라서 명성교회는 세습이 아니라 청빙이었고 민주적으로 했다는 식의 논리는 반대자들에 대한 올바른 답이 아니다.

오히려 명성교회는 헌법이 개정되지 않았음에도 교회의 필요라는 이유로 김하나 목사의 위임을 강행한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위임식은 교회가 스스로는 못하는 것으로 상회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포된 것이니 물릴 수 없다고 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다른 방식의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해야 정직한 것이다.

결국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가 위임식을 한 것에 대한 도의적 책임은 명성교회일지 모르지만 법적인 책임은 당시 대리당회장과 노회다. 위임청원을 허락해주고 위임식을 한 것이다. 따라서 법을 어긴 치리회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중으로 지금 법적으로 그것의 효력을 다투는 것이다.

따라서 1심은 합법으로 명성교회의 손을 들어주었고 현재 재심을 기다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재심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세반운동가들은 재심을 법대로 하라는 주장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자기들이 원하는 판결로의 주문이다. 재판국에 의뢰를 한다는 것은 반반이다. 반드시 이기는 것은 없다는 전제를 무너트리는 것이다.

법적인 것과 정서적인 것

그러나 재판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어떤 판결이 나올지 모르는 일이고 작년 재판국원 구성이 친명성인사들이라고 하여 전원 교체를 했음에도 여전히 지금 재판국원들도 넘어갔다고 하는 등 지나치게 재판국을 의존하면서도 의심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니 언론들이 춤을 추고 총회가 휘둘리는 것이다.

그러니 ‘세정연’이 나오고 급기야 법리무서의 원로들 까지 나서는 것인데 이 분들의 행동은 비판할 수 있지만 말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것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판결이 나오든 양측은 승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재판국은 오는 25일로 예정된 임시노회를 무시할 수 만은 없다.

여기서 임원이 개선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판국은 그 뒤로 연기하는 것도 방안이다.  혼자 져야 할 짊을 좀 나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거디다가 현재 상황을 인정하지 않는 신임원회가 인임시노회 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올무가 될 수도 있다고 보여진다.

비대위와 신임원회의 오판

원고인 김수원 목사가 임시노회 노회청원을 수전위원장만 건 것이 아니고 총회장과 남삼욱 목사, 이종순 장로등 피고를 너무 많이 거론한 것이 패착이다. 거기다가 자신의 노회장 지위 보전도 걸었다고 하는 데 스스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감이 있다. 그래서 법원은 추가 자료를 오는 17일(수)까지 보완하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피고가 되는 총회 임원회의 결정이나 수전위의 파송은 교단의 최고기관의 결정이기에 큰 불법이 아닌 이상 무효로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소리다. 따라서 오는 25일에 임시노회가 열리고 임원이 개선되면 상황은 일단락 될 것으로 보여 재판국 판결은 이후로 미루워질 우려가 크다.

비대위는 이 외에도 노회장 사칭만이 아니라 행정행위를 하고 노회 직인을  위조하고 사무실 무단 침입과 같은 건으로도 고소가 되어 잘못하면 명분없는 파렴치범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다면 헌법수호라는 큰 명분은 실종되고 엉뚱한 문제로 전락될 수가 있는 데 이 모두가 전략부재와 감정적 대응이 가져온 세반운동의 실패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명성교회 문제가 노회를 마비시키고 총회와 사회적으로도 크게 이슈화가 된 것에 대한 좋지 않은 비판여론도 문제다. 길거리 집회나 외부 언론들이나 다른 교단사람들이 나서서 교단을 공격하고 총회장과 치리회를 비판하게 하는 발판을 제공하고 이들과 합세하는 듯한 처신이 세반운동의 이반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임시노회로 조직이 정상화되면 모든 것을 노회로 들어와 화합과 통합의 치유가 필요하다. 모든 아픔과 원인은 자신들의 부족이고 연약함이라고 고백하고 누구를 탓하기 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야 한다. 그후에 김수원 목사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명성교회는 헌법위반

우리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명성교회는 우리 교단법이 금한 목회대물림법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이들은 명성교회를 돕는 다고 할지 몰라도 돕는 게 아니라 어렵게 하는 것이다. 문제의 28조 6항에 대하여 헌법위의 수장과 개정 요구 제정시의 논의부재와 노회수의 없는 특별법으로의 졸속 결정등에 대한 비판적 여론과 개정요구를 받고 있지만 여전하다. 

따라서 명성교회는 자신들이 법을 어기도록 원인을 제공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야한다. 그런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는 소속 노회가 알아서 하면 되는 게 우리 교단의 법이고 정서된다. 우리에게는 사회법과 같은 형법이 존재하거나 검사가 없다. 기소위원회가 검사의 역할만 할 뿐이다. 따라서 고 당회 노회 총회는 상하종속적 질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치리회의 과오를 면책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시 위임을 허락해준 노회장을 직무정지(선거무효) 시킨 것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위임식에 대한 효력정지다. 이 결론은 어떻게 나오던지 승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나야 한다. 치리회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그 교회에 관한 것은 노회가 판단할 문제다.

노회만 정상화되면 누구나 남의 노회 문제를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 따라서 법을 어긴 교회를 치리해라 어쩌라 하는 것은 입만 아픈 일이다. 교단을 나가라는 말이나 내쫒으라는 것도 파괴주의지 대안은 아니다. 자식이라고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것 이상을 하게 되면 그 가정은 파괴 될 수 있다.

잘못을 한 사람이 고치던지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지우던지 회개를 하던지 하는 방식으로 패널티를 주어야지 교회의 정서상 강제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세습철회를 놓고 개인적으로 어떤 결단의 행동은 보여주는 것은 모르나 집단으로 항의 집회나 자학과 비난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대형교회 공격으로 낙수효과 노리는 이들

지금 일반언론들이나 기독교언론의 다수도 세습 그 자체 보다 명성교회를 향한 비난의 열을 가하고 있는 데 이것은 뉴스 소재와 독자관리와도 관계가 있다. 일단은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연계로 사랑의 교회의 오정현 목사나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나 이만희, 김기동, 조용기 목사등을 엮으려는 시도가 있다.

여기에 같은 교단의 개혁 구룹이 같이 춤을 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자체의 이론이나 논리로도 충분하게 비판을 할 수 있고 여전히 면죄부는 주어지지 않았으니 기다려 볼일이지 문제를 여론화 하려는 정치적 태도는 자제해야 한다. 작금에 선교단체나 실험형 분가형 교회들이 대형교회를 흔들어서 젊고 유능한 교인들 이삭줍기 하려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고 흔들어 댄다면 이길 장사는 없다. 그러면 교회를 떠나는 이들이 나오게 되어 있다.  편하고 조용하고 민주적이고 평신도들을 주체로 하는 교회에 관심이 갖을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명성교회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법을 어긴 것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로 복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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