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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의 좌파바람(?), 그 실체와 전망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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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1  21:4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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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바람(?), 그 실체와 전망

진보평론 제28호(원영수, 노동자의힘 기관지 편집위원장) 2007년 4월

1. 들어가며 - 남미좌파의 연이은 돌풍과 아이티의 비극

2005년 12월 18일 볼리비아의 좌파 에보 모랄레스 후보가 대선에서 54%의 지지율로 당선되면서 남미의 좌파바람은 그 정점에 올랐다. 2006년 1월에는 칠레 사회당의 여성후보 미첼레 바첼레트가 결선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한번 대세임을 확인했다. 그리고 현재 페루에서도 제2의 차베스라고 불리는 오얀타 우말라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대선 1차전에서 30.4%의 득표로 승리를 거둔 다음, 6월초 알란 가르시아 후보(24.3% 득표)와 결선을 앞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 7월 2일에 예정된 멕시코 대선에서는 민주혁명당(PRD)의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가 선두를 달리면서, 민주혁명당에 의한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대권에 재도전하는 니카라과 산디니스타혁명의 영웅 다니엘 오르테가의 당선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면 중미의 일부 국가와 콜롬비아를 예외로 치면 라틴 아메리카 대륙 전체가 좌파정권 하에 놓이게 된다. 미국의 부시정권이 석유자원과 중동의 지정학적 패권을 위해 자행한 이라크 전쟁(?)에 발목이 묶인 동안, 미국의 뒷마당에서는 라틴 아메리카 좌파의 거센 도전이 미국 제국을 아래로부터 뒤흔들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거센 좌파바람은 라틴 아메리카의 지정학을 바꿔내면서, 21세기 국제질서에서 새로운 흐름을 형성할 수 있을까? 또 단지 경제적 지역블록을 넘어서, 냉전종식 이후 미국주도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대안적 국제질서를 형성할 수 있을까? 19-20세기 제국주의의 지배 하에서 민중해방을 지향한 라틴 아메리카의 볼리바르 해방주의 프로젝트는 과연 전세계 민중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기할 수 있을까?

국내외 제도언론이 남미의 좌파바람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보도와 분석을 내놓았지만, 카리브해의 작은 나라 아이티의 비극에 대해서는 일종의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한다. 지난 2월 대선에서 우여곡절 끝에 르네 프레발 후보가 승리를 거두었다. 2004년 2월 28일 미국, 프랑스, 캐나다의 공모로 장 밥티스트 아리스티드 대통령을 협박과 강제로 추방했던 불법 쿠데타 이후 2년 만에 아이티 민중은 다시 한번 아리스티드의 동지 르네 프레발 후보를 선택했다.
1990년 아리스티드의 압도적 승리, 1993년 쿠데타와 아리스티드의 미국망명, 1995년 대선 불출마의 밀약 아래 아리스티의 귀국, 2000년 아리스티드의 극적인 재선, 그리고 2003년 우파 무장세력의 내전, 그리고 제국주의와 공모한 반동 쿠데타. 시대의 조류와 무관하게 아이티를 휩쓴 정치적 격변과 유혈사태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카리브해를 짓누르는 제국주의와 그에 맞선 민중투쟁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 2009년 당시 중남미 국가들의 좌, 우파 정권표
2.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바람

외형상 남미의 좌파바람은 최근에야 제도언론이 주목지고 있지만, 그 흐름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그 첫 출발은 1998년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의 압승이었지만, 2003년 1월 에콰도르 루시오 구티에레스의 승리와 함께 우발적 사례로 무시되었다. 2003년 10월 브라질 룰라가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일정하게 좌선회에 대한 가능성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2001년 아르헨티나 경제위기 속에서 2003년 4월 대선에서 승리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가 덧붙여졌다.
그러나 좌파정권이 연이어 집권했음에도, 이 시기의 좌파바람은 ‘찻잔 속의 태풍’ 또는 예외적 사례 정도로 치부되었다. 왜냐하면 차베스를 제외하면, IMF의 압력에 굴복한 브라질의 룰라든,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면서 IMF에 저항하는 키르치네르든 대개 미국 제국주의가 주도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지정학을 바꿀 정치적 의도는 사실상 전무했기 때문이다. 또한 2000년 1월 원주민 봉기에 힘이어 집권한 ‘제2의 차베스’ 루시오 구티에레스의 경우도, 취임이후 IMF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신자유주의로 선회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외형상 좌파블록이 형성되었다고 해도,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의 계급투쟁을 제외하면 신자유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남미의 ‘좌파 도미노’ 현상은 주목할 만한 흐름은 아니었다. 룰라의 승리에 이어 2004년 말 우루과이에서 100년만의 정권교체로 확대전선의 타바레 바스케스 후보의 승리가 이어져도, 라틴 아메리카에서 ‘좌파블록=반미․반제블록’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5년 12월 에보 모랄레스가 역동적 대중투쟁에 힘입어 극적으로 집권하는 시점에 이르면 상황은 달라졌다. 쿠바와 베네수엘라, 볼리비아를 잇는 좌파블록이 더욱 선명하게 가시화되었고, 기존의 좌파에 덧붙여 페루, 멕시코, 니카라과 등에서도 좌파의 승리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최근 5월 1일 전격적으로 석유자원 국유화를 선언한 에보 모랄레스의 정치적 행보는 좌파바람의 새로운 상징이 되고 있다. 2002년 코카재배 농민운동의 지도자로서 새로운 좌파정당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MAS)의 지도자로서 대선에서 출마했던 정치적 무명후보 모랄레스는 당시 미국대사의 정치적 협박("만약 모랄레스가 승리한다면, 미국은 볼리비아에 대한 경제지원을 중단할 것이다.")으로 일약 정치적 스타로 떠올라 당시에 당선된 산체스 로사다를 불과 약 1.5% 차이로 추격하였다. 그리고 2005년 그는 볼리비아 역사상 처음으로 대선 1차 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고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이 되었다.

< 남미의 주요 대선과 좌파정권의 등장>
1998년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2002년 11월 에콰도르 구티에레스
2002년 10월 브라질 룰라 대선승리
2003년 우루과이 타바레 바스케스
2005년 12월 볼리비아 에보 모랄레스
2006년 1월 칠레 미첼레 바첼레트
2006년 4월 7일 페루 대선: 오얀타 우말라 후보 대선 1차 승리
(6월 7일 결선투표)
2006년 7월 2일 멕시코 대선: 오브라도르 후보 승리 유력
2006년 11월 5월 니카라과 대선: 다니엘 오르테가 승리 유력

3. 좌파바람의 실체

2003-04년경에 언급되었던 좌파바람과는 달리, 현재의 좌파돌풍의 도도한 흐름에 대해서는 거의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내외 제도언론의 분석과 진단은 주로 제도정치와 선거에 한정되어 사태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방해한다. 문제의 핵심이 과연 무엇이 이런 좌파정권의 도미노를 가능하게 하였는가 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분석보다는 주로 선거정치와 정치 지도자들의 개인적 경쟁 수준에서 다루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좌파바람을 가능하게 한 주된 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차적으로 지난 10여년간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반신자유주의 투쟁들이다.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휩쓸고 있는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의 물결은 기존 제도정당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민중봉기와 그를 통한 정권타도의 정치적 격변을 강제하였다.

<남미의 주요한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
2000년 볼리비아 코차밤바 물전쟁
2001년 에콰도르 원주민봉기
2002년 아르헨티나 봉기
2002-04년 베네수엘라 계급투쟁
반동쿠데타, 석유사보타지, 소환투표
2003-05년 볼리비아 가스전쟁
1차 가스전쟁(03. 9-10), 2차 가스전쟁(05. 5-6)

1994년 1월 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시점에 맞춰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4차 세계대전을 선포하였을 때, 아무도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현재와 같은 좌파정권의 도미노현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1999년 시애틀전투를 매개로 반세계화운동의 폭발과, 특히 라틴아메리카에서 전미자유무역협정(FTAA) 반대투쟁 및 세계사회포럼(WSF) 운동을 매개로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대륙화는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항하는 포르투 알레그레 컨센서스를 통해 남미대륙 차원의 반신자유주의․반제국주의 투쟁전선을 구축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연이은 좌파후보의 정치적 승리와 좌파정권의 출범은 사실 거대한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의 정치적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제도정치 자체의 논리보다는 더 커다란 차원의 계급정치에 의해 규정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좌파정권들은 대중투쟁과 민중운동의 정치적 볼모인 셈이다.
그리고 이런 대중투쟁의 폭발을 가져온 정치적․역사적 요인 역시 거시적 차원에서 현재의 변화하는 정치적 환경과 그 속에서 등장한 제도좌파 정권들의 행보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거시적 맥락에서 보자면, 현재의 제도좌파 정권들은 20세기 라틴 아메리카를 지배했던 질서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과도적 시기로의 이행의 정치적 산물이다.

4. 좌파바람의 정치적․역사적 배경

1990년대초 사회주의진영의 붕괴는 남미에서도 민중운동과 좌파운동의 급격한 퇴조를 가져왔다. 제국주의와 부르주아 과두체제에 저항했던 무장투쟁은 콜롬비아와 멕시코를 제외하면, 모두 포기되었다. 과거의 게릴라 전사들과 좌파들은 합법정당의 정치인으로, NGO 활동가로 변신했다. 무장투쟁은 더 이상 대안도, 주요한 투쟁수단도 아니었다.
더불어 반게릴라 작전의 명분이 사라짐에 따라 군부도 퇴각했다. 민주화운동과 민중투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군부는 민간정권과의 협상을 통해 명예롭게 퇴각했다. 물론 집권기간 중에 발생했던 범죄에 대한 면책특권을 확보한 가운데. 군은 퇴각했지만, 정치적으로 패배한 것은 아니었다.
이로써, 라틴 아메리카는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이란 신자유주의적 워싱턴 컨센서스를 실현할 역사적 기회를 맞이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인가? 연이은 경제위기와 정치적 부패, 군부정권에서 민간정권으로 바뀌었을 뿐, 신자유주의가 약속한 것은 시장의 독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2001년 아르헨티나 봉기는 전형적인 예였다. 군부의 퇴각과 절차적 민주주의 속에서, 페론주의체제는 신자유주의로 대체되었고, 그 결과 포퓰리즘 국가는 껍데기만 남았다. 2001년의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영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국가 자체가 붕괴한 것이다.

1) 부르주아 제도정치 일반의 총체적 위기

2001년 12월 22-23일 아르헨티나 봉기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외쳐진 구호는 바로 “que se vayan todos”였다. 문자 그대로 ‘모두 다 떠나라’였다. 기존 부르주아 제도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이 집약된 구호였다. 신자유주의와 부패정치의 결합은 부르주아 정치 일반에 대한 대중적 불만을 응축시켜 폭발시켰다.
이는 아르헨티나만의 상황은 아니다. 멕시코의 사파티스모는 기본적으로 ‘다른 정치’를 지향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다른 선거캠페인’을 통해 제도정치에 대해 도전하고 있다. 물론 이런 대안의 정치가 기존의 제도정치를 대체하지는 못하지만, 기존 제도정치에 대한 불만의 정치적 표현이다.
이런 맥락에서 선거와 대의제를 통한 부르주아 계급지배로서의 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만은 현재 라틴아메리카 정치의 변화를 추동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또한 이는 바로 제도정치 내에서 좌파정치의 무기력과 체제내로의 포섭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기도 하다.
현재 제도좌파의 연쇄적인 정권장악은 바로 이런 기존 지배체제에 대한 대중적 불만에 힘입은 것이지만, 새로운 대안세력의 부재 속에서 차선의 선택이자, 그동안 권력으로부터 배제되었던 구좌파세력에 정치적 기회를 부여하는 대중의 선택이기도 하다.

2) 새로운 세대의 민중운동: MST, 사파티스타, 피케테로스, 코카렐로스, 원주민운동 등

폭발적 대중투쟁을 가능하게 했던 주된 동력은 1990년대 이후 등장한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운동의 새로운 세대의 흐름이다. 1990년대 브라질 민중운동을 이끈 토지없는 농업노동자운동(MST), 1994년 그 존재를 알린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민족해방운동, 볼리비아의 코카재배농민운동(cocaleros), 아르헨티나봉기의 주역 피케테로스운동(picketeros), 그리고 에콰도르, 볼리비아, 페루 등지의 원주민운동 등 새로운 주체의 새로운 운동이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했다.
이들은 대중투쟁을 통해 아래로부터 반신자유주의 역량을 구축했으며, 신자유주의 정권을 타도하는 투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이들이 곧바로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현재로서는 이들의 정치적 이해는 기존의 제도정치를 매개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운동과 제도정치 또는 선거정치 간에는 일정한 정치적 긴장이 존재하며, 과거와 같이 일방적으로 이런 새로운 민중운동이 정치적으로 포섭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의 경우, 에모 모랄레스는 반신자유주의 민중운동의 한 부분이었고, 그는 다른 민중운동의 지도자들, 즉 펠리페 키스페 등과 정치적 경쟁관계에 있다. 이들 민중운동과 그 지도자들은 모랄레스 정권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2002년 대선이후 민중운동을 거의 독점적으로 대표하는 모랄레스의 행보는 대단히 타협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 모랄레스는 2003년 봉기에서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고, 2004-5년의 경우에는 카를로스 메사정권에 대한 협조적 태도로 인해 민중운동에 의해 탄핵받기도 했다. 모랄레스와 민중운동의 관계는 현재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지형에서 나타나는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5. 변화의 핵심동력: 차베스와 볼리바리안 혁명

1992년 군부쿠데타는 비록 실패했지만, ‘지금은’(por ahora) 바로 이 한마디가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의 미래를 결정했다. 좌파쿠데타인지 우파쿠데타인지 실체조차 불분명한 쿠데타의 한 가운데서 자칭 볼리바리안 혁명의 지도자인 우고 차베스가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989년 카라카스 봉기(Caracazo)의 잔혹한 탄압 속에서 변화하는 베네수엘라 정치의 미래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1998년 차베스는 무장봉기가 아닌 합법적 경로를 통한 혁명을 선택했다. 부르주아 정치권은 이 돈키호테 같은 인물의 돌발적 행동을 비웃었다. 그러나 대중은 그를 선택했다. 보수정치권의 후보는 5% 이하의 지지율에 머문 반면, 무명의 실패한 쿠데타 지도자가 59%의 득표율로 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여세를 몰아 차베스는 볼리바리안 혁명을 시작했다. 헌법개정실시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제헌의회의 소집과 헌법제정, 헌법에 따른 대선과 총선에 이르기까지 위로부터의 제도내부로부터의 혁명이 진행되었다.
마침내 2002년 10월 19대 개혁입법과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둘러싼 내전이 폭발했다. 극우에서 극좌까지 단결(?)한 반정부세력은 2002년 4월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러나 거리로 나선 민중의 힘에 밀려 실패했다. 2002년 12월부터 시작된 석유총파업은 차베스의 과감한 결단과 노동자․민중의 단결로 실패로 끝났고, 베네수엘라의 석유는 민중의 것이 되었다. 최후의 발악으로 볼리바리안 헌법의 민주적 조항을 악용한 2004년의 소환투표는 차베스의 최종적 승리로 귀결되었다.
이 세 번의 정치투쟁을 통해 볼리바리안 혁명은 공고화되었고, 칠레 인민연합의 악몽을 정치적으로 극복하였다. 더불어 선거와 제도정치의 의미가 변하게 되었다. 그 어떤 세력도 선거와 투표를 통해 차베스를 제거할 수 없게 되었다. 빈곤과 부패에 찌든 아이티 역시 투표로 좌파를 제거할 수 없게 된 것과 같은 경우다.
이와 같은 국내의 계급투쟁과 사실상의 내전에서 차비스모(Chavismo)의 승리는 라틴 아메리카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낳았다. 볼리바르혁명은 베네수엘라만의 혁명이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민중들에게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선거정치의 민중적 재전유에 의한 새로운 경로의 혁명이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더불어 민중투쟁으로 장악한 막대한 석유자원을 매개로 한 베네수엘라의 반제국주의 정치는 미국의 개입력을 무력화시켰고, 이는 반제투쟁의 재활성화와 계급정치의 확장을 가져왔다. 그런 의미에서,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의 반신자유주의․반제국주의 노선은 라틴 아메리카를 포괄하는 반미․반제국주의․반신자유주의 전선의 구축을 통한 반신자유주의 대중투쟁을 촉진하는 기폭제의 역할을 하였다.

6. 새로운 세대 좌파정권의 정치적 스펙트럼: 좋은 좌파 대 나쁜 좌파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바람으로 차베스, 룰라, 키르치네르, 바스케스, 모랄레스, 바첼레트, 르네 프레발 등 새로운(?) 세대의 좌파지도자들이 등장했다. 우고 차베스, 에보 모랄레스 등은 사실상 무명이었고, 전혀 집권할 것 같지 않았던 룰라 역시 대권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런 격동의 흐름 속에서 바첼레트란 여성 대통령도 탄생하게 되었다. 명백히 변화하는 정치지형 속에서, 대중적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힘입어 20세기 미국의 지배 하에서 막혔던 민주적 정권교체의 통로가 열린 것이다. 이들은 변화된 정치의 첫 번째 수혜자들이다.
20세기 좌파의 딜레마는 선거를 통한 집권의 불가능성이었다. 전세계를 통틀어 온건한 타협적 사민당 또는 사회당을 제외하면 선거를 통한 집권의 사례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특히 칠레 인민연합정부의 비극적 경험은 합법적 경로를 통한 사회주의의 건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그러나 상황은 변했다. 일차적으로, 현재의 제도정치는 과거 냉전시기의 구도로부터 해방되었다. 물론 그것과 다른 새로운 질서로의 이행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럼에도 구도는 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계속되고 있다.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정부의 악선동 캠페인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쿠바의 카스트로 사후에 대한 개입공세의 고삐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현상은 일단 좌파정권이 대세를 이루자, 이들에 대한 분리공작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물론 새로울 것은 없지만, 구좌파 또는 게릴라 투사 출신의 합리적 좌파와 남미 특유의 인민주의(populism)의 구분법이 그것이다. IMF와 신자유주의의 틀을 수용하는 룰라와 바스케스, 바첼레트 등은 합리적 좌파로 분류되고, 차베스와 모랄레스는 무분별한 대중선동 정치가로 매도되고 있다.
이런 구분법에는 그 정치적 의도와 무관하게 일말의 진실은 있다. 이른바 좋은 좌파는 신자유주의의 옹호자이며, 나쁜 좌파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민중주의자이다. 그러나 민중의 관점에서 보자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중도좌파라는 낡은 개념틀로 뭉뚱그려진 좌파정권들에는 칠레의 바첼레트와 같은 노골적 신자유주의자에서, 룰라와 같은 정통적 의미의 중도주의, 그리고 이들과 달리 신자유주의에 전면적으로 저항하는 21세기 사회주의자 차베스까지 포함되어 있다.
현재의 좌파바람에도 불구하고, 남미의 정치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는 아직 유동적이다. 구조적 변혁을 지향하는 쿠바-베네수엘라-볼리비아의 축과 체제내 개혁에 묶여있는 룰라-바스케스-바첼레트의 축 간의 경향적 대립은 존재한다. 정치외교적 측면에서 강력한 반미의 흐름은 존재하지만, 또 미국이 강제하는 FTAA에 대한 정서적 거부는 강력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미국의 지배체제에 대항하는 새로운 블록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것은 아니다.
쿠바-볼리비아-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대안(ALBA)은 아직 초기적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여기에서 차베스의 역할에 과도한 비중이 실려 있다. 브라질 룰라의 관심은 대외정치보다는 국내정치에 있으며, 룰라의 정치적 기반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비록 PT가 제1당이고 상대적으로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있지만, 미국-IMF의 개입구조에 대항할 역량과 의지를 결여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적으로 남미 제1의 강국으로서의 위치를 이용한 외교를 구사하지만, 근본적으로 차베스의 구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7. 제도좌파 정치의 위기: PT의 정치적 타락, 차베스의 딜레마

2003년 10월 룰라가 대선에 승리했을 때, 브라질과 남미전체는 열광에 빠졌다. 미국은 당황했지만, 이미 룰라측의 화해제스처를 의식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자 주제 알렌카를 부통령으로 받아들였고, 선거캠페인은 IMF지시의 틀 속에서 거시경제의 안정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정치적으로 룰라는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하루에 세끼 식사’라는 포미 제로 프로젝트 외에 그가 브라질 민중에게 약속할 것은 없었다.
집권이후 룰라는 전임 카르도수정권이 실패한 신자유주의 개혁의 칼날을 뽑았다. 연금개악, 최저임금제 개악 등. 더불어 2005년 폭로된 타정당의 매수사건은 브라질 정치의 관행으로 치부되기엔 너무나도 질나쁜 관행이었다. PT의 정치적 타락은 대중적 분노와 실망을 낳았고, 일부 좌파세력은 이탈하여 새로운 정당(PSoL: 사회주의와 자유당)을 만들었다.
금속노동자 룰라로 상징되는 브라질의 사회변혁 프로젝트는 부르주아 제도정치의 틀 속에서 희비극으로 끝났다. 또한 역설적으로 당은 몰락했지만, 룰라의 중도주의는 재임을 보증하는 수표였다. 룰라는 개인적 인기에 힘입어 재선이 유력하지만,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근본적 변혁의 전망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고, 브라질 사회의 구조적 변혁의 가능성과 전망은 브라질 제도정치와 그들에게 정치적 종속된 사회운동이나 노동조합운동에 있지 않다.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혁명 역시 제도정치의 딜레마를 내포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사회변혁으로 합법적 제도의 틀로부터 출발하였지만, 현재까지는 반동의 공세에 대한 저항을 중심으로 혁명의 공고화 과정에 머물러 있다. 특히, 국내외적 역관계로 인하여 사적 소유에 대한 불가침의 불가피한 제약 속에서 이루지는 혁명의 과정은 새로운 혁명주체의 구성문제와 더불어, 볼리바리안 혁명의 근본적인 딜레마이다.
따라서 여러 수준에서 진행된 사회개혁조치는 베네수엘라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혁으로 전화되지 못하고 있다. 비록 대외적으로 석유정치를 통해, 또 라틴 아메리카 정치의 영역에서, 강력한 반미․반제전선을 구축하였지만, 국제정치의 수준과 민중연대투쟁의 수준 간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한다.
볼리바리안 혁명 자체로 보자면, 차베스의 ‘제5공화국운동’(MVR)은 혁명의 주체가 되기에 미흡하다. 혁명의 진폭과 사회적 파장에 비해, 볼리바리안 혁명의 정치적 역량은 제도정당보다는 차베스 개인에 집중되어 있으며, 아래로부터 다양한 수위에서 조직되는 민중운동과의 정치적 결합은 취약하다. 대중주체와 정치주체의 괴리는 혁명의 공고화에 장애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현재 라틴 아메리카 민중투쟁의 역동성과 선거정치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새로운 계급정치의 조직형식으로서 구래의 제도좌파 정당은 그 유효성에서 근본적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새로운 정치의 부재는 현재 민중․사회운동에 본원적인 딜레마를 제기하고 있으며, 제도정치를 뛰어넘는 새로운 계급정치와 그 조직형태로서 새로운 계급정당의 건설과 반자본주의적 정치세력화의 근본적 과제는 여전히 미완의 임무로 남아 있다.

8. 라틴 아메리카 정치적 변동의 역사적 주기와 현단계

지난 반세기간 라틴 아메리카는 일정한 주기의 정치적 격동을 겪었다. 1959년 쿠바혁명을 계기로, 1960-70년대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제도좌파 외부에서 새로운 변혁운동의 흐름이 형성되었다. 이른바 체게바라주의 또는 카스트로주의의 영향 하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사회운동은 게릴라투쟁 중심의 민족해방운동의 거대한 물결을 낳았다.
이에 대한 정치적 반동으로 연이은 군부쿠데타와 그에 따른 군부정권의 수립 및 민중운동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1970-80년대 남미의 정치지형을 형성했다. 칠레 인민연합(UP) 정권(1970-73)의 합법적 사회주의의 실험은 미국의 개입으로 실패했고, 반면 니카라과혁명(1979-1990)은 정치적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산디니스타혁명은 미국의 지속적인 정치군사적 개입으로, 사회주의진영의 붕괴와 더불어 갑작스럽게 불임의 혁명으로 끝났다.
사회주의 진영의 붕괴를 전후하여 라틴 아메리카 좌파의 전반적인 해체경향은 가속화되었고, 군부의 협상에 의한 퇴각으로 조성된 민주적 공간은 신자유주의에 의해 장악되었다. 냉전시대 반세기를 휩쓴 계급투쟁의 주기가 종결되었지만, 워싱턴 컨센서스가 약속한 새로운 신자유주의의 유토피아는 기만임이 드러났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은 대량빈곤과 경제위기, 계급적 양극화를 낳은 채 라틴 아메리카의 구조적 위기로 이어졌고, 이에 맞선 새로운 대중투쟁의 주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정치적 표현으로서 좌파정권의 확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 시기 폭발하는 대중투쟁과 제도정치에서 좌파의 약진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사회변동의 새로운 주기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하나의 지표이다. 그러나 현재 이런 새로운 주기의 격동이 어떤 정치적 결과를 낳을지, 또 새로운 사회변혁의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전진할 수 있는 지는 미지수다. 이는 현재의 주류를 형성하는 좌파정권들에 의해 결정되기보다는, 제도좌파정치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계급투쟁과 계급정치의 양상, 그 속에서 계급적 역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9. 선거정치: 가능성과 의미

20세기 내내 라틴아메리카에서 선거는 제국주의-과두제 지배블록의 주요한 무기였다. 선거는 군부의 물리적 폭력과 더불어, 후진대중의 정치적 무지와 보수성을 이용하여 신식민주의적 자본주의 과두체제를 유지하는 핵심적 수단이었다. 그것이 좌파의 딜레마였다. 선거를 통한 집권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예외적으로 가능했던 칠레의 실험은 악몽으로 끝났다. 무장투쟁 이외에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사회주의진영의 붕괴와 냉전효과의 해제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었다. 제국주의와 과두제의 기득권과 부패를 옹호하는 세력은 선거를 통해 심판되었다. 제도언론에 의해 악마화되었던 좌파후보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그들은 선거를 통해 승리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선거와 투표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우민화의 도구로 더 이상 이용할 수 없게 되었고, 비록 부르주아 제도정치에 대한 광범한 불신과 나란히, 민중정치의 한 표현수단으로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민중은 투표행위 후에 일방적인 기대만을 하는 수동적 주체로 남지 않았다. 대중투쟁과 사회운동은 제도정치와 정당에 대해 환상을 갖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의 제도정치는 여전히 낡은 사회체제의 주요한 지주이지만, 점증하는 대중의 저항과 함께 단순한 계급지배의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새로운 계급정치, 대중정치의 틀은 아직 모색 중이지만, 특히 베네수엘라의 계급투쟁과 함께 제국주의와 과두지배체제를 무력화할 수 있는 기제로 전화되고 있다.

10. 결론을 대신하여: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라틴 아메리카 해방 프로젝트의 도정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 하에서 제국의 지배블록과 과두제(정치권, 독점자본, 군부 등)에 맞선 노동자․민중운동의 역동적 투쟁이 현재 라틴 아메리카가 경과하는 역사적 국면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면은 과거의 대립구도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고, 따라서 이후의 전망을 그려내기는 쉽지 않다.
쿠바와 베네수엘라, 볼리비아로 이어지는 ‘희망의 축’이 라틴 아메리카 대륙적 차원에서 새로운 좌파의 희망을 만들어갈지, 아니면 제국과의 일정한 타협 속에서 체제내적 개혁의 수준에 머물지는 속단하기에 이르다. 이들은 일차적으로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등의 중도좌파의 흐름과 내용적으로 대립하지만, 이들을 뛰어넘는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만을 담보하고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제도정치 또는 선거정치 그 자체가 아니다. 이 좌파열풍은 그 저류에 흐르는 계급투쟁과 민중운동의 외적 표현일 뿐이다. 현재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정치는 민중적 대안은 아니다. 비록 차베스가 21세기 사회주의를 통해 새로운 민중적 대안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지만, 베네수엘라에서조차 사회주의의 물질화는 아직 개념적 수준의 과제일 뿐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사회주의적 대안을 실현할 과제는 제도정당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이들의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민중운동과 사회운동의 정치적 해방프로젝트에 주어져 있다. 현존하는 제도정당이 이 프로젝트의 주체가 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의 정치적 과정을 보건대 그들을 곧바로 새로운 정치의 주체로 단정할 수 없다.
문제는 새로운 주체의 운동과 민중운동, 계급운동의 결합, 그에 기초한 대안적․해방적 정치세력화가 얼마나 물질화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연이은 좌파정권의 등장은 신자유주의적 반동의 폭압 속에서 신선한 현상이지만, 현재의 주객관적 조건 하에서 이들이 민중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시몬 볼리바르의 라틴 아메리카 해방 프로젝트가 21세기 사회주의 프로젝트로 완성되는 역사적 과정은 더 오랜 기간에 걸쳐 부침을 거듭할 계급투쟁의 시기를 경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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