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추모제, 막장 드라마로? - 예장뉴스
예장뉴스
생각 나누기무슨 일이 있었나?
전태일 추모제, 막장 드라마로?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11.18  19:00:42
트위터 페이스북

                                    전태일 재단 이대로는 안된다. 

지난 11월 13일(수) 고 전태일 열사 49주기를 맞아 마석 묘역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서 열사의 동생 전태삼 동지가 추모사를 하던 중 재단 관계자들의 묵인과 방관속에서 모욕을 당했다는 소식이다.  전 동지는 추모사을 읽는 도중  추모객들이 보는 가운데 마이크를 뺏기고 삼동회(구 바보회)로 추정되는 이들로 부터 끌려나갔다는 것이다.
   
                                                * 추모사 발언을 하고 있는 전태삼 동지
당시 전태일 기념관 사무총장인 사회자는 전태삼의 발언이 좀 길어지자 두 번이나 빨리 끝내라는 사인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태삼 동지가 작심한 듯 추모사를 계속이어 가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순히 내용이 길어졌기에 그런 것만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 자리에는 이수호 이사장과 심상정 의원, 노동계 원로들과 가족들도 함께 했지만 유감인 것은 누구 하나 이를 제지하거나 사과, 해명없이 헌화하고 밥이나 먹자고 하고 끝을 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충격으로 전태삼 동지는 극심한 어지럼증과 가슴 통증으로 13일 밤에 응급실에 실려가 치료를 받고 왔다고 한다.

열사의 추모 일에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 난 것이다. 영문을 모르는 참가자들의 충격도 크다. 그들에 의하여 당시 상황에 대한 소회와 영상이 공개된 것이다.  따라서 추모행사를 주관한 재단은 참가자들과 전태삼 동지에게 백배사죄하고 그 자리에 있었던 선배들도 이 문제에 대하여 무한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우측 전태삼 동지의 마이크대를 발로 차고 마이크를 뺏어 던지는 남성
앞으로 재단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는 두고 볼 것이지만 큰 무례을 한 이들이 재단과 관련된 분들이라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특히 재단의 이수호 이사장은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모든 운영위원들도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자진 사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왜 그런 무뢰한 일을 했는 지와 전태삼 동지는 왜 그런 소리를 했는 지가 밝혀져야 할 것이다.

후에 알려진 일이지만 전태삼 동지는 지난 2018년 2월 재단 정기총회에 참석하여 재단의 운영위원으로 재단의 문제를 비판한 ''재단백서' 라는 책자를 만들어 돌리려다가 제지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후 재단측은 운영위원에서 퇴출시켰다고 한다. 따라서 이번 일도 재단문제가 원인으로 보이며 이에 대한 소통이 안된 결과 이런 사건이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따르는  중립적인 분들로 조사위를 구성하여 그 진상을 밝히고 이런 문제가 누적된 재단의 사업과 앞날을 포함하여 근본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 그외 전태삼 동지가 실수를 하고  부족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당시 발언 내용들을 보면 못 할소리도 아니고 그간 대화를 하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재단의 불통이 결국 전태일 열사의 엄숙한 추모일에 참가자들과 가족 대표에게 큰 충격을 줌으로 이제 더 이상 자체적으로는 해결할 수 있는 정도와 시간을 넘어 사회적 사건이 된 것이다. 이제는 재단 책임자들이 열사의 사업을 독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다 내놓고 조사와 공론화를 거부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하여 더 설명을 하기 보다 전태삼 열사가 하려고 했던 내용을 공개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일의 원인이 되기도 한 지난 2019년 매일노동뉴스 6월 24일자에 이수호 이사장의 인터뷰에 대해 민종덕 동지가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도 공개한다. 이 둘의 발언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 전태일 재단이 주관한 열사의 49제 순서지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지만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열사의 가족을 대표한 연약한 사람에게 이렇게 대한 것은 용서받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자리에 동생 전순덕 전 의원도 있었다고 하는 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들로 기념사업은 이제 가족이라고 해서 맡길 수만도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문제가 된 재단과 관련하여 모든 의혹을 해소하기 위하여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조사위원은 재단이나 가족, 삼동회등과 관계가 없는 시민운동과 변호사 종교계와 언론계 인사로 꾸며져야 한다.  내용은 그날 일어난 문제에 대한 진상조사와 그 원인이 된 재단을 둘러 싼 문제로 결과에 따라서는 건물 위탁을  되물리는 것 까지를 포함한 치열한 토론과 논쟁도 불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모두는 전태일 열사의 정신과 가르침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치열한 삶을 기억하고 본받기를 원한다. 그 정신은 혈육을 넘어서는 것이고 기념사업이나 이벤트에 있는 게 아니다.  노동운동의 주체는 노동자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살기 좋아졌다고 해서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을 이런 식으로  대하고 배제하는 것이 촛불정부 아래서 일어났다는 것이 충격이다.       
   
 
                            전태삼 동지가 전태일 형 49주기에

전태일 형 49주기를 맞이하면서 동생 전태삼은 지난 세월을 돌아봅니다. 검게 그을린 모습으로 피를 토해가면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형의 유언을 받들어 어머니와 이 땅의 노동자들은 49년을 숨가쁘게 달려왔습니다. 그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형제들이 감옥에 갇히고 해고당하고 삶이 파괴되었습니까. 이러한 고통과 희생을 당하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이었고 자존과 자주적 인간으로 서기 위한 몸부림이었습니까.

그 결과 전태일 사건 당시 어용 일색이었던 노동조합이 70년대 민주노조를 거쳐 87년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전국단위의 자주적인 노동조합이 건설되었습니다. 또한 노동자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도 출현했습니다. 이것은 이 땅의 노동자들이 단결된 투쟁을 통해 노동해방, 인간해방을 실현하고자 하는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려는 확고한 의지로 실천한 결과입니다. 따라서 노동자로서 노예의 삶을 거부하고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전태일이요 단결된 투쟁으로 억압과 착취를 물리치고 평등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곳이 전태일을 기념하는 기념공간입니다.

그런데 지난 49년 전태일 이후의 역사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관제 전태일기념관을 두고, “전태일 형이 숨진 지 49년 만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또는 "이 시설은 국내 첫 전태일기념관으로 분신 장소인 평화시장 근처 청계천 수표교 인근에 자리를 잡았다“는 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지난 49년 동안의 노동자투쟁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든 전태일을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구체적인 실행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주체역량 문제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정치적 이념문제가 컸다. 보수진영과 재벌이 반대했다. 노동자와 시민의 소액후원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겨우 전태일기념사업회로, 전태일재단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사실과 다른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그동안 노동자의 지난한 투쟁을 무시하고 지우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의심됩니다. 특히 전태일 형이 직접 투쟁했고, 이소선 어머니가 형의 유언을 실천하기 위해 조직된 청계피복노동자들의 피어린 투쟁을 완전히 묵살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주체역량이 부족하기로서니 전태일기념관을 보수진영과 재벌이 반대한다고 만들지 못하고 찬성을 구해야 만들 수 있다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겨우’ 전태일기념사업회로, 전태일재단으로 발전했다고 하지만 이것 역시 군부독재 아래에서 피어린 투쟁을 통해 쟁취해낸 노동자들의 소중한 성과물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채 지금 와서 그것이 비록 초라하게 보일지 몰라도 ‘겨우’라고 폄하해 버리는 것에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몰역사인식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이제 탄핵을 당해 현실적, 역사적 심판이 끝난 박근혜 수구세력과 2012년 8월에 정치적 거래를 시도했다가 저지당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반성과 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은폐와 기만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기껏 관제 전태일기념관 하나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상태에서 전태일 50주기 사업을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는 것입니다. 50주기 사업이야 말로 전태일팔이 이벤트가 아닌 전태일 정신을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를 설계하고 투쟁하는 사업이 되어야 합니다. 올바른 역사인식이 바탕이 되어야 현재의 투쟁을 바르게 조직하고 미래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민중투쟁으로 이루어낸 촛불투쟁의 성과물을 가로챈 문재인 정권은 지금 노동자의 요구를 탄압하고 최저임금 무력화, 탄력근로제 연장 등 노동법 개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노동존중을 내세운 문재인 정권은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노동자를 쥐어짜는 데 있어서는 재벌과 수구정치세력과 한편이 되었습니다.

이에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고공에서, 청와대 앞에서, 톨게이트본사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이들이 다 살아있는 전태일입니다. 이렇게 살아있는 전태일을 위해 전태일 정신을 왜곡시키지 않도록 관심을 가지시고 힘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2019년 11월 13일 전태일 동생 전태삼 올림
   
 
                        노동자의 역사는 역사도 아닌가? 민종덕

- 이수호 전태일 재단 이사장한테 묻는다 -

나는 그동안 여러 사람한테 전화를 받았었다. 전태일 기념관이 생긴다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전화였다. 나는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그래, 좋은 일이지 잘 알아서 할 거야. 그런데 나는 내용을 잘 모르니 나한테 내용을 알려고는 하지 마.” 라며 대화의 방향을 돌렸었다.

그런데 엊그저께 아는 노동자한테 또 전화가 왔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의 인터뷰 기사를 한번 보세요. 내가 보기에는 문제가 많아요.” 그러면서 기사가 실린 주소를 카카오톡 으로 보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전태일기념관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3월에 전태일기념관 개관에 관한 기사를 얼핏 보니 이런 내용이 있는 것을 봤다. “그가 숨진 지 49년 만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또는 “이 시설은 국내 첫 전태일 기념관으로 열사의 분신장소인 평화시장 근처 청계천 수표교 인근에 자리잡았다.” 는 등이다.

나는 이런 따위의 기사를 보고 “첫 기념관이라니!” 하며 코웃음을 치고 그냥 넘어갔다. 그러면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전태일 정신을 살리기 위한 청계천 노동자들이 30-40년간의 지난한 투쟁의 역사를 알 리가 없어서 그럴 것이라고 치부하고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엊그저께 전화 받고 상대방이 보내준 주소의 기사(와이드인터뷰-이수호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 관장. 매일노동뉴스. 2019. 6. 24)를 읽어보니 예의 저런 기사가 기자들이 몰라서 저런 기사가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의 인식이 기사에 그대로 반영이 되어 저런 왜곡된 기사가 나왔다고 생각했다. 그 기사에서 이수호 이사장은 그동안 전태일기념관 건립을 위한 노력을 이렇게 말했다.

“1981년 전태일기념관 건립위원회를 만들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와 문익환 목사가 건립 책임을 맡았다. 83년에는 조영래 변호사의 <전태일 평전>이 나왔다. 어떻게든 전태일을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구체적인 실행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주체역량 문제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정치적 이념 문제가 컸다. 보수진영과 재벌이 반대했다. 노동자와 시민의 소액후원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겨우 전태일기념사업회로, 전태일재단으로 발전했다.”

이것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이수호 씨가 말하는 전태일기념관은 어떤 것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전태일기념관은 이수호 씨가 노동운동을 하기 훨씬 이전인 1985년에 이미 만들어졌다. 그것도 청계피복 노동자들의 피어린 투쟁을 통해 자주적이고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 청계피복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태일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방편으로 전태일을 기념하는 공간을 확보하는 투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멀리는 1970년대 노동교실을 지키기 위해 유신정권과 목숨을 건 투쟁을 벌였다. 당시 노동교실은 노동자들이 모이고, 배우고, 투쟁하고, 연대하는 노동자들의 해방공간이었다. 그것을 유신군부독재는 가만두지 않았다. 유신독재는 노동교실이 들어있는 건물주한테 압력을 가하고 폭력적으로 노동자를 내쫓는 탄압을 저질렀다. 이에 맞서 청계피복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투쟁이 있었다.

유신 독재에 이어 80년 전두환 신군부 독재는 아예 청계피복노조 자체를 강제해산 시켰다. 이에 굴하지 않고 청계피복 노동자들은 전태일 정신과 노동조합 조직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리고 청계피복 노동자들은 구속. 수배를 뚫고 마침내 전두환 신군부의 불법 부당한 강제해산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다시 일어섰다. 이것이 1984년 4월 8일 청계피복노조 복구다. 복구 이후에도 청계피복 노동자들은 노조를 지키기 위한 노. 학 연대투쟁을 전개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드디어 1985년 ‘전태일 기념관’과 ‘평화의 집’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것은 당시 이소선 어머니와 청계피복 노동자들이 끈질기게 벌인 투쟁의 산물이다. 물론 독일의 ‘인간의 대지’와 미국의 ‘연합장로’의 등의 도움이 컸다. 이 도움 역시 당시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군부독재는 전태일을 기념하는 공간을 끊임없이 침탈 했었지만 불퇴전의 청계노동자들은 끝끝내 지켜왔었다.

이것이 전태일을 기념하는 공간의 역사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뒤늦게 나타나서 “국내 첫 전태일 기념관”이라느니 “그가 숨진 지 49년 만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따위의 말을 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이수호 씨는 “주체역량 문제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정치적 이념 문제가 컸다. 보수진영과 재벌이 반대했다.”라고 말했다.

그래, 주체역량에 무슨 문제가 있었다는 것인가? 당시 청계피복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주체역량에 맞는 만큼 전태일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전태일 기념관 내지 노조 사무실을 주체적으로 마련하고 운영했다. 이수호 이사장은 ‘정치적 이념 문제가 커’서 기념공간을 만들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 정치적 이념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또 이수호 이사장은 ‘보수진영과 재벌의 반대’ 때문에 전태일 기념공간을 만들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야한다. 지난시절 우리 청계피복 노동자와 이소선 어머니는 보수진영과 재벌의 찬성으로 전태일 기념관을 만들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이수호 이사장은 마치 ‘보수진영과 재벌이 반대’하면 전태일 기념관이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처럼 말했는데, 그렇다면 지금 그가 말하는 전태일 기념관은 보수진영과 재벌의 찬성이 있었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다. 따라서 이수호 이사장은 보수진영과 재벌의 찬성을 얻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혹은 거래를 했는지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이수호 이사장은 이미 2012년 8월 28일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전태일 재단에 방문하는 것을 정중하게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도 보수진영 박근혜와 재벌의 찬성을 받기 위한 행동이었는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

이수호 이사장의 인터뷰 내용에 비추어보면 그가 말하는 전태일 기념관과 청계피복노동자들이 말하는 전태일 기념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수호 씨가 말하는 전태일 기념관은 정치적 이념은 따지지 않고, 보수진영과 재벌의 찬성(도움)으로 만든 것이 전태일 기념관이라는 것이다.

반면, 그동안 청계피복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보수진영과 재벌의 도움 없이 비록 초라하지만 주체적이고 독립적으로 만든 전태일 기념관은 기념관 축에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수호 전태일 재단 이사장은 청계피복 노동자들이 오랜 세월 싸워서 일궈낸 전태일 기념관의 역사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의 역사는 역사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전태일 재단의 역사를 얘기하면서 청계피복 노동자와 이소선 어머니의 투쟁은 외면한 채 윤보선, 공덕귀, 문익환, 조영래 등 유명인을 거론하면서 “겨우 전태일기념사업회로, 전태일재단으로 발전했다”라고 말했다.

이수호 이사장의 눈에는 보수진영과 재벌의 도움도 없고 관(官)의 도움도 없는 가난한 노동단체라 ‘겨우’로 보일지 몰라도 야만의 군부독재를 이겨내고 이룬 당사자들로서는 ‘겨우’가 아니다. 지금 이수호 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전태일 재단의 물적 토대는 청계피복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일궈낸 그 ‘겨우’임을 알아야 한다.

이수호 이사장은 마치 2005년 자신이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있을 때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배포가 맞아” 전태일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를 꾸린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이수호 이사장은 전태일 기념관을 만드는데 “가장 큰 공로자는 박원순 시장이다” 라고 말했다. 물론 서울시에서 지은 것이기 때문에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전태일 정신이 특정 정치인 특정 정파의 전유물이 될 소지는 없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전태일 정신은 지난 50년 가까이 이 땅의 노동자, 민중의 투쟁으로 정립된 빛나는 유산이다. 그 유산을 어떤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으로 독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울러 전태일 정신을 팔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는데 이용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그렇다면 이수호 이사장은 왜 청계천 노동자의 역사를 배제시키는 것일까?

첫째, 이수호 이사장을 둘러싼 청계피복 노조 출신 노동자들이 전태일 기념관, 평화의 집 등을 일구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당사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주로 군부독재 탄압 상황에서는 노동운동을 청산했던 사람들이 군부독재가 물러나고 탄압상황이 호전되자 나타난 사람들이다. 이수호 이사장은 이들의 요구에 충실하다보니 청계피복 노동자들이 가장 치열하게 투쟁했던 시기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수호 이사장은 그의 말에서 나타나듯이 보수진영과 재벌의 도움 그리고 관(서울시)에 의존해서 폼 나게 만든 것이라야 진정한 전태일 기념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80년대 엄혹한 시기 청계피복 노동자들이 만든 전태일 기념관은 기념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수호 이사장은 폼 나는 전태일 기념관을 위해서라면 박근혜를 비롯 어떤 정치세력과도 손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셋째, 이수호 이사장은 전태일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수호 씨는 민주노총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뒤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정중히 맞이하기 위해 전태일 재단 사무실에서 기다리는 등 무리한 행동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대선 전략 행보로 보이는 것에 발맞춰 가고 있다. 그래서 그의 눈에는 전태일 기념관을 만드는데 “가장 큰 공로자 박원순 시장”만 보이지 80년대 엄혹한 시절 투쟁했던 청계천 노동자들과 전태일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평생을 살아온 이소선 어머니는 보이지 않은 것이다.

넷째, 이수호 이사장은 자신의 공명심이 앞서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역사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는 2005년 자신이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있을 때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과 “배포가 맞아” 전태일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를 꾸린 것처럼 말했다. 물론 그가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전태일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중요한 참여자인 것은 맞다.

그러나 당시 이것을 주도한 것은 전태일기념사업회였지 양대노총 위원장이 “배포가 맞아” 꾸려진 것이 아니다. 이처럼 자신의 공명심을 내세우다보면 일선에서 뛰었던 노동자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늘도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투쟁이 처절한데 전태일 기념관은 보수진영과 재벌이 반대하지 않은 기념관이 되었다. 이것은 전태일 기념관이 전태일 정신도 없고, 노동자성도 없는 박제화 된 공간이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전태일 정신은 노동현장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이 권력화 되어버린 공간이 전태일 기념관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위해 오늘도 힘차게 투쟁하는 이 땅의 노동자들 가슴 가슴이 저마다 전태일이요 기념공간이다.
   
                                            * 분신 당시 전태일 열사의 육필 유서(출처: 민종덕씨 페이스 북)

[관련기사]

유재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많이 본 기사
1
"한국교회 진단과 대안" 정성진 목사 초청 강연회
2
총회 산하 7개 신학대학교 교수 시국성명서 발표
3
이찬수 목사, 정말 아픈가?
4
“인성검사 통과 안 되면 목사 안수 못받는다”
5
김동호 목사 이미 은퇴한 목사아닌 가?
6
102회 동성애 관련 총회 결정에 대한 긴급 제안서
7
장신대 김철홍 교수 글에 대한 학생들 입장
8
개혁하는 교회 탐방(거룩한 빛 광성교회)
9
대림절(Advent) 교회력의 의미
10
쓰레기 시멘트 '맞짱' 뜨던 목사, 이렇게 산다
신문사소개후원하기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명칭 : 예장뉴스 (pckgoodnews.com)   |  등록번호 : 서울,아02054   |  등록일자 : 2012년 4월 3일   |   제호 : 예장뉴스   |  발행인 : 유재무
편집인 : 유재무   |  발행소(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덕정 17길-10   |   발행일자 : 2012년 6월 25일   |  주사무소 : 상동발행
전화번호 : 02)469-440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진
Copyright © 2011 예장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pck-good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