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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 단촌면 상화교회 박용두 목사 이야기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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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0.26  21: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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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의성군 단촌면 신적길에 위치한 상화교회는 1985년 세워진 농촌교회로 단촌 향교를 지나 냇가를 끼고 있는 조용한 곳으로 영덕가는 고속도로 북의성(안동)을 나와 10여분 만에 도착하니 깊은 골은 아니다. 사과와 고추 콩농사가 주류로 지난 37년에 4명의 목회자(여성 2분)들이 시무했던 곳으로 지난 2011년 박용두목사가 부임할 당시 교역자가 오래 비어있어 거의 폐가가 되다시피한 곳이었다. 

단촌면은 안동가는 기차역이 있었으니 과거 교통은 좋은 곳으로 보인다. 의성군 북부쪽으로 거의가 200~300m의 얏은 산으로 여기서 발원하는 많은 소하천으로 농사에 요긴하다. 주산업은 고추·마늘·양파와 사과 생산이 많은데 행정은 8개리로 하화리·세촌리·상화리·관덕리·병방리·후평리·구계리·방하리·장림리가 있다. 면소재지는 단촌면 장터길 2이며 전체 면적은 74.2㎢, 인구는 2,014(2019)명이다. 선거구는 영덕군과 포함된다.  

   
 

박목사는 우선 급하게 친척의 도움으로 교회당 수리를 하여 추운겨울을 지낼 수 있었다. 수리전에는 교회안에 서리가 찰 정도로 추웠어도 석유난로에 들어가는 돈이 무서워 피우기 힘든 때였다. 요즘 성공한 목회자, 좋은 학교를 나온 목회자들은 많으나 마을이 원하는 목회자 찾기는 쉽지 않다. 진짜 교회와 그 마을만을 위해서 공무원 처럼 파송받아 모든 시간과 정성을 다하는 목회자가 얼마나 될까?

성공하는 게 중요한게 아니고 묵묵히 힘들지만 상회로 부터 파송받은 자리를 지켜오는 목사들이 필요할 때다. 여기 교회가 자리한 마을의 일원이 되고 친구가 된 한 목사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마을목회를 통하여 만나고 예장귀농귀촌상담소를 냈지만 이내 코로나로 인하여 이 마져도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우리안의 양만이 아니라 마을전체를 목회하는 농인목사가 여기 있다.   

지난 2019년 우리가 홍성 신동리교회에서 마을목회 모임에서 만나고 2년만에 약속대로 그를 찾아보았다. 서울에서 놓인 고속도로로 3시간 10분이면 도달하니 교통은 좋은 곳이었다. 여기 한 미화되지 않은 한 목회자의 삶과 사역을 통하여 오늘도 농촌교회와 마을을 묵묵히 지키는 작은 예수들을 찾았다다. 1남 2녀을 모두 출가시키고 사모와 같이 부임 부터 농사를 짓는 농인 목사이기도 하다

   
 

계급장 떼고 마을로
지금은 목회를 하면서 농사를 좀 짓는 분들도 없지 않치만 옛날에는 텃밭 농사 짓는 것도 교인들이 말이 많아 목사는 그져 기도나 해주고 얻어먹는 게 편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1세대 운동권 농목회원들도 나가서 농정을 위한 투쟁은 했지만 직접 농사를 짓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언제 부터인가 전업농 수준의 농사를 짓는 목회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는 데 앉아서 먹기만도 힘든 때가 되었고 마을목회는 농사를 외면할 순 없기 때문이다.

마을목회가 이전 농목과 다른 것은 넥타이 풀고 계급장떼고 마을로 간다는 취지다. 그간 거룩한 이미지에서 마을에 사는 한 구성원의 일원으로 친구가 되자는 것이다. 왜 이제는 교인이 줄어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마을이 없어지게 될 지경이기 때문이다. 한 통계에서 보면 앞으로 없어질 경북에선 군위다음으로 의성군으로 남의 일이 아니다. 따라서 마을목회는 목사가 사람을 교회당에서가 아니라 마을안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사실 목사가 농사를 지어 소득까지 내기는 상당한 숙련과 노력을 해야 하기에 그게 쉽지는 않다. 교인들 인식도 문제라지만 그 정도하는 것은 대단한 일로 지역 특산물(산나물등)을 하는 홍천의 000목사나 제철절임 배추 사업을 하는 보령 신덕교회가 있다. 그러나 박용두 목사는 인근에 약 2천여평을 임대하여 사모와 같이 고추농사를 짓고 있다. 그게 생업으로 거기 수입으로 먹고도 살고 시찰이나 동역자에게 밥도 사고 쓴 커피도 산다고 한다. 

   
 

원주에서 풍기로
박목사의 원 고향은 강원도 원성군 소초면 교황2리(원주)로 대대로 농사를 짓다가 조부때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온 가족이 풍기로 이주한다. 그때 할머니가 독실한 신앙인으로 어려서 기독교에 입문을 하지만 큰 변화의 계기는 없었다. 그러다가 안동인근의 한 기도원의 용한 원장에게 기도를 받으러 갔다가 손자를 데려오라는 예언을 받고 영문도 불려가 기도원에서 생활을 하기 시작하지만 독실한 신앙덕에 이질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거기서 신학이나 말씀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잘되는 기도원이니 여러 전도사들중 가장 먼져온 연장자임에도 굿은 허드랫일이나 하고 있었다. 결혼도 일찍하여 자녀들이 3명이 있었지만 인생의 큰 변화계기가 없어 단칸방에서 잡일로 15년을 보낸다.  이때 배운 것이 있다면 기도하고 인내하고 묵묵히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었을까? 잠시 나가 자그마한 사업도 해보았지만 모두 맞지 않아 주져앉았다. 

그러나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나도 목사를 할 수 있을 까 하는 소망을 갖은 적은 있었다. 그러나 학력으로는 당시 성서학원도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37살에 시작한 것이 검정고시다. 그런데 다른 건 몰라도 수학은 외워도 기도로도 안되는 것을 우여곡절 끝에 통과하여 경안성서학원에 입학을 한다. 그러나 한학기 영주성서학원으로 가서 3학기를 다녔다. 그후 누구의 소개로 다른 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러나 박용두 목사는 안동 성서학원 출신으로 한국장로교회 아니 세계 장로교회역사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이룩한 명성교회 김삼환목사에 대한 신화에 대하여 큰 존경심으로 목회에 대한 비전을 꿈꾸워왔다고 한다. 자신이 그런 목회자는 될 수 없지만 같은 교단이라는 소속감만으로도 큰 도전을 받아 기도하며 사표로 삼고 기도해왔다는 고백이다. 명성교회 문제로 실망한 분들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분들에게는 감동과 멘토인 것은 사실이다.  

   
 * 교회당 건물외에 공간이 없어 사택도 마을에 있어 우측 논(50여평)을 매입해 교회와 사택을 증축하려고 하는 데 전체(800평)을 사라고 하여 기도중이라고 함

성서학원에서 영남신대 신대원 1기로 졸업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목사가 될 수없어 어렵게 영남신학대학 학부를 마쳤다. 그후 목사가 되려면 장신대를 나와야 하는 데 시간도 그렇고 돈도 엄두가 나지를 않던 차에 마침 영신에도 신대원제도가 생겨서 1회로 겨우 졸업을 한다. 다른 교단서 안수를 받은 목사지만 전도사로 다시 시작을 한 것이다. 사실 전도사도 온전히 못했는 데 기도원이 이단성으로 경안노회에서 전도사 인허를 받았음에도 면직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일이 되려는 지 어느 날 기도원에서 설교중 하나님이 입에 담아주시는 준 말씀을 그대로 전한 후 해임된다.

그때 경안노회에 존경하는 한 선배 목사님께 그런 상담을 하니 그곳과 선을 끊었다면 복직이 가능하다고 하여 경안노회에서 몇분의 증인으로 전도사 복직을 받게 되여 2011년 첫 부임을 하고 사역을 시작한  곳이 바로 상화교회다. 거기서 다시 통합측에서 고시를 하고 안수도 받게 되는 데 그러는 동안 자녀들도 성장하여 장남(43세)은 우리교단 목회자로 서울한 교회의 부목사로 사역중이고 두 딸은 모두 출가했는 데 가난하게는 자랐지만 신앙안에서 강하게 성장했다.  

년전엔 아들이 차도 사주고 농사를 지으니 트럭도 있어 그래도 마을에서는 없는 목사는 아니다. 마을 분들은 교회는 나오지 않치만 모두 친구처럼 지낸다. 사람들을 돕다가 이용도 당하고 실망도 하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는 마을목사로 마을의 일을 논의하고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다. 인근에 아들이 절약해서 은퇴후 살라고 작은 터도 장만해주었다. 한번도 변변한 직장을 다닌 적은 없지만 어찌어찌하여 작지만 국민연금도 받게 되 은퇴해도 밥은 먹을 것 같다는 소회다.

내가 많은 사람을 만나고 고생한 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이 되지만 박용두 목사 만큼 힘들게 인생을 살아오신 분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서 작은 예수의 냄새를 느낀다. 올해 64세고 경안노회서 처음 만났던 동역자들은 이미 중진들이 되었다. 시찰장 차례가 왔어도 사양했는 데 시찰내 교회들을 돌아볼만한 여력도 능력도 없다는 판단이지만 하고 싶은 분들 하라는 얘기다. 

마을목회라는 말이 나오고 교단에서 첫 모임을 시작한지 6년이 되는 데 처음에 어느 분이 지적한 것 처럼 이거 강사 몇명이나 나오고 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그대로 된 셈인게 지금은 마을목회 말하려는 사람만 있지 마을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분들은 적다. 초기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마을목회는 자기 사역을 더 이상 홍보하는 대수가 아니라 그 자신이 마을과 주민들과 얼마의 시간과 마음을 보내냐 하는 게 관건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면에서 박용두 목사는 그야 말로 마을을 지키는 마을 목사다.

사회도 그렇고 목회자들도 성공을 위하여 자신의 학력과 스팩을 쌓고 자격증을 따고 지자체나 관내 어디 보조나 좀 받을 기회가 없을 까 하고 사람들 만나고 서류를 만들고 자기 알리기와는 담을 쌓은 분이다. 그져 목사 그 자체로 만족하고 주어진 현장에서 욕심도 욕망도 내려놓고 하루하루를 사는게 평범해 보이지만 일을 만들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서 다른사람들을 이용하고 괴롭히지 않는 무익한 사라는 생각이다.

   
 

목사, 무슨 일로 바빠야 하나?
나는 요즘 분주하고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나 목사들의 일상과 이 분을 비교해본다. 물론 실력이나 능력이 없어서 뭘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 교회나 목회현장에서는 바로 이런 목회자들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교인들을 섬기고 말씀을 양육하고 마을에서 노인들이 외로운 이들의 친구로 때론 이용도 당하지만 그렇게 만만한 목사가 필요할 때가 아닌 가 하는 생각이다.

웬만 하면 박사 목사에 사회복지사, 각종 자격증 정말 애써 노력하고 정당하게 딴 것도 귀하고 존경스럽지만 그것으로 교회 시설장하고 겸직한다고 말나면 사모에게 주고 그래도 불만이면 자녀시키고 그렇게 사는 분들 참 많다. 그런데 목사가 설교하고 기도하고 심방하고 위로자 상담자가 아닌 시설장, 책임자로 보이는 것은 교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는 진지하게 물어 봐야 한다.   

어느 교회는 교인들이 적어 교회서는 생활비가 나오지 않치만 마침 교회서 운영하는 시설장을 하는 데 교인들 느는 걸 반가워 하지 않는 다고 한다. 왜 그럴 까? 교인들 늘면 목회에 전념해야 하고 새벽기도부터 정식 목회를 해야 하니 교인들이 왜 목사님은 목회는 전념안하시냐고 반발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작은 생활비 주면서 참견이나 받느니 차자리 적게 먹고 편하게 살자는 분도 있다는 분도 있다는 것이다.  

박용두 목사의 사역을 통하여 다른 목회자들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옛말에도 "굽은 나무가 선산지킨다" 라고 능력자들 공부많이 한 분들은 더 자립하는 교회로 도시의 좋은 곳으로 간다. 그러나 실력도 과거도 복잡한 박목사는 그런 욕망없이 묵묵히 자기 강단과 마을을 지키니 이 분이야 말로 그 교회나 동네로써는 최고의 목사요 가장 훌륭한 목사가 아니 겠는 가? 

더우기 일찍 결혼하여 이러한 박목사의 뒷바라지를 한 사모는 지난 20여년 동안 한번도 편하게 교회가 주는 밥도 먹어본 적이 없는 분이다. 지금도 박용두 목사와 함께 고추 농사를 지으며 교인들을 섬기는 마을의 부녀회원이다. 언제나 말없이 묵묵히 천년을 지켜온 이 땅의 사람들 처럼 그들의 옆에서 함께 친구가 되어준 박목사의 사역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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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하
(220.XXX.XXX.131)
존경하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여기서 접하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2021-10-27 14:00:16)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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