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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 김철홍 교수의 글에 할 말을 아끼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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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24  14:5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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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대 김철홍 교수의 글에 할 말을 아끼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답글은 사양합니다. 

   
* 뉴라이트 계열의 교사들 모임 카페에서 짜깁기된 김 교수가 한 말들   

나는 예장뉴스 편집자로 내 말을 하기도 바쁜 사람이다. 김 교수의 글에 대하여 학생들이 잘 대응하고 있고 이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약간은 비판한 적은 있지만 본격적인 비판 글을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김 교수의 본심과 진의는 실종되고 부적절한 표현 몇 마디가 학교 밖에서 나와 정치적으로 이용을 당하는 데도 이를 제어하지 않고 즐기는 듯한 태도에 대하여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학내에서도 학생들이 하던 논쟁조차 주눅이 들었는지 더 이상 올라오지 않고 있다. 지금은 김 교수 혼자 호통강의를 하는 듯한 태도에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던 차에 로엔쳐치 황규학 기자까지 나서서 교수고 목사고 김 교수 논리를 왜들 반론들을 못하느냐는 통에 마지못해 몇자 적는다.

김철홍 교수가 처음 발표한 글에 대하여 나는 그 내용에 상관없이 그의 용기와 기백을 높이 샀다. 무사안일과 논쟁없는 신학교의 학문 풍토가 못마땅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나온 교수님의 글이라 반가웠고 혹시 어려움을 당한다면 변호하고 싶다는 심정이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어려움은 커녕 장신대 전 교수들이 붙어도 이기지 못할 분으로 보이는 데 생떼를 쓰는 자를 이길 수는 없었다. 교회사 교수들도 그렇고 누구도 그의 주장에 대꾸들을 하지 않고 있었다(이해가 되지만). 겨우 학생들만 용기있게 수준있는 글과 내용으로 비판하고 있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학생들은 김 교수의 잘못된 인식과 논리를 그야말로 촌철살인으로 지적하여  한 마디로 개 망신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걸 아는 지 모르는 지 계속 써대는 꼴이 참 한심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던 중 한일장신대 차정식 교수가 자기 페북에 동년배로 안타까워 혼잣 말로 쓴 글에 대해서도 비꼬는 듯한 답글도 그렇고 다른 학생에 대한 반론 형식의 답글도 조롱으로 대하는 태도가 못마땅하다. 

그러는 가운데 김 교수는 계속 쟁점을 넓혔고 전개 방식도 교만하고 거기다가  치사하게 우익의 그늘로 피신하여 그들을 위하여 복무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결국 본색을 드러낸  것이 아닌 가 한다.  "난 이 논쟁에서 까이고 상처받아도 손해날 게 없다" 라는 자세로 보인다. 자기  제자들을 비웃고 좌충우돌의 훈장질 투의 논리전개는 장신대를 넘어 대한민국과 세계를 들쑤셔 놓았다. 그래서 "학교에는 교회사 교수들이 영웅이고 학교 밖에서는 김철홍 교수가 영웅이다" 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최근 유행어가 된  "나는 공산주의자였다" 라는 화두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의 코스프레가 되어 국정화 찬성을 하는 이들과 언론, 뉴라이트의 좋은 먹이감이 된 것이다.

나는 진보를 자처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한국 장로교회의 본류인 장신대 교수가 되려고 하는 자는 건전한 신앙에 균형잡힌 지성으로 성장하고 학문도 중도적인 입장에선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교수가 되기 위한 제반 규정들(목회사역, 군복무)도 잘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르치는 자가 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생의 굴곡이 심하고 편차가 큰 사람은 언제나 그 기질에 의하여 어디서나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데, 바로 지금 그것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허위로 경력을 만들고 속이는 분들이나 안정되지 않은 성품의 소유자가 교수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분들이 임용된 것은 경력과 영성, 심성에 대한 검증에 착오나 위장 취업, 둘 중의 하나로 보인다. 

극도의 반공주의자나 극좌의 사회주의자는 어디서나 위험한 사람들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다양성의 시대에 그렇다. 말로는 전향을 했다고 하여도 그에게 각인된 기질과 과거로 부터의 단절과 변화를 증거할 목적으로 이상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그건 한 마디로 정신적인 문제인데 이 점을 차정식 교수는 직시하였다. 그것으로 자신의 과거 녹슨 훈장을 자랑하며 알아주지 않는 조직에 대하여 반감을 갖고 기회를 엿보다가 무공을 세우려는 공명심으로 나선 꼴이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실제로 경건회 설교에서 김 교수에게 받았던 진솔함과 이미지는 어디 갔냐는 학생들 얘기도 나왔다.  

김 교수가 전개하는 글에서 그런 광기를 보았다는 사람이 많다. 그러니 정작 국사책 국정화 논쟁을 하지 않고 이념과 사상문제로 끌고가서 학교가 아닌 광장에서 한판 붙자는 식의 쌈박질을 하자는 것이다.  이런 논쟁은 결국 생사람 잡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는 펜으로 싸운다는 식의 표현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너 몇살이야" 하는 식이다. 이것은 나만 느낀는 바가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양식있는 사람은 감히 이런 논쟁에 끼어들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교수고 누구고 할 말은 많지만 유구무언인 것이다.

80년 서울 봄
서울의 80년대 초반 학번이면 가장 치열한 학생운동의 시절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관악이라면 강제징집을 반대하는 김세진 열사의 자살도 보았을 것이다. 더구나 사회학과라면 한완상, 김경동, 홍두승, 김세균 교수들에게 배웠을 것이다. 지성적인 학생이라면 자연스럽게 사회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그 대안을 찾는 일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서울대학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대학의 스킨 스쿠버 서클이나 클래식 키타 모임에서도 “해전사”와 “소삼뿌”는 봤을 정도이다. 그러니 서울대만 세미나 많이 하고 사회과학 서적을 읽었는 말은 할 수 없다. 당시의 후일 소위 '30대 80년대 60년생 세대'를 일컸는 386세대들은 다 운동권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경찰은 서울대 관악 캠퍼스의 안방인 아크로폴리스에까지 상주를 했기에 아무리 빠르게 시위를 하고 흩어진다 해도 금방 제압을 당했다. 따라서 학내에서 어떤 집회도 어려웠고 주동은 물론 참여만 하려고 해도 큰 결단이 있어야 했다.

그런 강고한 국면에서 이론 학습은 더 치열하다. 국면 자체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다. 서울대서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 치고 당시 “아방타방”이라는 팜을 봤다면 주류일 것이다.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당시 국내판 이념 서적으로는 양이 차지 않아 하루만에 히라가나 카다가나를 독파하고 일어 원전을 독해하는 천재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학생운동의 주류는 아니라는 것은 정직한 고백이지만 경력은 너무 부풀렸다는 생각이다. 당시 아직은 주사파가 형성되지 않았는데도 자신이 이념으로 갈때까지 가고 싶었다고 하였는 데 그것을 두고 "극좌 모험주의적 사회주의자" 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 아유들은 진보진영에서도 늘 문제꺼리다. 당시  아직은 주사파가 나오기 전이고 이념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제공 받을 수 있는 때도  아니었다고 보인다. 주사파의 대부 김영환이 쓴 강철서신이나 사노맹의 백태웅등이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이전이다. 

김 교수가 학생운동의 언저리에서 이론적으로는 공산주의자였다고도 고백하지만 감상적인 차원의 주관적인 얘기지 당시 학생들 가운데 간 크게 그런 이념을 실현한 아무런 조직이나 도구가 없었다. 밖으로는 김문수와 고 이옥순(원풍모방 노조 총무 출신) 의 “서노련”이 현장 신문을 내고 있었고 공안과 경찰력은 이 신문의 제작팀과 배포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결국 이들은 잡혀 고문을 당하고 관련자들이 지독한 고생을 할 때이다. 그러고도 김문수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하여 투항을 하고도 과거를 자랑하는 것을 보면 권력과 영화는 사람을 크게 망가뜨린다는 생각이다. 당시 학생운동을 하고 징집이나 감옥, 공장이나 야학을 하지 않고 무사히 학교를 졸업했다면 의식은 있었지만 용기가 없었거나 아니면 기회주의자였을 것이다.

당시 학생운동을 치열하게 한 이들은 수평 이전이 유행이었다. 많은 노동자 빈민 농민들이 고통의 삶을 살고 있는 데 비하여 대학교육을 받는 자신들의 처지를 미안해 하고 속죄하는 의미에서였다. 대기업에 취업과 공무원이 되는 것도 거부하고 존재의 이전(수평이 아닌 수직)을 통하여 공장에 들어가고 계층을 뛰어넘은 결혼을 하는 이들도 나왔다. 노동자들의 모임이 있는 곳이나 교회의 야학에 교사로 또는 노동 현장에 취업을 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학번의 후배들과 1983년 뚝섬에서 노동자교회를 개척하고 야학을 한 경험이 있다. 80년대 초반은 대학생들이 노동자들 앞에서 대학생인 것을 미안해 했지만  혁명을 꿈꾸지도 않았고 공산주의자도 없었다. 가난하고 어린 노동자들에 대하여 미안해 하고 그들의 친구가 되고 싶어 했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운동권이라고 한다. 유행에 휩쓸려 그람시나 루카치, 모택동의 책을 한 두 권 보고 데모의 중심에 서지는 못하고 멀리서 발이나 구르고 술이나 먹고 신세 타령을 한 이들을 다 운동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 교수가 속한 서클의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깊고 의미있는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학생운동를 꽤 아는 척 하고 무슨 지하 운동을 크게 한 것처럼 무용담을 펼치는 것은 오늘의 자신을 미화하기 위한 허위화 과정일 수 있다.

과거를 배반한 사람들은 조용히 살아야
왜 이런 얘기를 하는 가? 운동의 중심부에서 치열하게 상처 입고 눈물 흘리고 희생적인 젊은 시절을 살았던 이들 가운데 아직도 그런 정신을 유지하고 사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가 현실과 타협을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동지들과 시대를 배반한 것을 다들 안타까워 하고 있다. 몸은 자본주의의 소비와 영화에 맛들렸지만 정신은 시대를 응시하고 있다. 그래서 선거 때가 되면 그나마 야당이나 진보정당에 그만한 표가 나오는 것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가장 부자들이 사는 강남 3구에서도 박원순 시장이 이겼다는 것에서 바로 강남 좌파가 있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이들은 몸과 삶으로 자본주의의 삶을 누리지만 정신과 영혼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자신의 재산과 기업의 이윤 활동에는 보수적이지만 보수 정치인이나 보수 정치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고 통일 문제에 대해서 열려 있다. 그런 현상이 선거 때마다 표출 된다. 오히려 하층민, 저학력, 고령자나 20대가 더 보수성향의 투표를 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진보(30):중도(40):보수(30) 의 구도 속에서 중도의 표에 따라 정치의 얼굴이 바뀌는 원인이다.

요즘 운동의 언저리에서 잠깐 보고 들은 것을 가지고 마치 자신이 운동의 중심에서 무슨 전공을 세운 것 처럼 무용담을 말하며 무슨 책을 봤네 하는 등의 자랑이나 하고 아는 체 하는 데 참으로 웃기는 얘기다. 어설프게 제대로 운동도 못 해보고 전향을 했다면서 “나는 공산주의자였다” 고 하는 데 아무리 시절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그렇게 함부로 말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좀 겸손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과거의 열정과 순수를 실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빚진 자의 마음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다. 한 때 영화에 관심을 두고 공부했다고도 하지만 영화 그 자체가 흥행이 목적이며 대자본이 장악한 상영관에 의하여 자본주의적 속성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인데 한국의 영화가 좌파 감독들의 공산주의 교육 매체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지의 소치이고 한 마디로 명예 훼손감이라고 본다.

옛말에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는 데 그처럼 귀동냥으로 듣고 본 것을 가지고 선지동산, 거기가 어디라고 선배 교수들과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이유는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존재감도 알리고 소위 우파 대변하기를 자처했을 수도 있다. 교회사 교수들의 국정화 반대 성명서에 대하여 물고 늘어진 것을 가지고 장신대의 이광순, 김중은, 맹용길, 이수영 교수 등으로 이어진 보수신학의 맥을 자신이 잇는다고 자처할지도 모르는데 그 어른들은 완고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잘난 체를 하는 분들은 아니었다. 이번에 자신은 장신대 신학 선언에도 반대하고 세월호 성명서 반대하였을 뿐 아니라 신학교에서 성명서를 내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는 데 한 마디로 모든 교수들의 외면을 받는 지경으로  이번에 교회사 교수들이 성명서로 "울고 싶은 놈, 뺨 때려준 격” 이다.

사실 장신대 교회사 교수들도 구닥다리에 진보의 구석이라고는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있는 분들이 아니다. 명문 학벌에 박사급 유학파에 성격들도 조용하고 얌전한 분들이다. 말이 나온 김에 그들의 성명서를 내는 형식을 비판하자면 그놈의 장신대 우월주의가 있는지는 몰라도 자신들의 생각과 의지를 왜 교단산하 다른 신학대학의 교회사 교수들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했는지 아쉬을 따름이다. 그렇게 했더라면 전선은 훨씬 넓어졌고 김 교수가 그렇게 만만히 보고 대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지금은 누구라도 제 정신이 있는 사람이면 김 교수에 맞대어 무슨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지적으로 왕성하고 나름 치밀한 그의 논리를 맞설 수 있는 이론도 사실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같은 학교 동료 교수들에게 하는 것은 큰 결례이다. 거기다가  현재 장신대 차기 총장 후보 중 한 분인 기독교윤리학과 L교수를 언급하며, 영화 평론이나 제대로 해보라는 등 선후배 동료 모두를 싸잡아서 거론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그가 속한 서울교회도 그렇고 보수 대형교회의 정서를 아는 그로서는 이번 논쟁에서 손해날 게 없다는 정치적 판단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제 순수한 신학자가 아니다. 정치성을 띤 일종의 전사다. 서경석 선배가 그렇듯이 자신의 목소리를 누가 좋아할지를 알고 있고 그들의 소리를 대변한다. 서 목사도 김 교수와 비슷한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은 대학 때 공산주의자였고 마오이스트였다고 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자들에게는 그만큼의 위험수당으로 반대 급부가 주어지게 된다. 넓은 길이 보장될 것이다. 그들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자들은 대형교회들이고 부자들이고 힘이 있는 자들이다. 자신들이 해야 할 소리를 정치인이나 교수들, 특히 목사 교수가 해준다면 그보다 더 고맙고 감사한 일이 없을 것이다. 

전향자들은 언제나 양지로 가기 위해서다
그후 서 목사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 그는 자립하지 못하는 조선족 교회를  위한 앵벌이가 되어 시기마다 국면마다 대형교회와 부자들의 지원을 받아가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국정화 찬성 서명 운동을 하고 있다. 중요한 시국과 뉴스마다 앞장서서 돈 많고 힘있는 자들이 좋아할 소리를 해주고 있다. 그것 하나만 봐도 그는 생존형 우익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때로는 다단계 업체의 돈에 무허가 건강식품까지 팔다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한마디로 장사꾼이 되었다.

왜 자신의 글에 아무도 답하지 않냐고도 하고 주변에서도 지적을 한다지만 반대로 왜 교회사 교수들의 반론이 없는가를 생각해봤는가? 사실 김 교수의 글과 논리의 전개를 보면 답할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는 말이다. 우선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난감할 정도다.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찬성한다는 논리만 펴는 것이 아니다. 온갖 사회적 영역과 정서, 문화 등을 광범위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런 난감함으로 답글을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학문이나 이론이 달려서 그렇다고들 알고 있는 데 그게 아니다.

사실 그런 글에 답글를 낸다는 것은 같이 미쳐보자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교수들이 그렇게 한가하고 시간이 많을 리 없다. 김 교수의 이번 비판 글도 자기 전공과 관련된 것도 아니다. 두 번째 글에서는 신약학자답게 “복음서는 4개입니다” 라는 현수막에 대하여 못마땅해 하기도 했다지만 그 해석은 전형적인 아전인수격이었다. 그가 “왜 도마복음서는 퇴출을 당했나” 라는 답변을 한 걸 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마복음서가 없어진 것이 아니다. 기록 자체를 없엔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다만 정경이 되지 못했다. 그런 것이 바로 '검인정'의 논리 아닌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에 제외된 것이지 퇴출은 아니며 대중들이 외면을 한 것은 아니다.

당시 신약성경의 정경화는 4세기 말 얌미아 공의회서 필요에 의한 결정이었다. 복음서 외에 다른 예수에 대한 행적은 왜 정경이 되지 못하고 외경이 되었는가? 그것은 당시 교회의 정경화 기준에 미달하였기 때문이다. 정경화의 기준은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는 저자가 사도인지, 사도들과의 관계성과 보편성 등으로 지나친 이적의 내용들을 문제 삼은 것이다. 내가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퇴출된 예수 전기들인 복음서 들은 기록자 사용한 용어가 4복음서와의 연관성과 통일성을 갖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당시 공의회는 4개의 복음서만을 예수의 생애와 전기로 받아드렸는 데 이것은 배제의 논리보다는 다양성에 대한 포용으로 오히려 획일화된 단 한 권의 책이나 논리만 받아드리지 않은 것으로 바로 초대교회 구성원들 배려와 요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초대교회는 이미 개종한 유대인과 헬라인 그리고 새롭게 개종하는 많은 민족과 계층에 대하여 그런 다양성을 토대로 기록된 복음서를 채택할 수 밖에 없던 것으로 보인다.

이럼에도 신약성서 학자라는 분이 복음서의 다양성에 대한 답변을 “퇴출” 이라고 간단하게 언급한 것은 무지는 아닐 것이고 불성실이거나 다른 데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보면 성경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다윗 왕조 사가들도 불리한 대목들을 삭제하지 않고 둔 것이다. 역대기나 사무엘 상하에도 이중기록 나오는 데 유대의 역사가들이 몰라서 그대로 둔 것이 아닐 것이다. 통일 신라의 김부식이 집대성한 고려 이전 시대의 기록인 삼국사기에 저항하여 일연의 삼국유사가 나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이 두 개의 기록이 있기에 당시 역사를 더 의미있게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더 많다면 더 풍성한 역사 연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역사란 객관적이지만 기록되는 순간 주관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학자는 품위를 잃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누가 기록을 하였는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데 기록자의 관점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복자는 정복자의 관점에서, 피해자는 피해자의 관점에서 기록할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관점의 역사가 필요하다. 그런데 고의로 한 가지만 기록하고 그것만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는 무엇인가? 나는 정권이나 체제는 국가가 아니라고 본다. 정권은 바뀔 수 있다. 정권이 역사책을 쓴다면 결국 자신들을 미화하고 입맛에 맛는 책을 만들어서 가르치고 싶을 것이다. 그것은 안 될 말이다. 이미 박근혜 대표가 야당대표시절인 2005년에 "역사에 관한 일은 국민과 역사학자의 판단이다. 어떤 경우든 역사를 정권이 재단해선 안 된다. 정권의 입맛에 맞게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2005년 1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신년연설 중) https://www.youtube.com/watch?v=u1JSahXGB3Q  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고도 정권연장을 위하여 이렇게 다른 소리를 해대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이 정치적인 논리와 소리를 하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무엇이 아쉬워서 신학교서 월급받는 신학자까지 나서서 현 정권을 두둔하는 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48%의 지지로 국가권력를 수임받고 내각과 법관 검찰을 지휘하고 국정원에다가 경찰력과 60만 대군, 뉴라이트에 지지율 40%의 새누리당과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가진 이들에게 무엇이 부족하고 아쉬워서 장신대 교수까지 나서서 그들이 하는 일을 두둔을 한다는 말인가? 그러고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해서 이 난리인가?  아니다. 그것은 나라가 위태롭다는 위기와 안보 장사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신종 기회주의자들, 출세주의에 몸을 파는 지식인들이 언제나 문제다.  김 교수가 그런 사람이 아니기를 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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