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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교회와 명성교회 문제는 별개자유와 교인의 자유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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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2.10  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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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자유와 교인의 자유
   
 
네덜란드 곧 화란(Holland)이라는 나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독일에서 이주한 그리스도교 후예들로 인하여 근면하고 경건한 개혁파 교회의 이념으로 근대적 기초를 놓은 나라로 한국의 칼뱅주의 전통을 따르는 고신측 목회자들이 유학을 많이 다녀온 곳이다. 그러나 화란의 수도인 암스데르담은 유럽 남성의 향락산업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명시적인 경건주의적 윤리로 인하여 남성들의 매춘이 합법화되어 있는 암스테르담으로 간다는 것이다.

암스테르담의 자유대학교 (Vrije Universiteit, Amsterdam)는 미국의 네덜란드계 개혁파 신학 교육기관인 칼빈신학교(Calvin Theological Seminary)의 전신으로 네덜란드 전체에 13개 대학교들 중 하나로 1880년 10월 20일에 세계 삼대 칼빈주의 신학자 중의 하나로 (다른 두 사람은, 자유대학교의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와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의 벤자민 월필드(Benjamin Warfield)이다) 추앙받는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에 의해 세워졌다.

VU는 1880년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가 네덜란드 최초 정통파 - 개신교 (Calvinist) 대학으로 정교회 - 개신교 기독교인 그룹에 의해 설립하였다. 카이퍼 (Kuyper)는 1901년부터 1905년까지 네덜란드의 신학자, 기자, 정치인 및 총리로 재직했으며, VU에서 신학 교수로 첫 번째 지도자(학술 회장)였다. 카이퍼의 세계관과 철학을 신 칼뱅주의라고 한다. 그의 신념을 반영하여 Vrije Universiteit 은 말 그대로 정부와 교회로부터 독립을 의미하는 '자유 대학'이 되었다. 

그런데 이 대학 안에는 여러 개의 칼리지와 세미나리가 있다고 한다. 교양과목이나 공통과목은 같이 이수하고 전공학과나 신학적 입장에 따라 자유롭게 공부하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처럼 학부 과정부터 아예 다른 사람들로 교육하는 것과 비교하면 부럽다. 그런데 이 대학의 출발과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은 국가로부터의 자유을 위해서 라고 한다. 국가주의나 교회 등으로부터 독립된 영역으로 남기 위하여 만들어진 대학인 셈이다. 

이런 경향은 미국서도 교파주의가 퇴조하고 인디팬던드 쳐치나 자유교회들이 늘고 있는 데 이것은 세계적인 추세로 보인다. 교단이나 총회가 지 교회에게 법이라는 이름으로 강요하는 것도 많고 상회비나 가져가지 주는 것이 없다는 얘기다. 과거에 종교가 국가로부터 핍박을 받거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의 유산이 바로 교단이지 지 교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발상이다.  

그런 면에서 근래에 우리 교단 내에서도 교회의 자유와 교인들의 직원 선택의 자유권이라는 문제가 새롭게 부각되었다. 누구나 교회를 선택하고 그 교회는 목회자나 직원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는 의미다. 어느 교회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을 노회나 총회는 반대할 수 없다. 법으로 지 교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 만들어지니 이에 저항하는 것이다. 여기서 교회의 자유권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었다. 물론 힘이 있는 교회는 버티거나 나가거나 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런 질서에 승복하고 따르는 훈련이 안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형교회, 견제와 비판의 대상이다.
   
 

최근 국가도 그렇고 기업이나 과거 힘 있다고 하는 것들에 대한 도전과 비판은 어느 때 보다 뜨겁다. 권력과 권력화 되려고 하는 것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강하다. 민주주의를 향한 하나의 여정으로 보인다. 따라서 과거 힘으로 간주 되던 교인 수나 재정 규모는 이제 자랑거리가 아니라 부끄러움이 되는 때이다. 기업이나 오너들의 부도덕이나 갑질이 전에 없이 폭로되어 패가망신을 당하고 있다.

최근 대형교회의 행태와 목회자들에 대해서도 과거와 같이 존경과 선망이 아닌 비판과 질시의 대상이다. 작은 언론 매체뿐만 아니라 그동안 대형교회와 그 목회자들에게 기대어 단물을 빨아먹고 공생해 온 기독교 메이저 방송들마저도 이제는 배가 부른지 앞장서서 비판하고 있다. 물론 교회나 목회자들이 비판 받을 면이 있다면 받아야 하고 권력화 되려고 하는 것에 대하여 견제를 받아야 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한국장로교회의 양대산맥인 합동측의 사랑의교회와 통합측의 명성교회 목회자들에 대한 비판적 보도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 교회들이 교계나 사회에 관심을 끄느 일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언론이 흥밋거리로 만들어내는 면도 있다. 광고 시장을 향한 시청률 경쟁도 있어 모두 맞는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가운데 이 두 교회을 억지로 연결시켜서 공통점을 찾고 비판의 반열에 동일선상에서 얘기하는 데 그것은 아니다.

   
 

사랑의교회 문제는 사회법의 판단이다

사랑의교회는 선대 목회자인 고 옥한흠 목사의 전권으로 오정현 목사가 후임으로 부임을 한다. 옥 목사와 오 목사는 오랜 지기이지만 옥 목사는 오 목사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의 명성만을 보고 후임자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옥 목사는 생전에 오 목사의 목회가 외형에 치중하고 화려하게 나대는 모습에 실망하고 "너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메일을 보내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주변의 가까운 복음주의 동료들도 반대한 오 목사를 후임으로 정한 옥 목사의 결정은 사랑의교회 뿐 아니라 합동측과 한국교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 오 목사는 사랑의교회 위임목사가 아니라는 고법의 판결이 있었다. 이에 대하여 사랑의교회측은 교회 안의 문제를 법원이 판단했다고 불만이지만 사랑의교회 갱신위측은 법원의 판결에 환영이다. 그러나 양측이 모두 사회법으로 간 이상 교회 내의 문제라고만 하기에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판결을 이끌어 낸 사랑의교회 갱신위원회로서는 그동안 기나긴 시간 동안의 갱신운동에 큰 성과를 얻은 것은 사실이다. 특히 그런 판결의 효력이 실제로 가능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오 목사와 그의 지지자들에게는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랑의교회 측은 대법에 항고를 한다고 하니 결론은 더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장로회 교회의의 특성상 감리회 교회처럼 상회의 강한 강제력이 없기에 위임목사가 아니라고 해도 목회하는 것을 제어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이는 데 설교조차 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다. 장로회 교회에서 지 교회의 설교는 그 교회 당회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갱신위를 지지하는 수가 오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에 비하여 현저히 적기에 물리적으로도 제어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대형교회의 파워는 교단이나 법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다른 사례에서도 대형교회들은 교단법과 충돌하거나 자신들이 한 일로 인하여 손해나 침해가 있을 때 거의가 그 교단과 결별을 한 예에서 보면 오정현 목사가 교회나 교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이상은 누구도 어떻게든 목회를 그만 두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교단이나 노회가 제어를 하는 것도 아니니 시간만 끈다면 문제는 없어 보이는 데 사랑의교회가 소속된 동서울노회는 사랑의교회를 두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성교회 문제는 교단 안의 문제

명성교회와 사랑의 교회의 교세나 구설수을 일으켰다는 면에서는 같이 회자될 수도 있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다르다. 교단법을 어겼다는 면에서는 같지만 명성교회는 사랑의교회의 위법성 보다는 그렇게 크지 않다. 교단법은 사회법과 달라서 교단 안에서만 통용되는 법이다. 반사회적 윤리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다수의 교인들이 이를 묵인하거나 인정한다면 교단법 상의 문제라 하여도 그렇게 큰 문제가 안 되고 버티는 것이 가능하다.

모르는 분들은 교단법을 어겼으니 총회장이 치리를 하라고 하지만 불법성에 대해서는 고소나 고발 그리고 그에 합당한 재판과 판결이라는 합법적인 절차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현재 위임목사를 허락해 준 서울동남노회의 결정에 대하여 현재 재판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더 문제가 꼬이는 것은 명성교회의 상회인 서울동남노회가 명성교회의 지배 하에 있다는 점이다. 비대위도 이 점을 모르지 않았을 것인데 이것이 옳다는 말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단법을 어겨서 재판을 시작하였으니 그 판결을 따라야 하는 데 원고가 그 재판 과정까지 문제를 제기하니 복잡해진다.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여론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교단법의 준수라는 것은 세습금지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니 법 준수의 형평성 문제도 나온다. 우리 총회나 노회가 교회가 모든 법을 제대로 지키고 치리를 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나온다. 각종 선거나 목회자 청빙문제, 교세보고나 상회비 등 과연 양심적으로 있는 그대로 보고하고 사역하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 그런 면에서 법의 잣대만으로 범죄시한다는 것에 대해 표적법이라는 지적을 하는 것이다.

장로회 교회는 지 교회의 자유권이 감리회 교회에 비하여 느슨하다. 교회를 세우고 노회에 가입하고 목회자의 청빙과 직원의 선택은 모두 지 교회의 지유다. 다만 우리교단을 비롯하여 감리회 교회와 기독교장로회 3개 교단만 세습을 금지하는 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 법의 위법 문제는 한 교단 안의 문제이지 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리고 말로는 비판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과도한 해석이라는 비판을 받게 되는 대목이다.

세반법이 가변적인 것은 다른 교단에는 없는 법이고 앞으로 목회자 수급이 어려워지면 바뀌어야 할 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고불변의 진리 문제는 아니다. 다만 시기적으로 대형교회들의 비중에 비하여 역할이 미흡하고 사회적 비판이 드높다는 면에서 문제는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교회 안의 문제지 사회 문제는 아니다. 다만 교단 내에서 어려운 목회자, 임지없는 목회자들의 현실로 보면 지지를 받을 일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갖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교단 개혁의 관점에서 아무래도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개혁운동이란 남에게만 하라고 할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이런 세습(목회 대물림)을 비판하려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원인인 원로목사(한 교회 20년 이상)제도와 위임목사(한 교회에 재 신임없이 시무)에 대하여 근본적인 자기 선언으로의 개혁이 나와야 설득력이 있다는 지적이다.

사랑의교회와 명성교회 문제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

사랑의 교회는 재판에서 최종 결론이 나올 때까지 오정현 목사가 목회를 하는 데 장애물은 없어 보인다. 그의 목회활동을 물리력으로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명성교회도 재판에서 어떤 결정이 나와도 김하나 목사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순진한 사람들은 김하나 목사가 스스로 위임목사를 포기하라고 하는 데 처음부터 그런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김삼환 목사나 당회원만의 뜻이 아니라 전 교회적인 요구라는 것이 쉽지 않는 문제다.

교회는 은퇴하는 분의 영향력을 단절하기 위하여 별의 별 것을 다한다. 그런데 목사뜻이 아니라 교회가 전임자의 아들이 좋다는 것도 큰 복이다. 그러나 아들이 당회장이 되었다고 교회의 모든 권한을 물려받는 것은 아니다. 강대권을 제외한 인사권과 재정권은 장로들과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세습은 부의 대물림이라니 권력의 세습으로만 보는 것은 근시안적인 시각이다. 세습을 해도 자기 할 나름이지 선대의 후광으로 거져 먹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양 교회가 결국은 교단 탈퇴로 가는 것 아니냐는 입방정을 앞세우는 분들도 있어 보이는 데 그것도 나중 얘기고 교단을 들어오고 나가는 것은 전적으로 그 교회 교인들의 자율권에 속하는 그들의 자유다. 아마도 김동호 목사 같은 분들은 처음부터 속셈이 명성교회가 교단법을 따르던지 아니면 교단에서 나가라는 입장인데 그것은 말로만 가능하고 상처만 주는 말이지 실현 가능한 일은 아니다.

오 목사는 본인 문제

끝으로 오정현 목사와 김하나 목사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 목사는 이미 목사임직 과정에서부터 의혹이 있었고 이력서 허위 기재나 총신대와의 결탁 등 범죄 행위가 있다는 사회법에서의 판결이다. 그러나 김하나 목사는 개인적으로 담임목사를 파견하거나 목사를 위힘하는 등의 노회의 고유 업무로 인한 결과에 대하여 수동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 자신이 나서서 교단법이나 사회법 상의 문제가 되는 일을 한 바는 없다는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이 두 교회나 목회자를 단순 비교하거나 같이 엮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자유지만 실제로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현재 우리교단에서의 문제는 서울동남노회 정치력 문제라고 보여진다. 재판은 둘째다. 누구도 재판으로 가면 둘 중의 하나로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상정하고 가는 것어야 한다. 자신들이 무조건 반드시 이길 것이고 지면 그것은 잘못된 재판이라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 그러나 그것도 주장에 불과하지 개인이나 교회가 재판 결과를 승복한 전례는 많지 않다. 재판보다 앞서는 것이 정치적 해결이다.

최근 우리교단에서 세습을 자유롭게 반대하는 것처럼 이를 옹호하는 자들도 없잖아 있었는 데 교단의 기류가 그러니 차마 나서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 분위기만으로도 우리교단의 대세는 세습에 반대하는 기류다. 그러나 이것은 앞서도 말한 것처럼 절대적인 정의나 진리의 문제가 아니기에 반대로 세습반대운동에 일정한 저항을 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것은 세반운동이 과도한 정죄와 비난에 식상한 이들의 반란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혁은 문제를 지적하는 자나 비판을 하는 자나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제어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내야지 한 교회 한 사건을 바로 잡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제 103회 총회의 결의사항의 이행을 주장하지만 정작 총회는 서울동남노회나 명성교회에 대하여 결정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재심은 전적으로 원고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이다. 재심을 신청하여 지난 4일에 총회 재판국은 이를 인용하기로 하였고 김하나 목사의 위임을 허락한 서울동남노회의 결정이 뒤짚을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다.

총회가 헌법위나 규칙부의 보고를 받지 않은 것은 사실이고 개정위안도 되물렸다. 그리고 총회는 재판국원 전원을 교체했을 뿐이지 재심을 받으라거나 받지 말하는 주문을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재판국의 고유한 권한이다. 총회는 보고 되고 주어진 일을 한 것이다. 미진한 것은 관례대로 임원회에 이관 되었다. 그런데 지금 임원회를 닥달하는 형편이다.

장로회 교회의 지교회들은 노회 소속이고 목사는 노회의 허락을 받아야 이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동남노회는 사고노회라는 게 현실이다. 국가나 교단이나 법은 존재하지만 그 법의 집행력은 여전히 강한 자나 힘있는 자들에게 유리하다. 그 법을 이기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 “옳은 것을 힘 있게 하거나 힘 있는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여전히 바르게 하고자 하는 이들은 소수이고 약자들이다.

결론

그러니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그래야 역사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는 승리하기 위해서만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지배 권력에 의하여 반란으로 기록된 모든 것들은 가혹한 희생을 수반했지만 죽음에도 굴하지 않았기에 그 정신을 후대가 기억하는 것이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나 전봉준의 봉기는 실패했지만 그 정신은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희생은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비대위도 노회장직에 연연하여 처음의 순수성이 평가절하 되었다. 노회장이 뭐 대수라고 궁색한 논리로 노회장이 되었다고 하고 급하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고 기자회견을 하는 등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세습이 교단법을 어긴 것은 사실이지만 교단법을 어긴 교회는 명성교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와중에 총회 산하기관인 예수병원이나 대구 애락원 등이 총회를 빠져나가려는 중이다. 이건 개 교회 재산의 대물림 사유화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중대한 문제다. 그런 것에 비교하면 교회는 목사 개인이 팔아서 가져갈 수도 기업처럼 소유할 수도 없다. 그런데 형편상 다른 법들과 비교하여 보면 과도한 반대에 대하여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단이나 반사회적 범죄도 아닌 데 해도 너무하니 역반응이 나고 피로를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남의 위법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사랑의교회 문제는 다른 교단의 문제이니 말을 아끼겠지만 명성교회의 세습은 우리교단 문제인지라 여러가지 해법을 생각해야 한다. 반대만 옳다고 하고 너무 길게 그리고 내부 분열로 가는 것에  대한 피로와 역반응이 오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비판자들은 명성교회가 크니 눈치를 보고 교단을 나가는 것을 두려워 한다는 말을 하고 명성교회도 법을 지키지 않으려면 총회를 나가라는 말들을 하는 데  모두 난무하는 말에 불과한 것이다. 누가 잘못을 하면 그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알아서 하는 것이지 반드시 우리가 그것을 고치거나 바로 잡겠다는 것에서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인권이나 권리침해가 있다면 이는 다른 과정을 통하여 바로 잡으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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