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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회 총회에서 증경 총회장들의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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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09  07: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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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1회 총회에서 증경 총회장들의 결단을 기대한다

원로가 된다는 것은 모든 일에 앞장서는 것

지난 4월 28일(목) 우리교단 총회장 채영남 목사의 초청으로 증경 총회장들과 함께 하는 모임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증경 총회장들 뿐만 아니라 총회 실무자도 배석한 자리였다. 이런 모임은 매년 현직 총회장이 교단의 원로들인 증경 총회장들에게 인사도 하고 대접하며 친교를 나누는 자리로 알고 있다. 그러면 이번에 원로들을 초청하고 식사를 대접한 채영남 총회장과 증경 총회장들은 어떤 덕담을 나눴을까? 그러나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현 총회장의 최근 행보인 국정교과서 반대와 정신대 문제 한일협약, 세월호 2주기 추모에 대하여 핀잔을 들으신 자리가 되었다. 

더 자세한 대화 내용은 아는 바 없지만 당일 초청자인 채영남 총회장이 다소 주관적이기도 한  원로의 의견을 넓은 마음으로 받으신 이상 더 이상 거론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현직 총회장이라도 잘못하는 일이 있다면 누군가로부터 핀잔도 듣고 비판도 들어야 하지만 자리와 시기 그리고 격이 있어야 할 것이다. 좋은 모임의 끝판도 아니고 격려 끝의 덕담도 아니었다는 면에서 대단히 부적절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이 얘기를 전해 듣는 임원들이나 관계자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증경 총회장 모임이라는 것에 대하여 문제 제기도 하고 그 분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의문들을 던지고 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만 증경 총회장들은 현직에 계실 동안 교단과 총회를 대표하며 연합기관의 상층부에서 온갖 영화와 권세를 누리고 좋은 대접이란 대접은 지금까지 다 받으시는 분들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증경 총회장들의 명예 뒤에는 아픔과 슬픔이 서려있다. 당시 과열된 선거 구도로 패자가 된 분들에 대한 배려와 격려는 물론 위로도 없었다. 총회장에 3번 나가서 돈만 쓰고 떨어진 분도 있고 재수를 하는 동안  시무 교회는 큰 홍역을 앓기도 했다. 단일 후보가 되신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데 누구하나 가릴 것 없이 선거 과정에서 쓴 비용으로 인하여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으신 분들이 한두 분이 아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증거와 후유증, 증인들은 도처에 있다. 이런 적폐가 지금도 개인적으로나 교회, 교단적으로 용인되고 있는 데 이제 교회개혁 500년을 맞는 이 때에 누군가는 한 번 이것을 끊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증경(曾經) 총회장이란 용어

국어사전에 보면 증경 총회장이란 단어는 없다. 그렇게 자주 쓰는 단어인데 없는 말이라니. 그러나 인터넷 검색을 하면 총회장이란 단어는 ‘교단을 대표하고 지도하는 최고 책임자’라는 말은 나온다. 그래도 증경 총회장은 없었다. 그러나 “증경(曾經)이란 용어는 중국 고대시가에 기원을 둔 말로 증(曾)은 '일찍이'라는 뜻이고, 경(經)은 '지내다'라는 훈을 가지고 있으므로 ‘일찍이 지냈다'는 의미다. 즉 고대 중국 당나라의 시인이었던 노조린(盧照隣)이라는 사람의 작품 ‘장안고의(長安古意)'에서 ‘증경'이라는 시어가 나오는데, ‘증경학무도방년(曾經學舞度芳年)' -일찍이 춤 배우느라고 젊은 시절을 보내었다네- 정도로 그다지 심오한 뜻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한자어를 전통적으로 존중하며 차용하기 좋아했던 선비들이 이런 희귀한 용어를 우리나라에 들여왔고, 한국 교회도 교단을 위하여 일한 경력이 있는 전임 수장들에게 경의를 표시하고자 이 단어를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 고 검색된다.

또 다른 검색에서는 “한국 교계에서는 1910년 제4회 독노회 때 ‘증경 회장'이란 명칭이 처음 사용되었고, 1921년 제10회 총회 시 정식으로 가결되어 오늘날까지도 ‘증경 총회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문법적으로 ‘증경'은 명사 앞에서는 결코 쓸 수 없는 데 ‘전'(前), ‘전임'(前任) 등으로 사용하는 것이 어법에 맞을 것이다.

이상의 고찰에서 보듯이 ‘증경’이란 단어 자체로는 그렇게 심오한 뜻은 없으며 문법상 맞지도 않는 그야말로 희귀한 용어이지만 의미는 후진들의 존경을 받고 경의을 받는 분들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도록 제10회 총회에서 가결되었다. 그러나 어원과 의미는 역시 대국의 사대주의, 유교사상에서 유래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증경’이란 말은 전(前)이란 말로 바꾸어야 한다. 전, 혹은 전임 총회장 누구,라고 사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총회 헌법에도 없는 증경 총회장

그럼 우리 헌법에 증경 총회장과 증경 총회장단 모임에 대한 법이나 규정, 역할이 있는가가 궁금한데 살펴봐도 규정에는 없다. 다만 - 총회 제 규정에 대한 사항에서 제1편 총회(행정지원본부) 제 규정 >총회 기관 및 단체 임원, 대표 파송 조례 >제8조 (당연직) 총회 정책상 다음과 같이 당연직으로 파송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총회유지재단’에 증경 총회장 1인을 파송한다는 규정 뿐이다.

따라서 총회 헌법에 없다는 것은 부재한 것으로 증경 총회장에 대한 역할이나 모임은 규칙상 허락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총회에 대한 어떤 영향력을 준다든지 총회의 행사에 참여하여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증경 총회장은 예우 차원의 명예직이지 어떤 힘을 행사하고 참견하는 조직도 자리도 아니다. 다만 경륜과 지혜를 총회와 후진들이 도움과 요청이 있을 때에 격려와 지지를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보겠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동안 우리 증경 총회장들은 나름대로 보이지 않게  총회와 현직 총회장에게 힘을 보태주고 격려해 주신 것은 사실이다.

그런 차원에서 현직 총회장이 요청하는 자문이라면 모르나 현직 총회장이 주어진 임기와 시대적 과제를 수행하는 고유한 통치 행위에 대하여 의견이 다르다고 하여 비판을 부추키고 참견하는 식의 일은 자제해야 한다. 지금 100회기 채영남 총회장은 우리총회 역사상 유래 없는 화해의 7대 사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전국 총대들과 교회가 뒷받침하고 있지만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중단할 수도 없다. 100회 총회는 이미 법과 규칙를 차제하고 희년의 정신에 따라 국내외 사회적인 분야에서부터 권징 받은 이들에 대한 사면과 복권, 극심한 분쟁 교회 중인 교회들을 화해시키는 등 획기적인 내용들을 추진하고 있는 데 이런 문제들이 완결된다면 그야말로 100회 총회를 지나면 교단의 묵은 체증을 덜어내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증경 총회장들은 현직 총회장의 힘이 돼야

따라서 증경 총회장들과 현직 총회장이 만나시는 자리라면 현직 총회장을 격려해주고 위로해 주며 힘을 실어주시는 게 정도일 것이다. 그래도 부족하고 아쉬운 것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혹은 예의를 갖춰서 권면해주시면 될 것이다. 사실 그날 모임에서는 올해 101회기 총회를 준비하며 내년이면 맞이하는 종교개혁 500년(1517-2017)에 대해서도 한국교회의 장자교단인 우리 총회가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하겠는가 하는 원로들의 고견을 더 듣고 싶었지만 분위기 상 더 결실을 맺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 101회기 총회 주제는 ‘다시 거룩한 교회로’이다. 이는 개혁의 내용을 채워가자는 것으로 이해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개혁(改革)은 뜯어고치자는 것이다. 그럼 어디서부터 무엇을 고쳐야 하는가 하는 우선순위가 나오는 데 그건 위로부터 되어야 정상이다. 그렇지 않고는 송사리나 잡는 식의 개혁이 될 뿐이다. 또 개혁이란 회개 없이 불가능하다. 그러려면 집안의 회개에도 먼저 앞장서야 할 사람들이 있고 우리 총회로 본다면 죄송스럽게도 원로들인 것은 자명하다. 그 분들은 지금도 그렇고 과거 우리 총회에서 최고의 권력을 누린 분들일 것이다. 어른들이 나서주셔야 개혁의 진정성도 모양도 설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번에 원로들이 먼저 자신들의 과거 연약함과 부족함을 내놓고 모든 것은 ‘내 탓이오’ 라는 자성과 회개가 나오지 않은 채 지난 500년 동안 기념식만 해온 교회개혁 500년은 무늬만 개혁인 행사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기독교가 직면한 가장 고질적인 문제로 교단을 막론하고 부 총회장에 엄청난 돈을 쓰고 당선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개혁 500년과 101회기를 준비하는 우리교단이 해야 할 회개의 화두와 초점은 바로 그 금권 선거로부터의 일대전환을 하는 선언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사회와 교회로부터 책임있는 공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부총회장 선거에서의 불법적 일들이 과거보다는 나아지고 투명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문제는 지속적으로 더 투명해져야 한다. 그래서 부총회장 선거를 통하여 교단의 수장을 지내신 증경 총회장님들이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과거 부적절한 유산의 주체로 언젠가는 한 번 신앙과 양심 앞에 정직하게 서서 자책의 선언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한다.  그래야 현역들도 그 유훈의 의미를 엄중하게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옛말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진다” 는 의미인 위로부터의 개혁이야 말로 진정한 개혁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증경 총회장들, 교단의 영적 자산으로 남으려면

그 동안 노회와 총회의 붙박이 총대나 교권인사들도 모두 총회의 최고 권력들이었던 총회장을 만드는 이들과 연계되어 있었거나 그 중심에 있는 분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 확대, 재생산하기 위하여 지역의 영향력이 있는 다른 이들과 연대하고 지역과 학연의 줄을 세우고 분파를 유지하기도 했다. 지금은 노회마다 총대선출의 다변화를 가져오고는 있지만 그간 소외되고 거수기에 불과했던 목회자들이 총대선출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노회에서는 총대 등록제 등으로 기득권을 강화하고 명단을 돌리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도 총대들의 물갈이는 꾸준하게 늘어가 올해 약 30%가 신임 총대들이라고 한다. 이것은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다.

이처럼 교단 내에 여러 가지 변화의 조짐들이 힘을 얻으려면 원로들이 나서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지 않고 올해도 그저 관례대로 총회가 열리는 장소에 전 총회장들의 별실을 만들어 대접하고 꽃을 달아주고 총대들 앞에 소개나 하고 환영하는 박수나 치고 끝나는 시간이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한 번은 전  총회장들이 하나님과 성 총회 앞에 정직하게 자신들의 과거 관행을 고백하게 되시길 바란다. 그것을 남 탓으로만 치부하고 모르는 척 하시면 안 되는 것이다. 증경 총회장들이 교회와 노회 총회를 위하여 수고하신 것 못지 않게 권력의 상층부에서 누리신 명예와 기득권이 없었다고는 말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나님과 후진들 앞에서 교회개혁 500주년을 맞이 하는 101회 총회는 교단의 원로들이 만연된 금권선거의 관행의 고리를 끊기 위한 개혁의 마중물이 되어주신다면 감사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의 전임  총회장들은 더 존경받게 될 것이고 어른들의  이 모임은 교단의 영적 자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 하면서 우리 총회도 과거의 관행으로부터 겸손하게 회개와 고백을 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한국 교회와 우리의 현실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더 무너질 내릴 것인지 아니면 함께 살 것인지 선택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이 민족의 제단에서 하나님의 촛대가 옮겨질 것인지 아니면 제2의 부흥의 길로 갈 것인지 하나님의 다림줄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1회 총회 때 전 총회장들이 총회와 역사 앞에 진실된 회개와 자성의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기를 원한다. 그러면 후배들이 “아닙니다. 우리도 금권 선거의 협력자, 동조자, 방조자였음을 회개합니다. 우리도 죄인입니다. 용서하십시오.” 화라는 답을 해야 한다. 그런 감동의 아름다운 역사를 101회 총대들과 전국교회 그리고 성도들은 기다리고 있는 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고 우리 주님도 양수를 들어 환영하실 일이다.

고 한경직 목사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어디서 왔나?

전 총회장들의 명예를 보존하고 기억하기 위한 ‘증경’이라는 대접의 호칭이 1921년 제10회 총회에서 정식으로 결정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라면 앞으로도 전 총회장들은 우리교단과 후진들에게 영원히 존경받는 이름으로 남아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는 고 한경직 목사의 모습에서 존경받는 원로의 단초를 발견하게 된다. 한경직 목사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닌 지극히 연약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격변의 한반도, 식민지와 민족분단, 근대화와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원치 않았거나 오판했거나 침묵했던 문제들에 대하여 종교의 노벨상이라는 미국의 탬플턴 상 수상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자신은 역사의 죄인이라는 고백을 하시면서 해소하였다. 회개의 기회와 타이밍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셨다.

실제로 한 목사는 친일과 과도한 반공, 신군부에 협력한 것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회개하므로 생전의 모든 연약하고 부족한 것을 용서받았으며 상을 받는 영광의 자리에서의 수상소감으로 신사참배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못한 것을 고백하셨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한국 교회는 이전 보다 더 고 한경직 목사를 존경하고 기억하게 된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도 전 총회장들은 교단의 수장으로 불가피하게 과거 국가권력을 옹호하는 모임이나 기도회를 주도했고 불의한 정권에 대해서도 침묵하거나 협력하였으며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이웃들을 돌보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교권을 쟁취하기 위한 일에는 앞장 선 금권 선거의 수혜자들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인데 후진들은 그것을 모두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101회 총회에서 우리 총회는 이 모든 무거운 역사의 짐을 내려놓는 전환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거룩한 교회’ 로 가는 개혁의 시발점에서 전 총회장들이 개혁의 거대한 흐름을 선도하는 어른들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증경 총회장들이 과거의 부끄럽고 아픔 역사를 역사와 후진들 앞에서 짚고 넘어가지 못하는 한 우리 총회는 다음 세대에게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없다.

다시 한 번 한국 교회와 성도들은 전임 총회장들을 영원한 우리교단의 원로로 존경하고 사랑받는 어른들로 모시고 싶다. 그러므로 증경 총회장들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늠하시는 101회 총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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