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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회신학대학의 흑역사누구을 위한 신학대학인가?
유재무 기자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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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20  08: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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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회신학대학의 흑역사

   
 

장로회신학대학교는 우리나라 대학교육기관 중에도 116년의 적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는 교육기관이다. 동시에 우리교단의 직영 신학교다. 국가 대학교육이 정한 수준에 맞는 교육목표가 있지만 교단 목회자를 양성하는 위탁기관으로서의 책무가 있다.  그러나 이 학교를 경험한 이들이 느끼는 학교와 교수들에 대한 생각은 천차만차다. 

개인적으로 학교나 교수들에 대한 그리움이나 애틋함은 거의 없다. 교수들이 실력은 있었다고 보이나 강의나 인격으로 본이 될 만한 분은 많지 않았다. 대학이면서 학생들에게 폭넓은 사고와 인성을 키우고 신앙의 지평을 열어주는 일보다 자신들의 주관적인 신앙이나 교리를 주입시키는 일에 지독한 고집들을 부리는 폭군들로 보였다. 

신학대학들이 다 그런 것 아니냐? 라고만 하기에는 너무 안스럽다. 당대의 대학은 팽창일로였고 신학교들도 호황이었다. 한 강의에 수백 명이 입시학원처럼 수업을 듣기도 했다.  밀려 드는 학생들은 바로 돈이었다.  고객들을 수용하기 위해 학교는 항상 공사중이었다. 학부생들은 남달리 애틋한 추억이 있었는가 모른다. 그러나 다른 대학들처럼 강의실에서보다 교수와의 개인적 대화나 써클활동에서 성장하고 성숙하지도 못했다. 

제각각 자기 학부(장신대 외 6개 신학대학들)를 갖고 온 지방신학교 출신들에게 장신대는 그저 돈 내고 목사고시볼 수 있는 자격증 따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훗날 교권 구도에서 "전국신학대학총동문회연합"(신총연)이라는 조직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장신대는 학부 출신들 외에는 졸업을 하고도 학교에 특별한 감정이 별로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이것을 시대와 환경에 성숙하지 못한 학생들의 탓이라고만 하기에는 아쉽다. 

대학은 근본적으로 학생 중심 소비자 중심의 운영을 해야 함에도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교사와 선배 목사직을 겸한 교수들과 학생들을 교인 취급한 학사 운영 상의 책임이라고 본다. 교수들도 유학파이기는 했지만 한인목회로 투잡을 하느라고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해외에서 학위는 했지만 그 유수한 대학들의 학풍과 지성을 경험하지 못하고 학위 따서 돌아오기에 급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수들 중에서 사비로 유학을 한 분도 드물다.  거의가 선진국의 장학제도나 미국장로교회 혹은 WCC의 장학금으로 유학들을 했다. 그 외에도 교회 후원이나 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도움의 이면에 있는 뜻한 예외없이 개인적인 출세와 성공만이 아니라 사회와 공교회에 대하여 공헌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공적 직무에 성실한 모습을 보여준 분들은 많지 않다. 교수중 어떤 이는 앉아서 케케묵은  책이나 읽고 학생들은 그것으로 받아쓰는 수업들을 하니 뒷 자리서 잠을 자거나 다른 책을 보는 것은 당연했다. 

기숙사는 나이 어린 신입생들이 군대처럼 선배들의 속곳을 빨고 연탄불에 라면을 끓여줘도  한 젖가락 남겨주지 않는 야속함에 춥고 배고픈 긴 밤을 지세곤 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되는 졸업생들이 홈커밍데이를 정례화하여 지키고 있다. 이는 70년대 가난한 고향을 떠나는 젊은이들이 돌담길을 돌아서 눈물을 훔치며 성공하기 전에는 결코 다시 오지 않으리라고 다짐했었고 그래서 객지에 가서 열심히 살아 성공한 젊은이들의 금의환양에 비유할 수 있겠다. 

성공한 동기들을 중심으로 몇 년 전부터 모교를 다시 찾는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선배 기수들과 경쟁적으로 모금들을 하게 되면서 그 행사 규모가 커져가고 있다. 과거보다 풍족해진 교회의 사정들도 있겠지만 동기들 중 소위 목회에 성공한 이들의 여유로움으로 '통 큰 기부'도 이어지고 있다.  몇 년 전 캠퍼스를 이전하기 위해 적잖은 자금이 필요하여 가장 많은 이들을 선발했다는 83기 동문 행사는 그야말로 축제였다. 

사실 풍요로워진 것은 목회 현장만은 아니다. 학교도 옛날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 교수들 연봉은 최고 1억대를 호가하고 안식년에 연구학기, 학진의 지원, 노련하고 부지런한 교수들은 큰 교회에 적을 두고 외부강연과 설교로 부수입도 올리고 있다. 모든 목회자들이 부러워하는 대목이다. 좋은 학벌과 출세를 목표로 성공의 길을 달려서 그 목표를 이룬 자화상들이다. 승자들은 패자와 낙오자를 동정하거나 기억하지 않는다.

돈 내고 공부하고 다시 돈 들고 돌아온 이들 중 특별한 이들은 다시 채플 설교에 초청된다.  이렇게 졸업생들이 모교에 와서 보여주는 모습은 대견하기도 하지만 학교 당국은 이를 은근히 부추기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억 대의 돈을 모금하여 여전히 어려운 동기들을 찾고 지원하기 보다 부자 학교에 기부을 하는 것은 나만 못마땅한 것이 아니다. 후배들에게 장학금이나 지원을 하는 것은 모르나 학교 비품이나 시설 지원은 그만 해도 된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래도 동문들이 공식적으로는 큰 불만들이 없으니 다행이고 감사하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목소리가 나왔다. 2017년 5월 17일 장신대 116주년 개교기념 행사가 있었다.  올해 홈커밍데이의 주인공은 85기(1992년 졸업생)인데 입학 당시보다 졸업생 수가 적은 것이 당연하지만 유독 85기 졸업생 수가 적었다고 한다. 이들이 입학할 당시 급증하는 학생 수로 인하여 학교 부지를 팔고 이전하자는 문제가 불거졌었다.
   
                                            * 당시 교내에 붙혔던 학생들의 벽보

이를 반대하는 학생들을 향하여 이사진과 학교는 일반대학들보다 더한 권위주의와 무지로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을 찍어냈다. 이미 그 이전에도 부정의한 신군부 세력에 저항은 커녕 아부하는 이들은  80신학춘추 편집장을 색깔론과 내부 검열로, 고 현ㅇㅇ 학생은 학교에 허락받지 않은 현대신학연구회 세미나 현수막을 걸고 유인물을 돌렸다는 이유로 1년 정학을 당했다.

어떤 이들은 아예 입학 자체도 불허했다. 류ㅇㅇ과 송ㅇㅇ은 과거 학생, 청년운동으로 인한 구속자라는 이유로 면접에서 거부 당했다. 결국 재수해서 수석 입학을 하는 방법을 택했고 더 이상의 사상 검증은 당하지 않았다. 장신원보 1990년 5월 18일자 보도에 의하면 당시 신대원 학생 중 제적이 3명, 유급 124명이나 되었다. 학부 4학년은 198명의 졸업이 유보되었다. 제적은 25명, 무기정학 및 신대원 입학 자격 5년 제한이 14명이었다.
   
                      * 학부출신 동문으로 부터 제공 받은 사진(본 기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없음)

이게 장신대의 흑역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중에는 시대를 저주하고 눈물을 흘리며 기성세대들을 원망하고 영원히 학교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있다. 다른 교단의 성직자로 이적을 했거나 해외로 이주했다. 그런 수모를 딛고도 인내하여 살아남아 졸업장을 받았다면 그는 행운아다. 그런데 그중 누군가는 이 일을 잊지 않고 이번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게 우리교단 장신대의 이사회와 학교의 경영진들이 행한 일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한 동문이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문제를 제기할 때까지 우리는 그 일을 애써 잊고 있었다. 싱그러운 5월 개교 기념일이고 스승의 날은 어김없이 매년 돌아오고 학생들로부터 선물을 받고 축하를 받는 행사는 여전하건만 아프게 떠나간 제자와 동료들은 자리에 없었다. 그런 흑역사의 주역인 인사들과는 사진조차 찍고 싶지 않았다고 회고한 이들도 있다.

교정을 떠난 이들 중 아직도 학교나 그 교수들을 원망하는 속좁은 이들은 없다고 보인다. 그러나 당시 가해자나 묵인 동조자들은 여전하고 제자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기분 좋아하면서도 이런 캠퍼스의 추억을 나누지 못하는 이들에 대하여 한 번이라고 미안한 마음을 가졌는지 묻고 싶다는 것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경안신학대학원대학교의 석원식 목사가 제기한 문제에 동문들이 공감들을 하고 있다. 그 자신이 피해자는 아니지만 동료들과 한 때 제도권의 폭력과 엄습으로 인하여 숨죽여 지냈던 과거를 회상하며 “이제라도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합니다” 라는 글을 기독공보에 기고하였다.

사실 가혹한 시대에 지성들은 침묵을 강요 당하고 살아왔다. 그나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을 지내고 이명박 정부의 4대강과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댓글사건으로부터 시작되어 세월호의 아픔이 일어나기 까지 국가 권력의 안중에는 이 시대의 국민은 없었다고 보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국민들은 촛불을 들었고 미적거리는 정당들을 추동하여 사상 유래없는 현직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민주적 성과를 일구었다. 우리 국민은 위대했고 지금  짧은 시간이지만 진짜 민주주의 맛을 느끼고 있다. 과거 말로만 하던 권위주의 청산이 지금 새로운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와 행정, 외교는 그야말로 파격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충격이고 감동이다. 세계가 놀라고 있으며 국민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미래 청사진에 대하여 큰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 차있다. 진짜 민주주의를 이제 실현할 준비들을 하고 있다. 보수를 대표하는 바른정당 강남을 지역구의 이혜훈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한 주간이 무섭다고까지 고백한다.

취임 후 광주 5.18 민주항쟁 37주기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와 우발적인 유족 포옹은 감동 그 자체였다. 대통령은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광주의 영령들과 민주주의를 지키고 열망하며 운명을 달리한 열사들에 대하여 큰 빚을 지고 있음을 상기시켰고 희생자들에게 사과했다. 그의 기념사의 내용은 설교에 비견할만큼 그 자신의 진정성과 이 시대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며 복수와 두둔이 아닌 민족의 화해를 담아 냈다. 

그렇다면 이제 장신대 차례라고 보인다. 석 동문이 기고한 내용대로 장신대에서 저질러진 학생들에 대한 학교와 교권의 무자비한 학살을 어떤 식으로든 사과해야 한다고 본다. 당시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에 1년이나 학교를 더 다닌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통이었고 엄청난 희생이었다는 것을 교수들만 모르는 것 같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맡겨진 학생들을 교칙이라는 잣대로 매정하게 앞길을 막고도 반성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당시에 누구 하나 안 된다고 말리며 발길을 돌리는 제자들을 붙잡고 위로하며 눈물 흘린 이들은 없었다. 비겁했거나 동조했고 그래서 더 가혹했다. 그것을 주관한 세대들이 보수적이고 완고한 분들이었다고 치자.

그렇지만 이제 25년이 지난 지금의 이사회(이사장: 김지철 목사)와 학교 경영진인 임성빈 총장과 교수들이라도 대신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이미 일반대학에서는 복직과 복교가 허락되고 모두 시대의 아픔을 승화하고 치유한지 오래다. 그런데도 신학교에서의 아픔은 여전히 남아있다. 2016년 치유-화해-생명의 총회가 이단들을 해제하고 끌어 안자고 하면서 당시 우리교단에서 희생당한 학생들을 생각하고 진실을 규명하고 복권해주는 일은 없었고 우리 [예장뉴스] 조차도 기억하지 못했다. 

과거와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학교의 교수들이 논문 발표나 선언, 자신의 이념과 신념을 지키는 것 보다 위대하고 존경받는 일이다. 범죄자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고 좌파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자고 밤새워 글을 쓰는 열정과 패기를 보인 교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무엇이 중헌디!“ 라는 어린 여학생의 영화 속 넋두리가 생각난다. 언제까지 장신대 흑역사를 과거 남의 탓이라고 책임을 전가할 것인가? 풍요와 축복 속에서 감사하고 여유를 부리는 동안에도 한 시대 학생들이 겪었던 고통과 아픔에 대하여 누구하나 앞장 서서 풀어주고 안아주지 못한다는 말인가? 이런 과거사에 대한 기억은 누구에게 책임을 묻자는 의도가 아니다.  내년 개교 기념일에는 이들이 초대받고 함께 화해와 치유의 모교 방문의 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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