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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 기원과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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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06  22: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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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 기원과 의미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 (국제 여성의 날, International Women's Day)이다. 1909년 시작된 것으로 1910년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와 클라라 체트킨에 의해 세계적 기념일로 제안되었고 1975년부터 국제연합에 의해 매년 3월 8일이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되었다.  
   
 
1.최초의 여성 노동조합
산업 혁명과 시민 혁명 그리고 자본주의 발전은 가사만을 하던 여성들에게 노동력을 요구하게 되는데, 문제는 남성보다 더 열악한 노동환경과 조건에 더 낮은 임금에 여성차별까지 심각해 여성노동자들의 불만은 극에 달한다. 결국 1857년 미국 뉴욕 시에서 방직, 직물 공장에서 일하던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저임금에 항의하는 시위를 일으킨다. 곧 경찰에게 공격받고 해산되고 2년후 1859년 3월 여성들은 최초로 노동 조합을 결성하게 된다.

2. 세계 여성의 날 시작
1908년 2월 28일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미국에서 15,000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무 시간 단축, 임금 향상, 투표권 등을 요구하며 뉴욕 시로 행진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때의 영향으로 1909년 2월 28일 첫 번째 '전국 여성의 날'이 미국에서 선포되었고 이에 자극받은 유럽에서는 1910년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 독일의 여성운동가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로부터 매년 같은 날, 모든 나라에서 동시에 여성의 권리 신장을 주장하는 '여성의 날' 행사가 제안되고, 1911년 3월 19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에서 첫 번째 '세계 여성의 날'이 개최되었다. 3월 19일로 한 것은 1848년 3월 19일은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프랑스 2월 혁명의 영향을 받은 노동자 계급의 봉기 움직임에 위협을 느끼고 여성 참정권 등을 약속한 날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기에 이 날로 결정된 것이다. 이때 참정권, 일할 권리, 차별 철폐 등을 주장했다.  2년후인 1913년부터 3월 8일로 변경된 이후 지금까지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되고 있다.

3. 러시아 혁명 당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이로인해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세계 여성의 날은 위기를 맞게된다. 이는 자본가들 보다는 서유럽 국가들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국제 연대적 색채가 강한 세계 여성의 날을 공공연히 방해했기 때문이다. 같은 사회주의자들에게 역차별했던 것이다. 1세계대전 상황 속에서 세계 여성의 날은 명목을 이어가는데,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이 진행될즈음인 1917년 3월 8일 세계여성의날 여성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제정 타도를 외치며 페트로그라드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고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를 퇴위시키는데 공헌을 하게되고 이어 러시아 10월 혁명에서 여성들의 평등권을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1927년 스탈린이 권력을 장악한 후부터 국제 공산주의를 사실상 부인하고 노동자들의 국제 연대가 쇠퇴하게되는에 이로인해 세계 여성의 날도 쇠퇴하게된다.

4.국제연합 지정
1960년대들어 여성 운동이 성장하고 세계 여성의 날이 다시 활기를 띄게 되고 여성들의 인권과 여성근로자들에 대한 차별을 줄이는 노력을 하게되는데, 1975년 '세계 여성의 해' 기간 동안 유엔은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로 공식 기념하기 시작한다.(그래서 이 해를 공식 1회로 보는 사람도 있다.) 2년 뒤 1977년 12월 유엔 총회(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는 회원 국가들이 1년 중 하루를 정해 그 날을 여성의 권리와 세계 평화를 위한 유엔의 날로 준수할 것을 선포하는 결의를 채택하고 여성의 역할 인정, 여성 차별의 종식, 여성의 평등권을 촉구하게 된다.

5.한국에서의 여성의 날
1920년 당시 일제 강점기였던 조선은 나혜석, 김일엽, 김명순, 박인덕, 김활란 등 자유주의 계열과 허정숙, 정칠성 등 사회주의 계열이 각각 여성의 날 기념 행사를 시작한다. 조선총독부는 이들 여성 행사를 감시하지만 탄압하지는 않고 1945년 해방까지는 이어진다.

1946년 해방 후 ‘조선부녀총동맹’이 1946년과 1947년 3월 1일부터 8일까지 부녀 해방투쟁 기년주간을 설정, 기념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후 사회적 격변과정에서 맥이 끊어진다. 1985년 3월 8일에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여성평우회, 여성의 전화 등 14개 여성단체는 ‘민족․민주․민중과 함께하는 여성운동을 주제로 ’세계여성운동‘을 주제로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1회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했다.

1987년 2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창립된 후. 매년 3월 8일을 전후하여 2007년까지 총23회의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했다. 1988년 한국여성노동자회는 3.8여성대회 기념행사를 시작했으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2000년부터 독자적으로 ‘전국여성노동자대회’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1996년부터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전국여성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여성대회 슬로건

1985 민족․민주․민중과 함께하는 여성운동
1986 민주화와 여성생존권
1987 민족현실과 여성운동
1988 여성이여! 민족자주화의 대열로!
1989 평등한 삶의 새날을 위하여
1990 평등한 노동, 건강한 모성
1991 평화, 군축, 통일을 여성의 힘으로
1992 여성들의 한표로 세상을 바꾸자
1993 전진하는 여성, 열리는 사회
1994 자역살림의 참일꾼 여성대표를 지방의회로! 여성의석 20%확보!
1995 열린정치 생활정치, 여성대표를 지방의회로!
1996 여성이 열어갈 21세기! 복지인권의 시대로
1997 가자! 21세기, 여성의 시대로
1998 가자 여성이여! 고용안정․인권이 보장되는 평등의 시대로!
1999 평등, 평화 이루는 새천년으로!
2000 새로운 천년, 빈곤과 폭력 없는 세상을 위하여
2001 차별, 편견 깨뜨리고 넘녀평등, 공동참여 사회로 나아가자!
2002 성매매 방지법 제정․호주제폐지․보육의 공공성 확보
2003 성매매방지법 제정하라! 여성의 힘으로 반전평화를! 양성평등 예산 확대!
2004 남녀가 함께 행복한 사앵의 공동체로
2005 행복한 나눔! 평등한 가족! 힘내라 여성!
2006 양극화 넘어 더불어 함께! - 여성일자리 확대! 비정규직 차별철폐! 한부모지원제도 확대!
2007 양극화 넘어 대안사회로 - 빈곤의 여성화 해소, 평등․평화문화 확산, 풀뿌리 지역공동체 확산
2008 세계여성의날 100년, 3.8여성축제 여성, 새로운 공동체 세상을 열자 - 사람․돌봄․상생
2009 여성이 만들어요, 빈곤과 폭력 없는 행복한 세상!
2010 여성의 참여로 희망을 현실로!
2011 그녀에게 빵과 장미를
2012 성평등한 사회를 약속해, 평화로운 세상을 약속해, 99%의 행복을 약속해
2013 여성, 빈곤과 폭력 없는 세상으로
2014 JUMP, 뛰어올라 희망을 보라!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페미니스트 정치, 바로 지금!

7. 교회에서의 여성 역할
130년전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오고 나서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이 남여차별 철폐였다. 그리고 100년이 흐른 지금은 많은 분야에서 남여의 차별이 없어진 것 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뿌리깊은 차별으식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교회안에서 여성 성직자에 대한 차별이 없어진 것이 겨우 20년이다. 여성들이 장로도 되고 목회자도 될 수는 있지만 아직도 여성목회자는 중대형교회의 목회자로 청빙받지 못하고 있다.  장로들도 당회원으로 주체적으로 리더쉽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여성 장로들은 아직도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고 부드러운 분위기 조성의 역할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전도회연합회에 나와서 활동하는 능력있는 여성들도 사실은 매우 소수다.  그리고 지교회에서는 이들도 예전의 남성의 지위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많이 배우고 능력있는 남편을 만난 여성들만이 활동적이다.  목회도 남성 목회자들도 보조적인 측면이나 부목사등 교육분야에 머물고 있지 리더쉽을 발휘하는 자리는 거의 없다.

우리총회에서 선출직에 여성으로는 최초의 고위직이 된 김경인 목사(기획국장) 이후 국내선교부 총무(남윤희 목사)와 총회 훈련원 원감(김명옥  목사)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재편된 5처 교육자원부 총무에 김명옥 목사가 인선 되었다. 총회에 여성지도력이 남게 된 것은 다행으로 여성들은 환영하는 입자므로 보인다. 한국 장로 교단 총회에 여성들이 책임있는 고위직에 나간 것도 우리교단이 유일하다.  

교파 신학대학에 여성 교수들이 우리교단 만큼 있는 곳도 드물다.  그렇다고 하여도 여전히 남성에 비하면 숫자적으로도 그렇고 정규직은 드물다.  그런 가운데 유서 깊은 장신대 여학우회에 대하여 장신대 한 교수가 여학우회는 이제 시대가 변했으니 없어져야 할 때라고 했다고 한다. 남여가 평등을 넘어 여성상위 시대라고 하니 여성이 더 우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로 들린다. 

이분의 눈에는 이제 여성들이 헌법상 모든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여성에 대한 특혜나 보호는 없어져야 한다는 일반적 의미의 말을 한 것으로는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사회에 여성들중 남성보다는 우월적 지위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착시현상이다 여전히 가난하고 전업 주부들의 자리는 법적으로나 상식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임을 알지 못하는 듯 하다.

7. 결론
여성차별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최근 들어 여성의 인권이 많이 향상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의 차별은 크다. 흔히 유리천장 지수로 알려진 남녀차별 지수를 보면 인종, 종교 등의 어떤 차별보다 더 큰 차별이 여성차별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여성이 재임했을 때에 오히려 여성차별이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은 여성차별의 이면에는 여자와 남자라는 성적인 구별보다는 강자와 약자라는 힘의 논리가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독재자의 힘이 군대라면, 자본의 힘은 돈이다. 자본의 논리는 경제논리로 이어지는데, 이런 경제위주의 정책이 여성차별을 심화시킨다고 보는 것이 여성운동가들의 생각이다. 몇 명의 여성들이 남성들이 향유했던 높은 자리에서 으르거나 일한다고 해서 여성의 문제가 해소되거나 차별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해소되었다고 보는 것은 여성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일이다.

남성들의 자리에 몇명의 능력있는 여성이 있다고 보지만 그들 역시 남성성을 유지한다는 비판이다. 이는 여성이지만 남성화된 여성에 불과하다. 지구의 절반인 여성이 만족할 때 까지 모든 분야에서의 차별해소가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고 여권 운동가들이 모든 자리를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갖자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아직도 변하지 않는 남성들의 가부장 문화다.
   
 
                                 "타임" 지에 발표된 100년의 여자들

이진주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100년(1920년-2010년) 여성에 대한 프로필 번역에 추가했다.
https://time.com/5793734/time-100-women-of-the-year-issue/ (타임) 
   
 
1. 1920년대
-1920: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The Suffragette)
-1921: 에미 뇌터(Emmy Noether). 천재 수학자
-1922: 시앙 징위(Xiang Jingyu). 중국 공산당 여성위원장
-1923: 베시 스미스(Bessie Smith). “블루스의 여제”
-1924: 코코 샤넬(Coco Chanel). 천하의 샤넬 창시자
1925: 마거릿 생어(Margaret Sanger). 산아제한 및 가족계획 운동의 선구자, “임신으로부터 자유로운 섹스”의 이론가이며 개혁가. “임신중단” 반대 진영의 타겟이 되기도 했다.
-1926: 에이미 셈플 맥퍼슨(Aimee Semple Mcpherson). 첫 대형교회를 설립한, 카리스마틱 여성 목회자
-1927: 소라야 타르지 왕비(Queen Soraya Tarzi). 아프가니스탄에 첫 여학교를 설립한, 여권과 교육 신봉자
-1928: 안나 메이 웡(Anna May Wong). 인종차별에 대항한, 중국계 이민 2세대 여배우
-1929: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작가, 바로 그 버지니아 울프

2. 1930년대
-1930: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무용가
-1931: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ori). 교육개혁가
-1932: 베이브 디드릭슨(Babe Didrikson). 본명 Mildred Didrikson. 본인피셜 “인형놀이만 빼고” 모든 스포츠에 만능이었던 올림피언. 육상의 80미터 허들, 투창, 높이뛰기 세 영역에서 모두 개인 메달을 딴 유일 기록 보유자
-1933: 프랜시스 퍼킨스(Frances Perkins). 대공황기 노동부 장관으로 뉴딜 이면 사회안전망의 설계자
-1934: 메리 맥클러드 베쑨(Mary Mcleod Bethune). 연방정부 이른바 “흑인 내각(Black Cabinet)”에서 활약한 시민권 운동가
-1935: 아멜리아 에어하트(Amellia Earhart). 대서양을 횡단한 첫 여성 비행사
-1936: 월리스 심슨(Wallis Simpson). “사랑 때문에 왕위를 버리게 한” 천하의 심슨 부인. 타임에서 붙인 제목은 “왕실 디스럽터”
-1937: 쑹메이링(Soong Mei-Ling). 우리 세대는 “장개석” 총통의 아내 “송미령” 여사로 배웠다. 쑹아이링, 쑹칭링 유명한 세 자매의 막내
-1938: 프리다 칼로(Frida Kahlo). 브라질의 장애인으로 남미적인 아픔의 여성을 그린 화가 
-1939: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재즈가수. 치자꽃 그녀

3. 1940년대
-1940: 도로시 레인지(Dorothea Lange). 대공황기 미국의 얼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1941: 제인 포윗과 암호해독자들(Jane Faweett and the Codebreakers). 영국 “브레츨리 파크”의 바로 그녀들. 2차 대전 연합군의 비밀병기로 활약했다. 제인 포윗은 독일군의 가공할 전함 “비스마르크”의 위치를 해독했을 때,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응, 원래 비밀은 남편한테 말하는 거 아니야.
-1942: 저항자들(The Resisters). 2차 대전의 숨은 여성 영웅들. 누군가를 살리고 정보를 파헤치며 목숨 걸고 전쟁에 뛰어든 무명씨들
-1943: 버지니아 홀(Virginia Hall). 의족 때문에 “The Limping Lady”라고 알려진 미국 최고의 스파이. <타임>의 “Women in War” 시리즈
-1944: 르시 테일러(Recy Taylor). 로자 파크스(Rosa Parks) 이전에, 흑인 여성 운동의 터전을 닦은 용감한 여성. 알라바마에 거주하는 24세 아이 엄마 르시 테일러는 6명의 백인 남성들에게 끌려가 윤간을 당한 뒤, 사건을 폭로하고 살해위협과 방화에도 침묵하지 않고 끝까지 가해자들을 고발했다. 당대에는 정의를 보지 못했지만, 그의 고발은 흑인 시민권 운동에 불을 지폈고, 많은 흑인 여성들의 추가 폭로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알라바마 법률 당국이 “당시 그 새끼들을 감옥에 처넣지 못한 것”을 공식 사과했다. 67년만의 일이었다.
-1945: 치엔-쉬엉 우(Chien-Shiung Wu). “물리학의 퍼스트레이디” “중국인 마담 퀴리”. “맨하탄 프로젝트” 페르미와 오펜하이머의 악명 높은 이름 뒤에는 그녀가 있었다. 우라늄을 우라늄-235와 우라늄-238로 분리하는 “베타 붕괴” 작업에 기여했다고. 당시 페르미의 입버릇은 “미스 우에게 물어봐(Ask Miss Wu.)”였다고 한다. .
-1946: 에바 페론(Eva Peron). “Don’t cry for me Argentina”의 주인공으로 아르헨티나 대통령 부인으로 페론당 을 창설한 정치가 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난 댄서출신으로 당시 군장성 페론의 부인이 된다. 
-1947: 암리트 카우르(Amrit Kaur). 이름을 몰라서 죄송합니다. 인도 독립운동가. 내각 첫 여성, 보건장관
-1948: 엘리너 루즈벨트(Eleanor Roosevelt). 영부인, 여성운동가, 사회개혁가
-1949: 시몬 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주장한, 페미니스트 시조새

4. 1950년대
-1950: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Margaret Chase Smith). 상원 유일의 여성의원으로서, 미국 내 사회주의자 색출 작업에 열 올리던 조셉 매카시 상원의원 앞에서 “양심의 선언(Declaration of Conscience)”라는 기념비적인 연설을 했다.
-1951: 루실 볼(Lucille Ball). 코미디언
-1952: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Queen Elizabeth II)
-1953: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 생물학자. 이른바 “노벨상을 빼앗긴 여성과학자 모임”의 셀럽이랄까. DNA의 이중나선구조 엑스레이를 그녀가 찍었다규
-1954: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전설의 여배우 노마 진 베이커
-1955: 분노한 승객들(The Bus Riders). 로자 파크스와 흑인 시민권 운동가들
-1956: 골다 메이어(Golda Meir). 이스라엘 최초의 여성 총리
-1957: 이리나 필립스(Irina Phillips). “솝-오페라의 여왕”. 티비 시대 드라마 장르를 연 극작가, 연출가
-1958: 차이나 마차도(China Machado). 본명은 노엘 마차도. 중국 태생 포르투갈계 미국인. 리차드 애버든에게 발굴된, 미국 메이저 잡지 사상 최초의 유색인 잡지모델.
-1959: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 해군제독 겸 프로그래머. “버그” 명명자

5. 1960년대
-1960: 미라밸 자매들(The Mirabal Sisters). 도미니칸 공화국의 반독재 운동가. 파트리아(Patria), 미네르바(Minerva), 마리아-테레사(Maria-Teresa) 세 자매가 레지스탕스 활동 중 각각 36, 34, 25살의 나이로 사망하자, 이들의 죽음은 독재타도의 트리거가 되었다. 살아남은 막내 데이드(Dede)가 재단과 박물관을 세워 자매들의 페미니스트적, 민주적 저항운동을 기념하고 있다. 국민들의 애칭은 “The Butterflies”
-1961: 리타 모레노(Rita Moreno). 푸에르토리코 출생, 오스카, 에미, 그래미, 토니상을 모두 수상하며, 편견에 대항한 라틴계 여배우.
-1962: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으로 사후 그리스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 
-1963: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저 유명한 <침묵의 봄>을 쓴 환경운동가
-1964: 바바라 기팅스(Barbara Gittings). 스톤월 항쟁 이전 LGBTQAI+ 운동의 상징적 인물. 레즈비언 단체 “빌리티스의 딸들”이 발행하는 <래더(Ladder)> 편집장. 동성애를 질병으로 여기는 기존 정신의학계에 항의하고 동성애 문학을 도서관에 비치하도록 운동했다.
-1965: 돌로리스 헤르타(Dolores Huerta). 조합운동가의 딸로 태어나 노동운동가로 성장했다. 버락 오바마의 저 유명한 슬로건 “Yes, we can.”의 오리지날 버전 “Si, Se Puede.”를 만들었다.
-1966: 스테파니 컬렉(Stephanie Kwolek). 듀퐁 화학자로, 우주선, 휴대전화, 방탄조끼 등에 활용되는 강력한 합성섬유 “Kevlar”를 발명했다.
-1967: 젠질 미리암 마케바(Zenzile Miriam Makeba). “Mama Africa”라고 불렸던 남아프리카의 가수. 아파르트헤이트의 엄혹한 현실을 고발하고 위로했다.
-1968: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재즈 대통령
-1969: 마사 존슨(Marsha P. Johnson). 스톤월 항쟁의 무법자. 복장도착자(Transvestite), 드랙퀸. “교차성”이 시대정신이 되기 이전에 이미 젠더, 계급, 인종, 빈곤의 교차성을 온몸으로 구현하던 상징적인 존재였다. 예일대 수잔 스트라이커(Susan Stryker) 교수는 해설에서 “She was black, gender-non conforming, feminine-presenting, sex-working, street-living person.”이라고 썼다. “She”에 밑줄 치고 읽었다.

 <타임> 100년 여자들의 역사는, 타임으로 대표되는 백인/남성/시민/지성들의 “PC함의 역사”처럼 보인다.   영국에서 시작된 여성 참정권 운동으로 시작해서, 아프리칸, 라틴, 아시안 등의 여성 시민권 운동가들이 인종차별을 뛰어넘고, 대통령, 수상, 여왕, 왕비, 영부인, 국회의원 같은 권력자들부터 과학자, 예술가, 운동선수 같은 특수 분야의 수퍼 엘리트는 물론, 2차 대전의 무명씨, 노동운동가, 환경운동가, 여성운동가, 퀴어운동가까지 아우르는 여정이다.

인종, 직업, 계급, 젠더, 장애, 성적지향/취향, 그리고 최근엔 환경, 동물권, 채식, 나이에 이르기까지, “PC함”의 요건은 더욱 엄격해지고 다양해졌으며, “시민”의 범주는 더욱 확장되고 있다. 아시아 여성으로는 중국인이 3명이며 한국인은 한명도 없다. 
   
                                                      * 여성의 날의 상징인 빵과 장미
6. 1970년대
-1970: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 천하의 페미니스트 여성 운동사 판문점 걷기 행사로 유명  
-1971: 안젤라 데이비스(Angela Davis). 흑인, 여성, 빈곤층, 범죄자의 상징으로, 닉슨 시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정치범이었다. “Free Angela”라는 시민들의 외침은 “Free America”라는 외침과 다름 없었다.
-1972: 팻시 타게모토 밍크(Patsy Takemoto Mink). 하와이 출생 일본계 첫 아시안 여성 하원의원이며, 어린 시절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십수개 의대 입시에서 모두 거절당한 경험이 있었다. 변호사가 되어 성차별 철폐와 교육개혁 운동에 헌신하기로 다짐하고, 원내에 진출해서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타이틀 나인(Title IX)”의 기초를 만들었다. 50년이 흐른 2002년 “Patsy T. Mink Equal Opportunity in Education Act”가 발효되었다. 개인적으로는, 1969년 스톤월의 상징이었던 마사 존슨, 1974년 여성의 경제권을 쟁취한 린디 보그스(Lindy Boggs), 1977년 장애인 액세스권 운동가 주디스 휴먼(Judith Heumann)과 함께 몰랐던 여성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
-1973: 제인 로(Jane Roe). 임신중단을 둘러싼 가장 첨예한 논쟁이었던 “로 대 웨이드 사건(Roe Vs. Wade Case)”에서 승리하여, 프라이버시 권리로서의 “Right to Choose”를 인정하게 한 바로 그녀 제인 로가 표지에 실렸다. 제인 로는 가명.
-1974: 린디 보그스(Lindy Boggs). 여성의 경제적 자유를 열어준 여성. 남편 헤일 보그스(Hale Boggs) 의원이 비행기 충돌 사고로 실종된 뒤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1972년 원내 입성했다. 남편의 서명이 없으면 여성의 신용카드 발급도 허용하지 않았던 당시 금융 현실에 반대하여, 여성 단독으로 신용카드를 만들고, 동일한 경제적 지위를 갖는 남성들과 동일한 이자로 대출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Equal Credit Opportunity Act of 1974”를 만들었다.
-1975: 미국 여성들(American Women). 11페이지 커버 스토리로, 문학, 군대, 종교, 교육, 백악관, 상하원, 내각, 스포츠, 법률, 언론, 노동의 각 분야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상징하는 12명의 여성들을 다뤘다.
-1976: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 인도의 첫 여성 수상
-1977: 주디스 휴먼(Judith Heumann). 장애인 액세스권 운동가. 소아마비를 앓았던 교사 지망생이었다가, 뉴욕시에서 “화재 위험”을 이유로 발령을 거부당한 뒤 차별금지 소송을 걸어 승리했다. 이후 뉴욕에서 첫 “휠체어 유저” 교사로 일하다 장애인 인권단체를 설립했다. 1977년 504명의 장애인들이 연대해 28일간 벌인 연좌농성은 “유약하고 의존적인 장애인”이라는 기존의 편견을 깨고, 스스로 투쟁해 권리를 쟁취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를 만드는 근간이 됐다. (한국의 선거철 반짝 인재영입 풍경과 실제 액세스 현실을 함께 생각해 보자.)
-1978: 레슬리 브라운(Lesley Brown). 역사적인 시험관 아기의 엄마. 타임이 붙인 제목은 “Pioneer Mom”
-1979: 투 유유(Tu Youyou). 중국전통의학에서 힌트를 얻어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해 노벨상을 수상했다. 해설은 말라리아 퇴치 운동에 힘쓰는 멜린다 게이츠가 썼다.

7. 1980년대
-1980: 안나 발렌티노비츠(Anna Walentynowicz). 이름을 몰라서 죄송합니다. 바웬사만 알았지, 이런 걸물이 있는 줄은... “폴란드 독립의 어머니”. 용접공이며 크레인 기사로, “솔리다리티(Solidarity)” 노조의 핵심 지도부로, 80년 폴란드 공산당과 노조의 “그단스크 협정”을 이끌었다.
-1981: 나왈 엘 사다위(Nawal El Saadawi). 이집트 페미니스트 정신과 의사, 작가. 정치와 가부장제의 연결을 고발하고 “국가반역죄”로 수감돼, 눈썹연필로 두루마리 화장지에 책을 썼다. 그의 책은 아랍 세계 여성운동의 기틀이 됐다.
-1982: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철의 여인”으로 불린 영국 수상
-1983: 프랑수아즈 바레-시누시(Francoise Barre-Sinoussi). HIV를 발견하고, 이후 항-HIV 치료제를 만들어 2008년 노벨상을 받았다. 원래 꿈이 과학자는 아니었고,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우연히 바이러스 연구자가 됐다고.
-1984: 벨 훅스(Bell Hooks). “교차성”을 주창한 페미니스트
-1985: 윌마 맨킬러(Wilma Mankiller). 이름에서 짐작했겠지만 네이티브 아메리칸이다. 체로키 자치구역의 첫 여성 최고 족장이 되어, 여러 번 재선됐다. 페미니즘과 네이티브 커뮤니티에 대한 신념으로 부족들을 번영으로 이끌었다.
-1986: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 필리핀 첫 여성 대통령
-1987: 다이애나 왕세자비(Diana, Princess of Wales) 영국 황세자비로 이혼과 열애의 주인공
1988: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Florence Griffith Joyner).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성”. 88 서울 올림픽 당시 5학년이었던 나 역시 그녀의 팬이었다. 화려한 장신구들을 주렁주렁 하고도 가뿐히 금메달을 따는 그녀에게, 탁월성과 여성성은 전혀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었다.
-1989: 마돈나(Madonna)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팝 가수

8. 1990년대
-1990: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그녀가 그렇게 될 줄, 그때는 아무도 몰랐다.
-1991: 아니타 힐(Anita Hill). #MeToo 보다 30년 먼저, 흑인 여성이 전 상관이던 백인 남성 대법관 후보자 클라렌스 토마스의 성폭력을 고발했을 때, 그녀는 혼자였다.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토마스는 그대로 지명되었으나, 아니타 힐의 폭로 이후 성폭력 희생자의 권리를 위한 법률이 의회를 통과했고, 고용기회평등위원회에는 예년보다 50퍼센트 많은 성폭력 신고가 접수되었다. 이후 아니타 힐은 작가, 평론가, 교수로서 새 삶을 개척했다. #힘내라김지은 #힘내라서지현 2018년 크리스틴 블래지 포드(Cristine Blasey Ford)가 똑같은 대법관 후보 브렛 카바노의 10대 시절 성폭력을 고발했을 때, 이번에도 카바노는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그대로 지명됐다.
-1992: 시내이드 오코너(Sinead O’Connor). 아일랜드 출신으로 신비한 이미지로 인기를 구가하던 그는, SNL에 출연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을 찢는 퍼포먼스를 해 충격을 모은다. 그는 이어 어린 시절 카톨릭 교회 안에서 자신이 경험했던 성폭력을 고발하지만, 오히려 인기가 급락하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 이후 9년 뒤, 교황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반복돼 왔던 카톨릭 교회 내 아동 성폭력을 인정하고 사과한다.
-1993: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작가
-1994: 조슬린 엘더스(Joycelyn Elders). 의사, 첫 흑인, 두번째 여성 미국 서전 제너럴. 16세까지 병원 한 번 못가본 아칸소 소녀가 미국 공중보건 책임자가 됐다. 자위를 학교 성교육에 포함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진보적 성교육을 추진했으며, 마약 합법화 등을 연구했다. 너무 진보적이어서 클린턴 행정부마저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사임을 종용한다. 지금은 더 많은 흑인 여성들이 의학계에 진출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1995: 사다코 오가타(Sadako Ogata). 유일한 일본인, 첫 여성 UNHCR 의장. 탁월한 협상가였다
-1996: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아직 RBG 팬덤이 생기기 전이었다.
-1997: 엘런 드제너러스(Ellen DeGeneres). 코미디언
-1998: 롤링(J. K. Rowling). 해리 포터의 어머니로 "반지의 제왕" 씨리즈 영국 여성 작가  
-1999: 매들린 올브라이트(Madeleine Albright). 마담 세크러터리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

9. 2000년대
-2000: 산드라 데이 오코너(Sandra Day O’Connor): RBG 이전, 첫 여성 대법관. 조지 부시와 앨 고어의 표 대결에서 조지 부시의 손을 들어주었다.
-2001: 왕가리 마타이(Wangari Mathai). 나무를 심은 사람
-2002: 내부고발자들(The Whistleblowers). 월드콤 회계부정을 고발한 신시아 쿠퍼(Cynthia Cooper), 엔론 CEO 케네스 레이의 계좌 사기를 고발한 셔런 왓킨스(Sherron Watkins), 911 테러에 대한 사전 경고의 중대성을 파악하는 데 실패한 FBI를 고발한 콜린 롤리(Coleen Rowley). 이 사건들의 내부고발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데, 감히 참담한 동질감과 슬픔을 느낀다.
-2003: 세레나 윌리엄스(Serena Williams). USA 흑인 여성 테니스 챔피언 자매
-2004: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 미국 토크쇼의 여왕
-2005: 멜린다 게이츠(Melinda Gates). 사실은 “착한 사마리아인”이란 제목으로 남편 빌 게이츠, U2의 보노와 함께. 사진을 제일 뒤 구석자리에 실어놔서 좀 별로였다.
-2006: 엘런 존슨 서리프(Ellen Johnson Sirleaf). 현대 아프리카 국가 첫 선출직 여성 리더. 14년 간의 내전 뒤 파괴된 라이베리아를 재건했다. 한때 노벨상까지 받으며 아프리카 대륙의 희망으로 보였다. 그러나 가족 비리와 부패, 에볼라 바이러스 창궐 당시 가난한 환자들을 군대를 투입해 진압하는 등 폭정으로 몰락했다.
-2007: 릴리 리드베터(Lilly Ledbetter). 평생 근무한 굿이어타이어 퇴직 후, 동일 직급의 남성 근로자보다 천여 배 적은 연봉을 받은 데 분노했다. 이른바 “Equal Pay”의 기념비적인 소송으로, RBG가 강하게 “I dissent!”를 외쳤던 “리드베터 대 굿이어타이어 사건”의 승자가 됐다. 후에 “Lilly Ledbetter Fair Pay Act 09”로 이어졌다.
-2008: 미셸 오바마(Michelle Obama)
-2009: 말랄라 유제프자이(Malala Yousafzai)

10. 2010년대
-2010: 낸시 펠로시(Nancy Pelosy) 미 상원의원 민주당 위원장
-2011: 타와콜 카르만(Tawakkol Karman). 예멘 “아랍의 봄”을 이끈 “혁명의 어머니”. 두 딸과 아들 하나의 엄마로서 여성주의에 입각한 해방운동에 앞장섰다. 32세의 나이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첫 예멘, 첫 아랍 여성, 두번째 무슬림 여성 수상자였다.
-2012: 푸시 리옷(Pussy Riot). 푸틴 치하 러시아를 발칵 뒤집어놓은 깜찍발랄 모스크바 페미니스트 항쟁의 리더들. 그러나 3년 징역형을 받았다.
-2013: 패트리스 컬러스(Patrisse Cullors), 알리시아 거르자(Alicia Garza), 오팔 토메티(Opal Tometi).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설립자들. 버스 라이더 이후 한참은 더 온 것 같은데 아직 다 오지 않았다.
-2014: 비욘세 노울즈-카터(Beyonce Knowles-Carter)
-2015: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독일에서는 남자도 수상이 될 수 있나요?”
-2016: 힐러리 로댐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
-2017: 침묵의 파괴자들(The Silence Breakers). 역사적인 #MeToo 운동의 승리자들
-2018: 마리아 레사(Maria Ressa). 필리핀 미디어 운동가. 2012년 <Rappler> 창립 이후, 두아르테 지지자들이 온라인 담론을 장악한 데 저항하는 미디어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진실 전쟁의 수호자(Guardian in the War on Truth)”
-2019: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2009년의 말랄라, 꼭 십 년 뒤의 그레타. 세계가 감추고자 하는 어떤 진실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스웨덴의 학생 환경운동가  
   
* 미국의 크린턴 대통령의 령부인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여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부부 대통령이 될뻔한 힐러리 로댐 클린턴(Hillary Rodham Clinton)
 

[관련기사]

여성학자가 본 성경속의 여성 11인의 삶
전국여교역자연합회 사무총장과 안식관 원장 취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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