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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살아있는 지성 하워드 진
유재무 편집인  |  ds2sg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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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23  12: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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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영원한 지성 하워드 진

"가난한 이들의 외침이 항상 정의롭지는 않지만,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정의가 무엇인지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하워드 진은 노암 촘스키와 함께 '실천적 지식인’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대학교수, 사회운동가, 역사학자이다. 하워드 진은 ‘역사는 아래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일관된 자세로 저술과 강연 활동을 전개하여 20여 권의 저서를 출간하는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그는 1922년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조선소 노동자로 떠돌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기를 타면서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겪은 뒤 평생 전쟁에 반대하게 되었다.

제대 후 원호법GI Bill 아래 컬럼비아 대학에 입학해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흑인 여성들의 대학인 스펠먼 대학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으나 당시 미국을 뒤흔든 반인종차별 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불의에 맞섰던 그는 학교 당국의 눈엣가시였고, 결국 해고되고 만다. 이후 보스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노엄 촘스키와 함께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파리 대학과 볼로냐 대학의 방문교수, 하버드대 극동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있기도 했다.

투쟁을 통한 공부

1922년생인 진은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청년시절을 부두 노동자로 힘겹게 지냈다. 대학입학은 2차 대전 참전 이후인 27세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남부의 흑인 여대인 스펠만대학에 부임한 후, 진은 시민권 운동과 베트남전 반대 운동을 겪으면서 자신이 ‘명예롭게’ 여겼던 참전 경험과 정면으로 대결하게 되고, 백인으로서 차별 없이 ‘편하게’ 지냈던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게 된다.

그가 교수 신분으로 흑인 대학생들의 편에 서서 저항운동에 참여했던 것은 바로 자신이 ‘상식’이고 ‘진리’라고 믿었던 것들을 새롭게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강의실 바깥에서 수많은 위태로움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가르침을 교실 속에만 한정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면서, 나는 내 학생들이 하고 싶은 일(민권운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그가 지식인으로서 겪은 첫 번째 대가는 ‘해고’였다.

그러나 진은 후회하지 않았으며 이후로도 인민들과 함께 비뚤어진 권력에 저항하는 것에 평생을 바쳤다. 위대한 역작인 <미국민중사>는 진이 연구실 속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힘없는 인민들이 권력을 당황하게 하고 도망가게 했던 역사를 거리에서 그들과 직접 만들어낸 지식인이었기에 쓸 수 있었던 책이다. <미국민중사> 후기에서 진이 고백하듯, 그는 투쟁 현장의 ‘정치성’과 강의실 안의 ‘중립성’ 사이의 괴리를 견딜 수 없었기에 이 책을 썼다. 바로 이 ‘견딜 수 없음’을 인식하게 했던 투쟁의 경험이 이를 학문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공부’를 가능케 했던 것이다.

우리 시대 지식인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런 점에서 진은 ‘우리 시대의 지식인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하나의 사표(師表)를 제시해 준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경제적 합리성이라는 정언명령으로 환원되는 이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지식인’ 역시 단지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일 뿐이고, ‘선생’은 ‘소비자’인 학생에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여 수입을 창출하는 이’로 재정립된다. 이런 식으로 규정된 ‘학생’과 ‘선생’은 오직 계량화된 ‘업적’을 쌓음으로써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해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 속의 게이머와 다를 바 없다.

결국은 강의실과 연구실 바깥의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침묵이 요구되는 셈이다. 스펠만대학과 보스턴대학 캠퍼스 바깥의 문제들에 참여하면서 이를 통해 자신의 연구를 심화시켰던 진의 생애는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의 야만 속에서 공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은 위대한 스승에 대한 틀에 박힌 존경심을 뛰어넘어, 그의 삶을 내가 새롭게 ‘반복’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한 지식인으로서의 존재론적 물음으로 다가올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안팎이 파국의 기미들로 가득한 세상을 살며 우리는 때때로 좌절한다. 이 시대는 그 누구에게도 쉽사리 마음의 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진전이 없어 보이는 대학원에서의 학업이 그렇고, 자본의 침투가 학문 구조조정으로 본격화되고 있는 오늘날 대학의 모습을 볼 때 그렇다. 그럴 때면 나는 진의 말을 떠올리고는 한다. “미래는 현재의 끊임없는 연속이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쁜 것들을 거부하는 가운데 우리가 마땅히 살아가야 하는 방식이라고 믿는 바처럼 지금을 살아간다면, 바로 그 자체가 위대한 승리이다.”

‘지금’을 어떻게 살 것인가, ‘여기’를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버티고 벼릴 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승리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힘든 일이지만, 분명 가치있는 일이다. ‘모든 견고한 것들이 공기 속으로 녹아 사라지는’ 지금, 진의 죽음 이후 우리는 다시 어떤 견고함을 꿈꿔야 하는 책무를 떠맡은 것인지도 모른다.

"대학교수가 된 후에도 난 그 세계를 잊지 않았다" (오마이뉴스|2010.02.01 기사)

노엄 촘스키와 더불어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의 상징이었던 '하워드 진' 교수가 88세를 일기로 숨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하워드 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그가 쓴 책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와 <불복종의 이유 >를 읽으면서부터 입니다.< 오마이뉴스 >에 쓴 서평 기사를 검색해보니 지난 몇 해 동안 하워드진의 저작들을 읽고 여러 번 소개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 하워드 진의 대표적인 저작은 <미국민중사 >입니다. 1980년 불과 5000부를 출판하였던 미국 민중사는 그후 미국에서만 200만 부가 넘게 팔렸으며, 수많은 고등학교와 대학의 역사교과서로 채택되었다.

그는 미국이 삼류 깡패국가가 된 것은 2차 대전 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면서부터가 아니라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진보적인 역사학자로서 반전, 민권, 여권, 인종간 평등, 제3세계를 주제로 연구와 실천을 함께 하는 실천적 지식인이었지요.스펠먼대학에서 흑인 여성 제자들과 함게 민권 운동을 벌였고, 보스턴대학 시절에는 베트남 반전운동의 선두에 섰다. 그는 미국 역사를 강자와 지배자의 관점이 아닌 원주민(인디언), 흑인, 여성, 노동자의 저항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썼다. 하워드 진은 "역사를 바라볼 때 선택과 강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느 한 쪽을 편들어야 한다면, 나는 민중의 관점에서 역사를 읽고 싶다"고 하였다.

독자들은 하워드 진이 쓴 <미국 민중사 >를 비롯한 여러 저작들을 통해 정복자, 영웅의 시각에서 쓰인 미국역사 대신에 그들의 야욕에 희생당한 수많은 민중의 시각에서 쓰인 미국역사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하워드 진은 역사기술이 지나치게 비판적이며, 비애국적이라는 보수주의자들에게 자신의 역사인식은 '정직함'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조국이 저지른 실수에 대해서 '정직'할 때만이 그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에 정직하게 평가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저서 『La Guardia in Congress』은 앨버트 베버리지 상을 받았으며 그 외에도 토머스 머튼 상(Thomas Merton Award), 유진 V. 뎁스 상(Eugene V. Debs Award), 업튼 싱클레어 상(Upton Sinclair Award), 래넌 문학상(Lannan Literary Award) 등을 수상했다. 현재 그는 보스턴대학교의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매사추세츠주 오번데일에 살고 있으며 그의 홈페이지 http://www.howardzinn.org 을 통해 근황을 알리고 있다.

여든을 넘긴 지금도 이라크전쟁 반대 운동을 지지하는 등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서 '민중의 역사'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애틀랜타에서의 경험을 담고 있는 『The Southern Mystique』, 가열찬 반전운동을 전개하던 와중에 쓴 『Vietnam : The logic of Withdrawal』, 촘스키와 공동 편집한 『The Pentagon Paper : Critical Essays』, 그리고 정치적ㆍ경제적으로 수탈당해 오면서도 대부분의 역사에서 거의 배제되어 온 미국 민중들의 역동적인 빛나는 역사를 민중의 시각에서 서술한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미국 민중사 1,2)』, 에마 골드만의 삶을 그린 희곡 『Emma』등이 있다.

이 밖에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오만한 제국Declaration of Independence: Cross-Examining America Ideology』(2001),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2002) 『전쟁에 반대한다On War』(2003), 『하워드 진의 ㅁ나화 미국사』, 『권력을 이긴 사람들』, 『하워드 진의 살아있는 미국역사』,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등이 있다.

미국내 위상

미국의 역사의 시작은 바로 콜럼버스로부터 시작이다. 그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로 그 대륙의 역사는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세계 즉 유혈의 세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묻고 싶다. 콜럼버스로부터 코르테스, 피사로, 청교도들에게 이어진 이 모든 유혈과 속임수가 인류가 야만에서 문명으로 진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 정복하는 측인 “진보된”나라의 중간계급과 상류계급은 그런 재빠른 처리 (“그래, 유감스럽기는 하나 어쨌든 했어야 할 일이 아닌가?”)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소련 강제노동연구소의 죄수들, 도심 빈민가의 흑인들, 지정거주지의 인디언들-세계의 소수 특권층에게 이익을 가져다준 바로 그 진보의 희생자들도 그 주장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미국의 광부와 철도 노동자들, 공장 직공들, 일터나 집에서 사고와 질병으로 수십만 명씩 죽어간 남성과 여성들-진보가 동반한 인적 손실의 대상이 된 사람들에게 과연 그런 서술이 받아들일 만한 일이었을까? (단지 피할 도리가 없었던 일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심지어 소수 특권층까지도-조직적인 반란이나 비조직적인 폭동, 법률과 국가에 의해 범죄라는 딱지가 붙은 개인적인 절망감의 폭력적 분출행위 등으로 표출되는 희생자들의 분노 때문에 위협받게 될 때, 아무리 특권을 누리고 있어도 버릴 수 없는 현실감각을 갖고 그런 특권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서는 안 된단 말인가? 

만약 인간 진보를 위해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희생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희생당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는 게 중요치 않을까?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포기하는 결정을 할 수 있지만 질병이나 건강, 삶이나 죽음처럼 명백하고 당면한 문제가 아닌 어떤 진보를 위해 다른 사람의 아이들, 심지어 자신의 아이들까지도 활활 타오르는 장작더미 속으로 던져 버릴 권리가 있는가?

그는 한때 보스턴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노엄 촘스키와 함께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파리 대학과 볼로냐 대학의 방문교수, 하버드대 극동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있기도 했다. 그의 저서 중 『La Guardia in Congress』은 앨버트 베버리지 상을 받았으며 그 외에도 토머스 머튼 상(Thomas Merton Award), 유진 V. 뎁스 상(Eugene V. Debs Award), 업튼 싱클레어 상(Upton Sinclair Award), 래넌 문학상(Lannan Literary Award) 등을 수상했다. 현재 그는 보스턴대학교의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매사추세츠주 오번데일에 살고 있으며 그의 홈페이지 http://www.howardzinn.org 을 통해 근황을 알리고 있다.

여든을 넘긴 지금도 이라크전쟁 반대 운동을 지지하는 등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서 '민중의 역사'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애틀랜타에서의 경험을 담고 있는 『The Southern Mystique』, 가열찬 반전운동을 전개하던 와중에 쓴 『Vietnam : The logic of Withdrawal』, 촘스키와 공동 편집한 『The Pentagon Paper : Critical Essays』, 그리고 정치적ㆍ경제적으로 수탈당해 오면서도 대부분의 역사에서 거의 배제되어 온 미국 민중들의 역동적인 빛나는 역사를 민중의 시각에서 서술한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미국 민중사 1,2)』, 에마 골드만의 삶을 그린 희곡 『Emma』등이 있다.

이 밖에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오만한 제국Declaration of Independence: Cross-Examining America Ideology』(2001),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2002) 『전쟁에 반대한다On War』(2003), 『하워드 진의 ㅁ나화 미국사』, 『권력을 이긴 사람들』, 『하워드 진의 살아있는 미국역사』, 『마르크스, 뉴욕에 가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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